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하루에 대략 200g 정도의 똥을 눈다. 1년으로 따지면 70㎏이 넘는다. 한국인 전체로 연간 350만 톤의 똥을 쏟아내는 셈이다.
똥은 쓰레기 처리 원칙인 3R 원칙에도 속하지 않는다. 가능한 배출을 줄이고(Reduce), 다시 쓸 수 있는 것은 재사용하며(Reuse), 그래도 버려지는 것은 재활용해야(Recycle) 한다는 원칙이다.
살아 있는 한 누구나 배출을 줄일 수 없고, 다시 사용할 수도 없고, 다른 용도로 전용할 수도 없다. 그래서 똥은 많은 비용과 수고를 들여 처리된다.
책은 똥의 '가보지 않은 길', 즉 똥을 폐기해야 할 더러운 오물이 아니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다루는 길을 제시한다. 그렇게 되면 하수는 오염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하수처리는 보다 효율적이게 되고, 화석연료 사용도 줄일 수 있다. 황당한 공상이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기술은 이미 구현돼 있다. 비비시스템이다.
'비비(BeeVi)시스템'은 벌(Bee)과 비전(Vision)의 첫 음절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벌이 꿀을 만들 듯이 사람 배설물을 유익한 에너지와 자원으로 만들자는 뜻이 담겼다. 배설물을 많은 물로써 처리한 뒤 최대한 먼 곳으로 보내야 하니, 막대한 비용이 들 수밖에 없는 이 낭비적 처리방식을 자원 순환의 생태적 방식으로 바꿔보자는 것이다.
비비시스템은 환경에 해가 되는 어떤 쓰레기도 남기지 않고, 사람의 분뇨를 재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해서 개발되었다. 똥은 '바이오연료'와 '퇴비'로, 오줌은 '액비'(액체 비료)로 만드는 게 골자다.
비비시스템은, 분뇨를 수세식 변기에서부터 하수관을 이용해 하수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하는 현재의 시스템으로부터 탈피한다. 비비시스템은 한 마을이나 일정한 지역 단위로 구성되는데, 각 가정에서 배출한 분뇨를 진공흡입관을 통해 한곳(이를테면 아파트의 지하)에 모아서 처리한다. 여기에는 혐기성 미생물 소화조와 가스저장탱크, 발전용 연료전지 등이 설치된다.
비비시스템은 진공흡입 방식을 사용하고 똥과 오줌을 분리해서 수거하기 때문에 특수한 변기(비비변기)를 이용하게 된다. 진공흡입을 하는 이유는 물이 많이 섞여 들어가면 혐기성 미생물의 분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비변기는 세척과 냄새 차단용으로 물을 극히 소량만 사용하고, 특수 코팅을 통해 찌꺼기가 남지 않도록 한다. 그래서 기존 변기는 한 번 일을 볼 때마다 물을 10리터씩 사용하지만, 비비변기는 1리터로 10분의 1 수준이다. 물 낭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비비시스템은 이미 존재하는 여러 과학기술들을 이렇게 한데 꿰어 사람의 분뇨를 어떠한 오염도 낭비도 생기지 않게 생태순환의 흐름에 얹어낸 창안이라 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만의 구상일까? 아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의 생활형 연구소인 ‘과일집(과학이 일상으로 들어오는 집)’에서는 비비시스템을 실제로 구현해놓았다. 위에서 말한 모든 과정들이 이곳에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 구슬을 꿰면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일은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쩌면 한 개의 섬, 한 아파트단지, 또는 소규모 자치단체, 하다못해 한 지역의 군부대라도 그 현실성을 직접 검토해보는 단계로 나아가보는 데 우리가 힘을 보태보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저자 조재원은 미국 콜로라도대학에서 환경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울산과학기술원(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자동화.디지털시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자.인문학자.예술가들의 융합연구센터인 ‘사이언스월든’의 센터장을 맡고 있다. 2016년, 지식의 통섭을 추구하는 전세계 석학들의 집단인 EDGE재단의 ‘올해의 질문’을 통해 ‘똥본위화폐’ 개념을 제안한 바 있다.
장성익은 서울대 종교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작가 겸 환경과생명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녹색 잡지 <환경과생명> <녹색평론> 등의 편집주간을 지냈다. 생태와 생명 가치가 뿌리내린 지속가능한 세상,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민주주의 사회, 모두가 고루 나누고 함께 누리는 공동체를 소망한다.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조재원 장성익 지음∥개마고원∥1만4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