연등을 달며
연등을 달며
  • 이기표 원장
  • 승인 2010.05.14 09:4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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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의 세상이야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우리 보현의집 마당에도 연등이 내걸렸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쉼터에 들어있는 노숙자들이 그 가난한 손들을 모아 등을 접어 거는 것이다.
그들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투덜댄다.
“등을 걸어봐야 찾아오는 사람도 없을 건데 무엇 하러 이 짓을 하는지 모르겠네.”

사회의 도움으로 운영되는 노숙자 쉼터,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사월초파일이나 명절이 되면 여기저기서 보내주는 온정이 그득했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런 풍경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 그 친구의 투정도 날로 각박해져가는 세상인심에 대한 원망일 것이다.
그런데도 한 친구가 혀를 차며 나무란다.
“이 사람아, 누가 찾아오라고 등을 다나? 부처님의 지혜가 온 세상을 밝히라는 뜻으로 등을 켜는 것이지!”
그렇다. 부처님 탄신일을 즈음하여 각 사찰마다 등을 밝히는 것은 부처님의 거룩하신 보살행이 온 누리를 밝게 비추기를 바라는 염원일 것이다. 부처님께서 왕자의 권자를 팽개치고 스스로 고행의 길을 선택하신 것은 “내 부처되어 마지막 한 생명까지 다 건지리라.”는 서원에서 비롯되었다.

온갖 괴로움의 질곡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편안하고 즐거운 안락(安樂)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부처님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안락(安樂)의 세계란 다름 아닌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즉 인간의 생명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존엄하고 존귀하다는 깨달음의 세계인 것이다.

모든 생명은 부처님처럼 존엄하다는 것만 깨달아도 남의 자유를 억압하는 어리석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남보다 내가 우월하다는 불평등사상도 사라질 것이다. 남의 평화를 침해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오늘의 민주주의가 추구하고 있는 자유, 평등, 평화라는 3대 원칙이 바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자유, 평등, 평화라고 하는 공생정신이야말로 부처님의 사상이자 가르침의 본질이지 않은가.

우리 불자들이 사홍서원(四弘誓願)을 통해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고 다짐하는 것도 이 세상을 보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겠다는 부처님과의 약속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날이 갈수록 어둡고 어지럽다. 이념으로 대립하고, 있고 없음으로 갈등하며 괴로워하는 중생이 부지기다. 심지어는 종교끼리도 반목하고 갈등하며 전쟁으로까지 비화되어 많은 인명이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입으로는 빛과 소금을 외치면서 세상을 아수라로 만들고 있는 집단이 무슨 종교란 말인가.
고여 있는 바닷물이 썩지 않는 까닭은 그 속에 함유되어있는 2%정도의 염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세계 인류의 80% 이상이 종교인을 자처하면서도 오히려 반목과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해마다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우리 불자들은 저마다 연등을 밝힌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을 기리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 연등을 허공에만 내걸지 말고 각자의 마음속에도 환히 걸어두는 석탄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우리 불자들만이라도 남과 반목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고, 다투지 않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석탄일이 된다면, 그것이 스스로 안락을 찾아가는 길이고 자유, 평등, 평화라는 부처님의 정신을 실천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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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2010-05-14 18:19:04
매년 이맘때면 고향 사찰에 우리 삼형제의 연등이 걸린다. 어머니께서는 매년 아들 이름으로 연등을 달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하신다. 이 글을 읽으며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시는 어머니를 다시 생각하게 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야만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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