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이 공부를 안 해서 책을 안 보는데 출판사가 무슨 수로 버팁니까? 이제 문 닫을 랍니다. 소회요? 그런 거 없어요.”
1979년 승가교육에 힘썼던 탄허 스님(1913~1983)의 뜻을 받들어 서우담 대표(83ㆍ사진)가 설립‧운영해온 ‘도서출판 교림’이 40년 만에 문을 닫는다.
도서출판 교림은 보련각, 홍법원, 불서보급사 등과 함께 불교출판의 효시로 불교계를 견인해 왔다. 교림은 지금까지 <초발심자경문> <능엄경> <금강경> <원각경> <기신론> <주역선해> <도덕경> 등 26종 58권의 책을 만들었다. 용성 스님의 <귀원정종>과 각성 스님의 <능엄경>을 빼고는 모두 탄허 스님의 저술이다.
서우담 대표는 21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화엄경합론> 23권 한정판 100질을 금장 최고급 제본으로 제작했다. 교림의 마지막 책이다”라고 했다.
<화엄경합론>은 탄허 스님이 1956년부터 10년 동안 200자 원고지 6만2500장 분량을 저술한 역작이다. 먹고 살기 어려울 당시, 탄허 스님은 글을 쓰다가 잉크와 원고지가 없어 쉬는 때도 있었다. 오직 한국불교와 승가교육을 생각하며 회향한 대작불사이다.
승가교육 체계 바뀌어 한문 경시
서 대표는 “전통강원의 교과목인 <치문> <사집> <사교> <대교>는 팔만대장경의 핵심을 추려 모은 것이다. 탄허 스님은 강원을 안가고도 공부할 수 있도록 이들 과목의 교재를 저술했다. 교림이 탄생한 배경이다”라고 했다.
서 대표는 “조계종이 승가교육을 개편하면서 탄허 스님이 저술한 교재활용이 안 된다. <화엄경> 등 스님이 심혈을 기울인 저술들은 팔린 책보다 복사본이 더 많이 유통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서 대표는 “탄허 스님이 ‘조계종은 무식을 종(宗)으로 삼은 종단이다’라더니 요즘 보니 정말 그렇다. 재가자들이 스님들보다 책을 더 많이 사간다. 최근 들어 더 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처 불[佛]자를 파헤쳐 보면 ‘스님은 사람이 아니다’다. 글자 대로다”라고 했다.
서 대표는 “부처님 30년 복력으로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 아니냐. 스님들이 공부 하지 않아도 불상 모시고 목탁 치면 밥 먹고 사는 세상이다. 스님들이 제발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불교 저문다”…천년 생각하고 책 제작
공자는 자신이 쓴 칠서를 살던 집 벽에 감춰뒀다. 후손이 집수리를 하다 책을 찾았다. 그 사이 세상에서는 분서갱유로 공자의 저술이 모두 사라진 뒤였다.
서 대표는 “<도서>를 보면 불교는 300년, 700년 등 끊겼다 이어지기를 반복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불교계를 보니 긴 암흑기가 올 것 같다. 해가 저무는데 밤이 얼마나 길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서 대표는 “공자의 심정으로 <화엄경합론> 한정판을 만들었다. 제작비가 비싸도 좀이 슬지 않게 금칠도 했다. 100질을 유통시키면 적어도 1~2질은 어딘가 남아 1000년을 버틸 것 아니냐”고 했다.
서 대표는 “탄허 스님은 원뜻이 전달되지 않는 의역을 경계했다. 탄허 스님은 <화엄경합론> 등 저술마다 원뜻을 쉽게 알 수 있게 토를 달아놓았다. 내가 만든 책을 통해 후학이 원본을 왜곡하지 않는 바른 의역을 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화엄경합론 전23권 한질 161만원, 보급가 150만원. 100질 한정 (02)7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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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쓰여진 동기가 브라만교계통의 인명론자와의 논쟁과정에서 생긴것이다.
논리에 대하여 당시의 상식과는 다른 억지주장을 하는 나가르주나와 상식에 따르는,
인명론자와의 논쟁과정에서 용수는 자신의 공관을 정립하였다.
그 결과로서 나온것이 이제론이다.
진제와 속제가 그것이다.
용수가 이 진제와 속제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속제를 통하여 진제에 이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달리말하면 일상의 언어속에서 초월적 가치를 찾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언어의 세계가 속제이고,그언어초월의 세계가 진제이다.
여기서 초월의 세계는 무분별의 세계이다.
이러한 용수의 진제와 속제는,
단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언어가 가지는 의미를 정상화하는 그것이다.
특별히 초자연적이고,신비한 세계가 아니다.
즉,진제도 그 역시 언어의 세계이다.
단지 언어로부터 자유로운 세계일 뿐이다.
이러한 것을 용수는,
당시의 수준이나,용수의 실력으로는 논리정연하게 풀어 설명하지 못하였다.
막연히 그렇다는 것을 제시하기만 할뿐이었다.
그 막연함을 밝힌 것이 몇세기후의 유식이고,인명학이다.
즉,바수반두와 디그나가 그리고 다르마끼르티가 비로서,
용수가 감히 설명하지 못하든 것을 했다.
이렇게보면,
용수는 직관에 의하여 진제와 속제를 깨닫기는 하였지만,
아직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미완의 중관을 만들었다.
이러한 용수의 미완의 중관을,
중국에 수입한 승려가 구마라즙이다.
즉,구마라즙 역시 명쾌하게 진제와 속제를 알지 못하였다.
이처럼 애매한 진제와 속제를,
중국식으로 이해한 것이 승조와 도생이다.
하나의 언어차원으로서의 진제와 속제를,
그들은 중국의 전통사상인 태극과 만물의 이원론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 진제와 속제의 이원론적인 이해가,
바로 승조의 체용론이며,도생의 이사론인 것이다.
즉,승조와 도생에 의하여 진제와 속제는 실체와 현상으로,
전혀 다른 모습,엉뚱한 것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왜곡된데에는 물론 승조와 도생의 허물이 크다.
그러나,그 원초적 원인을 제공한 것은 용수이다.
용수의 진제와 속제에 대한 신비주의적인 태도가 그리 만든 것이다.
용수의 이 신비취향은,
또다시 티벳에서도 되풀이 된다.
바베비베카의 제자인 까르마실라가 티벳에서,
중국에서 구마라즙이 저지른 실수를 되풀이 한 것이다.
이것이 아티샤와 쫑까파에서도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