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구지수지(俱胝竪指)
신무문관: 구지수지(俱胝竪指)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1.2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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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1.

성찰배경: 앞글에서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에 초점을 맞추어 제자인 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 선사와의 문답이 담긴 ‘즉심즉불(卽心卽佛)’과 ‘비심비불(非心非佛)’을 통해 ‘불(佛)’자(字) 화두에 대해 두루 살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비록 기록이 많지는 않지만 952년에 편찬된 <조당집(祖堂集)>과 1004년에 편찬된 <전등록(傳燈錄)>에 수록된 대매 선사의 가풍(家風)에 대해 살피고자 합니다. 먼저 그와 제자인 신라(新羅) 출신 가지(迦智) 선사와 항주천룡(杭州天龍) 선사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이어 천룡 선사의 일지선(一指禪) 가풍을 천하에 널리 드높인 제자 금화구지(金華俱胝) 선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문관(無門關)> 제3칙 ‘구지수지(俱胝竪指)’를 제창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이 공안은 <벽암록(碧巖錄)> 제19칙에도 담겨있어 선가에서 매우 비중 있게 다루고 있는 공안의 하나입니다. 

대매 선사의 가풍

대매 선사의 선지(禪旨)는 <전등록> 제7권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대매 선사께서 상당하여 대중에게 다음과 같이 법문을 하셨다. 그대들 모두 각자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서 근본(根本)을 철저히 꿰뚫어 통달해야지, 결코 말단[枝葉]을 쫓지는 말라. 오직 그 근본을 체득하기만 하면 말단은 저절로 이르게 된다. 만일 근본을 체득[識得]하고자 하면 오직 스스로의 마음을 꿰뚫어내야만 할 뿐이다. 이 마음은 원래 일체 세간과 출세간법의 근본이기 때문에, 마음이 일어나면 온갖 법이 드러나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온갖 법이 사라진다. 마음은 다만 일체 선악에 의지하지 않고 일어나며, 만법은 본래 스스로 여여(如如)하다.”

“어느 날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如何是佛法大意.]’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대매 선사께서 ‘부들꽃[蒲華]·버들개지[柳絮]·대바늘[竹鍼]·삼실[麻線]이니라.’라고 응답했다.” 

군더더기: 대매 선사께서 상당 법문을 통해 말단을 쫓지 말고 근본을 꿰뚫으라고 강조하셨는데, 한 승려의 근본[佛法大意]을 묻는 질문에는 왜 말단으로 응답하셨을까요?  

한편 대매 선사는 두 명의 전법제자를 배출했는데 이 분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몇몇 선문답(禪問答)이 <전등록> 제10권을 통해 전해지고 있어 이를 통해 대매 선사의 가풍이 이 제자들에 의해 어떻게 전승되고 있음을 잘 엿볼 수 있기에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가지(迦智) 선사께 한 승려가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가지 선사께서 ‘그대가 그 경지에 들면 그대에게 바로 일러주리라.’라고 응답했다.” 

군더더기: 필자가 틈날 때마다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스승의 역할은 단지 사잇길로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길 안내자일 뿐입니다. 위 응답을 통해 가지 선사 역시 스스로 체득하면 그 경지가 바른지 점검을 해줄 수는 있지만, 스승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다고 해도 결코 제자를 깨우쳐 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가지 선사께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대매산(大梅山)의 가풍[禪旨]입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가지 선사께서 ‘지엽(적인 유제품[牛酪])의 근본(인 우유)이라는 분별까지도 일시에 놓아 버려라![酪本一時拋]’라고 응답했다.”

군더더기: 달[根本]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더니 손가락[枝葉]만 본다는 뜻의 ‘견지망월(見指忘月)’이라는 선어(禪語)가 있습니다. 가지 선사는 더욱 철저히 ‘지월구망(指月俱忘)’, 즉 지엽뿐만이 아니라 근본까지도 함께 내던져버릴 것을 다그치고 있네요. 덧붙여 아쉽지만 이런 역량을 갖춘, 가지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에 대한 기록은 없는 것 같네요.

“어느 날 천룡(天龍) 선사께 한 승려가 ‘어떤 것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如何是祖師意.]’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천룡 선사께서 다만 불자(拂子)를 세웠다.”

군더더기: 참고로 ‘불자(拂子)’는 본래 인도에서 벌레를 쫓을 때 사용하였으나, 한중일 삼국에서는 수행자들이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쳐내는 상징적인 용도로 지닌다고 합니다. 덧붙여 천룡 선사는 구지 선사와 아쉽게도 법호를 빼고는 기록이 전무한 신라 출신 언충(彦忠) 선사를 배출하였습니다. 

한편 가지 선사의 영향으로 후학인 언충 선사가 천룡 선사 문하로 유학을 간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런 점을 포함해 언충 선사에 관한 선지도 훗날 새로운 자료 발굴 등을 포함한 학술연구를 통해 상세히 밝혀지면 좋을 것 같네요.

구지수지(俱胝竪指)

먼저 이 공안에 얽힌 일화가 <조당집> 제19권과 <전등록> 제11권의 구지화상 편에 수록되어 있어 소개를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지 선사는 9세기 중국 무주(婺州)의 금화산(金華山)에 살면서 늘 ‘칠구지불모심다라니(七俱胝佛母心陀羅尼)’를 염송하며 수행했다고 한다. 전기에 따르면 젊었을 때 그는 혼자 산속에 살면서 좌선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실제(實際) 비구니가 찾아왔다. 중국 관습으로는 두 사람이 만나면 갓을 벗고 인사를 교환하는 것인데, 이 비구니는 예의도 지키지 않고, 갓도 벗지 않은 채 구지의 주변을 세 바퀴 돈 다음, 그 바로 앞에 서서 “만약 당신이 (경전이나 어록에도 없는 당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한 마디[一轉語]를 제대로 제시한다면 갓을 벗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안목이 열리지 않았던 구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비구니는 즉시 발길을 돌려 떠나려 했다. 그러자 구지가 ‘날도 어두워졌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 출발하면 어떻습니까?’하고 재차 물었다. 비구니는 돌아보며, ‘당신의 한 마디를 들을 수 있다면 머물지요.’라고 다시 다그쳤다. 그러나 구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비구니는 그대로 떠나버렸다. 이에 즉시 비구니에게 답할 수 없었던, 구지는 머물던 절을 떠나 여러 훌륭한 선지식들을 방문하며, 수행을 거듭해서 안목을 열고자 굳게 결심했다. 그런데 떠나려고 결심한 그날 밤 산신(山神)이 꿈에 나타나 ‘당신의 스승이 될 뛰어난 선사[大菩薩]가 가까운 장래에 이 암자를 방문할 것이요.’라고 계시(啓示)하자 그대로 산에 머물기로 했다. 과연 열흘쯤 지날 무렵, 천룡(天龍) 선사가 이 절을 방문하자, 꿈에서 예언한 스승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고 그를 정중히 맞이하였다. 그리고는 실제 비구니와의 문답을 들려드리고 ‘선의 근본적인 한 마디는 무엇입니까?’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천룡 선사는 다만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그런데 이 순간 홀연히 마음속 먹구름이 걷히고 환하게 밝아지면서 구지는 크게 깨달았던 것이다.” 

본칙(本則): 구지 선사는 누가 무엇을 묻더라도 다만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뒤에 시봉하는 동자가 있었는데, 한 방문객이 ‘당신의 스승은 어떤 법요(法要)를 가르치고 있습니까?’ 하고 묻자 동자 역시 스승의 흉내를 내어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뒤에 이 말을 들은 구지는 (기회를 엿보다가 또 흉내를 내려는 순간) 마침내 칼로 동자의 그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이에 동자가 비명을 지르며 울면서 도망가는데 구지 선사가 그를 불러세웠다. 동자가 머리를 돌리자 구지 선사는 즉시 손가락 하나를 세웠다. 이때 동자가 홀연히 깨달았다. 그후 구지 선사가 장차 ‘세상을 떠나려고[順世]’ 할 때 대중들에게, ‘나는 천룡 선사의 일지선을 체득해 한평생 써 왔으나 다 쓰지 못하고 가노라.[吾得天龍一指頭禪 一生受用不盡]’라는 말을 마치고 시적(示寂)했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구지 선사와 동자의 깨달음 모두 손가락 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를 곧바로 꿰뚫어 볼 수 있다면, 천룡 선사와 구지 선사와 동자 및 여러분 자신을 모두 한 꼬치로 꿸 수 있으리라!”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구지 선사는 늙은 천룡 선사를 바보로 만들었으며/ 예리한 칼로 즉시 동자를 감정했네./ 거령신(巨靈神)이 조금도 힘들이지 않고 손을 들어/ 천만겹의 화산(華山)을 두 동강이를 낸 것처럼. [俱胝鈍置老天龍 利刃單提勘小童. 巨靈擡手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제창(提唱): 구지 선사의 전기에는 ‘천룡 선사는 손가락 하나를 세웠고, 이때 구지가 크게 깨쳤다.’라고 기록되어 있을 뿐, 그 깨달음을 얻기까지 그의 내적인 고뇌에 대해서는 상세한 기술이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엄격한 구도 수행의 길을 걸었던 이들은 이 짧은 한 줄의 기술 뒤에 이런 깨달음의 시절인연이 도래할 때까지 구지 선사가 견딜 수 있는 한계까지 도달한 극심한 고뇌를 겪었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그는 오랫동안 산속에서 좌선을 하고 있었지만 그의 수행은 이원적 분별을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 무렵 마침 실제 비구니와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수행이 아직 미숙하다는 것을 통감하게 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관문을 투과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우게 했던 것입니다. 드디어 그는 극한 상태로까지 내몰렸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참구심이 내적으로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극한까지 격화되기만 한다면 비단 손가락 세우기뿐만이 아니라 새가 지저귀는 소리에도, 돌이 대나무에 부딪히는 소리에도, 스승이 후려갈기는 죽비 소리에도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한편 여러분께 이 공안을 다음과 같이 좀 더 세밀히 살펴볼 것을 권해드립니다. 
“1) 구지 선사가 누가 무어라 묻든지 왜 다만 손가락 하나를 세웠을까? 2) 동자가 손가락을 잘리고 도망치다 구지 선사의 손가락 세움을 보고 깨달은 경계는 과연 무엇인가? 3) 만일 여러분이 구지 선사의 위치에 있었다면 누구든 무어라 물었을 때 어떻게 응대하겠는가?” 

덧붙여 석가세존의 ‘꽃송이 들어올리기[拈花]’ 가풍은 천룡 선사의 ‘불자세우기[竪起拂子]’와 그의 일지선을 계승한 구지 선사의 ‘손가락세우기[竪起一指]’로 완결지어졌다고 사료됩니다. 

‘순세(順世)’

끝으로 공안 말미에 있는 ‘순세(順世)’에 대해 함께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재가와 출가를 불문하고 순세의 참뜻은 ‘생수불이(生修不二), 즉 생업(生業)과 수행(修行)이 둘이 아닌 인생여정 속에서 함께 더불어 나누며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가다 미련 없이 떠나기’입니다. 

먼저 재가의 사례로 종교를 넘어 102세를 맞이했어도 여전히 올곧은 삶을 이어가고 계신 철학자 김형석(1920-현재) 연세대 명예교수를 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필자의 견해로는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진 대한민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열린 개신교인인 김교수의 성찰로 점철된 규칙적인 일상사는 멋진 순세의 모범이라 사료됩니다. 

한편 최근 95세를 일기로 입적하신 틱낫한 선사를 기리는 뜻에서 그를 출가의 사례로 들고자 합니다. 그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해 ‘참여불교의 14개 지침’을 새롭게 제창하며 기존의 틀 속에 갇힌 제도권 종교계로 하여금 ‘종교에서 영성으로’ 나아가게 하는 돌파구를 열며 멋지게 순세하셨다고 사료됩니다. 특히 이 지침 가운데 반드시 실천해야 할 핵심적인 처음 두 지침을 다시 한 번 함께 새기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교리, 이론, 사상 또는 심지어 불교사상마저도 숭배하거나 집착하지 말라. 불교사상의 체계는 안내 수단이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다.
2. 현재 알고 있는 지식이 변하지 않을 것이며 절대적인 진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편협한 마음과 현재 생각에 집착하려고 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관점에 집착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고 수행하라. 진리는 삶 속에서 터득되며 단순히 지식의 개념으로 터득되지는 않는다. 항상 여러분의 전체 삶을 통해서 깨닫고 자신과 세상 속에서 진실을 관찰하도록 준비하라. 

아울러 이 지면을 빌어 이와 같은 거인들의 영성여정(靈性旅程)을 디딤돌로 삼아 시대가 요청하는 새로운 거인들이 끊임없이 출현하고, 지구촌공동체 구성원 모두 이런 분들을 본으로 삼아 더욱 풍요로운 삶을 누리다 순세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염원해 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교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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