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청세고빈
신무문관: 청세고빈
  • 박영재 명예교수(서강대)
  • 승인 2022.08.16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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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57.

성찰배경: 필자는 이 칼럼을 통해 선종(禪宗) 초기 중국 천하를 양분했던 마조와 석두 계열 선사들의 활약을 <무문관(無門關)>을 중심으로 하되, 선종의 전개과정을 역사적으로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다른 선종어록들을 참고하며 동시대를 살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관련 선사들의 활약들도 곁들이며 시대순으로 공안들을 제창해오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순서에 따라 동산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의 전법제자로, <무문관> 10칙의 주인공인 조산본적(曹山本寂, 840-901) 선사에 관해 살피고자 합니다. 

◇ 조동종을 스승과 함께 열다

<조당집(祖堂集)> 제8권에 보면 스승인 동산 선사와 함께 선종의 한 갈래인 조동종(曹洞宗)을 창종한 조산 선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습니다.

“동산 선사의 법을 이었고, 항주(杭州)에서 살았다. 휘(諱)는 본적(本寂)이고, 천주(泉州)의 포전현(莆田縣) 출신이며, 속성(俗姓)은 황(黃)씨이다. 어릴 적부터 구경(九經)을 익혀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19세가 되어서야 부모의 허락을 받고 복당현(福塘縣) 영석산(靈石山)에서 출가하였다. 25세가 되자 스승으로부터 비로소 계 받을 것을 허락받았다. 그런데 이 무렵 앉고 눕는 몸가짐[威儀]이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 같았다. 

계를 받고 곧 운수 행각을 나서면서 맨 처음 동산 선사의 회상을 찾았다. 동산 선사께서 ‘자네의 법명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산이 ‘다만 아무개[專甲]입니다.’라고 아뢰었다. 이에 동산 선사께서 ‘(이름에 즉해) 향상(向上)의 견해를 다시 일러라.[向上更道]’라고 다그치셨다. 그러자 조산이 ‘말할 수 없습니다.[不道]’라고 아뢰었다. 이에 동산 선사께서 ‘어째서 말할 수 없는가?’라고 재차 물으셨다. 그러자 조산은 ‘사실 아무개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不名專甲]’라고 당당하게 아뢰었다. 마침내 동산 선사께서 그가 큰 재목임을 간파하셨다. 조산은 이로부터 그곳에 머문 지 몇 해 만에 은밀히 독대(獨對)해 선지(禪旨)를 이어받았다. 

어느 때 동산 선사께 하직 인사를 드리자, 선사께서 ‘어디로 가는가?[什摩處去]’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산이 ‘변함없는 곳으로 가렵니다.[不變異處去]’라고 아뢰었다. 이에 동산 선사께서 ‘변함없는 곳에 어찌 감이 있겠는가?[不變異處豈有去也]’하고 반문하셨다. 그러자 조산이 ‘가는 것도 역시 변함없는 것입니다.[去亦不變異]’라고 당당히 아뢰었다.

이로부터 마음을 다잡으면서 시일을 보내며 유유자적하였고 언행에 거리낌이 없었다. 그런데 수도(修道)에 뜻을 둔 벗이 아니면 함께 더불어 말하지 않았고 깊이 은둔해 자유로이 바깥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교화할 인연이 무르익자 처음에는 무주(撫州)의 조산(曺山)에 머물렀으며 나중에는 하옥산(荷玉山)으로 옮겼다.” 

◇ 조산 선사의 가풍
역시 <조당집> 제8권에서 조선 선사의 가풍(家風)을 잘 엿 볼 수 있는 두 일화를 소개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출신로(出身路) 일화: “한 승려가 ‘제가 화상의 회상에 머문 이후 지금까지 몸 벗어날 길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부디 화상께서는 몸 벗어날 길을 일러주십시오.’라고 여쭈었다. 조산 선사께서 ‘자네는 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闍梨曾行什摩路來]’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이런 경지(境地)에 이르면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到這裏辨不得]’라고 대답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필시 몸을 벗어날 길을 얻지 못하겠구나.’라고 응대하셨다.”

군더더기: 참고로 머리로만 따지며 헤아리는 의학도(疑學徒)인 이 승려가 말뿐인 ‘이런 경지’라는 분별을 일으키자 조산 선사께서 즉시 ‘그런 수준이라면 결코 육도윤회하는 몸뚱아리로부터 자유롭기는 불가능한 놈이군!’이라고 쏘아붙였다고 사료됩니다. 자! 어떻게 하면 ‘출신로[出身路]’, 즉 ‘향상의 길[向上一路]’로 들어설 수 있을까요? 물론 향상의 길이란 분별을 일으키는 순간 향하(向下)의 경지로 즉시 떨어질 것이니 세밀히 살펴보십시오.

불변(不辨) 일화: 한 승려가 “옛 어른께서 ‘싹을 보면 좋은 땅을 가릴 수 있고, 문답을 해보면 사람을 식별(識別)할 수 있다.[從苗辨地 從語識人]’고 하셨는데, 지금 제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부디 가려 주십시오.”라고 여쭈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나는) 가릴 수 없네.[不辨]”라고 대답하셨다. 그러자 이 승려가 “어째서 가려낼 수 없습니까?”하고 다시 여쭈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자네는 듣지 못했는가? 나, 조산이 솜씨 좋은 사람이라고 하는 소문을![曹山好手]”하고 응대하셨다. 

군더더기: 역시 의학도인 이 승려는 ‘가림[辨]’과 ‘가릴 수 없음[不辨]’의 이원적 분별 속에서 헤매고 있어, 조산 선사께서 이미 멋진 솜씨를 발휘해 ‘가릴 수 없음’이라 일갈하며 가리고 있는데도 이를 인득(認得)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해야 ‘가림’과 ‘가리지 않음’의 분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사실 스승은 제자와 문답을 통해 화두의 경계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제자의 공부 수준을 식별할 수 있기 때문에, 간화선 수행의 핵심은 ‘입실점검(入室點檢)’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 신무문관: 청세고빈淸稅孤貧

본칙(本則): 조산 선사께 한 승려가 “저, 청세(淸稅)는 외롭고 가난합니다. 스님께서 부디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가르침을 청했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청세 스님!” 하고 불렀다. 그러자 청세가 “네.”하고 응답하였다. 이에 조산 선사께서 “청원백가의 명주(名酒)를 석 잔이나 들이키고도 아직 입술도 젖지 않았다고 하느냐?”라고 말씀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청세는 어쩌자고 조산 선사께 시비를 걸었을까? 조산 선사께서는 안목을 갖춘 분이라[曹山具眼], 걸어오는 수작을 깊이 간파했다네[深辨來機]. 그렇더라도 자! 일러보아라. 도대체 어디가 청세가 청원백가의 명주를 석 잔이나 들이킨 자리인가를!”이라고 제창하셨다.

송(頌):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가난하기는 거지 범단(范丹)과 같고/ 기개는 장수 항우(項羽)와 같네./ 비록 가진 것은 없어도/ 감히 조산 선사와 더불어 부(富)를 다투는구나.[貧似范丹 氣如項羽 活計雖無 敢與鬪富.]

군더더기: 이 공안의 핵심은 진리에 대한 빈부(貧富)의 이원적 분별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먼저 이 공안의 제1관문은 ‘만일 청세 대신 여러분이 맨 처음 조산 선사를 대면했었다면 어떻게 즉시 응대했었어야 했는가?’이고, 만일 제1관문에서 투과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제2관문인 ‘조산 선사께서 청원의 백가주를 석 잔이나 마시고도 아직 입술도 젖지 않았다고 하느냐?고 다그쳤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즉시 응대했었어야 했는가?’입니다. 

◇ ‘청세고빈’에서 차용한 성경 공안

2021년 6월 이후 선도회 국제거점모임의 지도법사[老師] 직을 수행하고 있는 천달(天達) 법사(예수회 서명원 신부)께서는 2006년 선도회 간화선 점검 과정을 모두 마치고 법사가 되셨습니다. 이때 천달 신부께서는 필자로부터 특별 책무를 부여받았습니다. 즉 유럽과 캐나다에 거주하는 그리스도교가 주류인 외국인 문하생들로 하여금, 성경 가운데 상식적인 수준의 분별을 통해 이해 불가인 대목들을 골라 공안으로 새롭게 발굴하여 참구 및 점검케 하는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청세고빈’에서 차용한 선도회 성경 공안의 유래는 종달 선사의 사숙인 일본 임제종(臨濟宗) 남선사파(南禪寺派) 관장[方丈]을 지낸 시산전경(柴山全慶, 1894-1974) 선사가 지은, 세계적으로 널리 읽히고 있는 <Gateless Barrier: Zen Comments on Mumonkan>(1974)에 다음과 같이 들어있습니다.

“고빈(孤貧)’하면 생각나는 일화가 있다. 전에 영국인 신사[R. H. Blyth, 1898-1964; 당시 경성제대 영문학 강사]가 운수 시절의 사형(이며 종달 선사의 스승)인  화산대의(華山大義, 1891-1945) 선사 밑에 선 수행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화산 선사께서 이 신사에게, 성경에 있는 ‘마음이 가난한 자는 행복하리라.’라는 대목을 인용하며 ‘내 앞에 그 가난한 마음을 즉시 꺼내 보시오!’라는 공안을 주셨다. 나는 그리스도교에서 이 말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해석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화산 선사께서 이것을 선적(禪的) 입장에서 공안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정말로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한다.”

이어 시산 선사께서는 ‘고빈(孤貧)’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제창하고 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청세가 말하는 ‘고빈’이란, 결코 말 그대로의 뜻은 아니다.  의학도였던 청세는 조산 선사께 ‘저에게는 깨달음도 없고, 방황함도 없고, 지옥도 없고, 극락도 없고, 자(自)도 없고 타(他)도 없는 청정무구(淸淨無垢)할 뿐입니다. 이와 같이 도저히 구제불능인 이 빈자(貧者)를 스승께서는 어떻게 구해주시겠습니까?’라는 날카로운 질문으로 조산 선사의 대응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조산 선사는 자유로운 선적 역량을 갖춘 대선장(大禪匠)이어서, 이와 같은 일문(一問)에 흔들릴 선승은 아니었다. 말이 끝나자마자 ‘청세 스님!’하고 불렀다. 청세가 ‘네!’ 하고 대답하자마자 ‘자네는 청원백가의 명주를 석 잔이나 마셨으면서도, 한 모금도 안 마셨다고 할 수 있겠느냐?’라고 꾸짖었다. 도대체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 것일까? 눈에 가득, 귀에 가득, 갈려고 하면 갈 수 있고, 앉으려고 하면 앉을 수 있다. 고빈은커녕 대부호(大富豪)가 아니냐? 물음과 대답이 한결같이 잘 조화를 이룬 멋진 답화(答話)이다.”

덧붙여 요즈음 우크라이나 전쟁 사태로 기름값을 포함해 물가가 요동치며 물심양면으로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모두 깊이 새기면 좋은, 일본 황벽종(黃檗宗)의 개산조인 중국 출신 은원융기(隱元隆琦, 1592-1673) 선사의 ‘안빈(安貧)’이란 시를 시산 선사는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제창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내 집에는 기름이 없으니 등불을 켜지 말게./ 등불을 원한다면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네./ 그러나 내게는 가난을 안심시킬 비책이 있네./ 안심하게 그대여! 이제 슬슬 벽을 더듬어 가게.’

특히 끝의 두 구[二句]에는 깊은 맛이 있다. 조산 선사의 답화와 함께 깊게 맛보는 것이 좋겠다. 가난하면 가난을 한탄하고, 부자라면 부가 걱정스럽다. 이것이 속세의 상식이다. 빈부(貧富), 시비(是非)를 넘을 때, 거기에 참된 자유가 있고, 안심이 있다.”

군더더기: 화산 선사께서 제창했던 성경의 공안화 가풍을 이어받은, 증손자에 해당하는 천달天達 신부께서 현재 제자인 스위스의 원내(圜耐) 거사와 함께 성경 가운데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을 발췌해 그리스도인을 위한 수십 개의 공안으로 정리를 마쳤는데, 편집을 마무리하는 대로 프랑스어로 출판할 예정입니다. 

이 가운데 보기를 하나 들면, 마태복음 6장 33절인,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라는 대목에 바탕을 둔, “만일 당신이 하느님의 나라를 찾고 계신다면,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 말씀해 주십시오.”라는 공안입니다.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 선사로부터 두 차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날마다 온몸으로 성찰하기>(비움과 소통, 2015),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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