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영의 '생명탈핵실크로드' 출발전야1
이원영의 '생명탈핵실크로드' 출발전야1
  • 이원영 교수
  • 승인 2022.09.0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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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직이라는 위기상황을 탈핵걷기운동의 기회로 삼기까지

때는 2013년 여름, 후쿠시마가 터진지 2년이 지나고 있는 시점, 어느 한 교수가 탈핵걷기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부산 고리 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핵발전소 없는 세상’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홀로 걷고 있다는 것이다. 가슴이 뛰었다. 저렇게 탈핵운동을 할 수도 있는 것이구나!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며칠 후 울진에서 그와 합류하였다. 바로 강원대 성원기교수다. 그가 탈핵 탈원전 깃발을 휘날리며 걸어가고 있자니, 지나가는 차량이나 주민들이 관심을 기울이며 지켜본다. 환호하는 이들도 있다. 바로 이거구나! 공감대가 이루어지는 현장!

그 체험을 한 이후 필자도 모방해서 걷기 시작했다. 기실 후쿠시마 사고가 난 이듬해인 2012년 전국 1051명 교수의 탈핵선언이 있은 후, 세미나 외에는 이렇다 할 행동방안이 없었던 당시로는, 성원기교수의 걸으면서 탈핵의 뜻과 의지를 홍보하는 것은 신선한 방식이었다.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2013년 여름 부산고리핵발전소를 출발하여 동해안을 따라 걷고 있던 성원기 강원대 교수(전자공학) . 그는 탈핵걷기를 통해 탈핵운동의 대중화를 전개한 모범을 보였다. @가톨릭뉴스지금여기



마침 필자는 수원대에서 파면해직된 시기가 2014년 초부터 찾아왔다. 사학비리로 인한 학내분쟁이 있었고, 교수협의회 공동대표로서 그 투쟁에 앞장섰던 필자에게 시련의 시기가 온 것이었다. 하지만 바꿔 생각하면 탈핵운동에 전념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불자였던 필자는 이 시기부터 절집에서 절집으로 걸어 다니면서 스님들을 만나 얘기도 나누고 자료도 공유하는 그런 시절을 보냈다. 그냥 가면 만나기 어려운 주지스님도 멀리서 걸어서 왔다고 하면 만나기가 어렵지 않다. 마주앉아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몇 분의 시간에, 위험천만한 원전이 없애가면서 전기수급방식을 전환할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는 걸 확신시켜줄 수 있다. 이런 확신은 법회의 대중에게도 전달이 될 터.

그런 생활을 2~3년간 하면서 헤아려보니 대략 1500km쯤 걸은 것이다. 그즈음 걷는 일에는 자신이 생겼다. 하루 20km정도는 걷기 운동이라 할만 했고 25km~30Km도 미리 대비만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필자의 절집 탈핵순례는 영남과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진은 남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절집들로 유명한 곳들을 순례하던 당시의 코스다.@이원영



2016년에 대법원에서 ‘파면무효 승소’로 복직이 확정되는 순간, 재단(학교법인)에서는 필자에게 다시 재임용거부 조치를 했다. 다시 소송이 시작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기겠지만 대법원까지 가서 복직될 때까지 2년은 족히 걸릴 일이다.

그런 상황이 예견되던 시기에 우연히 세계지도를 보았다. ‘다람살라’가 보이고 ‘바티칸’이 보였다. 불쑥 머리를 스치는 생각, 바티칸까지 걸어간다면 어떨까. 절집에서 절집으로 다니면서 익숙해진 발걸음이 세계로 향할 마음을 갖게 된 것이다.

원전문제는 본질적으로 국제문제다. 체르노빌이 터지고 800km 떨어진 독일남부는 방사능 낙진으로 우유를 먹지 못했다. 한국에서 터지면 일본도 애를 먹는다. 중국에 원전이 터지면 한반도도 고스란히 뒤집어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있는가. 중국의 원전문제를 강 건너 불 건너보듯 해야 하는 것인가.

평소 유엔이 갖는 역할에 의문을 갖고 있고, 이를 보완하여 국제적인 과제를 해결하려면 지구촌 차원의 또 다른 연대의 힘이 필요하고, 그러한 연대는 종교계의 지도자가 구심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 기회에 그분들이 계신 곳까지 걸어간다면 그러한 연대에 대한 필요성이 저절로 공유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도 생긴다.



장건의 실크로드(기원전2세기)와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루트(700년경)와 비교해본 생명·탈핵 실크로드(2017)의 루트 @이원영



지도를 놓고 따져봤다. 사람 사는 동네위주로 걸어간다면 그리고 안전한 지역만 걸어간다면 대략 얼마쯤 되는 거리일까. 달라이라마가 계신 다람살라까지 약 5천km, 교황이 계신 로마 바티칸까지 약 6천km를 합하면 1만1천km 되었다. 지금까지 걸었던 국내의 1500km의 약 8배쯤 되는 거리다. 하루 20km를 걷는다면 550일이면 된다. 쉬는 날까지 포함해서 모두 650일~700일, 즉 2년 정도면 로마까지 갈 만하다.

그런 생각을 평소 알고 지내던 스님 신부님 그리고 지인들에 피력하니, 한편으로는 놀라면서 한편으로는 격려하였다. 불가능하다는 이들도 있었다.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경고하는 이도 있었다. 집안 식구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해직이 장기화되고 있어서 그런 일을 시도하는 것에 대한 이해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저런 검토를 하고 있던 어느 날 경향신문의 K모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로마까지 걸어간다는 소문에 대해 취재를 하고 싶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재인 줄 알았는데, 다음날 경향신문을 보니 사회면 톱으로 기사가 나왔다. 놀랐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일을 계획만 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이처럼 크게 보도하다니.

관련기사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1611172111005#c2b



2016년 11월 경향신문에 게재된 기사속의 필자의 홍보사진@이원영



이젠 안갈 수 없다. 사회에 대고 커다란 약속을 해버린 셈이다. 걱정부터 앞섰다. 정말 내가 거기까지 무사히 걸어갈 수 있을까. 관절이 무사할 것인가. 여간한 결심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다음날부터 술을 끊었다. 관절에 해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는 먹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 막걸리를 그리도 좋아했던 필자가 술을 끊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차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 모를 독지가로부터 곧바로 100만원 후원이 들어왔다. 후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걸어가노라면 하루 숙박비와 식비를 10만원~20만원에 계상하더라도 대륙 간 항공료를 포함하면, 도착할 때까지 1억원은 넘게 소요될 프로젝트다. 해직자인 필자가 자비를 마련할 길은 없다. 1인당 100만원씩을 후원하는 100인 위원회를 조직하기로 마음먹었다.

필자가 4대강 반대 운동을 하면서 2010년경 ‘4대강333프로젝트’를 수행했을 때 모금한 돈이 대략 1억원이 넘었으니(https://cafe.daum.net/go4rivers), 모금과 후원에 대한 감각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버스대절비라는 확실한 용처와 기대되는 효과가 있었던 것에 비해 이 프로젝트는 기약 없는 진행이 예견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과연 선뜻 후원하실 분들이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 구석도 있었다.

100인위원회의 취지를 친지에게 알렸다. 평소 4대강반대투쟁에서부터 함께 해주셨던 종교인, 교수를 위시한 지인들에게 하나둘 알려 나갔다. 그러자 상당히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셨다. 자신감도 함께 불어났다. 두드리면 문은 열린다. 100인위원을 소개하면, ->> https://liferoad.org/committee

그런 가운데, 현지의 루트를 살펴보고, 과연 안전한가 하는 체크작업을 꾸준히 해갔다. 분쟁지대와 사막지대를 제외한 지역 위주로 걷는다 할지라도 치안에 의문이 드는 곳이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혼자 걸어갈 때의 치안상의 안전의 수준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런 의심이 드는 구간이 보였다. 본 순례를 위한 사전 답사여행이 필요해졌다.



걸으면서 경유해야할 나라는 모두 26개국이었다. 중국은 제외하였다. @이원영



그 구간중 사전답사의 필요성을 느낀 곳은 베트남과 라오스의 접경지대였다. 둘 다 사회주의국가이므로 기본적인 치안은 유지되고 있겠지만 과연 그런 접경의 산악지대를 혼자 걸어갈 때의 안전은 어떨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녀온 것이 2017년 2월이다. 실제로 답사해보니 치안유지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안심이었다.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사전답사여행의 베트남에서 라오스국경을 함께 넘어간 승합차에서 만난 젊은 학생. 씨암탉을 소중히 안고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2017년2월)@이원영

/ 이원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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