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곽 교육감의 ‘무상교육’을 비판하고 나선 이유
조선일보가 곽 교육감의 ‘무상교육’을 비판하고 나선 이유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7.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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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빠듯한 예산 형편에 ‘무상교육’ 이념을 앞세워 부유층 학생이나 저소득층 학생이나 똑같이 지원한다면 정말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곽 교육감은 교육 격차를 줄여 빈곤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곽 교육감은 지금 그 반대로 가고 있다.”(조선일보 1일자 사설, ‘곽 교육감, 저소득층 학생들 몫 빼앗는 것 아닌가’)

조선일보 사설입니다. 경향이나 한겨레 사설이 아닙니다.
곽 교육감이 시행하고자 하는 ‘무상급식과 학습준비물, 학교운영지원비, 수업료 지원은 부유층과 중산층 자녀들에게도 똑같이 돌아가는 혜택’이다. 그래서 이 돈을 ‘저소득층 학생지원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면 교육 격차 해소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조선의 사설 취지입니다. 흥미롭지요.

▲ ⓒ 오마이뉴스(황영철)

하지만 논리의 함정일 뿐입니다.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척 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집중적 투자를 강조하면서, 무상급식에 대한 반대 논리를 강화시키고 다시 한번 편 가르기를 해보려는 조선일보의 ‘전술’일 뿐입니다. 차별을 합리화해서 강자의 권리를 합리화하려는 사회적 다윈주의의 흐름, ‘극단적 공리주의’의 연장선상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지난 선거에서 ‘무상급식’이라는 이슈가 가진 의제설정과 정책에 대한 공감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요. 야권연대의 뿌리가 됐고, ‘보편적 복지’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됐습니다. ‘무상급식’에 무조건 반대하던 한나라당이 ‘보편적 복지’와 인권의 도도한 흐름을 이길 수 없자 꺼내 든 논리가 바로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의 논리였지요. 이른바 ‘부자급식론’입니다. 물론 이런 ‘선전․선동’은 당연히 실패했지요.

그래서 조선일보는 약간의 논리 강화와 보강에 나선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야말로 여전히 기본적 인권과 보편적 복지라는 헌법논리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합니다. 비난의 십자포화를 받아야만 합니다.

첫 번째로,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의무교육 자체를 없애야 합니다.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주장한 건강보험제도도 없애야 합니다. 학교운동장은 유료화해야 합니다. 돈 있는 집 아이는 좋은 책상, 좋은 교과서, 좋은 축구공을 사용해야 합니다. 부잣집 아이는 군에 가면 방탄조끼를 사 입을 수 있어야 합니다. 방탄 차량을 사서 몰고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공공도로는 모두 유료화 해야 합니다. 완전한 수익자 부담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더 이상 공화국이 아니라 주식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기본적 인권에 대한 몰이해입니다. “가난을 증명해야 밥 한 끼를 준다는 것은 아이들의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다”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동의합니다. 무상급식은 인권입니다. 밥과 국과 집과 옷은 인간의 가장 보편적 권리입니다. 의무교육의 내용을 조금만 확장한다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입니다. 더구나 무상급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도로를 넓히듯, 아이들의 인권과 복지를 가장 기초적으로 책임져주는 일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유상급식입니다. 유상교육입니다.

매일 밤 맞벌이 하는 부부들이 아이들의 학습준비물을 사러 문구점을 돌아다녀야 합니다. 저조차도 그런 적이 많습니다. 퇴근길에 문 닫아버린 학교 앞 문방구를 수차례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이런 불편함과 불필요한 차별들을 해소해내는 것이 왜 잘못이지요.

세 번째로, 드디어 조선일보는 커밍아웃한 모양입니다. 세금은 가난한 아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바른 길이라고 선언한 듯합니다. 저소득층 학생지원에 집중적으로 투입해서 교육격차를 해소하자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세금 낸 사람 따로, 혜택 받는 사람 따로일 수 있다라는 논리를 수용하는 모양입니다. 세금이 가진 조정적 성격을 수용하는 모양입니다. 참으로 조선일보답지 않은 논리인 셈입니다.

좀 더 정중하게 비판해 보겠습니다.
조선일보의 이런 주장은 조세저항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전혀 없는 주장입니다. 일부 담세계층은 돈만 내고 혜택은 전혀 돌아가지 않는 ‘복지’를 꿈꾸는 모양입니다. 기본적 인권이라는 보편주의 원칙을 무시합니다. 의도적으로 조세저항을 자초하는 모양입니다. 조세와 복지와 인권에 대한 기초개념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러다보니 결국 조선일보는 그토록 비판하던 좌파논리에 스스로 매몰되고 말았습니다. 비판하려다 도리어 그 늪에 빠져버렸습니다.
물론 그 의도는 분명합니다. ‘보편적 복지’를 막아보자는 겁니다. 역사의 흐름을 되돌려 보자는 겁니다. ‘귀족학교’를 만들고, ‘의료민영화’를 하고, ‘사보험 확대’를 하자는 겁니다.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조선일보 사설의 집중적 감시와 견제는 참 흥미롭습니다.
당선된 이후의 한 사설은 진보교육감이 아이들을 외고, 과학고 보냈다는 건 절대 죄가 아니라며 곽 교육감을 옹호하는 척하면서 정책영역을 제한하기 시작했지요.(6월 10일자 사설)
당선 직후에는 곽노현 당선자가 얻은 표는 34.3%로 보수후보들 표의 절반 밖에 되지 않으니 그 표를 가지고 자신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2/3의 학부모나 자녀들을 대상으로 포퓰리즘 교육실험을 시도해서는 안된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6월 5일자 사설)
선거 전에는 이미 곽노현 후보가 노무현 정부 시절 좌편향 논란을 부른 국가인권위원회의 사무총장을 지냈고, 교육분야 활동경력은 별로 없다며 곽 후보의 당선을 지극히 경계하고 나선 바도 있습니다.(5월 17일자 사설)

그렇다면 오늘 취임식을 갖게 되는 곽 교육감에 대한 사설이 불과 두 달도 못돼서 네 건이나 집중되고 있는 셈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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