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5. 새싹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5. 새싹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1.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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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눈보라 속에서도 싹을 피우고
봄처럼 대지를 덮었다

콘크리트 아래서 숨조차 못 쉬는 흙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이 막혀하던 많은 사람들
마스크 아래 예쁜 얼굴에 미소처럼

눈보라가 휘몰고 간 자리
얼음 비가 대지를 덮었다가
홍수가 아스팔트 길을 막아 서던 날도
숨죽이고 새싹을 피웠나 보다.

 







#작가의 변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쁜 새해 휴일에 홀로 길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지팡이로 짚어 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올 동안 동네 길가엔 냉이 같은 민들레 뿌리가 억척스레 삶을 이어 가고 있고 어느 집 담장 위엔 철모르는 아이처럼 버들강아지가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목덜미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날이 또 쌀쌀해졌나 보다. 한의원 원장님 ‘날이 추울 땐 특히 조심하라’든 말이 떠오른다. ‘목도리도 하고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한 모자도 쓰고 다니라’던 말이 목덜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추위에 가장 약한 것이 혈관 환자라는 말이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내복을 입지 못하듯이 더위를 잘 타 추운 겨울에서 반 팔을 입고 등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컴퓨터가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집에 전기 들어오던 날 마당에 백열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려 켜는 순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시골 하늘은 자다가 변소를 가는 것도 변소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볼일 보는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힘들던 시절, 그래서 요강에 작은 것 볼일을 보던 그 시절은 화장지조차 없어 다 쓴 공책이나 헌책들은 바로 볼일 처리에 쓰였다.

한쪽 다리가 XX에 빠져서 울고 그걸 씻기던 엄마는 잘 좀 하지 거기에 빠지냐고 속으로 울었다. 나중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옛날 변소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라디오를 처음 집에 사 오고, 라디오 코드를 꽂았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족 중에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을 때 볼륨을 조절해서 소리를 줄이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니 원시 시대에서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행복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고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호롱불 아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와 가족이 모여서 친구들이 모여서 다리에 다리를 끼우고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나 한 숟가락 안 주고...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옛날얘기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어머니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또 듣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렇게 가족은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엔 늘 시어 터진 김치와 장독에서 바로 꺼내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모자라는 쌀에 감자를 얹어서 쪄주거나 감자가루로 만든 빈대떡을 얹어서 쪄서 주기도 했다. 그것이 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골 출신이라 입맛이 싼 티가 난다는 아내의 말처럼 된장찌개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외국에 살아서 자주 먹질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꽃도 보라색과 하얀색의 도라지꽃이 머리에 늘 떠오르고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꽃과 장독대 옆에 채송화꽃 담장 위에 노란 호박꽃이 떠오른다. 과일도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먹던 뽕나무의 오디가 좋고, 평생 한 번 아버지가 꼴 베러 가서 따온 머루와 다래를 잊지 못한다. 머루를 닮은 포도, 다래를 닮은 키위를 맛보면서 아버지가 꼴을 베면서 따서 지게 짐에 챙겨왔던 머루와 다래 생각이 난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기억 속에 살아 돌아오듯이.

겨울이면 웃풍이 새서 아랫목 방구들을 지키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시절, 불을 때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가져와 찌개를 올려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문도 없는 대청마루는 겨울엔 밖에 날씨보다 더 추워서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트에 가면 겨울에도 먹을 것이 천지인 요즘 세상엔 상상도 가지 않는 흑백 티비 속의 추억과 같은 그 시절이 자꾸만 살아 돌아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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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눈보라 속에서도 싹을 피우고
봄처럼 대지를 덮었다

콘크리트 아래서 숨조차 못 쉬는 흙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이 막혀하던 많은 사람들
마스크 아래 예쁜 얼굴에 미소처럼

눈보라가 휘몰고 간 자리
얼음 비가 대지를 덮었다가
홍수가 아스팔트 길을 막아 서던 날도
숨죽이고 새싹을 피웠나 보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눈보라 속에서도 싹을 피우고
봄처럼 대지를 덮었다

콘크리트 아래서 숨조차 못 쉬는 흙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이 막혀하던 많은 사람들
마스크 아래 예쁜 얼굴에 미소처럼

눈보라가 휘몰고 간 자리
얼음 비가 대지를 덮었다가
홍수가 아스팔트 길을 막아 서던 날도
숨죽이고 새싹을 피웠나 보다.

 







#작가의 변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쁜 새해 휴일에 홀로 길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지팡이로 짚어 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올 동안 동네 길가엔 냉이 같은 민들레 뿌리가 억척스레 삶을 이어 가고 있고 어느 집 담장 위엔 철모르는 아이처럼 버들강아지가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목덜미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날이 또 쌀쌀해졌나 보다. 한의원 원장님 ‘날이 추울 땐 특히 조심하라’든 말이 떠오른다. ‘목도리도 하고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한 모자도 쓰고 다니라’던 말이 목덜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추위에 가장 약한 것이 혈관 환자라는 말이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내복을 입지 못하듯이 더위를 잘 타 추운 겨울에서 반 팔을 입고 등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컴퓨터가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집에 전기 들어오던 날 마당에 백열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려 켜는 순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시골 하늘은 자다가 변소를 가는 것도 변소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볼일 보는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힘들던 시절, 그래서 요강에 작은 것 볼일을 보던 그 시절은 화장지조차 없어 다 쓴 공책이나 헌책들은 바로 볼일 처리에 쓰였다.

한쪽 다리가 XX에 빠져서 울고 그걸 씻기던 엄마는 잘 좀 하지 거기에 빠지냐고 속으로 울었다. 나중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옛날 변소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라디오를 처음 집에 사 오고, 라디오 코드를 꽂았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족 중에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을 때 볼륨을 조절해서 소리를 줄이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니 원시 시대에서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행복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고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호롱불 아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와 가족이 모여서 친구들이 모여서 다리에 다리를 끼우고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나 한 숟가락 안 주고...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옛날얘기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어머니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또 듣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렇게 가족은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엔 늘 시어 터진 김치와 장독에서 바로 꺼내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모자라는 쌀에 감자를 얹어서 쪄주거나 감자가루로 만든 빈대떡을 얹어서 쪄서 주기도 했다. 그것이 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골 출신이라 입맛이 싼 티가 난다는 아내의 말처럼 된장찌개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외국에 살아서 자주 먹질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꽃도 보라색과 하얀색의 도라지꽃이 머리에 늘 떠오르고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꽃과 장독대 옆에 채송화꽃 담장 위에 노란 호박꽃이 떠오른다. 과일도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먹던 뽕나무의 오디가 좋고, 평생 한 번 아버지가 꼴 베러 가서 따온 머루와 다래를 잊지 못한다. 머루를 닮은 포도, 다래를 닮은 키위를 맛보면서 아버지가 꼴을 베면서 따서 지게 짐에 챙겨왔던 머루와 다래 생각이 난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기억 속에 살아 돌아오듯이.

겨울이면 웃풍이 새서 아랫목 방구들을 지키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시절, 불을 때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가져와 찌개를 올려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문도 없는 대청마루는 겨울엔 밖에 날씨보다 더 추워서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트에 가면 겨울에도 먹을 것이 천지인 요즘 세상엔 상상도 가지 않는 흑백 티비 속의 추억과 같은 그 시절이 자꾸만 살아 돌아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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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쁜 새해 휴일에 홀로 길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지팡이로 짚어 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올 동안 동네 길가엔 냉이 같은 민들레 뿌리가 억척스레 삶을 이어 가고 있고 어느 집 담장 위엔 철모르는 아이처럼 버들강아지가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목덜미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날이 또 쌀쌀해졌나 보다. 한의원 원장님 ‘날이 추울 땐 특히 조심하라’든 말이 떠오른다. ‘목도리도 하고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한 모자도 쓰고 다니라’던 말이 목덜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추위에 가장 약한 것이 혈관 환자라는 말이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내복을 입지 못하듯이 더위를 잘 타 추운 겨울에서 반 팔을 입고 등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컴퓨터가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집에 전기 들어오던 날 마당에 백열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려 켜는 순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시골 하늘은 자다가 변소를 가는 것도 변소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볼일 보는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힘들던 시절, 그래서 요강에 작은 것 볼일을 보던 그 시절은 화장지조차 없어 다 쓴 공책이나 헌책들은 바로 볼일 처리에 쓰였다.

한쪽 다리가 XX에 빠져서 울고 그걸 씻기던 엄마는 잘 좀 하지 거기에 빠지냐고 속으로 울었다. 나중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옛날 변소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눈보라 속에서도 싹을 피우고
봄처럼 대지를 덮었다

콘크리트 아래서 숨조차 못 쉬는 흙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이 막혀하던 많은 사람들
마스크 아래 예쁜 얼굴에 미소처럼

눈보라가 휘몰고 간 자리
얼음 비가 대지를 덮었다가
홍수가 아스팔트 길을 막아 서던 날도
숨죽이고 새싹을 피웠나 보다.

 







#작가의 변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쁜 새해 휴일에 홀로 길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지팡이로 짚어 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올 동안 동네 길가엔 냉이 같은 민들레 뿌리가 억척스레 삶을 이어 가고 있고 어느 집 담장 위엔 철모르는 아이처럼 버들강아지가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목덜미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날이 또 쌀쌀해졌나 보다. 한의원 원장님 ‘날이 추울 땐 특히 조심하라’든 말이 떠오른다. ‘목도리도 하고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한 모자도 쓰고 다니라’던 말이 목덜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추위에 가장 약한 것이 혈관 환자라는 말이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내복을 입지 못하듯이 더위를 잘 타 추운 겨울에서 반 팔을 입고 등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컴퓨터가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집에 전기 들어오던 날 마당에 백열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려 켜는 순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시골 하늘은 자다가 변소를 가는 것도 변소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볼일 보는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힘들던 시절, 그래서 요강에 작은 것 볼일을 보던 그 시절은 화장지조차 없어 다 쓴 공책이나 헌책들은 바로 볼일 처리에 쓰였다.

한쪽 다리가 XX에 빠져서 울고 그걸 씻기던 엄마는 잘 좀 하지 거기에 빠지냐고 속으로 울었다. 나중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옛날 변소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라디오를 처음 집에 사 오고, 라디오 코드를 꽂았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족 중에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을 때 볼륨을 조절해서 소리를 줄이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니 원시 시대에서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행복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고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호롱불 아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와 가족이 모여서 친구들이 모여서 다리에 다리를 끼우고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나 한 숟가락 안 주고...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옛날얘기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어머니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또 듣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렇게 가족은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엔 늘 시어 터진 김치와 장독에서 바로 꺼내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모자라는 쌀에 감자를 얹어서 쪄주거나 감자가루로 만든 빈대떡을 얹어서 쪄서 주기도 했다. 그것이 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골 출신이라 입맛이 싼 티가 난다는 아내의 말처럼 된장찌개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외국에 살아서 자주 먹질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꽃도 보라색과 하얀색의 도라지꽃이 머리에 늘 떠오르고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꽃과 장독대 옆에 채송화꽃 담장 위에 노란 호박꽃이 떠오른다. 과일도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먹던 뽕나무의 오디가 좋고, 평생 한 번 아버지가 꼴 베러 가서 따온 머루와 다래를 잊지 못한다. 머루를 닮은 포도, 다래를 닮은 키위를 맛보면서 아버지가 꼴을 베면서 따서 지게 짐에 챙겨왔던 머루와 다래 생각이 난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기억 속에 살아 돌아오듯이.

겨울이면 웃풍이 새서 아랫목 방구들을 지키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시절, 불을 때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가져와 찌개를 올려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문도 없는 대청마루는 겨울엔 밖에 날씨보다 더 추워서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트에 가면 겨울에도 먹을 것이 천지인 요즘 세상엔 상상도 가지 않는 흑백 티비 속의 추억과 같은 그 시절이 자꾸만 살아 돌아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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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처음 집에 사 오고, 라디오 코드를 꽂았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족 중에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을 때 볼륨을 조절해서 소리를 줄이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니 원시 시대에서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행복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고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호롱불 아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와 가족이 모여서 친구들이 모여서 다리에 다리를 끼우고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나 한 숟가락 안 주고...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옛날얘기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어머니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또 듣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렇게 가족은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엔 늘 시어 터진 김치와 장독에서 바로 꺼내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모자라는 쌀에 감자를 얹어서 쪄주거나 감자가루로 만든 빈대떡을 얹어서 쪄서 주기도 했다. 그것이 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골 출신이라 입맛이 싼 티가 난다는 아내의 말처럼 된장찌개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외국에 살아서 자주 먹질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꽃도 보라색과 하얀색의 도라지꽃이 머리에 늘 떠오르고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꽃과 장독대 옆에 채송화꽃 담장 위에 노란 호박꽃이 떠오른다. 과일도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먹던 뽕나무의 오디가 좋고, 평생 한 번 아버지가 꼴 베러 가서 따온 머루와 다래를 잊지 못한다. 머루를 닮은 포도, 다래를 닮은 키위를 맛보면서 아버지가 꼴을 베면서 따서 지게 짐에 챙겨왔던 머루와 다래 생각이 난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기억 속에 살아 돌아오듯이.

겨울이면 웃풍이 새서 아랫목 방구들을 지키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시절, 불을 때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가져와 찌개를 올려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문도 없는 대청마루는 겨울엔 밖에 날씨보다 더 추워서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트에 가면 겨울에도 먹을 것이 천지인 요즘 세상엔 상상도 가지 않는 흑백 티비 속의 추억과 같은 그 시절이 자꾸만 살아 돌아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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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에 새살이 돋아나듯
눈보라 속에서도 싹을 피우고
봄처럼 대지를 덮었다

콘크리트 아래서 숨조차 못 쉬는 흙처럼
마스크를 쓰고 숨이 막혀하던 많은 사람들
마스크 아래 예쁜 얼굴에 미소처럼

눈보라가 휘몰고 간 자리
얼음 비가 대지를 덮었다가
홍수가 아스팔트 길을 막아 서던 날도
숨죽이고 새싹을 피웠나 보다.

 







#작가의 변
모두가 각자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바쁜 새해 휴일에 홀로 길을 나섰다. 비틀거리는 걸음걸이 지팡이로 짚어 가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아올 동안 동네 길가엔 냉이 같은 민들레 뿌리가 억척스레 삶을 이어 가고 있고 어느 집 담장 위엔 철모르는 아이처럼 버들강아지가 피어난다.

길을 걷다가 목덜미로 스산한 기운을 느낀다. 날이 또 쌀쌀해졌나 보다. 한의원 원장님 ‘날이 추울 땐 특히 조심하라’든 말이 떠오른다. ‘목도리도 하고 머리를 감쌀 수 있는 따스한 모자도 쓰고 다니라’던 말이 목덜미를 더욱 신경 쓰이게 한다. 추위에 가장 약한 것이 혈관 환자라는 말이다. 답답한 걸 못 참아서 내복을 입지 못하듯이 더위를 잘 타 추운 겨울에서 반 팔을 입고 등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걸으면서 컴퓨터가 없던 시절을 떠올린다. 나의 어린 시절엔 전기도 들어 오지 않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집에 전기 들어오던 날 마당에 백열전구 소켓에 달린 스위치를 돌려 켜는 순간 온 세상이 대낮처럼 밝아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던 시골 하늘은 자다가 변소를 가는 것도 변소에서 나무를 엮어 만든 볼일 보는 자리를 찾아 앉는 것도 힘들던 시절, 그래서 요강에 작은 것 볼일을 보던 그 시절은 화장지조차 없어 다 쓴 공책이나 헌책들은 바로 볼일 처리에 쓰였다.

한쪽 다리가 XX에 빠져서 울고 그걸 씻기던 엄마는 잘 좀 하지 거기에 빠지냐고 속으로 울었다. 나중에 집안에 화장실이 있는 것을 보고 옛날 변소 생각이 나서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기도 했다.







라디오를 처음 집에 사 오고, 라디오 코드를 꽂았는데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가족 중에 아무도 어떻게 할 줄 몰라 얼이 빠져 있을 때 볼륨을 조절해서 소리를 줄이고 긴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니 원시 시대에서 첨단 시대를 살아가는 것을 아닐까. 행복보다는 외로움이 더 크고 기쁨보단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다. 호롱불 아래서 이불 홑청을 꿰매던 어머니와 가족이 모여서 친구들이 모여서 다리에 다리를 끼우고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탉 수탉 잡아서 나 한 숟가락 안 주고...라는 노래 아닌 노래를 부르거나 옛날얘기 해달라고 어머니를 졸라 어머니의 살아 온 이야기를 들었다. 듣고 또 듣던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기억에도 없지만 그렇게 가족은 늘 얼굴을 맞대고 살아갔다.

냉장고도 가스렌지도 없는 집엔 늘 시어 터진 김치와 장독에서 바로 꺼내 끓인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배고픔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모자라는 쌀에 감자를 얹어서 쪄주거나 감자가루로 만든 빈대떡을 얹어서 쪄서 주기도 했다. 그것이 먹고 싶은 최애 음식이 될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시골 출신이라 입맛이 싼 티가 난다는 아내의 말처럼 된장찌개는 언제나 먹어도 맛있다. 외국에 살아서 자주 먹질 못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이 바뀌진 않을 것이다.

꽃도 보라색과 하얀색의 도라지꽃이 머리에 늘 떠오르고 닭벼슬 닮은 맨드라미꽃과 장독대 옆에 채송화꽃 담장 위에 노란 호박꽃이 떠오른다. 과일도 입술이 푸르딩딩하게 먹던 뽕나무의 오디가 좋고, 평생 한 번 아버지가 꼴 베러 가서 따온 머루와 다래를 잊지 못한다. 머루를 닮은 포도, 다래를 닮은 키위를 맛보면서 아버지가 꼴을 베면서 따서 지게 짐에 챙겨왔던 머루와 다래 생각이 난다. 이미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아버지가 기억 속에 살아 돌아오듯이.

겨울이면 웃풍이 새서 아랫목 방구들을 지키거나 화롯불에 고구마나 감자를 구워 먹던 그 시절, 불을 때고 벌겋게 달아오른 불을 화로에 담아 방에 가져와 찌개를 올려놓던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문도 없는 대청마루는 겨울엔 밖에 날씨보다 더 추워서 발을 디딜 때마다 그 차가움이 느껴졌다. 마트에 가면 겨울에도 먹을 것이 천지인 요즘 세상엔 상상도 가지 않는 흑백 티비 속의 추억과 같은 그 시절이 자꾸만 살아 돌아와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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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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