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무한서처(無寒暑處)
신무문관: 무한서처(無寒暑處)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6.27 14: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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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6.

성찰배경: 이 칼럼을 통해 필자는 선종(禪宗) 초기 중국 천하를 양분했던 마조와 석두 계열 선사들의 활약을 <무문관>을 중심으로 하되, 다른 선종어록들을 참고하며 전법계보에서 빠진 관련 선사들의 활약들도 곁들이며 시대순으로 공안들을 제창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순서에 따라 석두희천-약산유엄 선사의 법을 이은 도오원지(道吾圓智,  769-835) 선사와 운암담성(雲巖曇晟, 782-841) 선사와의 선문답(禪問答)들을 살핀 다음, 이어서 도오 선사의 법을 이은 석상경제(石霜慶諸, 807-888) 선사와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 불생불멸처(不生不滅處)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가운데 14권에 들어있는 약산유엄(藥山惟嚴, 745-828) 선사의 법을 이은 도오 선사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그가 사제인 운암 선사와 주고받은 ‘생사관(生死觀)’에 관한 선문답(禪問答)은 다음과 같습니다.
“담주(潭州) 도오산(道吾山)에 주석했던 원지 선사는 예장(豫章) 해혼(海昏) 사람으로서 성은 장씨(張氏)이다. 어릴 적에 열반(涅槃) 화상에게 귀의해 가르침과 계를 받았다. 또한 일찍이 약산 선사의 회상(會上)에서 비밀리에 인가(印可)를 받았다.
도오 선사는 사제인 운암 선사가 병이 들자[不安], 곧 그를 문병 가서, ‘더러운 오물이 새는 가죽 껍데기인 이 몸뚱이를 벗어던지고 어디서 우리 다시 만날까?’하고 물었다.
이에 운암 선사가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곳에서 서로 다시 만납시다.[不生不滅處相見.]’이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도오 선사가 ‘어찌 자네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 곳에서조차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가?[何不道 非不生不滅處亦不求相見.]’라고 다그쳤다.” 

군더더기: 사실 냉정히 살펴보면 우리 모두 ‘나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곳[不生不滅處]’에서 ‘서로 만나자.[상견相見]’라는 분별뿐만이 아니라, ‘서로 만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不求相見]’는 분별조차 일어나지 않는 생사관을 철저히 확립할 때까지 향상(向上)의 길을 치열하게 이어가야겠지요. 

◇ 도오통신(道吾通身)

<벽암록碧巖錄> 제89칙 본칙에 들어있는 약산 선사의 법을 이은 도오 선사와 사제인 운암선사와 주고받은 ‘천수천안관세음보살’에 관한 선문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 이런 멋진 문답이 있다[擧]. 운암 선사가 사형인 도오 선사께, ‘천수천안관세음보살[大悲菩薩]께서 그 많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어떻게 자유자재하게 쓰고 계시는지요?’하고 여쭈었다. 도오 선사께서 ‘마치 어떤 사람이 야반 삼경(三更,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에 손으로 목침[枕子]을 더듬어 찾는 것과 같느니라.’라고 답하셨다.
이에 운암 선사께서 ‘아! 이제 저도 알겠습니다.’라고 짐짓 아는체했다. 그러자 도오 선사께서 ‘자네가 무엇을 알았다는 말인가?’하고 반문했다. 이에 운암 선사께서 ‘편신이 손이요 눈입니다.[遍身是手眼]’라고 아뢰었다. 그러자 도오 선사께서 ‘말은 그럴싸하다만, 다만 10할 가운데 8할 정도 맞는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운암 선사께서 ‘그럼 사형께서는 무어라 이르시겠습니까?’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도오 선사께서 ‘온몸[通身]이 바로 손이고 눈이니라.[通身是手眼.]’라고 답하셨다. 

군더더기: 굳이 분별해 따지자면 운암 선사의 편신(遍身)은 단지 육신을 뜻하는 반면, 도오 선사의 통신(通身)은 육신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모두 포함된 온몸이라고 새길 수도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런데 이 경계에 대해 설두 선사는 게송을 통해 다음과 같이 예리하게 제창하고 있습니다. 
“과연 운암의 편신이 옳은 견해일까? 도오의 온몸[通身]이 옳은 견해일까?[遍身是 通身是.] 만일 단지 이렇게만 비교하며 ‘옳고 그름[是非]’을 가리려고 한다면 이들 모두 관세음보살의 대비심(大悲心)과는 십만 리나 사이가 멀어지리라![拈來猶較十萬里]”

◇ 심물구비(心物俱非)

<경덕전등록> 제15권 ‘담주 석상산(石霜山) 경제 선사’ 편에 있는 도오 선사의 법제자인 석상 선사께서 스승과 주고받은 ‘마음과 사물[心物]’에 관한 선문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 때 도오 선사께서 대중들에게 ‘내가 병[疾]이 나서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것이네. 그런데 마음속에 한물건[一物]이 자리한 지 오래되어 병이 되었는데, 누가 능히 이를 없앨 수 있겠는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석상 스님이 ‘마음도 사물도 모두 아니니, 이를 없애려고 들면 더욱 병이 악화될 것입니다.[心物俱非 除之益患.]’라고 답했다. 이에 도오 선사께서 ‘과연 현명(賢明)하구나. 현명해!’라고 격려하셨다.”

군더더기: 훗날 도오 선사께서 대중(大衆)을 뒤로 하고 순세(順世), 즉 세상을 떠나려 할 무렵 석상 선사를 법제자로 삼고 몸소 석상산에 와서 살았는데, 석상 선사는 날마다 한결같이 성심껏 모시면서 스승에 대한 예를 다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오 선사께서 입적 후 석상 선사 문하로 수행승[學侶]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대중의 규모가 5백여 명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참고로 석상 선사는 한때 세상을 피해 장사성(長沙城) 유양현(瀏陽縣)에 있는 도가방(陶家坊)에서 세상 사람들 속에 섞여 지냈는데,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조차 그의 정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운암 선사의 법제자인 동산 선사께서, 훗날 한 스님을 보내 수소문 끝에 경제 선사를 찾아내자 경제 선사를 추천해 석상산에 살게 하면서 석상 선사로 이름을 날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 무한서처(無寒暑處)

<벽암록> 제43칙 본칙에 들어있는 운암 선사의 전법제자인 동산 선사께서 한 행각승과 주고받은 선문답(禪問答)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 이런 멋진 문답이 있다.[擧.] 어느 때 한 승려가 동산 선사께 ‘추위와 더위가 닥쳐오면 어떻게 피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었다. 이 물음에 대해 동산 선사께서 ‘왜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을 향(向)해 나아가지 못하는가?’라고 응답했다. 
이에 이 승려가 다시 ‘어떤 곳이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입니까?[如何是無寒暑處.]’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동산 스님께서 ‘이보게, 스님[闍黎]! 추위가 오면 추위를 죽이고[寒時寒殺], 더위가 오면 더위를 죽여 보시게![熱時熱殺]’라고 응대하셨다.
[山云 寒時寒殺闍黎 熱時熱殺闍黎.]”

군더더기: 그런데 여기에서 동산 선사께 묻고 있는 이 승려는 불교를 온몸으로 체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단지 머리로만 이해하려고 하던 의학도(義學徒)였습니다. 따라서 이를 측은하게 여긴 동산 선사께서 이 승려에게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밥이나 축내지 말고 있는 그 자리에서 추위가 오면 추위와 철저히 하나가 되고 더위가 오면 더위와 철저히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수행에 힘쓰라고 했던 것이라 사료됩니다. 
참고로 <조당집(祖堂集)>의 기록에 의하면 동산 선사는 어릴 때 출가하여 두루 여러 스승에게서 수행했는데,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전법제자인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선 수행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남전 선사로부터 ‘비록 후생(後生)이지만 다듬을 가치가 있는 재목이구나.’라고 칭찬받자 ‘양민을 천민으로 대하지 마십시오.[莫壓良為賤.]’고 응대했는데, ‘이때부터 그 이름이 천하에 널리 퍼지면서 작가(作家)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훗날 운암 선사께 참문하여 현묘(玄妙)한 이치를 모두 깨우쳤다.’고 합니다.
덧붙여 양개 선사가 특히 운암 선사의 법을 잇게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습니다.
“한 승려가 동산 선사께 ‘스님은 남전 선사를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 선사의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까?’ 하고 여쭈었다. 그러자 선사께서 ‘나는 운암 선사의 도덕(道德)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고, 또한 불법(佛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네. 다만 그분께서 나에게 불법을 설파(說破)해 주시지 않은 것이 귀중(貴重)했기 때문이니라.’라고 응답했다.” 

끝으로 ‘살(殺)’이라는 자(字)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죽인다’라는 뜻이 아니고, 선가(禪家)에서는 이원적(二元的)인 분별없이, 바라보는 사물(事物)이나 처한 상황(狀況)과 철저히 하나가 된다는 뜻으로 멋지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장마와 함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이 어김없이 도래했는데, 이 화두를 멋지게 정면 돌파하며 올여름 무더위를 확실히 죽이고, 있는 그 자리를 ‘추위도 더위도 없는 곳[無寒暑處]’으로 철저히 바꿔보시지 않겠습니까!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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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파심 2022-08-14 23:07:53
교수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스스로 깨쳤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선어록은 깨친뒤 에 "보호임지 "까지 마쳐야 다룰 수 있습니다.
먼저 도오선사가 말한 "어찌 자네는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곳에서 조차
만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는 (이런말을 할 수 있어야 윤회를 벗어날
준비가 된 사람이기 때문이고), 또 온몸이 바로 손이고 눈이라고 말한것은 육신과
마음이 포함된 온몸이 아니라 (작용하는것이 바로 온몸)이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동산스님이 말한 추위가 오면 추위를 죽이고 더위가 오면 더위를 죽이는
것은 본래 (본성에는 취위와 더위가 붙을수 없음을 바로 보라)고 가르키고 있는
것입니다.
깊은 성찰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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