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암 탄허 스님의 고매한 사상을 대중이 알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편하게 '오대산 성인 한암 스님'을 만날 수 있게 에세이 형식으로 꾸몄습니다. 쉽게 읽히기 위해서 50독을 하며 고치고 고쳤습니다."
월정사 원행 스님(조계종 원로의원)이 오대산 성인 한암 스님(1876~1951)의 평전 에세이 <성인 한암 대종사>를 펴냈다. 스님은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출판기념 간담회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원행 스님은 약관의 나이에 오대산문으로 출가해 한암 스님의 제자인 탄허 만화 스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다.
스님은 책에서 한암 스님의 일대기를 서술하면서, 스님 저술의 중요 대목과 여러 게송을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을 더했다. 원행 스님은 나이와 종교를 초월해 누구에게나 쉽게 읽을 수 있게 풀었다.
한암 스님이 6.25 전쟁 중 상원사를 태우려는 국군을 상대로 좌정하고 앉아, 결국 국군이 법당 문짝 하나만 태우고 떠난 일화는 유명하다.
스님은 상원사를 온몸으로 지켜낸 후 2달여 뒤인 1951년 3월 22일 아침, 앉은 채로 열반했다. 좌탈입망, 평생을 흐트러짐 없이 살다간 선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한암 스님은 1876년 3월 27일 화천에서 태어났다. 속성은 온양 방씨이다. 스님은 9세 때 <사략>을 배우던 중 "태고에 천황씨가, 그 이전에 반고씨가 있었다면 반고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는가"라는 의문을 품을 정도로 존재의 실상을 궁금해했다.
이 답을 구하려 1897년 22세에 금강산 유람 중 장안사에서 출가해 행름 스님의 상좌가 됐다. 한암 스님은 수행 중 모두 4번의 깨달음을 경험했다. 스님은 34세되던 해인 1910년, 평북 맹산 우두암에서 아궁이 불을 붙이다가 확철대오했다.
한암 스님에게 첫 깨침을 준 경허 스님(1846~1912)은 한암 스님과 지내다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쓴 전별사에서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이별의 쓸쓸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랴. 한암이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리"라고 했다.
한암 스님은 1925년 봉은사 조실로 있으면서 "내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춘삼월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노라"며 오대산에 들어간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원행 스님은 "한암 스님은 4번이나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면서도 서울에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선지식이다. 스님이 치과 진료를 받아야 했던 2번을 제외하고는 약속은 늘 지키셨던 선지식"이라고 했다.
원행 스님은 한암 탄허 스님을 관통하는 단어로 '지음(知音)'을 꼽았다. (원행 스님의 에세이 '지음자회' 바로가기)
<성인 한암 대종사>는 원행 스님의 4년 만의 신간이다. 스님은 앞서 <월정사 멍청이> <월정사 탑돌이> <탄허 대선사 시봉이야기> <만화 희찬 스님 시봉 이야기> <10.27불교법난> 등을 펴냈다.
성인 한암 대종사┃원행 지음┃에세이스트 출판사┃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