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교풍수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은 밀교에 의해서이다. 인도인 선무외삼장은 716년에 당나라로 입국하였고, 당나라에서 일행선사(683-727)와 함께 밀교경전 <대일경>을 번역했다. 일행선사는 이를 통하여 밀교를 중국화하였다. <대일경>에는 기도처나 수행처를 정하는 택지법이 적혀 있다. 일행은 ‘38장(三十八將)의 법(法)’을 만들어 풍수의 이기론을 펼쳤다. 그는 천문(天文)ㆍ지리(地理)와 유(儒)ㆍ도(道)ㆍ석(釋) 삼교(三敎)를 통달하여 그 명성이 일세(一世)를 울렸고 밀교승 선무외(637-735)를 만나 중이 되어 많은 이적(異蹟)을 남겼다.
밀교는 초기불교에서 금지한 주술과 비밀의례가 행해진 범신적 신비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밀교 경전인 <대일경>, <금강정경>은 7세기에 출현하였다. 밀교는 만다라의 염송, 다라니의 독송, 가지기도 등 독자적인 수법을 행하였다. 밀교의 의례나 주문, 기도는 다른 불교종파도 수용하였다.

밀교에는 수도승들이 이동을 하다가 기도시간이 되면 기도장소를 선택하는 방법이 대일경에 적혀 있다. 지형관찰이나 장소선택하는 방법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밀교의 풍수는 땅의 등급을 매기는 관지질법이 있고, 하급의 땅을 비보하는 치지법이 있다. 이러한 관지질법은 인도의 풍토에 기인한바가 많다. 기도장소는 좋고 나쁨에 따라 등급을 매겼는데 상품●중품●하품으로 나누고 다시 각각 상중하로 나누었으므로 9등급으로 분류하였다. 즉 상상, 상중, 상하, 중상, 중중, 중하, 하상, 하중, 하하 등급이 그것이다. 관지질법에서 땅의 등급이 낮은 하품의 경우 각각 그에 합당한 치지법으로 합당한 기도장소로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신라의 밀교는 선덕왕 때(635년) 귀국한 명랑법사가 처음으로 들여왔다. 명랑법사의 외삼촌이 자장율사였다. 그는 용궁에서 배워온 문두루비법으로 바람을 일으켜 671년 당나라군을 물리쳤다. (명랑법사의 법맥으로 안해와 낭융이 있고 이들의 제자인 광학과 대연은 고려 태조 때 활약하였다.) 밀본은 비밀법으로 선덕왕의 질병을 치유하다. 이후 선무외에게 직접 밀교를 배운 제자로 신라인 현초, 의림, 불가사의, 혜통이 있었다. 의림은 신라로 귀국하여 국사가 되었다. 혜통은 귀국하여 해동 진언종의 조사가 되었다. 이를 볼 때 신라의 불교에 밀교적인 요소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선지식인들이 귀국하면서 밀교의 관지질법과 당나라의 풍수를 동시에 배워왔다고 본다 .우리나라 풍수비조인 도선국사가 활동한 시기보다 200여년이 앞선 시기이고 명확한 기록이 없어서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