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정책의 복지갈등, 해법은 종교
욕구-정책의 복지갈등, 해법은 종교
  • 이기표 부산보현의집 원장
  • 승인 2011.03.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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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표 원장의 세상이야기]

 #1990년대 초의 3년 여 동안을 일본에서 생활했었다. 그때 야마구치 현의 작은 어항도시인 이와쿠니 앞 바다로 공장폐수가 흘러들어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폐수를 유출한 회사에서 어민들에게 보상방법을 묻자 어민들이 말했다.
 “우리는 어부들이요. 계속 고기를 잡을 수 있게 해 주시오.”
 “우리 회사의 부주의로 여러분의 생업에 지장을 드려 죄송합니다만 오염된 바다에서 고기를 잡아야 아무 쓸모가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조업을 나가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상해드리겠습니다.”

 회사 대표가 거듭 사과하며 고기잡이로 버는 만큼의 보상을 해주겠으니 바다가 정화될 때까지 쉬면서 생활하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어민들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제안했다.
 “보상금으로 놀고먹으며 생활하다보면 우리가 게을러 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계속 고기를 잡고 회사에서는 우리가 잡은 고기를 시세대로 사서 폐기처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일 것 같습니다.”
 회사 측에서도 그것이 좋겠다며 어민들이 잡아온 고기를 시세보다 비싼 값에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어부들은 다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바다가 오염되기 전보다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조업을 포기하는 어부들이 늘어갔다. 그 까닭을 묻자 한 어부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잡은 생선을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이 일하는 보람이었는데 지금은 그 생선들이 모두 버려지고 있습니다. 비록 비싼 값을 받는다 해도 아무 보람도 없는 일을 한다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1991년 여름, 사과재배지로 유명한 아오모리 현을 엄청난 위력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 사과농장의 피해가 컸다. 90% 이상의 사과가 땅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그 지역의 시장이 농민들과 보상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제안했다.
 “우리 시에서는 사과농장의 피해를 100%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아직 나무에 매달려있는 사과는 시에서 임의로 처리하겠습니다.”

 농민들은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이라고 해보았자 얼마 되지도 않지만 그것까지 보상해준다니 고마울 뿐이었다. 시장은 즉시 관내에 거주하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들에게 모처럼 일거리가 생겼습니다. 제가 나눠드리는 셀로판지를 가지고 사과농장에 가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과열매에 붙이십시오. 그리고 가을이 되면 그 사과를 거두어서 가지고 오십시오. 많은 돈을 벌게 해 드리겠습니다.”

 모여 있던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에 시장이 시키는 대로 했다. 가을이 되자 시청 마당에는 생활보호대상자들이 수확한 사과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그리고 그 사과마다 ‘합격(合格)’이란 글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사과에 붙여 놓은 셀로판지에 인쇄되었던 글씨다. 시장은 그 사과를 트럭에 나눠싣고 대도시 청과시장을 돌며 이렇게 외쳤다.

 “지난여름에 불어 닥친 엄청난 태풍에도 떨어지지 않은 아주 운 좋은 사과입니다! 이 사과를 사 먹으면 어떤 시험을 보아도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입니다!

  일반사과보다 10배나 비싼 값인데도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시장이 약속대로 그 돈을 나눠주자 한 노인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시장님은 저희들에게 큰 보람을 주셨습니다. 나 같은 늙은이도 아직은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니 꿈만 같습니다. 앞으로도 떳떳이 살다 죽을 수 있도록 일거리를 많이 만들어주십시오.”

 두 가지 사례에서 보듯 일본인들은 노동을 신성시한다. 무슨 일이 되었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 그리고 일을 할 때는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를 세심히 따진다.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과 가문의 보람까지 따지는 경향이 많다. 누대로 이어갈 수 있는 가업이 있으면 가장 큰 가문의 영광으로 여긴다. 그것이 자립한 가문임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본인들의 강한 자립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잿더미가 되었던 일본이 단기간 내에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그 같은 국민성이 일궈낸 기적이다. 그런 일본인의 국민성이 점점 퇴색해가고 있다.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것을 가장 큰 수치로 여기던 그들이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퍼주기로 바뀌면서 정부지원에 기대려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지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복지예산의 과다편성으로 일본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국가부채가 1,000조 엔에 육박할 정도로 심한 재정난에 봉착했다. 국가신용등급도 계속 하락하는 추세다. 그런데도 복지예산은 점점 늘려간다. 그러자 제1야당인 자민당은 “민주당 정부가 아동수당과 같은 퍼주기 복지정책으로 국가재정을 파탄내고 있다.”고 비난하며 국회해산을 요구하고 나섰다. 그러자 민주당정부는 “자민당이야말로 퍼주기 복지의 원조”라고 맞받아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자 당시 자민당정부가 경기를 부양한다는 명분으로 2조 엔의 현금을 살포했던 전력을 꼬집는 말이다.
 
 어찌되었든 2009년 선거에서 민주당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자민당보다 더 심한 퍼주기 복지정책 덕분이다. 민주당은 당시 선거에서 소득을 가리지 않고 중학생 이하의 어린이에게 2만 6천 엔씩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무상교육을 고등학교까지 확대하며, 고속도로 통행료의 무료화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부자들에게까지 복지혜택을 주는 것은 지나친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거셌으나 선거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공짜선심에 표가 몰린 것이다. 

 반세기 넘게 거머쥐었던 정권을 하루아침에 빼앗긴 자민당은 민주당의 무분별한 공짜복지정책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지난 참의원선거 때 공짜복지정책으로 민심을 유혹했다. 공사립유치원 전면무료화, 60만 엔이나 되는 거액의 출산장려금지급, 연금수령자격완화와 같은 공약들이 그것이다. 국민들의 복지욕구를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정치인들의 무분별한 복지경쟁으로 일본사회는 복지병(福祉病)에 걸렸고, 국가는 재정파탄이라는 빈혈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증세가 우리나라에도 감염될 조짐이다. 국민들의 높은 복지욕구는 현실을 따지는 정부정책과 충돌하고 있다. 거기에 국민의 복지욕구를 이용하는 것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는 정치권이 복지경쟁을 벌이면서 새로운 사회적 갈등을 키워가고 있다. 사회 일각에서는 합리적인 복지정책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정치권이 그 안에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복지병과 재정위기로 곤경에 처한 나라들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다.
 
 국가재정이 어려워지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사회적 약자다. 그 나마의 복지정책이 후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 가이드라인을 조정할 능력을 잃었다. 이미 표만을 의식한 복지전쟁에 휘말려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조정자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 종교계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복지의 원조는 종교다. 종교정신의 근간인 자비와 사랑이 곧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살핌이지 않은가. 현대의 사회보장제도 역시 종교정신의 실천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종교는 사회보장제도의 건전성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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