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삶의 질이다
이제는 삶의 질이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7.2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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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제러미 리프킨은 <공감의 시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옛 아메리칸 드림과 새로운 유러피언 드림은 인간 본성에 관한 매우 다른 두 가지 개념을 반영한다. 아메리칸 드림은 개인의 자율성과 기회를 중요시하고, 개인의 자유와 행복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물질적 이익을 강조한다. 유러피언 드림도 개인의 창의력과 경제적 기회를 소홀히 하지는 않지만, 사회전체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문제에도 똑같은 비중을 두는 것이 특징이다. 유러피언 드림은 한 개인이 자율적인 고립상태에서 홀로 번창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된 사회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의 깊은 관계 속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삶의 질은 사회 구성원 각자의 행복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공동의 선을 강조한다.”(제러미 리프킨 <공감의 시대>)
 
왜 삶의 질인가?

아메리칸 드림과 유러피언 드림의 가장 큰 차이는 개인의 물질적 이익을 강조하느냐 사회전체의 삶의 질에 관심을 갖느냐 입니다. 삶의 질이란 단지 물질적 이익, 경제적 보장만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최근에 들어와 삶의 질은 20세기 경제이론의 많은 핵심 가설을 다시 검토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전세계가 거의 집착에 가까운 국내총생산, GDP에 목을 매 왔다고 말합니다. GDP가 오랫동안 미국과 다른 나라의 복지를 가름하는 잣대로 확고한 권위를 누려왔다는 것입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 책에 따르면 GDP는 1930년 대공황에서 경제를 회복시키기 위한 평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상무부가 고안해 낸 개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GDP가 1년 동안에 생산된 경제적 재화와 용역의 총량의 가치만을 측정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GDP는 실제로 사회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경제 활동과 그와 반대되는 부정적 경제 활동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교도소 신축이라든지, 경찰력 확대, 군비 확장, 오염 처리 비용, 흡연과 음주와 비만에서 비롯되는 의료 비용 증가, 그 밖에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가공식품과 기름진 패스트푸드를 먹으라고 부추기는 데 들어가는 광고 비용 등의 모든 형태의 경제 활동이 GDP에 포함됩니다.
 
성장의 질이 중요하다

GDP를 창안한 장본인인 사이먼 쿠즈네츠조차도 1934년 미국 의회에 제출한 첫 보고서에서 “국가 수입의 크기로 한 국가의 복지를 추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30년 뒤에 사이먼 쿠즈네츠는 “성장의 양과 질 사이에는 놓치지 말아야 할 차이가 있다... ‘보다 더’ 성장하려는 목표는 무엇을 성장시키고 왜 성장시키려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GDP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한국만큼 성장에 집착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오직 경제성장률이라는 총량적 경제지표에 목을 매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한 나라가 갖는 목표는 늘 성장지상주의였습니다. 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늘 이러한 지표를 통해 평가되었습니다. 물론 그 성장의 내용과 질에 대해서는 묻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수출이 역사상 최고라는 기록을 세우고,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성장률을 기록하면서도 그것이 보통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는 기여하지 못해 왔습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점점 더 경제가 성장하면 할수록 기업만 살찌고 그것도 큰 기업만 살찌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GDP를 대체하는 지표를 만들다

쿠즈네츠의 지적처럼 GDP의 한계를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해 동안 GDP를 대체할 만한 지표를 찾기 위해 많은 시도가 있었습니다. 리프킨은 그 중에 대표적인 것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습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복지지수(ISEW:Index of Sustainable Economic Welfare), 참진보지표(GPI: Genuine Progress Indicator), 포드햄 사회건강지수(FISH: Fordham Index of Social Health), UN의 인간개발지수(HDI: Human Development Index), 경제적 웰빙지수(IEWB: Index of Economic Well-Being) 등입니다. 이들 지표들은 ‘진정한’ 의미의 경제적 향상을 인간의 복지에서 찾으려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대체 지표를 만들려는 최초의 시도는 1989년에 세계은행의 경제학자 허먼 데일리와 신학자 존 콥이 만든 지속 가능한 경제복지지수ISEW 였습니다. ISEW는 먼저 개인의 소비 지출로 시작하여 보수를 받지 않는 가사 노동을 더합니다. 그런 다음 범죄와 오염과 사고에 들어간 금액 등 일차적으로 손실을 완화하기 위한 활동을 뺍니다. ISEW는 또한 소득 불균형과 고갈된 천연자원도 반영합니다.

참진보지표GPI는 많은 부분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지만, 지역사회의 자원 봉사 가치를 보태고 여가 시간의 손실을 빼는 점이 차이가 있습니다. 포드햄 사회건강지수FISH는 유아사망률, 아동 학대, 유아기 빈곤, 10대 자살, 마약 남용, 고등학교 중퇴율, 평균 주급, 실업, 의료보험의 적용 범위, 노인층 빈곤, 살인, 주택, 소득 격차 등 사회적, 경제적 지표 열여섯 개 항목을 측정합니다. 경제적 웰빙지수IEWB는 가족저축률, 주택스톡(housing stock: 이동주택을 포함한 모든 주거 단위의 총합) 등 미래의 안정감을 측정할 수 있는 항목을 고려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삶의 질이란

리프킨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와 EU 집행위원회는 진정한 건강과 경제와 시민의 복지를 판단할 수 있는 생활 지표를 만들어 내기 위해 국가 차원의 연구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정부가 경제적 성공을 측정할 수 있는 대체 지표를 찾고 있다는 사실은 경제적 실적을 평가하는 데 단순한 생산량 못지않게 삶의 질이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는 변화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는 좋은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주도 산업화를 통해 경제성장을 이룩해 온 이래 수 십년 동안 성장우선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에서도 최근 복지가 정치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분배의 문제와 복지를 확대하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은 이제 우리 국민들의 삶의 질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도 무엇을 성장시키고 왜 성장시키려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합니다. 성장의 질이, 내용이 중요합니다. 더 이상 경제성장률만으로 한국 사회의 성장을 평가해서는 안됩니다. 경제적 실적을 평가하는데 단순 생산량 못지않게 삶의 질이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도 건강과 경제와 시민의 복지를 판단할 수 있는 생활 지표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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