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42. 2013년 북녘에서 열린 연등회
[남북불교교류 비망록 이제, 다시 본다] 42. 2013년 북녘에서 열린 연등회
  •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 승인 2023.01.06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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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가람에 연등 달다”

개경에서 시작된 연등회(燃燈會)는 삼국시대에 전래한 불교를 국가이념으로 정한 태조 왕건이 943년에 명령한 《훈요십조》를 근거로 둔 고려 왕조의 정책적 연례행사였다. 정월보름(도교 명칭의 上元)에 행하던 상원연등회는 1010년 현종 즉위년에 부활돼 날짜를 이월보름으로 변경했다. 민간에서 머슴 쉬는 날인 이월초하루와 붓다의 열반절인 이월보름에 관한 두 의미를 묘하게 합친 이월보름 연등회는 몇 차례 정월대보름과 교체·중복되었지만 지속했다.

고려 연등회는 《고려사》에 보면, 14일 소회(小會)에는 궁궐 편전의식과 왕이 태조 진영을 봉안한 지내산 대봉은사에 행향(가서 향을 피움)하여 배알 의례를 치른다. 15일 대회(大會)에는 왕이 참석한 가운데 궁궐연회를 중심으로, 편전의식·진설 및 좌정의식·연회 3부로 구성해 군신 간에 차와 주식 등을 나눈다. 이틀간의 편전의식에는 백희가무의 종합예술 공연이 펼쳐졌다. 특히 14일 소회날 오후 나절, 왕궁에서 개경 서쪽의 대봉은사까지 20리 구간에 이르는 왕의 어가행렬은 오늘날 도심 거리의 연등행렬과도 비슷하게 상상할 수 있다.

본격적인 초파일 연등회는 1245년 4월 무신 최우(崔怡)가 개경 자신의 집에서 개최한 이래, 왕실과 사대부들이 개인적 차원으로 설행했다. 1366년 신돈의 집에서 사월초파일 대연등회가 열리고 난 다음, 전역에 확산됐다. 아이들의 호기놀이(呼旗戱)까지 성행하던 고려 연등회는 조선 개국과 함께 국가의례로 폐지됐다. 태종와 세종 때는 사찰을 제외한 일체의 연등(등켜기)·관등(등구경)을 금지했다. 하지만 상원연등(정월대보름)과 초파일 연등 행사는 근세기까지 세시풍속으로 이어져 정착, 전승됐다.

1913년 제작된 《태평성시도》에 그려진 ‘등방(燈坊)’이 종로 네거리의 특수 가게로 생겨나는 한편, 조선총독부는 1937년에 양력 초파일을 치르도록 강제하고, 일본식 하나마쯔리(花祭)를 내세워 노골적인 식민화를 시도했다. 1955년부터 음력으로 환원한 초파일은 연등법회를 비롯한 전통 봉축행사로 복원되고, 강연회와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열렸다. 오늘날 연등축제는 1996년부터 기본 틀을 갖추면서 본격화됐다.

서울 종로거리에서 매년 열리는 연등회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가 주최하고, 조계종의 연등회 보존위원회가 주관한다. 연등회는 2012년 4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돼, 2020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러한 연등회의 실제적인 원조, 개경에서의 연등회 개최는 감감무소식이다. 그럼에도 2013년 한 해 동안 묘향산 보현사와 평양 등지에서 열린 석탄절(佛誕節, 부처님오신날)의 몇 가지 사례를 바탕으로 북녘에서 열린 연등회를 재조명해 본다. 또한 당시 남북불교 교류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다.

묘향산 보현사 13층 석탑과 만세루, 봉축 장엄등(2013.5.16.). 사진: Steve Arthur 페이스북





묘향산 보현사 부처님오신날 조국통일기원법회 소개판(2013.5.16.). 사진: Steve Arthur 페이스북





묘향산 만폭동 하비로암 주지 예경의식(2013.9.7.). 사진: 《Uri Tours》 홈페이지



북녘 산하에 핀 봉축등

분단 후, 북녘에서 열린 사월초파일 봉축 법회는 1988년 5월 5일 묘향산 보현사에서 최초로 열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1988.5.6.)이 “묘향산 보현사에서 석탄일 기념법회를 개최했다.”고 처음 보도해서 알려진 사실이다. 또 초파일 봉축 문화행사로 열리는 탑돌이는 1989년 5월 12일 금강산 표훈사 반야보전 앞마당에서 열린 탑돌이가 최초다. 그해 음력 4월 8일 낮, 1341년 계청 대사가 표훈사 마당에 건립한 7층 석탑을 중심으로 승려와 내금강리 주민 50여 명이 목탁과 북을 치며, 사각의 봉축등을 들고 행한 탑돌이를 말한다.

고려 연등회의 원조, 개성이 아닌 금강산과 묘향산으로 간 까닭은 당시 언론 보도와 카메라 담긴 모습에 의해서다. 아마도 그때 책임 일군(담당)들이 산중 고찰과 불교의 상징적 이미지를 먼저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본행사 개최 이유로도 묘향산 보현사는 삼보사찰의 위상과 운영사항을, 금강산 표훈사는 6.25 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내금강산 사찰로 관리인(주지) 등을 비롯한 승려와 지역 주민들의 동원이 용이하고, 불교에 관한 이해도가 깊다는 사실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때까지 개성지역의 사찰 보수와 정비, 그리고 관리인 배치가 미흡했던 것도 그 이유일 수 있다. 지금까지 개성 관음사·대흥사·안화사·영통사 등 현존사찰에서 봉축 행사를 열기 어려운 것은 군사지역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까닭이다.

2007년 12월부터 1년간 시행된 개성관광으로 알려진 개성지역은 도심과 박연폭포·공민왕릉·왕건릉 등 관광지를 개방하고 있다. 2005년 10월 복원한 영통사는 일반 관광코스에 포함되지 않고, 개성시 관광관리국 등 당국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 문화적 수용 지역으로 보면, 평양과 금강산이 가장 빠르다. 그다음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도시들이고, 개성이 가장 늦은 지역으로 꼽힐 정도였다. 개성공단과 관광지를 일반 주민들과 분리하고, 철저한 학습 제강과 관리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경성(일제가 붙인 서울의 이름)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기록사진처럼 화려한 연등회가 열렸던 개성은 사라지고, 금강산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2001년 3월 4일 신계사 터에서 민족화합과 신계사 복원 원만성취를 위한 기원법회(산신제)에 연등을 달지 않고, 탑돌이를 했다. 4월 21일 조계종 총무원과 민추본은 ‘민족화합을 위한 금강산 신계사 터와 온정각 등달기’ 행사를 개최하고, 신계사 터 삼층석탑에서 저녁 탑돌이를 가졌다. 이때 신계사지 석탑 주변에 등줄을 치고, 비닐연등을 달아 전기로 등불을 처음 켰다. 또 조계종 민추본은 2002년 5월 한 달 동안 신계사지와 온정각에 연등달기 행사를 가졌다. 5월 5일에는 민족화합을 위한 불교도 금강산 성지순례를 개최하면서 신계사지 요잡(繞匝, 절터를 우측으로 도는 예식)과 탑돌이를 했다.

남측 천태종단은 2004년 11월 16일 개성 영통사 복원공사 현장에서 ‘대각국사 의천스님 제903주기 열반대재’를 처음 개최하고, 복원 중이던 보광원 앞 3기 석탑 둘레에 비닐연등을 처음 달았다. 다만, 화재 등을 감안해 등불은 켜지 않았다.

분단 후, 북녘 사찰에서 오색천 걸기와 연등 달기가 동시에 된 것은 2004년 4월 6일 외금강산 ‘신계사 대웅전 착공식’이 최초다. 그해 11월 20일 오전 11시에 열린 신계사 대웅전 낙성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7월 2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불련 전국신도회가 공동 개최한 ‘제1차 6·15공동선언실천 조국통일기원 북남(남북)불교도 합동법회’에도 오색천이 걸렸다. 또 북측 불교도련맹과 남측 불교천태종이 2005년 10월 31일 공동 개최한 ‘개성 령통사 복원 락성식’ 때에 대규모의 비닐연등과 천으로 만든 사각대등, 오색천을 설치했다.

특히 평양 대성산 광법사는 사월초파일 행사의 장엄등으로 비닐연등과 오색천을 같이 설치했다. 2007년 5월 24일에 사월초파일 봉축 연등달기 행사를 개최한 광법사의 대웅전 처마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기념 조국통일기원 북남불교도 동시법회’란 소개판(펼침막의 북한식 용어)을 달았다. 이때 ‘부처님오신날’과 ‘불기(佛紀)’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공식 표기됐다. 그리고 묘향산 보현사에서는 2011년 9월 5일 열린 ‘팔만대장경 판각 1000년 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계기로, 2013년 5월 17일 사월초파일을 기해 ‘부처님오신날기념 조국통일기원법회’에 비닐연등과 오색천을 다시 내걸었다. 이날 평북 향산군 향산읍내 주민들과 보현사 승려 100여 명은 연등과 오색천으로 장엄한 천년 가람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처럼 펼침막과 봉축 연등은 각 사찰에서 전례를 반영해서 활용한 사례이다.

관불의식·연등행렬·회향행사로 구성되는 남측의 연등회와 달리 북녘에서 열린 연등회는 사월초파일 당일에 법요식과 같은 기념의식과 탑돌이 행사가 전부이다. 그래도 법당 안에만 걸리던 등(燈)이 옥외로, 남북이 같은 불교식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교 교류의 주요한 성과다. 2007년 5월 평양 광법사 연등회는 일시적으로 남북 공동행사 일환으로 열린 타율적 요소가 반영된 행사였지만, 2013년 5월 묘향산 보현사의 석탄일 기념법회에서 볼 수 있는 가람 장엄과 의식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추진된 초기 연등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탑돌이 형태에 머무는 연등행렬은 보현사와 표훈사, 신계사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이것을 전국 사찰들로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다. 앞으로 남북불교 교류를 통해 고려시대 개성 왕궁에서부터 대봉은사 구간의 어가행렬, 법요식의 관불 및 회향의식까지 북녘 사찰들에서 제대로 재연될 수 있도록 공동의 협력 과정이 필요하다.



내금강산 표훈사 사월초파일 봉축행사(1989.5.12.). 사진: 《우리나라 불교》(1989년)





평양 광법사 부처님오신날 봉축 장엄등(2007.5.24.). 사진: chang-hyun jung 페이스북(2007.5.27.)



조불련, 새해 편지 속 이야기

북측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는 2013년 1월 1일 조계종과 천태종 등 종단과 불교단체에 새해 서신을 보냈다. 새해 인사로 보낸 전문에는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와 개성 령통사 합동법회 봉행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우리 불교도들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애국의 통일 불사로 됩니다. 우리는 새해에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고수 리행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나기 위한 길에서 귀측과 련대 협력사업이 잘 진행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합니다.”고 밝혔다.

그간 조불련 위원장 또는 서기장이 서명한 관례를 깨고, 조불련 중앙위원회 단체 명칭으로 새해 전문을 대신했다. 2012년 1월 5일 전문에는 리규룡 서기장이 직접 수표(서명)했다. 2014년도 새해 전문은 시기를 앞세워서 2013년 12월 30일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수린 합장이란 문구에 직접 서명한 전문을 보내온 바 있다. 이때 전문에는 “새해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하여 북남불교도들 사이의 련대와 협력을 표명하면서, 원장 스님과 귀 종단의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에 불은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때 조불련의 새해 편지 속에는 연대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 ‘스님’과 ‘합장’이란 불교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단체명과 위원장의 이름이 들어간 공식 서한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은 조불련의 공식화로 해석할 수 있다. 검열과정을 거쳐 국외로 나가는 북측의 공식 문서에 불교식 낱말을 처음 표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향후, 남북불교 교류에서 용어 공용화 또는 통일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조불련 제6대 강수린 위원장은 2012년 11월 18일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1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선출됐다. 그해 12월 26일 평양 대성산 광법사에서 공식 취임한 강 위원장은 2005년 11월 입적한 박태화 대선사로부터 “뜻을 받들어 이룬다.”라는 의미의 ‘지성(志成)’이란 법명을 받았다. 1990년~2000년대까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에서 활동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국제조직을 담당했던 강수린 위원장은 2013년 5월 8일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 등록된 바와 같이 2015년 9월 말까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국가기관의 대표를 맡았던 최고위직 인사가 불교계 진출로까지 확대된 첫 사례이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2014년 10월 중국 산시성 바오지시(寶鷄市)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총회에 처음 참가하는 등 국제활동을 했다. 2019년 2월 12일~13일 금강산에서 남측 7대 종교계와 북측 4대 종교단체 대표자들과 함께한 ‘새해맞이 연대모임’을 끝으로, 2021년 초에 조불련 위원장직을 사임함으로써 현재까지 공석이다.

한편, 2012년 4월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북측은 2013년 3월 핵보유국 지위 영구화 선언과 4월 1일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법’을 제정했다. 이에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 등 한반도 전쟁 위기설에 직면하여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KCR, 회장 장재언)는 4월 22일 평양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사무실에서 비상회의를 열고, 남한과 미국에 도발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그날 전했다. 조선종교인협의회 강지영 부위원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서기장 오경우 목사, 조선천도교회 서기장 려정선, 황북 성불사 주지 법성 등이 참석했다. 법성 성불사 주지는 회의를 통해 평양과 국제 뉴스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비상회의에서 연설자와 토론자는 남한과 미국에 대해 “정세 악화의 주범들이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는 것은 공화국의 전체 신앙인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모든 도발 행위를 즉시 중지하고 전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 ‘남조선과 해외동포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고,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종교인들이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민족의 머리 위에 핵 참화를 들씌우려는 미제와 남조선 군부의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을 똑바로 가려보고 정의의 투쟁에 적극 떨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이날 국내의 《연합뉴스》와 KBS, MBC가 보도했다.

2013년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을 표방했지만, 무지와 근시안으로 경제와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와 안보 두 차원의 딜레마를 동시에 풀기 위해서 북에 대한 인정과 실천할 용기가 필요했다. 남북교류는 연꽃(蓮)이 아닌 ‘불을 붙인다’는 사른 연(燃)에 ‘불을 켠’ 등잔 등(燈)을 합친 연등처럼 북측을 인정하여 등불을 들고, 실천으로 불을 켜는 일과 같다.

# 다음 편은 ‘2013년 조계종-조불련 新프로젝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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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향산 보현사 13층 석탑과 만세루, 봉축 장엄등(2013.5.16.). 사진: Steve Arthur 페이스북
묘향산 보현사 부처님오신날 조국통일기원법회 소개판(2013.5.16.). 사진: Steve Arthur 페이스북
묘향산 보현사 부처님오신날 조국통일기원법회 소개판(2013.5.16.). 사진: Steve Arthur 페이스북
묘향산 만폭동 하비로암 주지 예경의식(2013.9.7.). 사진: 《Uri Tours》 홈페이지
묘향산 만폭동 하비로암 주지 예경의식(2013.9.7.). 사진: 《Uri Tours》 홈페이지

북녘 산하에 핀 봉축등

분단 후, 북녘에서 열린 사월초파일 봉축 법회는 1988년 5월 5일 묘향산 보현사에서 최초로 열렸다. 평양 《조선중앙통신》(1988.5.6.)이 “묘향산 보현사에서 석탄일 기념법회를 개최했다.”고 처음 보도해서 알려진 사실이다. 또 초파일 봉축 문화행사로 열리는 탑돌이는 1989년 5월 12일 금강산 표훈사 반야보전 앞마당에서 열린 탑돌이가 최초다. 그해 음력 4월 8일 낮, 1341년 계청 대사가 표훈사 마당에 건립한 7층 석탑을 중심으로 승려와 내금강리 주민 50여 명이 목탁과 북을 치며, 사각의 봉축등을 들고 행한 탑돌이를 말한다.

고려 연등회의 원조, 개성이 아닌 금강산과 묘향산으로 간 까닭은 당시 언론 보도와 카메라 담긴 모습에 의해서다. 아마도 그때 책임 일군(담당)들이 산중 고찰과 불교의 상징적 이미지를 먼저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본행사 개최 이유로도 묘향산 보현사는 삼보사찰의 위상과 운영사항을, 금강산 표훈사는 6.25 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내금강산 사찰로 관리인(주지) 등을 비롯한 승려와 지역 주민들의 동원이 용이하고, 불교에 관한 이해도가 깊다는 사실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또 그때까지 개성지역의 사찰 보수와 정비, 그리고 관리인 배치가 미흡했던 것도 그 이유일 수 있다. 지금까지 개성 관음사·대흥사·안화사·영통사 등 현존사찰에서 봉축 행사를 열기 어려운 것은 군사지역이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까닭이다.

2007년 12월부터 1년간 시행된 개성관광으로 알려진 개성지역은 도심과 박연폭포·공민왕릉·왕건릉 등 관광지를 개방하고 있다. 2005년 10월 복원한 영통사는 일반 관광코스에 포함되지 않고, 개성시 관광관리국 등 당국의 별도 허가를 받아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남북교류가 활발하던 시기에 문화적 수용 지역으로 보면, 평양과 금강산이 가장 빠르다. 그다음으로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도시들이고, 개성이 가장 늦은 지역으로 꼽힐 정도였다. 개성공단과 관광지를 일반 주민들과 분리하고, 철저한 학습 제강과 관리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경성(일제가 붙인 서울의 이름)과 함께 일제강점기에 촬영된 기록사진처럼 화려한 연등회가 열렸던 개성은 사라지고, 금강산에서 그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됐다.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는 2001년 3월 4일 신계사 터에서 민족화합과 신계사 복원 원만성취를 위한 기원법회(산신제)에 연등을 달지 않고, 탑돌이를 했다. 4월 21일 조계종 총무원과 민추본은 ‘민족화합을 위한 금강산 신계사 터와 온정각 등달기’ 행사를 개최하고, 신계사 터 삼층석탑에서 저녁 탑돌이를 가졌다. 이때 신계사지 석탑 주변에 등줄을 치고, 비닐연등을 달아 전기로 등불을 처음 켰다. 또 조계종 민추본은 2002년 5월 한 달 동안 신계사지와 온정각에 연등달기 행사를 가졌다. 5월 5일에는 민족화합을 위한 불교도 금강산 성지순례를 개최하면서 신계사지 요잡(繞匝, 절터를 우측으로 도는 예식)과 탑돌이를 했다.

남측 천태종단은 2004년 11월 16일 개성 영통사 복원공사 현장에서 ‘대각국사 의천스님 제903주기 열반대재’를 처음 개최하고, 복원 중이던 보광원 앞 3기 석탑 둘레에 비닐연등을 처음 달았다. 다만, 화재 등을 감안해 등불은 켜지 않았다.

분단 후, 북녘 사찰에서 오색천 걸기와 연등 달기가 동시에 된 것은 2004년 4월 6일 외금강산 ‘신계사 대웅전 착공식’이 최초다. 그해 11월 20일 오전 11시에 열린 신계사 대웅전 낙성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 7월 22일 금강산 신계사에서 조계종 중앙신도회와 조불련 전국신도회가 공동 개최한 ‘제1차 6·15공동선언실천 조국통일기원 북남(남북)불교도 합동법회’에도 오색천이 걸렸다. 또 북측 불교도련맹과 남측 불교천태종이 2005년 10월 31일 공동 개최한 ‘개성 령통사 복원 락성식’ 때에 대규모의 비닐연등과 천으로 만든 사각대등, 오색천을 설치했다.

특히 평양 대성산 광법사는 사월초파일 행사의 장엄등으로 비닐연등과 오색천을 같이 설치했다. 2007년 5월 24일에 사월초파일 봉축 연등달기 행사를 개최한 광법사의 대웅전 처마에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부처님오신날기념 조국통일기원 북남불교도 동시법회’란 소개판(펼침막의 북한식 용어)을 달았다. 이때 ‘부처님오신날’과 ‘불기(佛紀)’이란 용어가 처음으로 공식 표기됐다. 그리고 묘향산 보현사에서는 2011년 9월 5일 열린 ‘팔만대장경 판각 1000년 기념 조국통일기원 남북불교도 합동법회’를 계기로, 2013년 5월 17일 사월초파일을 기해 ‘부처님오신날기념 조국통일기원법회’에 비닐연등과 오색천을 다시 내걸었다. 이날 평북 향산군 향산읍내 주민들과 보현사 승려 100여 명은 연등과 오색천으로 장엄한 천년 가람에서 부처님오신날 기념 행사를 가졌다. 이처럼 펼침막과 봉축 연등은 각 사찰에서 전례를 반영해서 활용한 사례이다.

관불의식·연등행렬·회향행사로 구성되는 남측의 연등회와 달리 북녘에서 열린 연등회는 사월초파일 당일에 법요식과 같은 기념의식과 탑돌이 행사가 전부이다. 그래도 법당 안에만 걸리던 등(燈)이 옥외로, 남북이 같은 불교식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은 불교 교류의 주요한 성과다. 2007년 5월 평양 광법사 연등회는 일시적으로 남북 공동행사 일환으로 열린 타율적 요소가 반영된 행사였지만, 2013년 5월 묘향산 보현사의 석탄일 기념법회에서 볼 수 있는 가람 장엄과 의식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추진된 초기 연등회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아직 탑돌이 형태에 머무는 연등행렬은 보현사와 표훈사, 신계사에서만 행해지고 있다. 이것을 전국 사찰들로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할 때다. 앞으로 남북불교 교류를 통해 고려시대 개성 왕궁에서부터 대봉은사 구간의 어가행렬, 법요식의 관불 및 회향의식까지 북녘 사찰들에서 제대로 재연될 수 있도록 공동의 협력 과정이 필요하다.

내금강산 표훈사 사월초파일 봉축행사(1989.5.12.). 사진: 《우리나라 불교》(1989년)
내금강산 표훈사 사월초파일 봉축행사(1989.5.12.). 사진: 《우리나라 불교》(1989년)
평양 광법사 부처님오신날 봉축 장엄등(2007.5.24.). 사진: chang-hyun jung 페이스북(2007.5.27.)
평양 광법사 부처님오신날 봉축 장엄등(2007.5.24.). 사진: chang-hyun jung 페이스북(2007.5.27.)

조불련, 새해 편지 속 이야기

북측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는 2013년 1월 1일 조계종과 천태종 등 종단과 불교단체에 새해 서신을 보냈다. 새해 인사로 보낸 전문에는 “금강산 신계사 합동법회와 개성 령통사 합동법회 봉행은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용맹정진하는 우리 불교도들의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애국의 통일 불사로 됩니다. 우리는 새해에도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고수 리행하여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 시대를 열어 나기 위한 길에서 귀측과 련대 협력사업이 잘 진행되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표명합니다.”고 밝혔다.

그간 조불련 위원장 또는 서기장이 서명한 관례를 깨고, 조불련 중앙위원회 단체 명칭으로 새해 전문을 대신했다. 2012년 1월 5일 전문에는 리규룡 서기장이 직접 수표(서명)했다. 2014년도 새해 전문은 시기를 앞세워서 2013년 12월 30일 조선불교도련맹 중앙위원회 위원장 강수린 합장이란 문구에 직접 서명한 전문을 보내온 바 있다. 이때 전문에는 “새해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하여 북남불교도들 사이의 련대와 협력을 표명하면서, 원장 스님과 귀 종단의 모든 분들이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에 불은이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밝혔다.

이때 조불련의 새해 편지 속에는 연대 협력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강조하면서 ‘스님’과 ‘합장’이란 불교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단체명과 위원장의 이름이 들어간 공식 서한에 이런 단어를 사용한 것은 조불련의 공식화로 해석할 수 있다. 검열과정을 거쳐 국외로 나가는 북측의 공식 문서에 불교식 낱말을 처음 표기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향후, 남북불교 교류에서 용어 공용화 또는 통일화를 꾀할 수 있게 되었다.

조불련 제6대 강수린 위원장은 2012년 11월 18일 조불련 중앙위원회 제1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선출됐다. 그해 12월 26일 평양 대성산 광법사에서 공식 취임한 강 위원장은 2005년 11월 입적한 박태화 대선사로부터 “뜻을 받들어 이룬다.”라는 의미의 ‘지성(志成)’이란 법명을 받았다. 1990년~2000년대까지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에서 활동하고, 해외동포원호위원회에서 국제조직을 담당했던 강수린 위원장은 2013년 5월 8일 국제적십자사연맹(IFRC)에 등록된 바와 같이 2015년 9월 말까지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국가기관의 대표를 맡았던 최고위직 인사가 불교계 진출로까지 확대된 첫 사례이다.

그러나 강 위원장은 2014년 10월 중국 산시성 바오지시(寶鷄市)에서 열린 세계불교도우의회(WFB) 총회에 처음 참가하는 등 국제활동을 했다. 2019년 2월 12일~13일 금강산에서 남측 7대 종교계와 북측 4대 종교단체 대표자들과 함께한 ‘새해맞이 연대모임’을 끝으로, 2021년 초에 조불련 위원장직을 사임함으로써 현재까지 공석이다.

한편, 2012년 4월 개정 헌법 서문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북측은 2013년 3월 핵보유국 지위 영구화 선언과 4월 1일 ‘자위적 핵보유국 지위 공고화법’을 제정했다. 이에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 등 한반도 전쟁 위기설에 직면하여 북측 조선종교인협의회(KCR, 회장 장재언)는 4월 22일 평양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사무실에서 비상회의를 열고, 남한과 미국에 도발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그날 전했다. 조선종교인협의회 강지영 부위원장이 주재한 이날 회의에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 서기장 오경우 목사, 조선천도교회 서기장 려정선, 황북 성불사 주지 법성 등이 참석했다. 법성 성불사 주지는 회의를 통해 평양과 국제 뉴스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비상회의에서 연설자와 토론자는 남한과 미국에 대해 “정세 악화의 주범들이 대화와 협상을 운운하는 것은 공화국의 전체 신앙인의 격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하고, “미국과 남조선 당국이 진실로 대화와 협상을 바란다면 모든 도발 행위를 즉시 중지하고 전면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회의에서 ‘남조선과 해외동포 종교인들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고, “평화와 정의를 사랑하는 종교인들이 말로서가 아니라 실천행동에 나서야 할 때이다. 민족의 머리 위에 핵 참화를 들씌우려는 미제와 남조선 군부의 천추에 용납 못할 죄악을 똑바로 가려보고 정의의 투쟁에 적극 떨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이날 국내의 《연합뉴스》와 KBS, MBC가 보도했다.

2013년 2월 25일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첫 여성 대통령으로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대북정책을 표방했지만, 무지와 근시안으로 경제와 안보 위기를 초래했다. 경제와 안보 두 차원의 딜레마를 동시에 풀기 위해서 북에 대한 인정과 실천할 용기가 필요했다. 남북교류는 연꽃(蓮)이 아닌 ‘불을 붙인다’는 사른 연(燃)에 ‘불을 켠’ 등잔 등(燈)을 합친 연등처럼 북측을 인정하여 등불을 들고, 실천으로 불을 켜는 일과 같다.

# 다음 편은 ‘2013년 조계종-조불련 新프로젝트’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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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범
경북 경주 출생으로 1984년부터 불교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참여하다가 1990년 초, 법보종찰 해인사에 입산 환속했다. 1994년부터 남북불교 교류의 현장 실무자로 2000년부터 평양과 개성・금강산 등지를 다녀왔으며, 현재는 평화통일불교연대 운영위원장과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남북불교교류 60년사’ 등과 논문으로 ‘북한 주민들의 종교적 심성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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