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와 대통령 축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임을 위한 행진곡’ 배제와 대통령 축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5.31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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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고통의 연대.’ 몇 해 전 김상봉 전남대 교수가 광주민주화운동의 세계화를 모색하는 세미나에서 내놓은 개념입니다. 김 교수는 전시 성격이 강한 형식적 세계화 논의를 비판하며, 이와는 달리 광주의 영속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영속성을 위해 필요한 개념이 ‘고통의 연대’입니다.

‘고통의 연대’는 공시적인 차원과 통시적인 차원의 감성과 이성의 연대로 구분됩니다. 공시적 차원에서의 연대는 지역과 계층의 차이를 초월해서 5월 광주의 당사자들이 겪은 슬픔에 대해 공감하는 것을 말하고, 통시적 차원의 연대는 5월 ‘광주의 정신’을 부단히 현재화하기 위한 인식적 노력을 의미합니다.

▲ 1980년 5월 20일, 금남로에 모여든 차량들의 시위 ⓒ 5.18연구소

오늘 망월동에서는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행사가 두 군데서 열렸습니다. 정부가 주최한 자리와 5.18 기념행사위원회가 마련한 별도의 행사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이 정부가 주최한 행사에서 빠진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저는 이 사건에서 ‘고통의 연대’를 두 차원에서 모두 단절시키려는 정부의 강박과, 정부의 의도를 감지한 시민들의 혜안을 생각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월 광주의 상징입니다. ‘도청 앞 광장’도 ‘금남로’도 ‘전남도청’도 ‘망월동’도 80년 봄 광주시민들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만, ‘임을 위한 행진곡’은 지역을 초월해서 계층을 초월해서 민주주의를 원하는 장소라면 어디에서든지 불렸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중 몇몇은 5월 광주를 떠올리기 마련이고 노래를 부르는 맥락에 따라 ‘광주’와 ‘현재’를 접속시켰을 것입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고통의 연대’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정부는 ‘연대’를 가능케 했던 매체, 즉 노래를 행사에서 지워버리고 대신 대통령 기념사에 이런 내용을 채워 넣었습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기폭제였다. 지금은 민주주의가 성숙돼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거리의 정치’와 ‘포퓰리즘’이 사라져야 한다.‘

68혁명이 ‘노동에 대한 불손’과 ‘게으름’을 낳았기 때문에 그 시대적 유산을 끊어야 한다던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됩니다. 아니 사르코지는 차라리 ‘직구 승부’를 했다고 할까요? 세계관이 다른 부분을 ‘역사적 단절’로 환치시키는 것이 어찌 ‘직구 승부’이겠습니까만,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빌어 ‘민주주의’의 전통을 단절시키자는 이상한 선동은 아니었으니까요.

대통령 기념사는 ‘연대의 아이콘’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워버리고, ‘시민에 의한 민주주의’라는 5월 광주정신의 통시적 연대를 끊으려는 현 권력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대통령의 참석여부에 대한 비판은 연대의 고리를 끊어버리려는 기도에 비하면 훨씬 비중이 작아야 합니다.

고민입니다. 진정으로 5월 광주, 아니 그 뒤로 이어진 수많은 의로운 죽음과 연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입니다. 스텐리 코언은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스탠리 코언 지음, 조효제 옮김, 창비 펴냄)에서 국가가 저지른 잔혹한 사건에 대해 대중들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외면한다고 합니다. 대중의 반응은 ‘그런 일은 없다’부터 ‘그럴만했다’까지 다양합니다.
코언은 이 반응들을 충격에 대한 회피라고 파악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에 인권이라는 정의로 맞서는 것은 정직한 눈으로 참혹한 현실을 바라보는 용기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많은 분들이 시민의식을 학습하는 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하십니다. 공감합니다. 소위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중 민주화’가 필요하고, 시민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이 시민의식 학습을 위한 교육에 들어가야 한다는 데 절대적으로 공감합니다. ‘고통의 연대’는 저절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민의식이 허약해지는 때마다 권력은 연대의 고리를 끊으려는 기도를 재차 삼차 할 것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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