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인들이 평안 빌던 신성한 땅…유물로 보는 경주 '낭산'
신라인들이 평안 빌던 신성한 땅…유물로 보는 경주 '낭산'
  • 연합뉴스
  • 승인 2022.06.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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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이 전시돼 있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月城) 동남쪽에는 낭산(狼山)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최고봉 높이가 약 100m에 불과하다.

경주 남산과 이름이 비슷한 낭산은 삼국시대에 '신유림'(神遊林), 즉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불렸다. 신라 실성왕 12년인 413년 무렵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나무 한 그루도 벨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인들에게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사천왕사와 망덕사 등 여러 사찰이 들어서면서 불교 공간으로 변모했다. 왕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무덤과 개인이 소망을 비는 기도처로도 활용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15일 특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며 "신라인들은 낭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고, 조선시대까지 낭산은 경주를 지키는 진산(鎭山)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낭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산이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狼)' 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狼)으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며 "형상이 아니라 위치 때문에 낭산으로 명명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 능지탑 관련 유물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능지탑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성림문화재연구원과 함께 9월 12일까지 여는 전시에는 낭산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출품 자료 수는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포함해 389점이다. 국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등 2점이다.

전시는 낭산 위치와 문화유산 분포를 소개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커다란 지도에는 낭산의 중요한 유적이 표시됐다. 그중 전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곳은 사천왕사, 황복사지, 능지탑, 망덕사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낭산의 종교적 색채가 토착신앙에서 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다뤘다.

사천왕사와 황복사에 설치된 신장상(神將像)은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낭산이 신라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자 국가 보호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든 무장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 같은 왕릉과 세상을 떠난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낭산에 건립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전시 제목에도 쓰인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꼭대기를 뜻한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을 도리천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일체는 발견 80년 만에 최초로 함께 공개됐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하며,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성덕왕이 706년 선왕들을 추모하며 안치했다.

이 연구사는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굽다리 접시, 유리판, 팔찌 등을 보며 다양한 공양품을 넣은 배경에도 호기심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망덕사 유물 보는 관람객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망덕사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마지막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은 낭산이 왕실 안녕을 비는 곳에서 개인들도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각각 소장한 능지탑 발굴 유물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벽면이나 기단을 장식하는 벽돌인 '벽전'과 석탑 윗부분인 상륜부는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황복사지 사례를 통해 낭산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낭산 유물은 특별전시관 바깥쪽에도 있다. 어린이박물관 인근 신라 관음보살 조각상이 그중 하나다. 높이가 3.76m인 이 불상은 몸체와 머리가 분리돼 있다가 현대에 합쳐졌다. 불상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낭산이 보인다. 박물관에서 낭산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인들은 국왕부터 백성들까지 힘든 일이 생기면 낭산을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낭산이 경주 남산 못지않은 유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낭산에 있던 신라 관음보살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신라 관음보살.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이 전시돼 있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月城) 동남쪽에는 낭산(狼山)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최고봉 높이가 약 100m에 불과하다.

경주 남산과 이름이 비슷한 낭산은 삼국시대에 '신유림'(神遊林), 즉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불렸다. 신라 실성왕 12년인 413년 무렵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나무 한 그루도 벨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인들에게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사천왕사와 망덕사 등 여러 사찰이 들어서면서 불교 공간으로 변모했다. 왕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무덤과 개인이 소망을 비는 기도처로도 활용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15일 특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며 "신라인들은 낭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고, 조선시대까지 낭산은 경주를 지키는 진산(鎭山)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낭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산이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狼)' 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狼)으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며 "형상이 아니라 위치 때문에 낭산으로 명명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이 전시돼 있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月城) 동남쪽에는 낭산(狼山)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최고봉 높이가 약 100m에 불과하다.

경주 남산과 이름이 비슷한 낭산은 삼국시대에 '신유림'(神遊林), 즉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불렸다. 신라 실성왕 12년인 413년 무렵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나무 한 그루도 벨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인들에게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사천왕사와 망덕사 등 여러 사찰이 들어서면서 불교 공간으로 변모했다. 왕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무덤과 개인이 소망을 비는 기도처로도 활용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15일 특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며 "신라인들은 낭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고, 조선시대까지 낭산은 경주를 지키는 진산(鎭山)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낭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산이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狼)' 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狼)으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며 "형상이 아니라 위치 때문에 낭산으로 명명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 능지탑 관련 유물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능지탑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성림문화재연구원과 함께 9월 12일까지 여는 전시에는 낭산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출품 자료 수는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포함해 389점이다. 국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등 2점이다.

전시는 낭산 위치와 문화유산 분포를 소개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커다란 지도에는 낭산의 중요한 유적이 표시됐다. 그중 전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곳은 사천왕사, 황복사지, 능지탑, 망덕사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낭산의 종교적 색채가 토착신앙에서 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다뤘다.

사천왕사와 황복사에 설치된 신장상(神將像)은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낭산이 신라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자 국가 보호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든 무장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 같은 왕릉과 세상을 떠난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낭산에 건립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전시 제목에도 쓰인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꼭대기를 뜻한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을 도리천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일체는 발견 80년 만에 최초로 함께 공개됐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하며,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성덕왕이 706년 선왕들을 추모하며 안치했다.

이 연구사는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굽다리 접시, 유리판, 팔찌 등을 보며 다양한 공양품을 넣은 배경에도 호기심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망덕사 유물 보는 관람객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망덕사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마지막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은 낭산이 왕실 안녕을 비는 곳에서 개인들도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각각 소장한 능지탑 발굴 유물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벽면이나 기단을 장식하는 벽돌인 '벽전'과 석탑 윗부분인 상륜부는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황복사지 사례를 통해 낭산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낭산 유물은 특별전시관 바깥쪽에도 있다. 어린이박물관 인근 신라 관음보살 조각상이 그중 하나다. 높이가 3.76m인 이 불상은 몸체와 머리가 분리돼 있다가 현대에 합쳐졌다. 불상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낭산이 보인다. 박물관에서 낭산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인들은 국왕부터 백성들까지 힘든 일이 생기면 낭산을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낭산이 경주 남산 못지않은 유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낭산에 있던 신라 관음보살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신라 관음보살.
경주 능지탑 관련 유물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능지탑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성림문화재연구원과 함께 9월 12일까지 여는 전시에는 낭산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출품 자료 수는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포함해 389점이다. 국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등 2점이다.

전시는 낭산 위치와 문화유산 분포를 소개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커다란 지도에는 낭산의 중요한 유적이 표시됐다. 그중 전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곳은 사천왕사, 황복사지, 능지탑, 망덕사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낭산의 종교적 색채가 토착신앙에서 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다뤘다.

사천왕사와 황복사에 설치된 신장상(神將像)은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낭산이 신라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자 국가 보호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든 무장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 같은 왕릉과 세상을 떠난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낭산에 건립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전시 제목에도 쓰인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꼭대기를 뜻한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을 도리천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일체는 발견 80년 만에 최초로 함께 공개됐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하며,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성덕왕이 706년 선왕들을 추모하며 안치했다.

이 연구사는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굽다리 접시, 유리판, 팔찌 등을 보며 다양한 공양품을 넣은 배경에도 호기심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이 전시돼 있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月城) 동남쪽에는 낭산(狼山)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최고봉 높이가 약 100m에 불과하다.

경주 남산과 이름이 비슷한 낭산은 삼국시대에 '신유림'(神遊林), 즉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불렸다. 신라 실성왕 12년인 413년 무렵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나무 한 그루도 벨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인들에게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사천왕사와 망덕사 등 여러 사찰이 들어서면서 불교 공간으로 변모했다. 왕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무덤과 개인이 소망을 비는 기도처로도 활용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15일 특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며 "신라인들은 낭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고, 조선시대까지 낭산은 경주를 지키는 진산(鎭山)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낭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산이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狼)' 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狼)으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며 "형상이 아니라 위치 때문에 낭산으로 명명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 능지탑 관련 유물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능지탑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성림문화재연구원과 함께 9월 12일까지 여는 전시에는 낭산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출품 자료 수는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포함해 389점이다. 국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등 2점이다.

전시는 낭산 위치와 문화유산 분포를 소개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커다란 지도에는 낭산의 중요한 유적이 표시됐다. 그중 전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곳은 사천왕사, 황복사지, 능지탑, 망덕사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낭산의 종교적 색채가 토착신앙에서 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다뤘다.

사천왕사와 황복사에 설치된 신장상(神將像)은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낭산이 신라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자 국가 보호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든 무장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 같은 왕릉과 세상을 떠난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낭산에 건립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전시 제목에도 쓰인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꼭대기를 뜻한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을 도리천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일체는 발견 80년 만에 최초로 함께 공개됐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하며,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성덕왕이 706년 선왕들을 추모하며 안치했다.

이 연구사는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굽다리 접시, 유리판, 팔찌 등을 보며 다양한 공양품을 넣은 배경에도 호기심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망덕사 유물 보는 관람객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망덕사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마지막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은 낭산이 왕실 안녕을 비는 곳에서 개인들도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각각 소장한 능지탑 발굴 유물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벽면이나 기단을 장식하는 벽돌인 '벽전'과 석탑 윗부분인 상륜부는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황복사지 사례를 통해 낭산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낭산 유물은 특별전시관 바깥쪽에도 있다. 어린이박물관 인근 신라 관음보살 조각상이 그중 하나다. 높이가 3.76m인 이 불상은 몸체와 머리가 분리돼 있다가 현대에 합쳐졌다. 불상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낭산이 보인다. 박물관에서 낭산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인들은 국왕부터 백성들까지 힘든 일이 생기면 낭산을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낭산이 경주 남산 못지않은 유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낭산에 있던 신라 관음보살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신라 관음보살.
망덕사 유물 보는 관람객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망덕사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마지막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은 낭산이 왕실 안녕을 비는 곳에서 개인들도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각각 소장한 능지탑 발굴 유물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벽면이나 기단을 장식하는 벽돌인 '벽전'과 석탑 윗부분인 상륜부는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황복사지 사례를 통해 낭산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낭산 유물은 특별전시관 바깥쪽에도 있다. 어린이박물관 인근 신라 관음보살 조각상이 그중 하나다. 높이가 3.76m인 이 불상은 몸체와 머리가 분리돼 있다가 현대에 합쳐졌다. 불상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낭산이 보인다. 박물관에서 낭산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인들은 국왕부터 백성들까지 힘든 일이 생기면 낭산을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낭산이 경주 남산 못지않은 유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이 전시돼 있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신라 왕성이었던 경북 경주 월성(月城) 동남쪽에는 낭산(狼山)이라는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 있다. 최고봉 높이가 약 100m에 불과하다.

경주 남산과 이름이 비슷한 낭산은 삼국시대에 '신유림'(神遊林), 즉 신들이 노니는 숲으로 불렸다. 신라 실성왕 12년인 413년 무렵 신령스러운 공간으로 인식돼 나무 한 그루도 벨 수 없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신라인들에게 토착신앙의 성지였던 낭산은 불교가 유입된 이후 사천왕사와 망덕사 등 여러 사찰이 들어서면서 불교 공간으로 변모했다. 왕들이 영원한 안식을 취하는 무덤과 개인이 소망을 비는 기도처로도 활용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역사적으로 중요하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낭산을 재조명하는 특별전 '낭산, 도리천 가는 길'을 15일 특별전시관에서 개막했다.

이현태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경주 남산은 누구나 알지만, 낭산이라고 하면 고개를 갸웃한다"며 "신라인들은 낭산을 신성하게 여기며 보호했고, 조선시대까지 낭산은 경주를 지키는 진산(鎭山)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낭산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 "산이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狼)' 자를 쓴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마천의 '사기'에는 동쪽의 큰 별을 '낭'(狼)으로 부른다는 기록이 있다"며 "형상이 아니라 위치 때문에 낭산으로 명명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 능지탑 관련 유물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능지탑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성림문화재연구원과 함께 9월 12일까지 여는 전시에는 낭산 문화유산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출품 자료 수는 '전(傳) 황복사지' 삼층석탑 출토 사리장엄구를 포함해 389점이다. 국보는 황복사지 삼층석탑에서 나온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과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등 2점이다.

전시는 낭산 위치와 문화유산 분포를 소개한 프롤로그로 시작한다. 커다란 지도에는 낭산의 중요한 유적이 표시됐다. 그중 전시가 집중적으로 조명한 곳은 사천왕사, 황복사지, 능지탑, 망덕사다.

1부 '신들이 노닐던 세계'는 낭산의 종교적 색채가 토착신앙에서 불교로 변하는 과정을 다뤘다.

사천왕사와 황복사에 설치된 신장상(神將像)은 불교가 들어온 뒤에도 낭산이 신라 사람들에게 신성한 공간이자 국가 보호를 상징하는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신장상은 갑옷을 입고 칼이나 창을 든 무장을 표현한 조각상이다.

2부 '왕들이 잠든 세상'은 진평왕릉과 선덕여왕릉 같은 왕릉과 세상을 떠난 왕의 명복을 비는 사찰이 낭산에 건립됐다는 점에 초점을 맞췄다.

선덕여왕은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는데, 전시 제목에도 쓰인 도리천은 불교에서 세계 중앙에 있다는 수미산 꼭대기를 뜻한다. 선덕여왕은 낭산 남쪽을 도리천으로 지목했다고 한다.

전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황복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와 불상 일체는 발견 80년 만에 최초로 함께 공개됐다. 사리장엄구는 부처나 고승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장치를 의미하며,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성덕왕이 706년 선왕들을 추모하며 안치했다.

이 연구사는 "황복사지 사리장엄구는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며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굽다리 접시, 유리판, 팔찌 등을 보며 다양한 공양품을 넣은 배경에도 호기심을 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망덕사 유물 보는 관람객들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이 15일 개막한 '낭산, 도리천 가는 길'에서 관람객들이 망덕사 관련 유물을 보고 있다.



마지막 3부 '소망과 포용의 공간'은 낭산이 왕실 안녕을 비는 곳에서 개인들도 찾아와 기도하는 장소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한다.

국립경주박물관과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이 각각 소장한 능지탑 발굴 유물을 볼 수 있다. 이 가운데 벽면이나 기단을 장식하는 벽돌인 '벽전'과 석탑 윗부분인 상륜부는 처음으로 일반 관람객과 만난다. 낭산 서쪽 자락에서 발견된 십일면관음보살상과 약사불 좌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에필로그는 오랫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실체를 명확히 알 수 없는 황복사지 사례를 통해 낭산을 향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낭산 유물은 특별전시관 바깥쪽에도 있다. 어린이박물관 인근 신라 관음보살 조각상이 그중 하나다. 높이가 3.76m인 이 불상은 몸체와 머리가 분리돼 있다가 현대에 합쳐졌다. 불상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나지막한 낭산이 보인다. 박물관에서 낭산까지는 걸어서 15분이면 닿는다.

최선주 국립경주박물관장은 "신라인들은 국왕부터 백성들까지 힘든 일이 생기면 낭산을 찾았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낭산이 경주 남산 못지않은 유적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낭산에 있던 신라 관음보살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신라 관음보살.
낭산에 있던 신라 관음보살
(경주=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국립경주박물관 야외 전시장에 있는 신라 관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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