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참의장의 ‘전역서’가 으스스한 이유
합참의장의 ‘전역서’가 으스스한 이유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6.25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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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허위보고’와 ‘기망’은 과연 큰 문제가 아닌가?

놀랍고 두렵다. 어제 이상의 합참의장의 ‘전역지원서’를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합참의장 발언은 세 층위에서 두려움을 배가시킨다.

첫째, 군부의 ‘허위보고’, 통수권자와 주권자에 대한 ‘기망’행위가 갖는 중대성에 대한 몰각이다.

합참의장은 “(감사원 조사결과) 일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 등으로 인해 우리 군이 허위조작 등을 자행하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그 결과로 군과 개인의 명예가 실추되었으며 사기도 심각하게 저하됐으며, 군 상하간의 위계질서와 단결까지도 훼손됐다”고도 말했다.

이번 감사는 지난 4월 20일 김태영 국방장관이 ‘군 지휘보고체계 및 초등조치 등에 대해’ 감사원에 직무감찰을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감사는 ‘상황보고․전파 등 군 지휘보고체계의 적정성’, ‘전투준비태세 등 위기예방 및 대응조치의 적정성’, ‘기타 국방기밀 관리 및 국민의혹 사항 등 점검’을 중점사안으로 진행됐으며, ‘기밀보호’를 위해 최소한으로 발표한 중간감사 결과 또한 해군 제2함대사령부 → 함동참모본부 → 국방부장관으로 이어진 1차, 2차 허위보고에 가장 큰 무게를 두고 있다. 감사원이 지적한 가장 큰 문제는 ‘허위보고’인 것이다.

▲ 이상의 합참의장 ⓒ 권우성

이에 대한 합참의장의 대응은 군이 부도덕한 집단으로 인식됐다는 불만표출이며, 군의 단결이 훼손됐다는 성토다. ‘허위보고’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사고다.

합헌적 폭력을 가지고 있는 군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주권자인 국민을 기망하는 ‘허위보고’는 헌정질서를 위협할 수도, 국가의 안위를 위태롭게 할 수도 있다. 특히 두 번의 군사쿠데타를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군부의 ‘허위보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기 일주일 전, 장면 총리는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불러 그간 입수한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 설에 대한 의견을 물었고, 장 총장은 “알아보겠지만 그럴 리가 없다”고 보고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장 총장은 쿠데타 음모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장 총리에게 허위보고를 한 것이다. 12․12 쿠데타도 마찬가지다. 하급부대장이 병력을 움직이면서 사령관에게는 부대출동을 하지 않았다는 허위보고를 전하고, 사실상의 내전이 진행됐었다.

군을 민간이 통제해야 한다는 ‘상식’에서 보면 군의 ‘허위보고’는 헌정질서를 깨뜨리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또한 국방부장관이 요청한 감사에 대해 합참의장이 성토하는 행위는, 대통령이 최고 통수권을 맡고, 국방부장관이 함참의장을 지휘․감독하며, 함참의장은 국방부장관의 명을 받는다는 『군사조직법』을 보더라도 있어서는 안 되는 ‘항명’이다.

합참의장의 발언의 수신자는 극우세력과 군부

둘째, ‘전역 사유’와 무관한 언론과 국민에 대한 힐난 때문이다.

합참의장은 “(군은) 이번 사건이 북한군에 의해 저질러진 것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과 국민들 일각에서 명백한 북한의 도발 실체를 믿을 수 없다는 반응에 대해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합참의장이 옷을 벗는 이유는 소위 ‘피격 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지만 합참의장은 마치 자신의 불명예스러운 ‘전역’이 천안함 침몰의 진실을 알고자하는 언론과 시민들 때문인 양 포장한다.

합참의장의 발언은 매우 정치적이다. 이 발언은 합참의장이 천안함 의혹을 제기하는 시민들에 의한 억울한 희생양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시민들이 한 나라의 합참의장을 날렸다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수신자가 우리 사회의 극우세력이나 군부라고 할 때, 그 효과는 시민사회와 언론자유에 대한 적대감으로 끔찍하게 증폭된다. 대체 합참의장은 왜 이런 발언을 했을까?

합참의장은 시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패장?

셋째, 자신을 ‘희생양’으로 생각하는 심각한 오류로부터 시작된 시민들과의 대결의식 때문이다.

합참의장은 “충실한 부하 장병들이 본인의 거취 표명을 계기로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임무수행 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했다.

감사원은 ‘허위보고’, ‘북 잠수정 침투에 대비한 태세 미흡’, ‘TOD 동영상 미공개 및 지진파 자료 미활용’ 등의 사유로 현역군인 23명과 국방부 고위 공무원 2명 등 25명을 징계하라고 국방부에 통보했다. 주지하다시피 율곡사업 비리 이후 최대 규모의 징계다.

이 정도 규모의 사건에서 합참의장이 해야 할 말은 ‘다시는 군이 대통령과 국민을 기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반성과 다짐이다. 그런데 그의 글에서는 이런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나 하나로 만족하라’는 식이다. 국민과 전투를 치러 패배한 장수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런 식의 발언은 나올 수가 없다. 이것이 세 번째로 두려운 이유이다.

귀한 세금으로 키워 낸 장교들의 옷을 벗기는 일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다. 시민들 또한 달가운 일일 리가 없다. 진정으로 국민의 군대를 책임졌던 군의 수장이라면 시민들의 쓰린 마음을 조금은 헤아리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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