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6. 영화 같은 세상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6. 영화 같은 세상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1.17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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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없는 칼

마음에 초승달 같은 분노가 가득 차오르면
손잡이 없는 칼을 잡듯이 내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렸지

허공에 미움을 담아 칼로 찌르고 또 찔러도
쥔 칼자국이 남는 것은 내 손바닥

마음을 베듯 허공을 베고 나면 가슴엔 핏물 같은 눈물만 고일 뿐

상처는 아물다 터지고
베고 남은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듯 겨울 언 땅 아래 숨은 생명같이.
 







#작가의 변
넷플렉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봤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공장 생활과 과외 등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목적인 복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준비해 가는 과정과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시리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스토리는 아직 본격적인 복수의 내용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차주영, 박 성혼 등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송혜교는 문동은, 그리고 그녀를 괴롭힌 성한고등학교 출신 이사라, 최혜정, 손영오, 김경란,등과 주여정, 박연진, 강현남, 전재준, 하도영 등이 주요 인물이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셔틀이라고 부르는 빵을 사오라고 시킨다던가 그런 것도 많지만 이 글로리 시리즈에선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을 문동은에게 요구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자 빰을 갈겨서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은 말로 명령하는 그룹과 그것을 실행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머리 인두 온도 체크한다고 하면서 팔과 다리 등 온몸에 인두로 지지는 상처를 내고 남자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괴롭히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 미투 운동으로 과거에 학폭으로 농구 운동선수가 국내에서 뛰지 못하고 외국팀에 가서 뛰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작가와 교수 선생님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번 주 신문에 미투 운동으로 작가 세계에서 떠났던 시인 고은이 사과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공론화했을 때 그것이 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이라 학생이 더 처벌받게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라는 데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부모의 힘이 없어서 가해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거나 문동은의 엄마처럼 합의하고 합의금을 가지고 내연남하고 도망해 버리고 동은을 홀로 버려둔 것이다. 즉 가해자보다 더 처절하게 힘든 사회로 내모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가족이 더 큰 가해자인 거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더 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동은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던 양호 교사의 파면처럼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인두로 지져버린 상처를 담임에게 말해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니라거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으로 써서 선생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시계를 벗어 놓고 계속 뺨을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보아온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폭력의 모습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지옥의 모습이 현생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본다. 학폭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 많다. 그러니 이것은 엄연한 현실판 지옥이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오직 일부에게만 한정된 자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서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하면 천국의 맛을 봐야 하지만 손잡이 없는 칼날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칼날이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직접적인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고 방관자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보고도 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타자기로 다른 학생의 머리를 내려 찍거나, 학생들이 가득 찬 통학 버스에서 발로 얼굴을 차고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폭력 세력이 무서워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폭력 학생은 10명이라면 버스 안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말리거나 항거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폭력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외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당한 학생은 그 순간, 아니 평생을 그 폭력의 순간에 갇혀서 사는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동은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삼겹살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과거 자신이 전기인두에 온몸을 화상 입던 그 과거 충격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것도 줍지 못하고 기름 바닥을 기고 더듬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다른 학생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더니 오히려 건설회사의 사장인 남편 하도영을 만나 365일 맑은 날인 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여전히 딸의 친부이자 골프장 사장인 전 남친 전재준과 바람을 피우는 목사 아버지를 둔 딸이자 화가로 잘 나가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딸이지만 하느님에게 모두 구원받았다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이사라. 세탁소를 하는 부모를 두고 항공 회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를 잘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해 학생인 최혜정.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행동 대장이었던 가해 학생 손명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자 친구의 심부름을 하고 마약을 배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의 사회와 아주 닮은 꼴이다. 학교는 그런 가해 학생이자 기상 케스터인 박연진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만 산다.







민주주의를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평등하고 평화만 가득한 세상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민주 사회 학교에도 폭력이 난무하고 신분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지고 있다. 법을 쉽게 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법이 있어도 법에 하소연도 못 하는 서민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일한 것은 똑같이 나눈다는 공산주의도 퇴색해서 왕정 국가보다 더 독재가 심한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왕정 세습 국가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서민이 살기 힘든 자본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정치가 모든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공평한 사회, 아픔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은 쌀 수매를 원하지만, 정부는 건설회사 미분양분을 사서 국민에게 임대하려 한다. 건설회사는 기득권이고 농민은 힘없는 사람들이라서일까. 학교 폭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는 늘 그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취직에 목숨을 건 서민의 자녀들은 스펙 쌓기 위해 빚을 내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한정된 일자리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에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그 모든 것이 폭력처럼 온몸과 마음을 두들기고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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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없는 칼

마음에 초승달 같은 분노가 가득 차오르면
손잡이 없는 칼을 잡듯이 내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렸지

허공에 미움을 담아 칼로 찌르고 또 찔러도
쥔 칼자국이 남는 것은 내 손바닥

마음을 베듯 허공을 베고 나면 가슴엔 핏물 같은 눈물만 고일 뿐

상처는 아물다 터지고
베고 남은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듯 겨울 언 땅 아래 숨은 생명같이.
 





손잡이 없는 칼

마음에 초승달 같은 분노가 가득 차오르면
손잡이 없는 칼을 잡듯이 내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렸지

허공에 미움을 담아 칼로 찌르고 또 찔러도
쥔 칼자국이 남는 것은 내 손바닥

마음을 베듯 허공을 베고 나면 가슴엔 핏물 같은 눈물만 고일 뿐

상처는 아물다 터지고
베고 남은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듯 겨울 언 땅 아래 숨은 생명같이.
 







#작가의 변
넷플렉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봤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공장 생활과 과외 등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목적인 복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준비해 가는 과정과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시리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스토리는 아직 본격적인 복수의 내용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차주영, 박 성혼 등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송혜교는 문동은, 그리고 그녀를 괴롭힌 성한고등학교 출신 이사라, 최혜정, 손영오, 김경란,등과 주여정, 박연진, 강현남, 전재준, 하도영 등이 주요 인물이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셔틀이라고 부르는 빵을 사오라고 시킨다던가 그런 것도 많지만 이 글로리 시리즈에선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을 문동은에게 요구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자 빰을 갈겨서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은 말로 명령하는 그룹과 그것을 실행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머리 인두 온도 체크한다고 하면서 팔과 다리 등 온몸에 인두로 지지는 상처를 내고 남자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괴롭히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 미투 운동으로 과거에 학폭으로 농구 운동선수가 국내에서 뛰지 못하고 외국팀에 가서 뛰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작가와 교수 선생님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번 주 신문에 미투 운동으로 작가 세계에서 떠났던 시인 고은이 사과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공론화했을 때 그것이 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이라 학생이 더 처벌받게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라는 데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부모의 힘이 없어서 가해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거나 문동은의 엄마처럼 합의하고 합의금을 가지고 내연남하고 도망해 버리고 동은을 홀로 버려둔 것이다. 즉 가해자보다 더 처절하게 힘든 사회로 내모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가족이 더 큰 가해자인 거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더 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동은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던 양호 교사의 파면처럼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인두로 지져버린 상처를 담임에게 말해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니라거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으로 써서 선생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시계를 벗어 놓고 계속 뺨을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보아온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폭력의 모습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지옥의 모습이 현생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본다. 학폭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 많다. 그러니 이것은 엄연한 현실판 지옥이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오직 일부에게만 한정된 자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서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하면 천국의 맛을 봐야 하지만 손잡이 없는 칼날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칼날이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직접적인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고 방관자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보고도 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타자기로 다른 학생의 머리를 내려 찍거나, 학생들이 가득 찬 통학 버스에서 발로 얼굴을 차고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폭력 세력이 무서워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폭력 학생은 10명이라면 버스 안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말리거나 항거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폭력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외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당한 학생은 그 순간, 아니 평생을 그 폭력의 순간에 갇혀서 사는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동은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삼겹살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과거 자신이 전기인두에 온몸을 화상 입던 그 과거 충격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것도 줍지 못하고 기름 바닥을 기고 더듬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다른 학생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더니 오히려 건설회사의 사장인 남편 하도영을 만나 365일 맑은 날인 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여전히 딸의 친부이자 골프장 사장인 전 남친 전재준과 바람을 피우는 목사 아버지를 둔 딸이자 화가로 잘 나가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딸이지만 하느님에게 모두 구원받았다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이사라. 세탁소를 하는 부모를 두고 항공 회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를 잘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해 학생인 최혜정.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행동 대장이었던 가해 학생 손명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자 친구의 심부름을 하고 마약을 배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의 사회와 아주 닮은 꼴이다. 학교는 그런 가해 학생이자 기상 케스터인 박연진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만 산다.







민주주의를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평등하고 평화만 가득한 세상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민주 사회 학교에도 폭력이 난무하고 신분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지고 있다. 법을 쉽게 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법이 있어도 법에 하소연도 못 하는 서민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일한 것은 똑같이 나눈다는 공산주의도 퇴색해서 왕정 국가보다 더 독재가 심한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왕정 세습 국가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서민이 살기 힘든 자본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정치가 모든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공평한 사회, 아픔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은 쌀 수매를 원하지만, 정부는 건설회사 미분양분을 사서 국민에게 임대하려 한다. 건설회사는 기득권이고 농민은 힘없는 사람들이라서일까. 학교 폭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는 늘 그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취직에 목숨을 건 서민의 자녀들은 스펙 쌓기 위해 빚을 내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한정된 일자리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에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그 모든 것이 폭력처럼 온몸과 마음을 두들기고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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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넷플렉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봤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공장 생활과 과외 등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목적인 복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준비해 가는 과정과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시리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스토리는 아직 본격적인 복수의 내용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차주영, 박 성혼 등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송혜교는 문동은, 그리고 그녀를 괴롭힌 성한고등학교 출신 이사라, 최혜정, 손영오, 김경란,등과 주여정, 박연진, 강현남, 전재준, 하도영 등이 주요 인물이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셔틀이라고 부르는 빵을 사오라고 시킨다던가 그런 것도 많지만 이 글로리 시리즈에선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을 문동은에게 요구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자 빰을 갈겨서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은 말로 명령하는 그룹과 그것을 실행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머리 인두 온도 체크한다고 하면서 팔과 다리 등 온몸에 인두로 지지는 상처를 내고 남자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괴롭히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 미투 운동으로 과거에 학폭으로 농구 운동선수가 국내에서 뛰지 못하고 외국팀에 가서 뛰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작가와 교수 선생님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번 주 신문에 미투 운동으로 작가 세계에서 떠났던 시인 고은이 사과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공론화했을 때 그것이 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이라 학생이 더 처벌받게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라는 데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부모의 힘이 없어서 가해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거나 문동은의 엄마처럼 합의하고 합의금을 가지고 내연남하고 도망해 버리고 동은을 홀로 버려둔 것이다. 즉 가해자보다 더 처절하게 힘든 사회로 내모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가족이 더 큰 가해자인 거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더 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동은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던 양호 교사의 파면처럼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인두로 지져버린 상처를 담임에게 말해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니라거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으로 써서 선생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시계를 벗어 놓고 계속 뺨을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보아온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폭력의 모습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지옥의 모습이 현생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본다. 학폭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 많다. 그러니 이것은 엄연한 현실판 지옥이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오직 일부에게만 한정된 자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서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하면 천국의 맛을 봐야 하지만 손잡이 없는 칼날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칼날이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직접적인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고 방관자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보고도 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타자기로 다른 학생의 머리를 내려 찍거나, 학생들이 가득 찬 통학 버스에서 발로 얼굴을 차고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폭력 세력이 무서워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폭력 학생은 10명이라면 버스 안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말리거나 항거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폭력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외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당한 학생은 그 순간, 아니 평생을 그 폭력의 순간에 갇혀서 사는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동은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삼겹살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과거 자신이 전기인두에 온몸을 화상 입던 그 과거 충격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것도 줍지 못하고 기름 바닥을 기고 더듬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다른 학생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더니 오히려 건설회사의 사장인 남편 하도영을 만나 365일 맑은 날인 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여전히 딸의 친부이자 골프장 사장인 전 남친 전재준과 바람을 피우는 목사 아버지를 둔 딸이자 화가로 잘 나가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딸이지만 하느님에게 모두 구원받았다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이사라. 세탁소를 하는 부모를 두고 항공 회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를 잘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해 학생인 최혜정.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행동 대장이었던 가해 학생 손명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자 친구의 심부름을 하고 마약을 배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의 사회와 아주 닮은 꼴이다. 학교는 그런 가해 학생이자 기상 케스터인 박연진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만 산다.





손잡이 없는 칼

마음에 초승달 같은 분노가 가득 차오르면
손잡이 없는 칼을 잡듯이 내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렸지

허공에 미움을 담아 칼로 찌르고 또 찔러도
쥔 칼자국이 남는 것은 내 손바닥

마음을 베듯 허공을 베고 나면 가슴엔 핏물 같은 눈물만 고일 뿐

상처는 아물다 터지고
베고 남은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듯 겨울 언 땅 아래 숨은 생명같이.
 







#작가의 변
넷플렉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봤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공장 생활과 과외 등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목적인 복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준비해 가는 과정과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시리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스토리는 아직 본격적인 복수의 내용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차주영, 박 성혼 등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송혜교는 문동은, 그리고 그녀를 괴롭힌 성한고등학교 출신 이사라, 최혜정, 손영오, 김경란,등과 주여정, 박연진, 강현남, 전재준, 하도영 등이 주요 인물이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셔틀이라고 부르는 빵을 사오라고 시킨다던가 그런 것도 많지만 이 글로리 시리즈에선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을 문동은에게 요구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자 빰을 갈겨서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은 말로 명령하는 그룹과 그것을 실행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머리 인두 온도 체크한다고 하면서 팔과 다리 등 온몸에 인두로 지지는 상처를 내고 남자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괴롭히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 미투 운동으로 과거에 학폭으로 농구 운동선수가 국내에서 뛰지 못하고 외국팀에 가서 뛰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작가와 교수 선생님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번 주 신문에 미투 운동으로 작가 세계에서 떠났던 시인 고은이 사과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공론화했을 때 그것이 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이라 학생이 더 처벌받게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라는 데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부모의 힘이 없어서 가해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거나 문동은의 엄마처럼 합의하고 합의금을 가지고 내연남하고 도망해 버리고 동은을 홀로 버려둔 것이다. 즉 가해자보다 더 처절하게 힘든 사회로 내모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가족이 더 큰 가해자인 거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더 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동은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던 양호 교사의 파면처럼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인두로 지져버린 상처를 담임에게 말해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니라거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으로 써서 선생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시계를 벗어 놓고 계속 뺨을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보아온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폭력의 모습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지옥의 모습이 현생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본다. 학폭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 많다. 그러니 이것은 엄연한 현실판 지옥이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오직 일부에게만 한정된 자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서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하면 천국의 맛을 봐야 하지만 손잡이 없는 칼날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칼날이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직접적인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고 방관자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보고도 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타자기로 다른 학생의 머리를 내려 찍거나, 학생들이 가득 찬 통학 버스에서 발로 얼굴을 차고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폭력 세력이 무서워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폭력 학생은 10명이라면 버스 안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말리거나 항거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폭력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외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당한 학생은 그 순간, 아니 평생을 그 폭력의 순간에 갇혀서 사는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동은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삼겹살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과거 자신이 전기인두에 온몸을 화상 입던 그 과거 충격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것도 줍지 못하고 기름 바닥을 기고 더듬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다른 학생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더니 오히려 건설회사의 사장인 남편 하도영을 만나 365일 맑은 날인 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여전히 딸의 친부이자 골프장 사장인 전 남친 전재준과 바람을 피우는 목사 아버지를 둔 딸이자 화가로 잘 나가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딸이지만 하느님에게 모두 구원받았다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이사라. 세탁소를 하는 부모를 두고 항공 회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를 잘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해 학생인 최혜정.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행동 대장이었던 가해 학생 손명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자 친구의 심부름을 하고 마약을 배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의 사회와 아주 닮은 꼴이다. 학교는 그런 가해 학생이자 기상 케스터인 박연진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만 산다.







민주주의를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평등하고 평화만 가득한 세상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민주 사회 학교에도 폭력이 난무하고 신분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지고 있다. 법을 쉽게 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법이 있어도 법에 하소연도 못 하는 서민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일한 것은 똑같이 나눈다는 공산주의도 퇴색해서 왕정 국가보다 더 독재가 심한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왕정 세습 국가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서민이 살기 힘든 자본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정치가 모든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공평한 사회, 아픔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은 쌀 수매를 원하지만, 정부는 건설회사 미분양분을 사서 국민에게 임대하려 한다. 건설회사는 기득권이고 농민은 힘없는 사람들이라서일까. 학교 폭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는 늘 그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취직에 목숨을 건 서민의 자녀들은 스펙 쌓기 위해 빚을 내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한정된 일자리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에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그 모든 것이 폭력처럼 온몸과 마음을 두들기고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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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평등하고 평화만 가득한 세상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민주 사회 학교에도 폭력이 난무하고 신분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지고 있다. 법을 쉽게 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법이 있어도 법에 하소연도 못 하는 서민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일한 것은 똑같이 나눈다는 공산주의도 퇴색해서 왕정 국가보다 더 독재가 심한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왕정 세습 국가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서민이 살기 힘든 자본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정치가 모든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공평한 사회, 아픔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은 쌀 수매를 원하지만, 정부는 건설회사 미분양분을 사서 국민에게 임대하려 한다. 건설회사는 기득권이고 농민은 힘없는 사람들이라서일까. 학교 폭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는 늘 그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취직에 목숨을 건 서민의 자녀들은 스펙 쌓기 위해 빚을 내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한정된 일자리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에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그 모든 것이 폭력처럼 온몸과 마음을 두들기고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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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이 없는 칼

마음에 초승달 같은 분노가 가득 차오르면
손잡이 없는 칼을 잡듯이 내 손은 온통 피로 물들어 버렸지

허공에 미움을 담아 칼로 찌르고 또 찔러도
쥔 칼자국이 남는 것은 내 손바닥

마음을 베듯 허공을 베고 나면 가슴엔 핏물 같은 눈물만 고일 뿐

상처는 아물다 터지고
베고 남은 그루터기에
새싹이 나듯 겨울 언 땅 아래 숨은 생명같이.
 







#작가의 변
넷플렉스 시리즈 <더 글로리>를 봤다.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공장 생활과 과외 등을 하면서 자금을 모으고 목적인 복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준비해 가는 과정과 복수를 하기 위한 과정을 그린 시리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공개된 스토리는 아직 본격적인 복수의 내용이 없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으로 송혜교, 이도현, 임지연, 염혜란, 정성일, 차주영, 박 성혼 등 여러 등장 인물이 나온다. 주인공인 송혜교는 문동은, 그리고 그녀를 괴롭힌 성한고등학교 출신 이사라, 최혜정, 손영오, 김경란,등과 주여정, 박연진, 강현남, 전재준, 하도영 등이 주요 인물이다.

학교 폭력에서 중요한 것은 셔틀이라고 부르는 빵을 사오라고 시킨다던가 그런 것도 많지만 이 글로리 시리즈에선 화장실 청소를 대신 해줄 것을 문동은에게 요구하고 바로 대답을 안 하자 빰을 갈겨서 기선을 제압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폭력은 말로 명령하는 그룹과 그것을 실행하는 그룹으로 나누어지고 머리 인두 온도 체크한다고 하면서 팔과 다리 등 온몸에 인두로 지지는 상처를 내고 남자 학생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집으로 찾아가서 괴롭히기도 한다.

한때 한국에 미투 운동으로 과거에 학폭으로 농구 운동선수가 국내에서 뛰지 못하고 외국팀에 가서 뛰기도 하고 성폭력으로 인해 작가와 교수 선생님 등이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이번 주 신문에 미투 운동으로 작가 세계에서 떠났던 시인 고은이 사과도 하지 않고 은근슬쩍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는 기사가 뜨기도 했다.

학교 폭력이 무서운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을 공론화했을 때 그것이 시정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문제 제기한 사람이라 학생이 더 처벌받게 되는 불합리한 세상이라는 데 있다. 학교 폭력을 당했다고 해도 부모의 힘이 없어서 가해자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은 물론 오히려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입거나 문동은의 엄마처럼 합의하고 합의금을 가지고 내연남하고 도망해 버리고 동은을 홀로 버려둔 것이다. 즉 가해자보다 더 처절하게 힘든 사회로 내모는 것은 다름이 아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가족이 더 큰 가해자인 거다.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가족이 더 큰 가해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문동은의 편에 서서 정의를 구현하려던 양호 교사의 파면처럼 힘이 없는 정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온몸을 구타당하고 전기인두로 지져버린 상처를 담임에게 말해도, 어디 부러진 것도 아니라거나 자퇴 사유를 학교 폭력으로 써서 선생에게 피해가 갈 것 같으니까 시계를 벗어 놓고 계속 뺨을 때리는 폭력을 행사하는 선생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보아온 현실이기도 하다.

이 시리즈에서 보이는 폭력의 모습은 우리가 죽어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세상이 지옥의 모습이 현생의 모습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본다. 학폭을 못 견디고 자살하는 많은 청소년이 실제 많다. 그러니 이것은 엄연한 현실판 지옥이다.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꿈꾸지만 오직 일부에게만 한정된 자유, 일부 계층만을 위한 세상이 되어 버린 기울어진 운동장은 누군가에게 복수의 칼날을 갈아서 복수를 위한 삶을 살아가게 만든다. 복수를 하는 사람도 복수하면 천국의 맛을 봐야 하지만 손잡이 없는 칼날처럼 자신에게도 그만큼의 칼날이 향한다는 것이 문제다.

나도 학교 다닐 때 직접적인 학교 폭력의 희생자였고 방관자였다. 내가 살기 위해서 보고도 보지 못한 수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학교 교실에서 타자기로 다른 학생의 머리를 내려 찍거나, 학생들이 가득 찬 통학 버스에서 발로 얼굴을 차고 주먹을 휘두르는 학생이 있었지만, 그와 함께하는 폭력 세력이 무서워 아무도 반발하지 못했다. 폭력 학생은 10명이라면 버스 안에 50명이 넘는 학생들이 타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 상황을 말리거나 항거하려 들지 않았다. 나에게도 분명 그런 폭력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니니까 방관하고 외면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당한 학생은 그 순간, 아니 평생을 그 폭력의 순간에 갇혀서 사는 지옥에서 살게 되었는지 모른다. 복수를 꿈꾸고 계획하고 실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문동은이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악몽으로 인해 더욱 괴로워했다. 자동차 정비소에서 삼겹살 굽는 지글거리는 소리에 과거 자신이 전기인두에 온몸을 화상 입던 그 과거 충격 때문에 바닥에 떨어진 것도 줍지 못하고 기름 바닥을 기고 더듬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렇게 다른 학생을 괴롭히던 아이들은 현모양처가 꿈이라더니 오히려 건설회사의 사장인 남편 하도영을 만나 365일 맑은 날인 부러울 것 없이 살면서도 여전히 딸의 친부이자 골프장 사장인 전 남친 전재준과 바람을 피우는 목사 아버지를 둔 딸이자 화가로 잘 나가지만 마약을 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하는 딸이지만 하느님에게 모두 구원받았다는 학교 폭력 가해 학생 이사라. 세탁소를 하는 부모를 두고 항공 회사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남자를 잘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가해 학생인 최혜정. 학교 폭력의 직접적인 행동 대장이었던 가해 학생 손명오는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부자 친구의 심부름을 하고 마약을 배달하면서 살아가는 현실은 어쩌면 우리의 사회와 아주 닮은 꼴이다. 학교는 그런 가해 학생이자 기상 케스터인 박연진 같은 캐릭터가 오히려 더 잘만 산다.







민주주의를 하면 모두가 잘사는 세상이 올 줄 알았다. 왕정이 무너지고 신분 사회가 무너지면 세상은 평등하고 평화만 가득한 세상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민주 사회 학교에도 폭력이 난무하고 신분의 벽은 더욱더 높아만 지고 있다. 법을 쉽게 돈으로 쓰는 사람들이 있고 법이 있어도 법에 하소연도 못 하는 서민이 존재하는 민주 사회다.

모두가 함께 일하고 일한 것은 똑같이 나눈다는 공산주의도 퇴색해서 왕정 국가보다 더 독재가 심한 북한은 공산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독재 왕정 세습 국가이고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사회주의 요소를 첨가하지 않고서는 서민이 살기 힘든 자본 민주주의 대한민국도 이상과 현실의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듯이 정치가 모든 것을 채워 줄 수는 없다. 하지만 공평한 사회, 아픔이 덜한 사회를 만들 수는 있다. 평생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는 농민들은 쌀 수매를 원하지만, 정부는 건설회사 미분양분을 사서 국민에게 임대하려 한다. 건설회사는 기득권이고 농민은 힘없는 사람들이라서일까. 학교 폭력뿐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힘없는 약자는 늘 그 폭력을 온몸으로 받아 내야 한다. 취직에 목숨을 건 서민의 자녀들은 스펙 쌓기 위해 빚을 내서 해외 유학까지 다녀오지만 한정된 일자리와 높아지는 부동산 가격에 희망은 점점 멀어지고 그 모든 것이 폭력처럼 온몸과 마음을 두들기고 인두로 지져지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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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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