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청(丹靑)은 ‘붉고 푸른 그림’을 뜻한다.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무늬를 그린 문양을 넣어서 의장하는 일을 목적으로, 그 자체를 일컫는다.
불교 소설의 백미로 꼽히는 1978년 김성동의 중편소설 《만다라》에는 “대웅전 처마 끝의 금박 단청이 눈부시다.” 궁궐이나 사찰 등 목조건축물에 그려진 화려한 단청에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천연 안료를 주로 썼지만, 요즘 단청 공사에 화학 물감인 ‘에메랄드그린’(洋綠)이 쓰이기도 한다. 서양에서 온 녹색이라 하여 부르는 양록을 사용하면, 쨍하게 느껴질 정도로 눈부신 초록색의 칠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목조 건축의 단청은 크게 건물의 미화적 측면과 목재 부식 등을 방지하는 내구적 효과에 있다. 건물의 중요도에 따라 다섯 가지 채색 방식이 있다. 가칠단청, 긋기단청과 부재 끝부분에만 머리초 문양을 장식하는 모로단청(머리단청), 금문이나 당초문을 얼기설기 넣은 얼금단청(금모로단청), 최고등급의 장엄 양식인 금단청은 비단에 수 놓듯이 모든 부재에 여러 문양과 화려한 채색으로 장식하고, 금박 도금줄을 넣은 금문(錦紋)이 추가로 장식하기에 붙인 명칭이다.
우리나라 단청 문화는 1950년대에 분단으로 단절됐다. 남측과 달리 북측의 평양은 6.25 전쟁 때 90% 넘게 파괴되어 다시 건설된 회색빛 도시로 대변됐다. 2013년 이후, 평양의 콘크리트 도시 건물들은 대규모의 도색작업을 통해 탈바꿈했다. 그 후 평양을 방문한 남측의 아무개 기자가 칠 작업이 덜된 건물들을 가리키며 “뒤쪽에는 칠을 안 했습니까?”라고 북측 해설봉사원에게 질문하니, “기자 선생은 넥타이를 등 뒤에도 맵니까.”라고 반문하여 폭소를 자아낸 바 있다.
평양의 인민대학습당・만수대의사당・인민문화궁전・금수산 태양궁전・평양대극장・국가선물관・옥류관・영명사지에 건립한 흥부초대소 등과 주체탑・개선문・릉라도경기장 등을 비롯하여 묘향산의 제1,2 국제친선전람관 등 북측의 기념비적 건물과 조형물들은 콘크리트 공법과 석재를 사용하여 건립됐다. 특히 묘향산의 제1 국제친선전람관・보현사 만세루, 평양의 동명왕릉 전시관(재실)・정릉사・광법사・대성산성 남문과 개성 영통사, 강원도의 고산군 석왕사 대웅전(2019년 12월) 등과 통천군 용추사 대웅전(2002년 봄) 등은 콘크리트 공법으로 대규모의 조선식(한옥) 건물을 짓고, 채색(단청)한 것으로 유명하다.
‘북조선의 색’으로 불리는 단청은 2003년 8월 ‘남북(북남) 공동시범 단청사업’으로 본격화됐다. 남북교류에서의 가장 종교적인 사례로, 불교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첫 문화교류로 꼽힌다. 그때의 남북교류 현황과 주요한 내용을 살펴본다.
조선의 빛깔을 찾다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열린 남북교류에서 2003년은 남북불교 교류 최고의 한 해였다. 남북공동 단청불사 작업을 비롯하여 개성 영통사 복원사업과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에 관한 협의 체결과 6.15와 8.15 및 10.3 남북공동 행사를 비롯한 홍(紅)가사 지원 등 가장 불교적인 내용의 교류가 열렸다.
특히 남북공동 단청불사 사업은 기존의 교류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일회성 교류의 범위를 벗어나 장기체류방식의 기술 협력과 안료(물감), 인적 교류까지 확대됐다. 이러한 교류가 추진되기까지는 신법타 평불협 회장과 양산 조계종 사회부장, 학담 민주본 상임집행위원장, 도각 조계종 남북교류위원장 등 남측 인사들과 조불련의 황병대 부위원장, 심상련 서기장 등 불교 인사들과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들의 노력이 뒷받침됐다.
2002년 2월 초, 금강산에서 열린 금강산신계복원추진위원회 남북불교회의에서 상정된 첫 의제였다. 그해 8월 26일 조불련은 남측 민추본에 ‘사찰 및 민족문화재 단청사업’을 위한 재료 지원 및 기술교류를 제안했다. 또 10월 9일 중국 베이징에서 민추본, 평불협 대표단이 조불련과 회동하고, 북측지역 59개 사찰에 관한 단청재료 지원 및 기술교류에 대해 협의했다. 이때 황병준 조불련 부위원장은 “북과 남이 합심하여 민족문화재인 사찰을 조선의 색으로 다시 입히는 것은 역사적인 불교 사업인 동시에 조국통일을 앞당기고, 6.15 공동선언의 리행에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평양 법운암을 시범사찰로 지정하고, 처음 단청작업을 개시하기로 결정했다. 그 당시 조불련에서 남측에 제공한 ‘북반부 사찰 단청지원과 관련한 자료’를 보면, 다음 <표1, 표2>와 같다.
그해 11월 26일~12월 3일까지 평불협 대표단은 방북하여 조불련 측과 북한사찰 단청불사에 관한 추진 및 개금불사에 대한 합의를 가졌다. 이후 12월 21일 중국 베이징에서 조불련 대표단(황병준 부위원장, 한성기 국제부장)과 조계종 총무원(양산 사회부장, 지일 사회국장)은 북한지역 59개 사찰 및 민족문화재에 대한 단청불사 추진에 관한 합의서를 최종 체결하면서 성사됐다.
2003년 2월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조불련과 남측의 민추본, 평불협 대표단은 단청불사에 대한 세부사항을 협의하고, 이어 3월 초, 국내에서 민추본과 평불협과 공동사업으로 추진키로 합의했다. 그해 3월 11일~15일까지 학담 민추본 상임집행위원장을 단장으로 법경 민추본 사무처장, 김봉건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6명의 실사단을 파견하고, 북한사찰 및 문화재에 대한 단청 현황조사 및 실행 합의서를 체결했다. 4월 1일 신법타, 학담, 미산 등은 남측의 단청불사추진위원회 구성에 관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공식화했다. 이어 5월 27일 북한사찰 단청불사를 위한 단청안료 및 도구 1차 지원을 추진하고, 6월 5일 통일부에 북한사찰 단청불사 협력사업 사업자 및 사업 승인을 받았다. 그해 7월 28일~30일 금강산호텔에서 ‘남북 단청문화 전시회 및 학술 토론회’를 처음으로 가졌다.
표1. 북반부 사찰 1단계 단청사암 현황
사찰명 |
건물수 |
단청면적(평) |
사찰명 |
건물수 |
단청면적(평) |
법운암 |
4 |
1,108 |
룡화사 |
1 |
1,500 |
동금강암 |
1 |
840 |
법흥사 |
3 |
1,102 |
법련사 |
3 |
2,410 |
안국사 |
3 |
4,825 |
보현사(향산읍) |
9 |
11,013 |
상원암 |
2 |
1,035 |
불영대 |
1 |
770 |
하비로암 |
2 |
854 |
금강암(굴) |
1 |
441 |
능인암 |
1 |
560 |
계조암 |
1 |
1,008 |
화장암 |
1 |
678 |
축성전 |
1 |
1,020 |
보월사 |
1 |
2,880 |
량화사 |
5 |
2,693 |
만년사 |
1 |
700 |
성불사 |
6 |
5,052 |
심원사(박천군) |
6 |
2,880 |
귀진사 |
3 |
2,028 |
강서사 |
1 |
640 |
송월암 |
1 |
520 |
고정사 |
2 |
958 |
월정사 |
4 |
3,372 |
자혜사 |
1 |
1,100 |
관음사 |
1 |
910 |
안화사 |
2 |
2,562 |
표2.북반부 사찰 2단계 단청사암 현황
사찰명 |
건물수 |
단청면적(평) |
사찰명 |
건물수 |
단청면적(평) |
표훈사 |
6 |
3,529 |
보덕암 |
1 |
280 |
정양사 |
2 |
1,960 |
보윤암 |
1 |
1,134 |
명적사(원산시) |
2 |
1,300 |
령죽사(영추암) |
1 |
350 |
보현사(안변군) |
5 |
3,100 |
불지암 |
1 |
539 |
동문사 |
1 |
1,085 |
천주사 |
2 |
11,010 |
서운사 |
2 |
704 |
개원사 |
1 |
840 |
금강사 |
6 |
2,138 |
심원사(연탄군) |
3 |
2,406 |
흥복사 |
2 |
2,080 |
룡흥사 |
4 |
4,761 |
귀주사 |
1 |
1,080 |
지흥사(복흥사) |
2 |
1,900 |
안불사 |
2 |
2,312 |
정광사 |
3 |
3,390 |
광제사 |
3 |
2,460 |
동덕사 |
1 |
1,000 |
가루사 |
2 |
1,020 |
량천사 |
3 |
4,240 |
청계사 |
2 |
1,740 |
관해사 |
2 |
1,770 |
쌍계사 |
3 |
1,744 |
만수암 |
3 |
1,194 |
원명사(희천시) |
3 |
2,360 |
중흥사(삼수군) |
2 |
1,840 |
분단 반세기를 넘긴 때에 다시 찾은 조선의 빛깔 찾기는 2003년 8월 7일 오전 11시 평양시 룡악산 법운암에서 ‘북남(남북) 공동단청 및 개금불사 입재법회’로 시작됐다. 심상진 조불련 서기장의 사회와 리영호 책임부원의 집전으로 진행된 입재 법회에는 남측 대표단과 조불련 임원과 사찰 주지와 평양시 불자 등 사부대중 130여 명이 참여했다. 내각 직속의 문화보존지도국 리의화 부국장(차관급)이 인사말을 한데, 이어 남측의 공동대표 신법타 평불협 회장은 “지금은 비록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민족문화의 온전한 계승과 발전이 제약되어 있지만, 남측에 있는 문화재도 북측에 있는 문화재도 모두 소중한 민족문화유산이다.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남북 단청불사 협력사업을 시작으로 남북 불교계가 앞장서 문화적 측면은 물론이고, 남북불교 교류 활성화에 기여해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길을 앞당기자.”라는 축사를 가졌다.
이날 법운암 입재 법회에는 리의화 문화보존지도국(문화재청) 부국장 등 정부 인사를 비롯해 조불련의 황병준 부위원장, 심상진 서기장, 한성기 국제부장, 리영호 책임부원, 정영호 교육부장 등과 평양시 불자 120여 명 그리고 남측에서 학담 민추본 집행위원장, 미산 조계종 사회부장, 도후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석왕사 주지, 설송 희방사 주지, 혜자 도선사 주지, 장곡 선본사 주지 등 8명과 김준웅 단청장, 박영석 단청기술자, 정인악 평불협 이사장, 임대윤 대구시 동구청장, 주호영 변호사, 이준성 삼화페인트 과장, 이환래 민추본 기획홍보국장, 주준하 평불협 학생대표, 김성호・김헌영・김성룡 개금전문가 등 남측 인사들이 참가했다.
평양 법운암에 대한 시범사업 단청 공동작업은 김성룡 단청수리기술자 등 남측 6명과 북측 만수대창작사 소속의 화가와 노무인력 2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2003년 8월 5일~19일까지 법운암에서 단청과 불상 개금작업을 완료했다. 그 후 북측 문화보존지도국의 지도하에, 조불련과 해당사찰, 각 시・도 인민위원회는 단청작업 사찰에 대해 2008년까지 보수와 수리, 단청작업을 수행했다.
조선의 빛깔로 덮다
2003년 10월 3일 묘향산 보현사 대웅전에서 특별한 불교의식이 열렸다. 남측 평불협에서 보현사를 비롯한 평양 광법사에 붉은 가사(紅袈裟) 100벌을 전달했다. 이날 신법타 평불협 회장은 홍가사를 불단에 올린 다음, 청운 최형민 보현사 주지에게 전달했다. 1991년 10월 30일 미국 LA 관음사 보현회가 조불련에 홍가사 100벌을 전달한 이후, 두 번째의 가사 전달이었다.
‘금강산의 붉은 승려’가 근세기의 상징이었다면, 2003년 10월 보현사에서의 홍가사 전달은 북조선의 붉은 승려로 상징됐다. 묘향산 용주봉의 사리탑과 팔만대장경보존고 그리고 붉은 승려가 머무는 북한 삼보사찰의 위상을 가진 보현사 법당은 조선의 빛깔로 가득 채워졌다.
그해 6.15 민족통일대축전 3돌 남북공동 행사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스(SARS)의 유행으로 남과 북에서 따로 열렸다. 하지만 8.15 민족대회는 남측 대표단 340명이 평양을 방문해 가졌다. 8월 17일 부문별 상봉행사는 불교는 평양 광법사에서, 기독교는 평양 봉수교회, 천주교는 장충성당, 천도교는 평양 청우당에서 남북공동으로 예식을 열었다. 특히 8월 21일 대구에서 열린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개막식에 남과 북의 대표선수들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동시 입장을 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동시 입장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간 남북교류에 있어 보조역할에 만족했던 불교계가 이 시기로부터 선봉에 나서게 됐다. 2003년 1월 14일에 남측 조계종단과 조불련이 금강산 신계사 복원 불사에 대한 기본 합의서를 체결, 교환하였으며, 11월 9일~23일 금강산 신계사 터에 대한 남북공동 시・발굴조사가 처음 진행됐다. 또 2월 27일 남측의 천태종은 북측과 개성 영통사 복원에 관한 약정에 합의하는 등 본격적으로 북녘사찰의 복원 시대가 개막되면서부터다.
# 다음 편은 ‘2004년 금강산 신계사 복원사업’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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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은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 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