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말하다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를 말하다
  • 허정 스님
  • 승인 2022.10.03 14:32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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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 스님] 훈민정음과 범어

훈민정음의 창제원리

조선왕조실록(1443년 12월 30일)에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가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고 일렀다.”라는 명백한 기록이 남아있어서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훈민정음은 세종의 독자적인 창작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언어학자는 세종이 아무리 천재라도 홀로 훈민정음을 창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세종을 모셨던 신하 성삼문은 <직해동자습>(直解童子習)에서 “우리 세종과 문종께서 이점을 염려하시여 훈민정음을 창제하시니(我世宗,文宗慨念於此)”라고 밝히고 있듯이 세종 혼자서 훈민정음을 창작했다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훈민정음해례본>, <동국정운> 서문, <홍무정훈역훈> 서문 등을 통해서 훈민정음의 창제 원리가 범어와 중국 운서를 많이 참조하였다는 것이 드러나 있다. 범어가 들어오기 전까지 중국에는 운서가 없었다. <개원석교록>(開元釋敎錄730)에 서진(西晋) 시대(265~316)에 인도에서 들어온 범어를 소개한 ‘실담모(悉曇慕)’가 2권으로 번역되어 있음을 볼 수 있고, 당나라 지광은 ‘실담자기(794)’에서 범어의 자음을 소개하며 칠음(牙音·歯音·舌音·喉音·唇音)의 순서로 소개하고 있다.

그 뒤 ‘광운’(1008)에서는 자음 36자를 칠음의 순서를 바꾸어 우리에게 익숙한 ‘아설순치후반설반치’로 소개하고 있다. 정초(鄭樵)가 편찬한 통지(通志,1161년)의 <칠음략>(七音略)에는 “칠음의 운(韻)은 서역으로부터 생겨서 하(夏)나라 때 모든 나라로 유입되었다(七音之韻起自西域流入諸夏)”라고 말하고 있고, <홍무정운역훈>(洪武正韻譯訓,1455) 서(序)에서 신숙주도 “칠음은 서역(西域)에서 기원하였는데, 송대 선비가 운보(韻譜)를 만들자 씨줄과 날줄이 비로소 하나가 되었다.(七音起於西域 至于宋儒作譜 而經緯始合爲一)”라고 적고 있다. <홍무정운>(洪武正韻1375)에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칠음은 같은데 자음은 31개로 줄었다. 홍무정운(洪武正韻)을 본받아 ‘아설순치후반설반치’의 칠음 순서로 초성 23자를 만들고 그 자음들을 기존 운서에서 유행하던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로 배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본>(1446)이다. 아래 사진에서는 훈민정음과 홍무정음이 칠음과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청탁에서 각각 어떻게 대응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사진1)

사진 1.



위 그림에 대한 설명은 중국 최고(最古)의 운서(韻書)인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절운에서 오음(아설순치후)을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네 계절(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로 배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과 완전히 같음을 알 수 있다. 절운과 훈민정음해례의 설명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절운)故始牙音春之象也, 其音角, 其行木 처음의 아음(牙音)은 봄(春)이며 각(角)음이고 목(木)행이다.

(훈민정음해례)牙錯而長 木也.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 於時爲春 於音爲角.어금니는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의 나무(木)에 해당한다. 어금니 소리는 목구멍 소리와 비슷해도 실하기 때문에 나무가 물에서 생겨나지만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봄(春)에 속하고, 5음으로는 각(角)음에 속한다.

(절운)次曰舌音夏之象也, 其音徵, 其行火. 다음의 설음은 여름(夏 )이며 치(徵)음이고 화(火)행이다.

(훈민정음해례)舌銳而動 火也 聲轉而颺 如火之轉展而揚揚也. 於時爲夏 於音爲徵 혀는 날카롭고 움직여서 오행의 불(火)에 해당한다. 혓소리가 구르고 날리는 것은 불이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여름(夏 )에 속하고, 5음으로는 치(徵)음에 속한다.

(절운)次曰唇音季夏之象也, 其音宮, 其行土. 다음의 순음은 늦여름(季夏)이며 궁(宮)음이고 토(土)행이다.

(훈민정음해례)脣方爲合 土也.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입술은 모나지만 합해지므로 오행의 흙(土)에 해당한다. 입술소리가 머금고 넓은 것은 흙이 만물을 감싸고 넓은 것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季夏)에 속하고, 5음으로는 궁(宮)음에 속한다.

(절운)次曰齒音秋之象也, 其音商, 其行金. 다음의 치음은 가을(秋)이며 상(商)음이고 금(金)행이다.

(훈민정음해례)齒剛而斷 金也. 聲屑而滯. 如金之屑而鍛成也. 於時爲秋 於音爲商. 이는 단단하고 (무엇을) 끊으니 오행의 쇠(金)에 해당한다. 이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는 것은 쇳가루가 단련되어 쇠를 이루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가을(秋)에 속하고, 5음으로는 상(商)음에 속한다.

(절운).次曰喉音冬之象也, 其音羽, 其行水. 다음의 후음은 겨울(冬)이며 우(羽)음이고 수(水)행이다.

(훈민정음해례)喉邃而潤 水也. 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於時爲冬 於音爲羽. 목구멍은 깊은 곳에 있고, 젖어 있으니 물(水)이다. 소리는 허하고 통하여, 물이 맑아 훤히 들여다보이고, 두루 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冬)에 속하고, 5음으로는 우(羽)음에 속한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의 해례본에서 오음을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으로 설명하는 것이 운서와 똑같다. 그러므로 세종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에게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 세종이 말한 운서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나 홍무정운(洪武正韻) 등 중국의 운서였고 사성칠음(四聲七音)은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에서 설명하는 사성칠음(四聲七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성현은 <용재총화>(慵齋叢話1525)에서 언문은 “초성·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체는 범자(梵字)를 본받아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1614)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전적으로 범자를 모방했다(我國諺書字樣篆倣梵字)”고 전하고 있으며, 이익도 <성호사설>(星湖僿說1760)에서 “원나라 파스파(巴思八)가 몽고 글자를 만들었는데,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의 운(韻)을 7음에 넣어 빠뜨림이 없었고…이것이 언문의 기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황윤석(1729-1791)의 <운학본원>(韻學本源)에도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대저 여기에 근본 하였으되, 결국 범자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희(柳僖)의 <언문지>(1824)에서도 “언문은 비록 몽고에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완성되었다.”라고 전한다. 불교학자 이능화 역시 <조선불교통사>(1916)에서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범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諺文字法源出梵天)”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미국 출신의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한글의 기원은 산스크리트어에 근거한 문자라고 생각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일본의 나자와 쇼사부로(金澤廣三郞) 박사도 “한글은 범자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몽고 글자인 파스파는 범어를 모방한 것이므로 파스파를 언문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범어를 기원으로 본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마바사...’라는 순서로 배우다 보니 한글이 다른 나라 문자 체계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으며 훈민정음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설명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훈민정음은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 pa그룹(pa pha ba bha ma), ca그룹(ca cha ja jha ña)과 일치되게 발음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범어와 빨리어를 배운 사람이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사람들이 한글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그 순서대로 한글을 가르치면 한글의 자음체계가 자기네 말과 같다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범어의 칠음과 청탁에 맞추어 자음들을 음사한 것이기에 운서에서 사용한 한자와 해례본에서 사용한 한자는 발음이 모두 같아야 한다. 그런데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을 중국의 <홍무정운>과 <절운>에서는 아음(牙音) 견(見) 계(溪) 군(群)의(疑)의 한자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君(군) 快(쾌) 虯(뀌) 業(업)으로 옮겼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아음(牙音)을 견(見)계(溪) 군(群) 의(疑) 순서로 발음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한자의 발음이 ㄱ ㅋ ㄲ ㆁ로 발음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거나, 훈민정음이 중국의 운서를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을 운서는 단(端) 투(透) 정(定) 니(泥)순서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斗(두) 呑(탄) (땀) 那(나)의 초성 ㄷ ㅌ ㄸ ㄴ을 보여주고있다. ca그룹(ca cha ja jha ña)을 운서는 지(知) 철(徹) 징(澄) 양(孃)으로 옮겼는데, pa그룹(pa pha ba bha ma)을 운서는 방(幫) 방(滂) 병(竝) 명(明)으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彆(별) 漂(표) 步(뽀) 彌(미)의 초성 ㅂ ㅍ ㅃ 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숙주는 <동국정운> 서문에서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 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 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 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라고 운서의 사성과 칠음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적을 때 사성(평성,상성,입성,거성)을 각각 점 하나,점 두 개, 점 없음 등으로 표기하는 것과 글자 간의 사이를 두지 않고 한문처럼 붙여 쓰는 방식도 한문의 표기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청탁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범어는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비음으로 구별되는데 <홍무정운>과 <훈민정음>은 이것을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비음)으로 나눈다. <훈민정음>에서 “ㄱㄷㅂㅈㅅㆆ는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는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는 전탁이 되고, ㆁㄴㅁoㄹㅿ는 불청불탁”이 된다. 운서의 견모(ka) 계모(kha) 군모(ga) 의모(ṅa)의 발음은 <훈민정음>의 ㄱ(군모) ㅋ(쾌모) 뀌모(ㄲ) 업모( ㆁ)의 발음과 같고, 운서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에서 나는 발음이 <훈민정음>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의 조음 위치에서 나는 발음과 같다. (사진2)



사진 2.



범어의 자음은 연구개음, 경구개음, 권설음, 치음, 순음의 순서로 조음 위치에 따라 그룹별로 묶었는데 그것을 중국의 운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牙音·舌音·脣音·齒音·喉音·半舌·半齒)로 옮겼다. 훈민정음은 아음 ‘ㄱㄲㅋㆁ’, 설음 ‘ㄷㄸㅌㄴ’, 순음 ‘ㅂㅃㅍㅁ’, 치음 ‘ㅈㅉㅊㅅㅆ’, 후음 ‘ㆆㅎㆅㅇ’, 반설음(ㄹ), 반치음(ㅿ)으로 정확하게 칠음을 모방했다. 힌디어, 미얀마, 캄보디아,태국어는 ka 그룹에 5개의 자음(ka kha ga gha ṅa)이 있는데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4개의 자음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유기음’(gha jhaḍha dha bha) 4개가 사라진 결과이다. 훈민정음이 왜 하필 ㄱ으로부터 시작하는가를 묻는다면 범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운서가 견모(見)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일본어, 미얀마어, 태국어, 캄보디아어, 스리랑카어, 티벳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진3)이 유성유기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같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중에서도 더욱 닮아 보인다.



사진 3.



훈민정음의 자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자. 훈민정음에서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 떴다.”고 설명하는데 이것이 기본자(ㄱ ㄴ ㅁ ㅅㅇ)이다. 이 기본자를 5음에 따라 소리 나는 위치와 혀의 모양이나 구강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아음 ㄱ을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 떳다는 설명은 이해가 쉽지 않다. 운서의 견(見)·계(溪)·군(群)·의(疑)는 범어 ka kha ga ṅa를 나타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표시였다. 세종은 운서에 맞추어 아음(牙音)이 견(見)·계(溪)·군(群)·의(疑)로 발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종은 견(見)·계(溪)·군(群)·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각 자음에 맞는 기호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음(牙音)은 ㄱㄲㅋㆁ으로 발음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세종은 그 소리에 해당하는 부호 ㄱㄲㅋㆁ을 만든 것이다. <동국정운> 서문에서는 “글자의 초성을 만든 것은 소리에 맞출 뿐이다.(且字母之作 諧於聲耳)”라고 그 제자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견모(見)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ㄱ, 계모(溪)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ㅋ, 군모(群)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ㄲ, 의모(疑)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ㆁ을 만들었다면 이 부호들은 어디서 왔을까?

정초(鄭樵)가 한자의 자획을 해설한 <육서략>(六書略)의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는 ㄱ ㄴ ㅁ ㅂ ㅅ 등 정음의 자음과 똑같은 부호들이 있다.(사진3)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가 고전을 본떴다(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되어 있다. 견(見) 계(溪) 군(群) 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쓴 기호는 세종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고전을 본 떴는데(其字倣古篆), 그 고전이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 나오는 ㄱ ㄴ ㅁ ㅂ ㅅ 이었을 것이다. 기본자 다섯 개 중에서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순음 ㅁ, 치음 ㅅ, 후음 ㅇ을 빼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견모(見)와 계모(溪)뿐이다. 여기에서 세종은 견모(見)에 ㄱ, 계모(溪)ㅋ을 대응시키고 가획의 원리를 더해서 훈민정음 28자를 만든 것이다. 만약 세종이 이 다섯 개의 기본자와 나머지 가획자를 손수 창작했다면 “그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其字倣古篆)”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4. 한글 기본자와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



범어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이 일대일로 결합하여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영향을 받은 빨리어 범어 미얀마어 태국어 티벳어 등과 같다. ka그룹에서 범어는 5개(ka kha ga gha ṅa)의 자음인데 훈민정음의 자음은 4개(ㄱ ㄲ ㅋ ㆁ)이다. 이렇게 자음 하나가 축소되는 현상은 미얀마어, 스리랑카, 태국어등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유성유기음(gha)을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는 지역과 사용자들의 편리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동국정운> 서문에 “설두(舌頭)·설상(舌上)과 순중(唇重)·순경(唇經)과 치두(齒頭)·정치(正齒)와 같은 종류는 우리나라 글자 음으로 분별할 수 없고 또한 분명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구태여 36자에 구애될 필요가 있겠는가(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何必泥於三十六字乎)”라고 말하고 있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설두(舌頭)·설상(舌上)을 설음으로 합치고, 순중(唇重)·순경(唇經)을 순음으로, 치두(齒頭)·정치(正齒)를 하나의 치음을 만든 것이다. 범어에는 치음을 설두(舌頭)·설상(舌上) 그리고 순음을 순중(唇重)·순경(唇經)으로 나누지 않았었는데 중국인들이 나누어 놓았고 훈민정음은 다시 이것을 원래대로 하나로 만들었다.

범어를 표기하는 가장 오래된 브라흐미 글자와 <훈민정음 혜례본>에 나타나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방식도 같다. 훈민정음에서 “ㆍ, ㅡ, ㅗ, ㅜ, ㅛ, ㅠ는 초성 아래에 붙여 쓰고, ㅣ, ㅏ, ㅓ,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라고 되어 있는데, 브라흐미 문자도 그 법칙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Ka에서 장음 Kā가 되려면 오른쪽에 점을 찍고 ka에서 ku로 바뀌면 획을 아래쪽에 점을 찍으면 된다. 브라흐미 자음()에 모음 ㅜ를 더하여 ‘구쿠구누, 쭈추주누, 뚜투두누’를 만들고 싶으면 훈민정음처럼 자음 아래에 점을 찍으면 된다. => , , , .

모음 ㅣ를 붙이면 ‘끼키기니, 찌치지니, 띠티디니’가 된다.=> ,,,,.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데와나가리와 티벳어들을 적을 때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브라흐미 문자의 자음에 ㅓ,ㅔ를 결합할 때는 자음 왼쪽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훈민정음은 자음에 ㅓ를 결합할 때도 자음 오른쪽에 점을 찍는 것이 다르다.



사진 5.
사진 1.

위 그림에 대한 설명은 중국 최고(最古)의 운서(韻書)인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에도 잘 나타나 있다. 절운에서 오음(아설순치후)을 오행(목화토금수)과 오음(각치궁상우)과 네 계절(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로 배대하여 설명하는 것이 훈민정음 해례의 설명과 완전히 같음을 알 수 있다. 절운과 훈민정음해례의 설명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다.

(절운)故始牙音春之象也, 其音角, 其行木 처음의 아음(牙音)은 봄(春)이며 각(角)음이고 목(木)행이다.

(훈민정음해례)牙錯而長 木也. 聲似喉而實 如木之生於水而有形也. 於時爲春 於音爲角.어금니는 어긋나고 길어서, 오행의 나무(木)에 해당한다. 어금니 소리는 목구멍 소리와 비슷해도 실하기 때문에 나무가 물에서 생겨나지만 형체가 있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봄(春)에 속하고, 5음으로는 각(角)음에 속한다.

(절운)次曰舌音夏之象也, 其音徵, 其行火. 다음의 설음은 여름(夏 )이며 치(徵)음이고 화(火)행이다.

(훈민정음해례)舌銳而動 火也 聲轉而颺 如火之轉展而揚揚也. 於時爲夏 於音爲徵 혀는 날카롭고 움직여서 오행의 불(火)에 해당한다. 혓소리가 구르고 날리는 것은 불이 이글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여름(夏 )에 속하고, 5음으로는 치(徵)음에 속한다.

(절운)次曰唇音季夏之象也, 其音宮, 其行土. 다음의 순음은 늦여름(季夏)이며 궁(宮)음이고 토(土)행이다.

(훈민정음해례)脣方爲合 土也. 聲含而廣 如土之含蓄萬物而廣大也. 於時爲季夏 於音爲宮. 입술은 모나지만 합해지므로 오행의 흙(土)에 해당한다. 입술소리가 머금고 넓은 것은 흙이 만물을 감싸고 넓은 것과 같다. 계절로는 늦여름(季夏)에 속하고, 5음으로는 궁(宮)음에 속한다.

(절운)次曰齒音秋之象也, 其音商, 其行金. 다음의 치음은 가을(秋)이며 상(商)음이고 금(金)행이다.

(훈민정음해례)齒剛而斷 金也. 聲屑而滯. 如金之屑而鍛成也. 於時爲秋 於音爲商. 이는 단단하고 (무엇을) 끊으니 오행의 쇠(金)에 해당한다. 이 소리가 부스러지고 걸리는 것은 쇳가루가 단련되어 쇠를 이루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가을(秋)에 속하고, 5음으로는 상(商)음에 속한다.

(절운).次曰喉音冬之象也, 其音羽, 其行水. 다음의 후음은 겨울(冬)이며 우(羽)음이고 수(水)행이다.

(훈민정음해례)喉邃而潤 水也. 聲虛而通 如水之虛明而流通也.於時爲冬 於音爲羽. 목구멍은 깊은 곳에 있고, 젖어 있으니 물(水)이다. 소리는 허하고 통하여, 물이 맑아 훤히 들여다보이고, 두루 통하는 것과 같다. 계절로는 겨울(冬)에 속하고, 5음으로는 우(羽)음에 속한다.

이와 같이 훈민정음의 해례본에서 오음을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으로 설명하는 것이 운서와 똑같다. 그러므로 세종은 집현전 부제학 최만리 등에게 “네가 운서(韻書)를 아느냐. 사성 칠음(四聲七音)에 자모(字母)가 몇이나 있느냐?”라고 물었던 것이다. 그때 세종이 말한 운서는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나 홍무정운(洪武正韻) 등 중국의 운서였고 사성칠음(四聲七音)은 홍무정운(洪武正韻) 등에서 설명하는 사성칠음(四聲七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성현은 <용재총화>(慵齋叢話1525)에서 언문은 “초성·종성 8자, 초성 8자, 중성 12자의 글자체는 범자(梵字)를 본받아 만들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1614)에서 “우리나라 언서(諺書)는 전적으로 범자를 모방했다(我國諺書字樣篆倣梵字)”고 전하고 있으며, 이익도 <성호사설>(星湖僿說1760)에서 “원나라 파스파(巴思八)가 몽고 글자를 만들었는데,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의 운(韻)을 7음에 넣어 빠뜨림이 없었고…이것이 언문의 기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황윤석(1729-1791)의 <운학본원>(韻學本源)에도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대저 여기에 근본 하였으되, 결국 범자 범위 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희(柳僖)의 <언문지>(1824)에서도 “언문은 비록 몽고에서 시작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완성되었다.”라고 전한다. 불교학자 이능화 역시 <조선불교통사>(1916)에서 “우리 훈민정음의 연원은 범자의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諺文字法源出梵天)”고 적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미국 출신의 선교사 호레이스 언더우드는 “한글의 기원은 산스크리트어에 근거한 문자라고 생각된다”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고, 일본의 나자와 쇼사부로(金澤廣三郞) 박사도 “한글은 범자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 말하고 있다.

몽고 글자인 파스파는 범어를 모방한 것이므로 파스파를 언문의 기원으로 보는 것은 범어를 기원으로 본다는 말과 같다. 우리는 한글을 배울 때 ‘가나다라마바사...’라는 순서로 배우다 보니 한글이 다른 나라 문자 체계와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읽으며 훈민정음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설명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훈민정음은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 pa그룹(pa pha ba bha ma), ca그룹(ca cha ja jha ña)과 일치되게 발음되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범어와 빨리어를 배운 사람이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사람들이 한글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라는 순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 그리고 그 순서대로 한글을 가르치면 한글의 자음체계가 자기네 말과 같다는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범어의 칠음과 청탁에 맞추어 자음들을 음사한 것이기에 운서에서 사용한 한자와 해례본에서 사용한 한자는 발음이 모두 같아야 한다. 그런데 범어의 ka그룹(ka kha ga gha ṅa)을 중국의 <홍무정운>과 <절운>에서는 아음(牙音) 견(見) 계(溪) 군(群)의(疑)의 한자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君(군) 快(쾌) 虯(뀌) 業(업)으로 옮겼다. 이것은 중국에서는 아음(牙音)을 견(見)계(溪) 군(群) 의(疑) 순서로 발음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한자의 발음이 ㄱ ㅋ ㄲ ㆁ로 발음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거나, 훈민정음이 중국의 운서를 그대로 베꼈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ta그룹(ta tha da dha na ṉa)을 운서는 단(端) 투(透) 정(定) 니(泥)순서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斗(두) 呑(탄) (땀) 那(나)의 초성 ㄷ ㅌ ㄸ ㄴ을 보여주고있다. ca그룹(ca cha ja jha ña)을 운서는 지(知) 철(徹) 징(澄) 양(孃)으로 옮겼는데, pa그룹(pa pha ba bha ma)을 운서는 방(幫) 방(滂) 병(竝) 명(明)으로 옮겼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에서는 彆(별) 漂(표) 步(뽀) 彌(미)의 초성 ㅂ ㅍ ㅃ ㅁ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신숙주는 <동국정운> 서문에서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 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 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 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라고 운서의 사성과 칠음의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훈민정음을 적을 때 사성(평성,상성,입성,거성)을 각각 점 하나,점 두 개, 점 없음 등으로 표기하는 것과 글자 간의 사이를 두지 않고 한문처럼 붙여 쓰는 방식도 한문의 표기 방식을 답습한 것이다.

청탁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범어는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비음으로 구별되는데 <홍무정운>과 <훈민정음>은 이것을 전청, 차청, 전탁, 불청불탁(비음)으로 나눈다. <훈민정음>에서 “ㄱㄷㅂㅈㅅㆆ는 전청이 되고, ㅋㅌㅍㅊㅎ는 차청이 되고, ㄲㄸㅃㅉㅆㆅ는 전탁이 되고, ㆁㄴㅁoㄹㅿ는 불청불탁”이 된다. 운서의 견모(ka) 계모(kha) 군모(ga) 의모(ṅa)의 발음은 <훈민정음>의 ㄱ(군모) ㅋ(쾌모) 뀌모(ㄲ) 업모( ㆁ)의 발음과 같고, 운서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에서 나는 발음이 <훈민정음>의 아음(牙音) 치음(歯音) 설음(舌音) 후음(喉音) 순음(唇音)의 조음 위치에서 나는 발음과 같다. (사진2)

사진2
사진 2.

범어의 자음은 연구개음, 경구개음, 권설음, 치음, 순음의 순서로 조음 위치에 따라 그룹별로 묶었는데 그것을 중국의 운서는 아설순치후반설반치(牙音·舌音·脣音·齒音·喉音·半舌·半齒)로 옮겼다. 훈민정음은 아음 ‘ㄱㄲㅋㆁ’, 설음 ‘ㄷㄸㅌㄴ’, 순음 ‘ㅂㅃㅍㅁ’, 치음 ‘ㅈㅉㅊㅅㅆ’, 후음 ‘ㆆㅎㆅㅇ’, 반설음(ㄹ), 반치음(ㅿ)으로 정확하게 칠음을 모방했다. 힌디어, 미얀마, 캄보디아,태국어는 ka 그룹에 5개의 자음(ka kha ga gha ṅa)이 있는데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4개의 자음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발음하기 어려운 ‘유성유기음’(gha jhaḍha dha bha) 4개가 사라진 결과이다. 훈민정음이 왜 하필 ㄱ으로부터 시작하는가를 묻는다면 범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운서가 견모(見)로 시작하기 때문이고, 일본어, 미얀마어, 태국어, 캄보디아어, 스리랑카어, 티벳어가 ka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진3)이 유성유기음이 사라졌기 때문에 파스파어, 티벳어, 훈민정음은 같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중에서도 더욱 닮아 보인다.

사진3
사진 3.

훈민정음의 자음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살펴보자. 훈민정음에서 “아음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뜨고,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 떴다.”고 설명하는데 이것이 기본자(ㄱ ㄴ ㅁ ㅅㅇ)이다. 이 기본자를 5음에 따라 소리 나는 위치와 혀의 모양이나 구강구조를 모방한 것이다. 하지만 아음 ㄱ을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을 본뜨고, 설음 ㄴ은 혀가 윗잇몸에 붙는 모양을 본 떳다는 설명은 이해가 쉽지 않다. 운서의 견(見)·계(溪)·군(群)·의(疑)는 범어 ka kha ga ṅa를 나타내기 위한 중국인들의 표시였다. 세종은 운서에 맞추어 아음(牙音)이 견(見)·계(溪)·군(群)·의(疑)로 발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종은 견(見)·계(溪)·군(群)·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각 자음에 맞는 기호를 만들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음(牙音)은 ㄱㄲㅋㆁ으로 발음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던 세종은 그 소리에 해당하는 부호 ㄱㄲㅋㆁ을 만든 것이다. <동국정운> 서문에서는 “글자의 초성을 만든 것은 소리에 맞출 뿐이다.(且字母之作 諧於聲耳)”라고 그 제자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견모(見)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ㄱ, 계모(溪)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ㅋ, 군모(群)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ㄲ, 의모(疑)에서 초성을 분리하여 ㆁ을 만들었다면 이 부호들은 어디서 왔을까?

정초(鄭樵)가 한자의 자획을 해설한 <육서략>(六書略)의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는 ㄱ ㄴ ㅁ ㅂ ㅅ 등 정음의 자음과 똑같은 부호들이 있다.(사진3) 세종실록 세종 25년 12월에 “이 달에 임금께서 친히 언문 28자를 만드시니, 그 글자가 고전을 본떴다(是月上親製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라고 되어 있다. 견(見) 계(溪) 군(群) 의(疑)에서 각각 초성을 분리하여 쓴 기호는 세종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고전을 본 떴는데(其字倣古篆), 그 고전이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에 나오는 ㄱ ㄴ ㅁ ㅂ ㅅ 이었을 것이다. 기본자 다섯 개 중에서 순음 ㅁ은 입 모양을 본뜨고, 치음 ㅅ은 이빨 모양을 본뜨고, 후음 ㅇ은 목구멍 모양을 본떴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 순음 ㅁ, 치음 ㅅ, 후음 ㅇ을 빼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견모(見)와 계모(溪)뿐이다. 여기에서 세종은 견모(見)에 ㄱ, 계모(溪)ㅋ을 대응시키고 가획의 원리를 더해서 훈민정음 28자를 만든 것이다. 만약 세종이 이 다섯 개의 기본자와 나머지 가획자를 손수 창작했다면 “그 글자는 고전을 본떴다(其字倣古篆)”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진 4. 한글 기본자와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
사진 4. 한글 기본자와 기일성문도(起一成文圖)

범어와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이 일대일로 결합하여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낸다. 이것은 브라흐미 계열의 문자 영향을 받은 빨리어 범어 미얀마어 태국어 티벳어 등과 같다. ka그룹에서 범어는 5개(ka kha ga gha ṅa)의 자음인데 훈민정음의 자음은 4개(ㄱ ㄲ ㅋ ㆁ)이다. 이렇게 자음 하나가 축소되는 현상은 미얀마어, 스리랑카, 태국어등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유성유기음(gha)을 발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언어는 지역과 사용자들의 편리성을 따르기 때문이다. <동국정운> 서문에 “설두(舌頭)·설상(舌上)과 순중(唇重)·순경(唇經)과 치두(齒頭)·정치(正齒)와 같은 종류는 우리나라 글자 음으로 분별할 수 없고 또한 분명 그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구태여 36자에 구애될 필요가 있겠는가(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於我國字音未可分辨 亦當因其自然何必泥於三十六字乎)”라고 말하고 있다.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운 설두(舌頭)·설상(舌上)을 설음으로 합치고, 순중(唇重)·순경(唇經)을 순음으로, 치두(齒頭)·정치(正齒)를 하나의 치음을 만든 것이다. 범어에는 치음을 설두(舌頭)·설상(舌上) 그리고 순음을 순중(唇重)·순경(唇經)으로 나누지 않았었는데 중국인들이 나누어 놓았고 훈민정음은 다시 이것을 원래대로 하나로 만들었다.

범어를 표기하는 가장 오래된 브라흐미 글자와 <훈민정음 혜례본>에 나타나는 자음과 모음을 결합하는 방식도 같다. 훈민정음에서 “ㆍ, ㅡ, ㅗ, ㅜ, ㅛ, ㅠ는 초성 아래에 붙여 쓰고, ㅣ, ㅏ, ㅓ, ㅑ, ㅕ는 오른쪽에 붙여 쓴다.”라고 되어 있는데, 브라흐미 문자도 그 법칙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Ka에서 장음 Kā가 되려면 오른쪽에 점을 찍고 ka에서 ku로 바뀌면 획을 아래쪽에 점을 찍으면 된다. 브라흐미 자음()에 모음 ㅜ를 더하여 ‘구쿠구누, 쭈추주누, 뚜투두누’를 만들고 싶으면 훈민정음처럼 자음 아래에 점을 찍으면 된다. => , , , .

모음 ㅣ를 붙이면 ‘끼키기니, 찌치지니, 띠티디니’가 된다.=> ,,,,.

이러한 방식은 현대의 데와나가리와 티벳어들을 적을 때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브라흐미 문자의 자음에 ㅓ,ㅔ를 결합할 때는 자음 왼쪽에 점을 찍어야 하는데 훈민정음은 자음에 ㅓ를 결합할 때도 자음 오른쪽에 점을 찍는 것이 다르다.

사진 5.
사진 5.

얼마 전 KBS ‘역사스페셜’에서 “소리 문자 훈민정음 어떻게 만들어졌나”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배대온 경상대 교수, 이재돈 이화여대 교수, 강창석 충북대 교수 등은 훈민정음이 범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극구 부인했다. 부인하는 논리는 “범어와 파스파문자의 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적극적인 증거는 확인할 수 없다." "힌디어의 문자인 데와나가리가 훈민정음과 닮지 않았다는 것이다.”는 것이다. 너무 피상적인 이유를 들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세종은 칠음과 사성의 틀을 이용하여 훈민정음을 만들었다. 범어와 운서와 훈민정음은 칠음체계, 조음체계, 발음체계, 청탁체계가 같다. 범어와 운서와 훈민정음의 아음(牙音)이 (ka,見,ㄱ) (kha,溪,ㅋ) (ga,群,ㄲ) (ṅa,疑,ㆁ)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특히 범어의 ka그룹 ta그룹 pa그룹 ca그룹의 마지막 자음이 비음( ṅa ña ṇa ma)으로 끝나고, 운서도 비음(疑 泥 娘 明)으로 끝나고, 훈민정음도 비음( ㆁ ㄷ ㅁ ㄴ)으로 끝난다. 범어는 무성무기음, 무성유기음, 유성무기음, 비음의 구별은 운서와 훈민정음에서는 전청, 차청, 전탁, 비음이다. <절운지장도>(切韻指掌圖)'와 <홍무정운>에서 설명하는 오음(아설순치후),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사시(봄여름늦여름가을겨울)의 설명과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설명하는 것이 완전히 같다.

오행(목화토금수), 오음(각치궁상우) 등은 인도에서는 없었던 것으로 이것은 전적으로 중국 운서의 영향이다. 범어와 빨리어를 배운 사람이나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 사람들은 한글이 ㄱ ㅋ ㄲ ㆁ, ㄷ ㅌ ㄸ ㄴ, ㅂ ㅍ ㅃ ㅁ, ㅅㅈ ㅊ ㅆㅉ, ㆆ ㅎ ㅇ ㆅ 순서라는 것을 알면 자기네 나라 자음체계와 똑같아서 깜짝 놀란다. 세종이 홀로 독창적으로 창제한 것이 아니라 범어와 운서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훈민정음>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바람처럼 흐르는 것이어서 미얀마, 태국, 라오스, 스리랑카, 캄보디아, 티벳어가 범어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훈민정음이 범어의 영향을 받은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향을 받았지만 <훈민정음>은 다섯 개의 기본자(ㄱ ㄴ ㅁ ㅅㅇ)에 가획하여 눈으로도 보아도 같은 그룹이고, 소리로 들어도 같은 그룹임을 알 수 있는 쉽고 사용하기 편리한 글자이다. 범어나 중국의 운서를 모방했지만 자모와 운모로 구별하는 2분법을 넘어서 초성 중성 종성이라는 3분법으로 언어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 놓았다. 훈민정음은 자음과 모음의 형태 자체가 발음기호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의 언어이든, 어떤 동물의 소리든, 바람 소리 물소리와 같은 어떤 자연의 소리든 표기할 수 있는 탁월한 문자이다. 다만 세종대왕이 만드신 28자 중에서 사라진 4자(사진4)와 합용병서의 규칙, 그리고 ㅂ순경음 등의 연서 규칙을 다시 살려야 한다. 이것을 살리면 세종이 의도한 대로 훈민정음의 정교함과 편리성은 더욱 커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만든 의도대로 한글을 잘 활용하는 것이 훈민정음을 존중하는 일이지 단독 창제를 고집하는 것만이 세종을 존중하는 태도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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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이 지나고 나면 2022-10-28 08:20:03
울타리에 하얀 실바람이 불고
길에는 두꺼운 먼지를 쓴 데이지가
갈색으로 변한 꽃잎을 지탱하며 지친듯 서 있다

들판에 마지막 낫질이 이어지면
피로함과 죽음의 의지로
모든것 위에 깊은 고요함이 덮치고
자연도 역시 그토록 재촉하던 삶에서
더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쉬며 순종하려 한다

있는 감정 없는 감정 2022-10-19 13:56:35
늘어 놓는게 수행기 인가?
과거 전생의 업보는 수미산처럼 더럽게 쌓아놓고 무슨근거로 자신을 불교수행자라고 .....얼굴에 철판을 깔고 수치심도 없고 부끄럼도 없고 양심도 없고 , 주변의 불자들에게 해악만을 끼치면서
불경을 매만지고 있는지?
붓다는 한풀이 하라고 하지 않았다
화엄경을 한번 읽어본 사람과 16번 읽어본 사람의 경지의 깊이는 천양지차이다
적어도 적어도 불경을 16번 읽어보았는가?
그냥 묵고 살라고 꿩먹고 알먹고 하는 심정으로 유뷰녀와 불교에 찐다 붙어 성공가도를 달리고자 파워 블로그 되고자
블로그글을 공동집필은 물론 동거하며 얼마나 이 좁은 불교계에서 난동을 피우고 했나?

우리사부대중은 다 알고 있다
그블로그 머리 꼭대기에서 다 내려다 보고 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녹여야 한다 2022-10-18 08:29:44
그렇지 못하면 자꾸 자신의 잘한점만 노출 시키려고 하고 잘못한점은 은폐 시키고 하다가
타인을 공격을 잘한다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비난하고 공격한다
다 받아 들이고 사랑해야 한다
감사드린다 이말 한마디 하는데 엄청나게 힘이 들어서 그런 사람이 불경을 왜? 붙들고 있나?
자신의 잘못한점을 용서하고 받아 들여야 타인을 사랑할수 있다

작품 2022-10-18 08:21:10
지얼굴은 지가 만들어야지
몸의구성은 육단신, 상호신 ,업보신, 허공신, 고명신이 있다
고깃덩어리 이몸자체가 업보라는 것이다
고명신은 홀로 밝다
몸인줄 알고 업보인줄 알고 역역하고 홀로 밝다 형체가 없고 변하는게 아니다 고명이 인연따라
나타난다
늘 누구나 핵심 감정은 있다
자기를 용서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지옥에서 벗어날수 있다

종범스님 말씀하시길 2022-10-18 08:11:05
극락에서 오셔서 중생구제를 위해 오랜동안 설법을 하셨다고 합니다
처음엔 득도를 했어서도 그냥 중생들은 이런 미묘한 법을 갈차줘도 모를거야 했지만
누군가 애원하며 갈차주라고 해서 알았다 해서 설법을 사십여년간 하셨죠
아무리 갈차줘도 자기 업보를 참회하지 못하는 그냥 무명에 가득한 인간이 참으로 많다
지가 지어논건 거지 거지 상거지짓을 해놓구선 부처님법을 원망한다
그래놓고 수행승 이라 자칭하고 놀구자빠졌고 온갖 추잡하고 더러븐 짓을 다 하구선
왜? 나한테는 이모양 이꼬라지냐? 이러니
얼굴이 사마귀가 됐다
그래도 모른다 사람들이 선비상이라고 추켜주니 그거짓말을 믿고 떡하니 사마귀 얼굴까지
커다랗게 올린다
생존본능은 또 무재게 강하다 짐승들의 특징이다
나는살고싶다
누가 죽으라고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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