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출신 중견작가 박숙희가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는 개인전을 연다. 누아갤러리 초청으로 오는 24일부터 9월6일까지 서울 양화로 효성해링턴타워에서다. ‘글로 그리는 그림, 그림으로 쓴 글’과 ‘그림일기’라는 두 가지 컨셉 스물한 점이다.
반야심경 법성게 등의 불교경전을 그리듯 표현한 작품들이 이채롭다. 불교를 종교보다는 철학으로 이해하는 박숙희는 불교철학의 정수이기도 한 반야심경과 법성게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법성게의 제작기법은 독특하고 이색적이다. 신라의 의상 스님이 방대한 분량의 화엄경을 간명 적절하게 표현한 7언30구 210자의 게송을 만다라와 같은 그림으로 엮은 <화엄일승법계도>를 만든 뒤, ‘이것이 부처님의 뜻에 계합함이 있다면 타는 불 속에 들어가서도 온전하리라 믿습니다’라고 발원하고 나서 법계도를 맹렬한 불길 속에 집어넣었으나 과연 타지 않았다는 일화에 착안해 작업한 것이다.
훈민정음이 새겨진 한지를 태우듯 찢고 또 찢어 그렇게 찢어발겨진 한지로 경전의 한 글자 한 글자를 조각하듯이 캔버스에 새겨 넣었다. 그렇게 하여 260자 반야심경(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과 210자 법성게가 긴 세월을 뛰어넘어 박 작가에 의해 그림으로 재현된 것이다.
이번 개인전의 두 가지 컨셉 중 다른 하나인 ‘그림일기’는 작가가 자신의 일기를 글 대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일상의 묘사보다는 내면의 표현이 주를 이루는데, 예컨대 어느 날 문득 함부로 살아버리고 싶은 일탈의 감정을 표현한 그림 등이 있다.
<그림일기1>은 황진이 관련 단편소설을 쓰면서 떠오른, 영원한 자유를 꿈꾸면서 진실한 사랑도 간절하게 원했던 황진이의 이미지를 묘사했다. <그림일기2>는 참된 행복의 길을 찾지 못해 늘 좁은 골목 안에 갇혀 있는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문문문>은 문안에서는 문밖을 동경하고, 문밖에서는 문안을 그리워하는 사색의 글을 그렸다. <아직 집에 가고 싶지 않다2>는 작가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 본문 중 일부를 그림작업한 것이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나이 사십이 되어 있었고 사십이 된 후로는 더 이상 따져 묻지 않고 적당히 편안한 삶에 안주하게 되었는데 지인이 던진 한마디에 충격을 받는 내용이다. 그 한마디 말인즉, ‘더듬지만 말고 세게 움켜쥐어라. 세상은 당신이 흘리는 피를 받아먹을 준비가 되어있으니.’
전시 제목 <색즉시색50:49>에 대해 박 작가는 “50대50의 세계는 완전하여 조용하고 비현실적이지만 50대49의 세계는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하다. 균형을 깨뜨리는 1이 어쩌면 욕망이거나 그리움, 또는 모호한 그 무엇일 수 있겠는데, 50대49라는 색(色)의 세계에 특히 더 매료된다. 세상의 모든 현실과 현상은 50대49의 세계에서 벌어진 이벤트”라고 말한다. “
50대49라는 제목을 앞세운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다 그려보고 싶은 어처구니 없는 욕심, 그리고 세상을 다 그릴 수도 있다는 황당한 착각 때문”이며, 작가가 이해한 ‘50대50의 세계와 50대49의 세계는 그런 욕망과 착각까지도 수용하는 세계이고, 그래서 이렇게 황당하고 어처구니 없는 착각과 욕망으로 빚어낸 이번 그림들이 꿈틀거리며 발화되기를 기다리는 또 다른 욕망을 일깨우는 작은 불씨가 될 수도 있기를’ 박 작가는 조심스레 기대하고 있다.
누아갤러리 박현숙 예술이사는 “한 가지 길도 가기 어려운 소설가와 화가의 숙명을 동시에 살고 있는 박숙희 작가가 표현하는 미술의 세계를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다”며“박작가의 사유와 고민 속에서 탄생한 작품은 지적인 내면의 울림을 느끼게 해준다”고 평가했다.(누아갤러리 070-4164-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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