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9.반야심경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9.반야심경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12.01 14: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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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생겨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생겨난 모든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원래 있던 자리 나만 있을 뿐이다

작은 물결들이 모여서
파도가 되듯
아무런 생각이 없고
순수한 나만 있다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부처일 뿐이다.
 







#작가의 변
살아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힘들어서 출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본 사찰의 출가 생활도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사는 삶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도 숨이 막혀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떠나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가의 생활을 엿보며 든 생각은 군 생활의 일부분을 본 것도 같다.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이 같이 식사하면서 식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통제 가 힘들다. 물론 모두가 해탈을 꿈꾸는 도반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이 모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종교를 접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예배당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도 듣고 크리스마스엔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예배당을 가서 구유 예수를 찬양하고 동방박사가 축하 사절로 와서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보기도 했다. 당시엔 ‘예수도 목수의 아들이고 외양간의 소먹이 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못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같은 인간이어서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성경을 지도하는 조 반사와 반사가 되어 성경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해서 어릴 적 찰흙으로 만들던 사람 인형이나 비누를 조각해서 사람의 모형을 떠올리기도 하고, 900살을 살았다는 등의 무협지 내용 같은 곳에선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천지창조를 믿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의문 부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의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의문 부호는 더욱 커졌고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이 담배를 물고 오면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았다며 교회 다닐 때 늘 듣고 생활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나니 신선했다. 하지만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한 미사는 틀 속에 억압되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성당에서 만나는 만남이 좋았던 것 같다. 군 생활하면서도 법당에 가서 잔디밭에 풀을 뽑는 사역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가 함께 쓰는 교회와 부대밖에 성당에 참 열심히도 나갔다. 일등병 때는 눈치를 보면서 갔지만 상병 때부터는 일주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신부님과 군종병 모두 함께 레지오마리에 활동을 하는 기도회는 군 생활을 더욱 보람되게 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리사가 되려 요리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 단칸방에서 생활하거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사와 식당, 이태원 스탠드바 등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성당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두 번 빠질 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고해 성사를 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꼬드기던 종로3가역에서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에서 부지불식 함께 숙식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대학에 가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만나면서 조계사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고 각종 사찰도 함께 다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교민을 만나기 힘든 상황과 주변 대부분 지인이 교회에 다녀서 많은 유혹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에도 사찰이 있다. 한국 통도사 밴쿠버 분원으로 서광사는 처음엔 써리와 랭리 경계에 있는 넓은 터에 2층 농가 하나 덜렁 있는 곳이었는데, 2층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아래는 신도들이 밥도 먹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메우고 탑을 세웠다. 절에 가면 농장에 가서 일하던지 연등을 만드는 것을 거들던지 늘 일하다 늦게 오고는 했다. 태응 큰스님에게서 현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쌍둥이 아이들을 늘 귀여워해 주시던 태응 스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공양주 보살이 따뜻한 말이라도 늘 건네주는 것에 친정에 온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사찰 중수공사로 대웅전을 새로 웅장하게 짓고 신도도 늘어나고 자주 법회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절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법회 중에도 절을 하면서 무릎이 불편해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가부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신도가 사찰에 온다면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다. 법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다. 불경은 성경하고 달라 아주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불경은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인데 그 내용이 또 오묘해서 읽는다고 듣는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글로 풀어 놓은 불경은 또 본래 경전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교회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하지만 찬송가를 하던 습관이 아직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중요 내용 중에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그 내용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손가락은 안으로만 굽히고, 팔도 안으로만 굽듯이 우리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나, 내 가족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양손에 떡을 쥐고 입에도 떡을 물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 말하지 못한다. 입에 있는 것을 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쉬운 원리지만 현실에선 늘 그것이 어렵다. 성경처럼 많은 경전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으로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이 실천하기 어렵듯이 업으로 가득 찬 삶의 무게가 코끼리 수만 마리보다 무거운 나날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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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생겨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생겨난 모든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원래 있던 자리 나만 있을 뿐이다

작은 물결들이 모여서
파도가 되듯
아무런 생각이 없고
순수한 나만 있다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부처일 뿐이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생겨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생겨난 모든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원래 있던 자리 나만 있을 뿐이다

작은 물결들이 모여서
파도가 되듯
아무런 생각이 없고
순수한 나만 있다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부처일 뿐이다.
 







#작가의 변
살아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힘들어서 출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본 사찰의 출가 생활도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사는 삶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도 숨이 막혀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떠나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가의 생활을 엿보며 든 생각은 군 생활의 일부분을 본 것도 같다.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이 같이 식사하면서 식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통제 가 힘들다. 물론 모두가 해탈을 꿈꾸는 도반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이 모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종교를 접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예배당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도 듣고 크리스마스엔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예배당을 가서 구유 예수를 찬양하고 동방박사가 축하 사절로 와서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보기도 했다. 당시엔 ‘예수도 목수의 아들이고 외양간의 소먹이 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못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같은 인간이어서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성경을 지도하는 조 반사와 반사가 되어 성경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해서 어릴 적 찰흙으로 만들던 사람 인형이나 비누를 조각해서 사람의 모형을 떠올리기도 하고, 900살을 살았다는 등의 무협지 내용 같은 곳에선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천지창조를 믿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의문 부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의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의문 부호는 더욱 커졌고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이 담배를 물고 오면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았다며 교회 다닐 때 늘 듣고 생활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나니 신선했다. 하지만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한 미사는 틀 속에 억압되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성당에서 만나는 만남이 좋았던 것 같다. 군 생활하면서도 법당에 가서 잔디밭에 풀을 뽑는 사역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가 함께 쓰는 교회와 부대밖에 성당에 참 열심히도 나갔다. 일등병 때는 눈치를 보면서 갔지만 상병 때부터는 일주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신부님과 군종병 모두 함께 레지오마리에 활동을 하는 기도회는 군 생활을 더욱 보람되게 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리사가 되려 요리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 단칸방에서 생활하거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사와 식당, 이태원 스탠드바 등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성당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두 번 빠질 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고해 성사를 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꼬드기던 종로3가역에서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에서 부지불식 함께 숙식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대학에 가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만나면서 조계사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고 각종 사찰도 함께 다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교민을 만나기 힘든 상황과 주변 대부분 지인이 교회에 다녀서 많은 유혹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에도 사찰이 있다. 한국 통도사 밴쿠버 분원으로 서광사는 처음엔 써리와 랭리 경계에 있는 넓은 터에 2층 농가 하나 덜렁 있는 곳이었는데, 2층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아래는 신도들이 밥도 먹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메우고 탑을 세웠다. 절에 가면 농장에 가서 일하던지 연등을 만드는 것을 거들던지 늘 일하다 늦게 오고는 했다. 태응 큰스님에게서 현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쌍둥이 아이들을 늘 귀여워해 주시던 태응 스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공양주 보살이 따뜻한 말이라도 늘 건네주는 것에 친정에 온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사찰 중수공사로 대웅전을 새로 웅장하게 짓고 신도도 늘어나고 자주 법회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절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법회 중에도 절을 하면서 무릎이 불편해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가부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신도가 사찰에 온다면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다. 법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다. 불경은 성경하고 달라 아주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불경은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인데 그 내용이 또 오묘해서 읽는다고 듣는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글로 풀어 놓은 불경은 또 본래 경전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교회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하지만 찬송가를 하던 습관이 아직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중요 내용 중에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그 내용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손가락은 안으로만 굽히고, 팔도 안으로만 굽듯이 우리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나, 내 가족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양손에 떡을 쥐고 입에도 떡을 물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 말하지 못한다. 입에 있는 것을 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쉬운 원리지만 현실에선 늘 그것이 어렵다. 성경처럼 많은 경전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으로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이 실천하기 어렵듯이 업으로 가득 찬 삶의 무게가 코끼리 수만 마리보다 무거운 나날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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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살아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힘들어서 출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본 사찰의 출가 생활도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사는 삶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도 숨이 막혀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떠나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가의 생활을 엿보며 든 생각은 군 생활의 일부분을 본 것도 같다.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이 같이 식사하면서 식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통제 가 힘들다. 물론 모두가 해탈을 꿈꾸는 도반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이 모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종교를 접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예배당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도 듣고 크리스마스엔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예배당을 가서 구유 예수를 찬양하고 동방박사가 축하 사절로 와서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보기도 했다. 당시엔 ‘예수도 목수의 아들이고 외양간의 소먹이 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못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같은 인간이어서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성경을 지도하는 조 반사와 반사가 되어 성경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해서 어릴 적 찰흙으로 만들던 사람 인형이나 비누를 조각해서 사람의 모형을 떠올리기도 하고, 900살을 살았다는 등의 무협지 내용 같은 곳에선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천지창조를 믿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의문 부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의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의문 부호는 더욱 커졌고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이 담배를 물고 오면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았다며 교회 다닐 때 늘 듣고 생활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나니 신선했다. 하지만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한 미사는 틀 속에 억압되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성당에서 만나는 만남이 좋았던 것 같다. 군 생활하면서도 법당에 가서 잔디밭에 풀을 뽑는 사역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가 함께 쓰는 교회와 부대밖에 성당에 참 열심히도 나갔다. 일등병 때는 눈치를 보면서 갔지만 상병 때부터는 일주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신부님과 군종병 모두 함께 레지오마리에 활동을 하는 기도회는 군 생활을 더욱 보람되게 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리사가 되려 요리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 단칸방에서 생활하거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사와 식당, 이태원 스탠드바 등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성당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두 번 빠질 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고해 성사를 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꼬드기던 종로3가역에서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에서 부지불식 함께 숙식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대학에 가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생겨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생겨난 모든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원래 있던 자리 나만 있을 뿐이다

작은 물결들이 모여서
파도가 되듯
아무런 생각이 없고
순수한 나만 있다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부처일 뿐이다.
 







#작가의 변
살아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힘들어서 출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본 사찰의 출가 생활도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사는 삶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도 숨이 막혀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떠나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가의 생활을 엿보며 든 생각은 군 생활의 일부분을 본 것도 같다.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이 같이 식사하면서 식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통제 가 힘들다. 물론 모두가 해탈을 꿈꾸는 도반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이 모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종교를 접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예배당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도 듣고 크리스마스엔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예배당을 가서 구유 예수를 찬양하고 동방박사가 축하 사절로 와서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보기도 했다. 당시엔 ‘예수도 목수의 아들이고 외양간의 소먹이 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못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같은 인간이어서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성경을 지도하는 조 반사와 반사가 되어 성경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해서 어릴 적 찰흙으로 만들던 사람 인형이나 비누를 조각해서 사람의 모형을 떠올리기도 하고, 900살을 살았다는 등의 무협지 내용 같은 곳에선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천지창조를 믿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의문 부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의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의문 부호는 더욱 커졌고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이 담배를 물고 오면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았다며 교회 다닐 때 늘 듣고 생활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나니 신선했다. 하지만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한 미사는 틀 속에 억압되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성당에서 만나는 만남이 좋았던 것 같다. 군 생활하면서도 법당에 가서 잔디밭에 풀을 뽑는 사역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가 함께 쓰는 교회와 부대밖에 성당에 참 열심히도 나갔다. 일등병 때는 눈치를 보면서 갔지만 상병 때부터는 일주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신부님과 군종병 모두 함께 레지오마리에 활동을 하는 기도회는 군 생활을 더욱 보람되게 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리사가 되려 요리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 단칸방에서 생활하거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사와 식당, 이태원 스탠드바 등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성당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두 번 빠질 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고해 성사를 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꼬드기던 종로3가역에서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에서 부지불식 함께 숙식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대학에 가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만나면서 조계사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고 각종 사찰도 함께 다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교민을 만나기 힘든 상황과 주변 대부분 지인이 교회에 다녀서 많은 유혹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에도 사찰이 있다. 한국 통도사 밴쿠버 분원으로 서광사는 처음엔 써리와 랭리 경계에 있는 넓은 터에 2층 농가 하나 덜렁 있는 곳이었는데, 2층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아래는 신도들이 밥도 먹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메우고 탑을 세웠다. 절에 가면 농장에 가서 일하던지 연등을 만드는 것을 거들던지 늘 일하다 늦게 오고는 했다. 태응 큰스님에게서 현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쌍둥이 아이들을 늘 귀여워해 주시던 태응 스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공양주 보살이 따뜻한 말이라도 늘 건네주는 것에 친정에 온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사찰 중수공사로 대웅전을 새로 웅장하게 짓고 신도도 늘어나고 자주 법회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절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법회 중에도 절을 하면서 무릎이 불편해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가부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신도가 사찰에 온다면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다. 법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다. 불경은 성경하고 달라 아주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불경은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인데 그 내용이 또 오묘해서 읽는다고 듣는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글로 풀어 놓은 불경은 또 본래 경전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교회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하지만 찬송가를 하던 습관이 아직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중요 내용 중에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그 내용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손가락은 안으로만 굽히고, 팔도 안으로만 굽듯이 우리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나, 내 가족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양손에 떡을 쥐고 입에도 떡을 물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 말하지 못한다. 입에 있는 것을 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쉬운 원리지만 현실에선 늘 그것이 어렵다. 성경처럼 많은 경전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으로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이 실천하기 어렵듯이 업으로 가득 찬 삶의 무게가 코끼리 수만 마리보다 무거운 나날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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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만나면서 조계사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고 각종 사찰도 함께 다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교민을 만나기 힘든 상황과 주변 대부분 지인이 교회에 다녀서 많은 유혹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에도 사찰이 있다. 한국 통도사 밴쿠버 분원으로 서광사는 처음엔 써리와 랭리 경계에 있는 넓은 터에 2층 농가 하나 덜렁 있는 곳이었는데, 2층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아래는 신도들이 밥도 먹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메우고 탑을 세웠다. 절에 가면 농장에 가서 일하던지 연등을 만드는 것을 거들던지 늘 일하다 늦게 오고는 했다. 태응 큰스님에게서 현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쌍둥이 아이들을 늘 귀여워해 주시던 태응 스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공양주 보살이 따뜻한 말이라도 늘 건네주는 것에 친정에 온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사찰 중수공사로 대웅전을 새로 웅장하게 짓고 신도도 늘어나고 자주 법회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절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법회 중에도 절을 하면서 무릎이 불편해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가부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신도가 사찰에 온다면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다. 법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다. 불경은 성경하고 달라 아주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불경은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인데 그 내용이 또 오묘해서 읽는다고 듣는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글로 풀어 놓은 불경은 또 본래 경전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교회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하지만 찬송가를 하던 습관이 아직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중요 내용 중에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그 내용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손가락은 안으로만 굽히고, 팔도 안으로만 굽듯이 우리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나, 내 가족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양손에 떡을 쥐고 입에도 떡을 물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 말하지 못한다. 입에 있는 것을 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쉬운 원리지만 현실에선 늘 그것이 어렵다. 성경처럼 많은 경전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으로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이 실천하기 어렵듯이 업으로 가득 찬 삶의 무게가 코끼리 수만 마리보다 무거운 나날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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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생겨난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생겨난 모든 생각은 모두 사라진다
원래 있던 자리 나만 있을 뿐이다

작은 물결들이 모여서
파도가 되듯
아무런 생각이 없고
순수한 나만 있다면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하나의 부처일 뿐이다.
 







#작가의 변
살아가는 일이 정말 힘들고 힘들어서 출가를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큐멘터리로 본 사찰의 출가 생활도 규율과 규칙에 얽매여 사는 삶처럼 보여서 그곳에 가서도 숨이 막혀 힘들 것 같았다.
무엇보다 떠나고 싶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고 떠나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출가의 생활을 엿보며 든 생각은 군 생활의 일부분을 본 것도 같다. 가족이 아닌 많은 사람이 같이 식사하면서 식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많은 규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면서 공동체를 이루며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엄격한 규율이 없으면 통제 가 힘들다. 물론 모두가 해탈을 꿈꾸는 도반이라고 하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처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각자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렇게 각자의 할 일이 모여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것이 사회를 이루는 근간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종교를 접했다. 초등학교 땐 동네 예배당에 가서 여름성경학교도 듣고 크리스마스엔 뽀드득뽀드득 눈이 쌓인 고개를 넘어 예배당을 가서 구유 예수를 찬양하고 동방박사가 축하 사절로 와서 메시아의 메시지를 전하는 연극을 보기도 했다. 당시엔 ‘예수도 목수의 아들이고 외양간의 소먹이 통인 구유에서 태어날 정도로 못살았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그가 같은 인간이어서 친밀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중에 중학교에 가서 성경을 지도하는 조 반사와 반사가 되어 성경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성경을 보면 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창세기의 내용 중에 흙으로 인간을 빚어 숨을 불어 넣었다고 해서 어릴 적 찰흙으로 만들던 사람 인형이나 비누를 조각해서 사람의 모형을 떠올리기도 하고, 900살을 살았다는 등의 무협지 내용 같은 곳에선 그냥 건너뛰게 되었다. 천지창조를 믿지 않으면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성경의 내용들이 모두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늘 의문 부호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교회는 늘 빠지지 않고 나갔던 것은 의무적인 발걸음이었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처음 하면서 의문 부호는 더욱 커졌고 성당에서 교리 공부를 하면서 신부님이 담배를 물고 오면서 담배를 피지 말라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았다며 교회 다닐 때 늘 듣고 생활하던 고정관념을 깨고 나니 신선했다. 하지만 마치 제사를 지내는 듯한 미사는 틀 속에 억압되는 또 다른 것 같다고 느끼게 됐다. 그래도 성당에서 만나는 만남이 좋았던 것 같다. 군 생활하면서도 법당에 가서 잔디밭에 풀을 뽑는 사역을 하면서도 주말이면 성당과 교회가 함께 쓰는 교회와 부대밖에 성당에 참 열심히도 나갔다. 일등병 때는 눈치를 보면서 갔지만 상병 때부터는 일주일의 해방구 같은 곳이었고 신부님과 군종병 모두 함께 레지오마리에 활동을 하는 기도회는 군 생활을 더욱 보람되게 했는지 모른다.

군 복무를 마치고 조리사가 되려 요리 학원에 다니고 독서실 단칸방에서 생활하거나 가게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면서 수없이 많은 이사와 식당, 이태원 스탠드바 등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성당이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한두 번 빠질 땐 죄책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고해 성사를 보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 하면서 꼬드기던 종로3가역에서 꼬임에 넘어가 대순진리회에서 부지불식 함께 숙식하면서 그 종교에 대해서 알아 가면서 대학에 가서 포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아내를 만나면서 조계사에서 만나는 경우도 많고 각종 사찰도 함께 다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늘 절에 치성을 드리러 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불교와의 인연은 시작되었고 밴쿠버로 이민을 와서 교회를 나가지 않으면 교민을 만나기 힘든 상황과 주변 대부분 지인이 교회에 다녀서 많은 유혹을 받게 되었다. 밴쿠버에도 사찰이 있다. 한국 통도사 밴쿠버 분원으로 서광사는 처음엔 써리와 랭리 경계에 있는 넓은 터에 2층 농가 하나 덜렁 있는 곳이었는데, 2층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아래는 신도들이 밥도 먹고 일을 하는 곳이었다. 앞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는데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메우고 탑을 세웠다. 절에 가면 농장에 가서 일하던지 연등을 만드는 것을 거들던지 늘 일하다 늦게 오고는 했다. 태응 큰스님에게서 현봉이라는 법명도 받았다. 쌍둥이 아이들을 늘 귀여워해 주시던 태응 스님이 떠오른다. 그리고 공양주 보살이 따뜻한 말이라도 늘 건네주는 것에 친정에 온 것 같았던 적이 있었다. 사찰 중수공사로 대웅전을 새로 웅장하게 짓고 신도도 늘어나고 자주 법회에 참여하지 못하면서 절은 점점 멀어졌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멀어진 것은 아니어서 늘 기도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법회 중에도 절을 하면서 무릎이 불편해 절을 많이 하지 못하는 마음이 불편하고 가부좌하지 못하고 엉거주춤 불편한 자세도 불편하다. 그러면서 휠체어 탄 신도가 사찰에 온다면 많이 불편하겠다고 생각한다. 법당의 문턱을 넘을 수 없으니 말이다. 불경은 성경하고 달라 아주 많다. 우리가 자주 접하는 불경은 천수경, 반야심경, 금강경 등인데 그 내용이 또 오묘해서 읽는다고 듣는다고 그 뜻을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글로 풀어 놓은 불경은 또 본래 경전의 뜻을 다 전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교회 찬송가처럼 찬불가를 하지만 찬송가를 하던 습관이 아직도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는 중요 내용 중에 있어도 없고 없어도 있는 그 내용을 깨우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내려놓는 것이 어려운 것은 손가락은 안으로만 굽히고, 팔도 안으로만 굽듯이 우리의 마음도 알게 모르게 나, 내 가족을 중심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양손에 떡을 쥐고 입에도 떡을 물고 있는 나는 더 이상 무엇을 달라 말하지 못한다. 입에 있는 것을 놓고 나서야 말할 수 있다. 쉬운 원리지만 현실에선 늘 그것이 어렵다. 성경처럼 많은 경전이 쉽게 읽힐 수 있는 한 권의 경전으로 나오길 기대하지만 나온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도 안다. 짧은 경전인 반야심경이 실천하기 어렵듯이 업으로 가득 찬 삶의 무게가 코끼리 수만 마리보다 무거운 나날은 그저 살아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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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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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씨 2022-12-02 20:30:51
아주. 싹지웠네 불교닷컴 갑니다
가슴이 압퍼. 무리해. 오늘. 지금 저렴산곳 찾아. 저기해서. 천원. 더 쥤다. 이분들은 불보살니의. 마응

앙튼ㅊ그렇다. 순대좀. 억아라. 산다 그래야 그렇다 한다
그래서. 순대 간 허파 싸게 사다. 억었다 나는 동울되ㅣㅣ지에게. 신세를. 많이졌다

조거종 기타좀에게. 이이 갔다. 느가. 무속인들이. 딸라ㅇ이. 준게 이전에. 장난아니다. 중시끼들 자녀외 부팻ㄴ도ㅈ녀 는에게. 그 자녀에게 갈것이다. 드웅

2007. 년. 2015년. 지금카지. 경고 했다. 자비는 그래 그래가 아니다. 나픈. 행동을 옷하게 하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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