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책상에 앉아 상상으로 쓴 ‘불교성전’
[기고] 책상에 앉아 상상으로 쓴 ‘불교성전’
  • 허정 스님/전 조계종 불학연구소장
  • 승인 2022.07.31 20:1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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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하안거(夏安居) 기간 동안에 지리산 백장암 선원 대중은 <불교성전>을 가지고 공부를 하게 되었다. 백장암에서는 “세존이시여, 저희는 사이좋게 화합하여 물과 우유가 잘 섞이듯이 서로를 우정 어린 눈으로 보면서 지냅니다. 저희는 닷새마다 밤을 지새워 법담으로 탁마하며 방일하지 않고 지냅니다.”(M31) 라는 선배 스님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6년 전부터 일주일에 1회 법담 탁마 시간을 갖고 있다. 이번 하안거에 참여한 대중 스님이 총 10회에 걸쳐서 <불교성전>을 읽고 토론하며 감수를 한 결과 150여 곳의 문제점을 찾아내었다. 인용된 경전을 일일이 대조한다면 이 수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종단본 <불교성전>은 1972년 동국역경원에서 발간한 이후 50년 만이라 한다. 책이 나온 지 한 달 뒤, ‘<불교성전>을 비평하다 1, 2’를 <불교닷컴>에 기고를 했지만 종단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종단본 <불교성전>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1. 책의 목차가 내용이 중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2. 경(經)을 인용하면서 기존의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싣고 있으며, 3. 소제목과 내용이 어긋나는 곳이 있고, 4. 내용이 상반되는 경을 인용하고 있으며, 5. 어려운 단어에 대한 주석이 없으며, 6. 편찬 취지와 ‘일러두기’가 현시대에 안 맞다. 이상 여섯 가지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어보자.

조계종이 펴낸 '종단본 불교성전'.
조계종이 펴낸 '종단본 불교성전'.

1. 책의 목차가 내용이 중복될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총 4장으로 되어 있는데 제1장 ‘거룩한 부처님’은 부처님 생애를 다루고 있다. 탄생과 출가부터 시간 순서로 전개되다가 제2장 ‘위대한 가르침’에서 사건의 전개 순서가 어긋난다. 바이샬리 전염병 퇴치사건(120p)을 앙굴리말라 사건(118p) 뒤에 배치하고, 아누룻다가 눈이 멀게 된 이야기(128p)를 데와닷따 반역사건(125p) 뒤에 배치하고 있어 사건의 발생순서가 안 맞다. 책의 뒤쪽에 ‘불교사 연표’에는 순서대로 정리를 잘해놓았건만 정작 본문에서는 순서가 어긋난다. 성도 후 초기 설한 경전인 <무아경(無我經)>과 <연소경(燃燒經)> 등을 싣지 않았다는 것도 문제다. 이솝우화 같은 본생담과 미륵부처님 이야기는 미륵사찰인 금산사 출신 원행 총무원장 스님의 주문으로 추가된 것이라고 한다. 공적(公的)인 <불교성전>이 권력을 가진 개인의 의견에 좌우되었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다.

제2장 ‘위대한 가르침’은 사성제(고집도멸의 순서)를 기준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소개하고 있다. 고성제를 설명하는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이라는 단원에 상견과 단견을 떠나 중간에서 설하는 ‘나체수행자 깟싸빠’, ‘라훌라를 교계한경’, ‘밀린다왕문경’, ‘금강경’을 소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 이곳에서는 끼사고따미 일화, 55년 동안 똥을 먹었던 잠부까 비구 등의 사연이 소개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제3장 ‘보살의 길’은 260페이지나 차지하는 분량으로 ‘육바라밀’의 순서로 소개하고 있는데 제1장 전생담과 미륵불 이야기와 내용이 겹치고, 제2장 위대한 가르침과도 내용이 많이 겹친다. 바른견해는 지혜바라밀, 바른삼매는 선정바라밀, 바른정진은 정진바라밀과 대응되어 팔정도와 육바라밀의 내용이 겹치고 있다. ‘지계바라밀’에 해당하는 내용에 “나를 바로 세우기”라고 제목을 붙이는 것 등은 어정쩡하다. ‘믿음’과 ‘발원’이라는 항목을 추가하여 여덟 단원으로 설명하려니 육바라밀의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있다.

제4장 ‘불국토 구현’에는 천도재를 지내는 이유 등 정토 신앙을 설명하다가 다시 부처님 가르침, 어록, 천수경, 발원문 등을 소개하고 있다. 너무도 다양한 종류를 소개하고 있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내용도 있고 부분적으로 인용된 경들은 산만한 느낌이다. 부처님의 가르침만 아니라 인도, 중국, 한국 스님들 어록 발원문 등을 소개하고 있어 <불교성전>이 아니라 ‘불조(佛祖)성전’이 되었다.

2. 경(經)을 인용하면서 기존의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싣고 있다.

‘니까야’를 인용하든 ‘아함경’을 인용하든 기존의 번역이 잘못된 곳이 없는지 확인하는 것은 편찬자들의 의무요 <불교성전>을 만드는 기본자세이다. <불교성전>을 감수하면서 150곳을 지적하였는데, 지적된 곳은 거의 잘못 번역된 경전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경우였다. ‘니까야’를 번역한 번역자들과 한문 경전을 우리말로 번역한 ‘동국역경원’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것으로 편찬자들이 불성실하고 무성의하게 책을 만들었다는 사실과 감수자들이 감수를 전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를 들어 79p에 “니련선하 강변에서 숲이 우거진 산을 바라보다 평평하고 깨끗한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보리수 한 그루가 높이 자라나 있었는데 가지와 잎들이 무성하고 고운 빛깔의 꽃이 만발하였다.”라고 묘사하고 있는데 니련선하 강변에서 보리수 아래로 나아가면서 볼 수 있는 “숲이 우거진 산”은 없다. 또한 보리수나무는 무화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고운 빛깔의 꽃이 만발할 수” 없다. 편찬자들은 <불교성전>을 책상에 앉아서 상상으로 쓴 것이다.

90p에서는 “요컨대 존재 그 자체가 괴로움입니다”라고 표현하고, 170p에는 “요컨데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 자체가 괴로움입니다.”라고 표현하고, 177p에서는“다섯 무더기로 성하는 괴로움입니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같은 책에서 ‘오취온고’를 이렇게 다르게 표현하는 것은 너무 성의가 없다. 더구나 177p에서 “여덟가지 괴로움이 있다”고 말해놓고서는 7가지만 말하고 있다. 고등학생도 이해하기 쉬운 <불교성전>을 편찬하자는 본래의 취지와 너무 멀다.

186p에 ‘밀린다왕문경’을 인용하면서 “소리의 울림, 들숨 날숨, 괴로움과 즐거움, 선악(善惡)이 합해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표현되어 있는데, 정확한 표현은 “이처럼 대왕이여 머리털, 몸의 털, 손톱, 살갗, 살, 힘줄, 뼈, 뼛골, 콩팥, 염통, 간장, 늑막, 지라, 폐, 창자, 창자막, 위, 똥, 담즙, 담,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기름, 침, 콧물, 관절액, 오줌, 뇌, 핏줄, 뼈의 부분들과 색, 수, 상, 행, 식을 조건으로 나가세나라는 ‘일반적인 명칭’이나 이름이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괴로움과 즐거움, 선악(善惡)이 합해서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표현은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라 육사외도 중에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ayāna)의 ‘7요설’에 가깝다.

113p에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 공양한다면”이라는 번역을 “세존 앞에서 승가에 공양한다면”으로 잘못 번역한 것을 인용하고 있고, 229p에 안세고가 번역한 ‘팔정도경’을 인용하면서 “무엇이 팔정도를 행하는 것인가? 첫째는 바른견해이니 보시 공덕을 믿고, 예의를 믿으며, 사당에서 재사(齋祠)하는 것을 믿고, 선하거나 악한 행동에 따라 동일한 과보를 불러온다는 것을 믿으며, 부모를 믿고, 천하 도인을 믿으며....자신이 성취한 일을 곧바로 모두에게 알려 설하는 것이 바른 견해입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문장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예의를 믿고, 사당에서 재사(齋祠)하는 것을 믿고, 자신이 성취한 일을 곧바로 모두에게 알려는 것이 바른견해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3.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는 곳이 있다.

예를 들어 <불교성전> 75p에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은 마치 싯타르타가 희말라야 설산에서 6년 수행한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224p에서 “강물에서 목욕한들 오염된 업이 씻어지랴”라는 제목을 달고 ‘옷감의 비유 경’ (M7)을 인용하였지만 정작 강물에 목욕하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286p에 “믿음의 복은 헤아릴 수 없다.”는 “보시의 복은 헤아릴 수 없다.”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295p에 “개인보다 승가에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크다”라는 제목이 붙었지만 인용된 경에는 개인에 대한 보시를 소개하지 않고 있다. 325p에는 ‘범망경’ 10중 대계와 48계를 소개하고 있는데, 경구죄 8조 ‘이승성문의 교법과 이교도의 사견(邪見)으로 만든 학설을 배우는 것은 죄가 된다.’(背大向小戒 若佛子 心背大乘 常住經律言非佛說 而受持二乘聲聞 外道惡見 一切禁戒邪見經律者 犯輕垢罪)’는 내용이다. <불교성전>에는 이승성문(二乘聲聞)을 빼고 ‘대승이 아닌 외도의 사견을 가르치지 말라’고만 제목을 달아 놓았다. 이승성문(二乘聲聞)을 외도와 동등하게 취급하는 내용임에도 이 사실을 숨기려고 제목을 이처럼 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하다. 제3장 ‘보살의 길’에는 제목과 어울리지 않는 경전들이 너무 많다.

4. 내용이 상반되거나 상이(相異)한 경을 동시에 인용하고 있다.

이것은 편찬 취지에서부터 드러난다.

“종단본 <불교성전>은 주제별로 초기경전, 대승경전, 선어록 등을 망라해 수록하여 하나의 주제 안에서 여러 불교의 전통의 교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라고 편찬 취지를 드러내고 있다. 불교 역사 속에서 나타났던 여러 가지 경전을 사상의 맥락과 표현 방법을 고려하지 않고 경전을 모아 놓은 것이 결정적인 실수다.

150p에는 “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품기만 해도 50겁 동안 지은 모든 죄업을 다 소멸한다”고 말한다. “일념으로 미륵보살을 부르십시요. 이렇게 관하는 사람은 도솔천의 천인 한 사람이나 연꽃 한 송이라도 보게 될 것이요, 마침내 1천 2백겁 동안 지은 죄업을 다 소멸하게 될 것이요, 미륵보살의 이름을 듣고 합장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품기만 해도 50겁 동안 지은 모든 죄업을 다 소멸할 것입니다.”

222p에 “촌장이여, 어떤 사람이 큰 바윗덩이를 깊은 물 속으로 던진다고 합시다. 수많은 군중이 그곳으로 모여들어 기도를 올리고 찬미가를 암송하고 합장한 채 그 주위를 돌고 예배하면서 ‘올라오소서, 떠오르소서, 큰 바윗덩이시여. 밖으로 나오소서’라고 간청한다고 합시다. 그런다고 그 바윗덩이가 떠오르겠소?”라는 가르침처럼, 부처님도 자신이 지어놓은 업력은 어쩌지 못하기에 부처님은 석가족이 멸망하는 것을 보아야 했고, 제자인 목갈라나 존자와 뿐나 존자와 앙굴리말라 존자도 불법을 포교하다가 맞아 죽었다. 이렇게 업(業)이 쉽게 소멸한다면 석가모니 부처님도 석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앙상한 나무 아래에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일념으로 미륵보살을 불렀어야 하지 않나?

49p에 포악한 가리왕이 인욕 수행자의 두 손을 자를 때 인욕 수행자는 범부였지만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는데 ‘금강경’에서는 인욕 선인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는 성인이었기에 화를 내지 않았다고 나온다.

또한 305p에 ‘우바새계경’을 인용하면서 “보시 받는 자가 보시의 결과로 목숨, 육체, 힘, 편안함, 언변을 얻는다”고 말하고, ‘음식경’을 인용하면서 “보시자는 수명, 아름다움, 행복, 힘, 영감(靈感)을 보시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한다. ‘아함경’과 ‘니까야’의 번역이 다르면 하나만 인용하든가 아니면 같은 단어로 통일하던가 해야 하는데, 이 책의 편집자들은 그냥 다른 번역을 인용하여 놓았다. 기획위원과 편찬위원들은 이렇게 경전을 모아 놓고도 여기에서 발생하는 모순점들에서 아무런 모순을 느끼지 못했나?

독자들의 입장에서 청소년들도 이해하기 쉽고 감동적인 <불교성전>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책은 철저히 공급자 입장에서 많은 경전을 토막토막 잘라서 모아 놓았다. 현명한 상인이라면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팔아야 하는데 공급자의 창고에 있는 모든 재고상품을 팔고 있는 격이다. 파는 상품이 하자가 있는지 유통기한이 지났는지 확인하지도 않고.

5.어려운 단어에 대한 해설이 없다.

<불교성전> 565p에서 “목련은 천안(天眼)으로써 자신의 돌아가신 어머니께서 마리지세계(摩利支世界)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마리지세계’에 대한 설명이 없고, 643p에 “한번 생겨나는 것이건 두 번 생겨 나는 것이건”에 대한 설명이 없다. 494p에 “저 바라문은 제화갈 부처님이었고 토끼는 나였으며 원숭이는 사리불이었고”라고 나오는데 제화갈(提和竭) 부처님이 누구인지 설명이 없다. 136p에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가엾게 여기시어 1겁을 더 머물러 주소서’라고 말할 때 ‘1겁’을 머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하지 않고 있다. 424p에 ‘수바경’을 인용해 놓고 ‘사문과경’을 인용하였다고 적고 있다.

6. 책의 편찬 취지와 일러두기가 시대에 안 맞다.

<불교성전> ‘일러두기’에는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용어가 상이한 경우 구마라집본의 한자음을 사용한다. 단 통용되는 인명이나 지명은 익숙한 용어를 사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한 기준으로 용감하게도 ‘아누룻다’를 ‘아나율’로, ‘난디야’를 ‘난제’로, ‘낌빌라’를 ‘금비’로, ‘뿐나’를 ‘부루나’로, ‘수나빠란따’를 ‘수로나’로 바꾸어 결과적으로 ‘니까야’를 한문경전으로 만들어 놓았다. ‘니까야’에 등장하는 짬빠, 숩삐야, 나꿀리빠따, 알라깝빠, 웨타디빠, 빠와 같은 이름들은 바꾸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구마라즙의 한자음 발음과 영어 발음과 빨리어 발음이 혼재된 책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사리뿟다의 동생 쭌다와 대장장이 아들 쭌다(cunda)를 모두 춘다로 표현해 혼란을 주고 있다. 138p 쭌다는 대장장이 아들 쭌다이고, ‘정신경(D29)’과 ‘지워 없앰 경(M8)’에 나타나는 쭌다는 사리뿟다의 동생으로 쭌다 혹은 마하 쭌다로 불린다. <불교성전> 색인에는 3명의 춘다가 보이는데 같은 춘다로 오해하게 되어 있다.

2021년 종단본 <불교성전>이야 말로 조계종의 수준이며 종단의 얼굴이다. 일반 책들은 출판사에서 출판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불교성전>을 부처님 전에 봉정하는 의식을 거행한 이유는 무엇이며, 많은 불자가 <불교성전> 편찬에 성금을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오직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이 정확하고 명료하게 전달되기를 바라는 염원이다. 진정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라면 <불교성전>에 오자 하나가 발견되어도 송구스러워하고 반성해야 할 것이다. 제일 먼저 <불교성전> 기획위원(법인 스님, 덕문 스님, 원철 스님, 정덕 스님, 박영동, 김상영, 이미령)과 전문위원(원묵 스님, 휴담 스님, 도문 스님, 이진영, 권기찬)들이 자신의 과오를 통감하고 재편찬에 나서 주기 바란다. <불교성전> 상임위원회(범해 스님, 혜국 스님, 종호 스님, 경우 스님, 법원 스님, 금곡 스님, 삼혜 스님, 서봉 스님, 정인 스님, 본각 스님, 해주 스님, 이중표)와 감수를 맡은 무비 스님, 지안 스님, 혜거 스님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양심의 소리를 내길 바란다.

원불교의 경우 2021년 7월에 <원불교전서> 개정증보판을 냈으나, 적잖은 오류로 이의가 제기되자 전량 회수해 폐기하고 경전의 편찬자들이 총사퇴하였다. 대한민국의 최대 불교종단인 대한불교조계종은 <불교성전>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 지 1년 5개월이 지난 시점에도 기획위원, 편찬위원 등 누구 하나 사과하지 않고 있다.(이미령 님만이 기고문에 댓글로 사과를 하였음) 불법(佛法)을 포교하기 위해 세워진 종단이고 그렇게 종단을 운영하기 위해 선출된 총무원장, 포교원장이라면 이렇게 무대응으로 일관할 수는 없다. 전 포교원장 지홍 스님이 횡령죄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판결받아서 범죄자가 만든 <불교성전>이라는 오명(汚名)이 붙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백장암 선원 대중 스님과 ‘온라인 불자회’에 의해서 150여 군데의 오류가 지적된 만큼, 이번에 포교원장 범해 스님이 재편찬의 결단을 내려주길 바란다. <불교성전> 편찬에 성금을 보낸 분들, 50년 만에 발간된 종단본 <불교성전>을 가지고 불교를 공부하려는 재가자들, 호기심을 갖고 불교를 공부하려는 비불자들, 그리고 스님들에게 더는 죄를 짓지 말기 바란다.

조계종의 얼굴인 종단본 <불교성전>의 잘못된 점을 알고서도 고치지 않는다면 부처님과 종도와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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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 2022-08-08 17:42:16
이 기고문을 읽고 여러가지 생각이 들지만, 크게 두가지로 나누어서 말한다.

첫째. 조계종 불교성전은 시작부터 문제라는 점이다.
둘째, 이 기고문의 기고자의 의도이다.

이 두가지에 대해서 말해보고자 한다.

선각자 2022-08-02 09:28:13
참으로 훌륭하고 날까로운 비평입니다
허정스님 기고를 읽을때 마다 종단에 대한 애정과깊은식견을 느낄수 있어서 좋습니다
이런 인재를 애써외면하고 배척하는 풍토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앞으로도 거침없고 올바른 정론을 펼쳐 주시기를 발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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