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법난, 치밀히 계획돼 저질러진 만행
10.27법난, 치밀히 계획돼 저질러진 만행
  • 박봉영
  • 승인 2007.10.25 10:39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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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과거사위 "월주스님의 신군부 지지 거부가 원인"

1980년 10월 당시 신군부측인 합동수사본부(본부장 노태우)의 지시로 전국 사찰에 군인들이 난입해 성소를 유린하고 스님들에게 무자비한 폭행과 연행을 일삼은 10·27법난이 신군부의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이뤄졌다는 정설이 사실로 확인됐다.

2006년 9월부터 1년간 관련 기록과 증언 등의 방법으로 조사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해동)의 25일 결과 발표에서 이같이 드러났다.

군 과거사위원회는 "1980년 6월 '3단계 사회정화계획'을 추진했으며, 종교계는 3단계인 10월부터 이뤄져 10·27법난이 발생했다"며 이미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10월 24일 이전에 합수부에 보고된 '불교계 정화 수사계획(45계획)' 사본 등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80년 9월 19일자 치안일지에 '불교계 정화대상 폭력배 실태조사 지시'가 기록돼 있고, 김충우 합동수사단장도 9월 1일 부임했을때 이미 조계종에 대한 수사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다고 증언해 10·27법난이 미리 기획됐음을 뒷받침했다.

또 합동수사단은 수사진행과 동시에 종무행정의 공백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불교 군종장교를 중심으로 한 실무대책반을 구성, 운영하기까지 했다.



신군부 지지 거부가 주원인=군 과거사위원회에 따르면, 10·27법난은 당시 조계종 총무원장 월주스님이 신군부세력이 요구한 전두환 지지표명과 문공부의 자율정화지침을 거부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1977~1979년 조계종내 종권 다툼에 대해 중재활동을 펼쳐왔던 문공부는 월주스님을 중심으로 한 개운사측에 대해 경계심을 갖고 있었다. 사회민주화세력과 합세해 고질적인 저항세력으로 성장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1980년 4월 월주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선출되자, 문공부는 대한불교진흥원에서 총무원에 지원하던 지원금을 중단시키고 총무원장 대표등록을 고의적으로 지연시켜 종단내부의 수습 노력을 방해했다.

이 과정에서 문공부측은 대표등록에 따른 신원조사를 마친 상태에서 장관의 지시로 보류시켰음이 확인됐다고 군 과거사위원회는 밝혔다.

불교계 내부서 일부 동조=군 과거사위원회는 "합수단에 설치된 실무대책반이 몇몇 스님을 접촉해 동조를 획득하는 활동을 했음을 확인했다"고 밝혀 충격을 주고 있다.

김충우 합수단장은 '45계획' 작성과정에서 문공부와 불교 군종장교를 선발해 불교계 정화추진 방안 등을 작성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따라 불교계 일부 스님들과 10·27법난 이전에 접촉했고, '정화에 부응하는 스님을 참여시킨다'는 수사자문회의 구성안을 작성하게 되는 토대가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군 과거사위원회는 밝혔다.

게다가 불교진흥원이 계엄이 해제될때까지 활동한 실무대책반에 대한 운영을 지원했고, 실무대책반은 정화중흥회의의 활동 전반에 직간접적인 간여를 했던 것으로 군 과거사위원회는 판단했다. 특히 실무대책반은 신군부에 우호적인 스님들을 수습모임에 참여시켜 정화중흥회의를 구성토록 주도했다.

신군부의 압력으로 중앙종회를 해산하고 구성된 정화중흥회의는 1980년 11월부터 2개월간 10·27법난을 수습하는 역할을 맡았다. 정화중흥회의는 10·27법난 피해자들을 불출석 상태에서 징계하는 등 무소불위의 종권을 행사했다.

군홧발 법당 난입, 고문 등=국보위의 수사지시를 받은 합동수사단은 사회정화계획에 따라 10월 27일 새벽부터 사찰 등에 진입해 153명을 연행했다. 연행당한 스님들은 무자비한 구타 등 고문을 당하면서 혐의를 그대로 인정할 것을 강요받았을 뿐만 아니라 총무원장직, 종회의원직, 주지직 등 직위의 사퇴서를 강제로 제출토록 강요받았다.

군 과거사위원회는 수사당국이 스님들을 연행해 승복을 벗기고 군복으로 갈아입혀 각종 가혹행위와 각목으로 오금치기,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각목을 넣고 무릅 누르기, 손가락 사이에 볼펜을 넣고 조이기, 코와 입에 고춧가루와 빙초산 넣기,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자행했다고 밝혔다.

또 10월 30일 새벽 6시를 기해 3만2천명의 군·경 병력이 전국 6천여 사찰에 진입, 1776명을 연행했다. 이 과정에서도 군홧발로 법당에 난입하고 원로스님까지 한 곳에 집합시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등 인권유린은 물론 위법적인 종교탄압이 이뤄졌다.

당시 총무원장이었던 월주스님도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연행돼 수사를 받았으나, 허위의 투서였음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월주스님에 대해 투서한 4명이 무고혐의로 합동수사단에 의해 형사처벌 받았다.

불교계 내부조사 등 정리 '과제'=군과거사위원회의 이번 조사는 10·27법난을 정부 차원에서 재조사를 통해 진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무엇보다 10·27법난으로 입었던 불교계의 상처가 일부나마 명예회복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군과거사위원회의 활동은 당시 10·27법난을 입안하고 주도했던 이들에 대한 면담조사 등이 이뤄지지 않는 등 한계를 노출했다. 당시 불교계 내부에서 10·27법난을 유발하는데 일조하거나 수습하는 과정에서 신군부에 동조해 불교탄압에 앞장선 이들에 대한 조사는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군과거사위원회는 이번 조사 결과를 통해 정부당국에 대해 조계종 종단측과 협의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해 나갈 것을 권고했다. 군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강제성이 없어, 앞으로 정부와 불교계간 풀어야할 숙제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불교계 스스로도 10·27법난에 동조했던 내부 움직임에 대한 조사와 평가를 추가적으로 이뤄내야할 과제를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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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수가 2007-10-26 17:19:42
내부에서 협조해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있었다는게
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 2007-10-25 15:04:40
대통령 사과라...??
이미 때가 늦은 것 같은 느낌은 있지만...

노정권이 과거사 정리하면서 제주 4.3사태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는데, 노정권 초기부터 준비하고
사실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으면 깔끔하게 정리됐을텐데
이젠 정권말기... 퇴임직전까지 준비하면 사과받을 수 있을래나?

정권바뀌면 10.27말만 꺼내도 뒷통수 얻어 터질거 같은 분이기군.

사천왕 2007-10-25 14:44:24
불교 이 상황에도 총무원장 여기저기 얼굴내밀며 웃는것보면 오역스럽지 못해 역.

신도 2007-10-25 14:23:30
10.27법난과 같이 총무원을 쓸어 버리지 않고는 불교 정화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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