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7. 얼음과 물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97. 얼음과 물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1.25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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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살결처럼 흐르던 물이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음이 되어
칼날처럼 뽀족한 날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사열을 한다

예수의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날이 추워야만 어는 강물처럼
시린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를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예수처럼 걷는다

고드름 한 개 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
툭툭 부러져 버린 칼날이
사르륵 녹아
언제 그런 적 있냐는 듯이 물이 되어 흐른다

얼음 속에 얼굴들을 새겨 넣은 듯
별도 달도 새겨져 있는데
짓궂은 아이가 돌로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난다
녹아 물이 되어 세숫물에 비친 내 얼굴처럼
고요함은 간데없고

 







 

#작가의 변
화요일부터 앓고 있는 코비드-19는 이번 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아들이 아주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는데 감기인 줄 알았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월요일 딸이 아파서 코로나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서 보니 빨간 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식구가 다 해 보자고 해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감연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검사를 다시 해 보니 나도 감염을 확인했다.

현재 캐나다는 코비드-19 검사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집에서 감기약 먹으면서 격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퍼 스토어엔 감기약이 아예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한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확진자 통계치에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도 날마다 확진자 통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사망자만을 통계로 잡는 것 같다.

애초에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사연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몇몇 학생이 아픈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코비드-19에 걸렸고 오미크론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가장 유행하고 있는 코비드-19가 오미크론인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첫날은 몸살감기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뼈가 녹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기침과 함께 목구멍이 따가워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기약인 타이레놀과 목과 체스트 약인 물약도 먹었다. 약 기운에 버티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열이 오르면 추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아내가 식구들 밥을 챙겨주면서 나도 약 기운에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4일째, 딸과 아내는 5일째이다. 여전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에 침을 삼킬 때마다 아주 고통스럽다. 김치를 먹어도 쓰다. 그러니 대충 아무거나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딸 친구가 목이 아픈 데 먹는 약을 사서 입구에 놓아주고 가던 화요일, 난 아직 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식구가 모두 약을 먹어야 하니 약이 모자랐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아내가 약국에 갔다 왔다. 먹을거리도 없어서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을 같이 사 왔다. 물론 가까운 거리라 내가 차를 몰고 근처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왔다. 설날이 이번 달이라고 했더니 아내가 언제냐고 물어서 이번 일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날이라고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들은 학교에 나간다. 일주일 격리를 해야 하지만 지난주에 된통 아픈 2일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침하고 정상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코비드-19 걸렸다고 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결석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간다.

딸은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지만 코비드-19로 아프다고 하니 날마다 아침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뇌경색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코비드-19까지 걸리고 보니 침 치료조차 못해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의원에 코비드-19 걸려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고통을 마주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아픔은 열을 오르내리게 하고 두통, 기침, 목 아픔, 근육통, 관절통 등을 섞어 아주 오묘한 조합으로 괴롭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봄날 얼음이 녹아 개울물로 흐르듯 평온한 날이 돌아오리라.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수많은 조각 사이로 수많은 환영을 본다. 발그레 해진 볼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와 아내의 목을 칼로 긋고 독극물을 마신 이웃 아저씨의 얼굴과 온 사방으로 터져 오른 파편의 교통사고 현장, 이 모든 것들이 얼음 사이에 환영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60여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고도 짧은 순간인 그 순간들이 뇌 한쪽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파편이 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부질없는 얼음 속에 갇힌 시간 같은 것인데 얼음 칼을 들고 서로를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 하시던 돌아가신 큰 스님이 주신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 같은 차가 무색무취가 우리 삶인 것을. 맛집을 순례하듯 맛있는 차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닌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 삼베에 받쳐 꼭 짠 익모초를 엄마는 숨을 쉬지 말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지. 그 깅게락(금계랍, 염산퀴닌)같이 쓴 익모초를 먹으면 배탈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퀴닌이 금계랍인데 어릴 적엔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고 어른들이 말한 발음대로 깅게락으로 알고 있었다. 금계랍의 탁월한 효능 덕분에 개항 후 조선에선 말라리아 공포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해방 후엔 어깨에 놓은 예방 주사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크고 금계랍이 나와 노래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금계랍은 영어로 Quinine라는 식물 이름으로 쓴맛이 나서 아이들 젖 떼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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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살결처럼 흐르던 물이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음이 되어
칼날처럼 뽀족한 날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사열을 한다

예수의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날이 추워야만 어는 강물처럼
시린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를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예수처럼 걷는다

고드름 한 개 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
툭툭 부러져 버린 칼날이
사르륵 녹아
언제 그런 적 있냐는 듯이 물이 되어 흐른다

얼음 속에 얼굴들을 새겨 넣은 듯
별도 달도 새겨져 있는데
짓궂은 아이가 돌로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난다
녹아 물이 되어 세숫물에 비친 내 얼굴처럼
고요함은 간데없고

 





부드러운 살결처럼 흐르던 물이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음이 되어
칼날처럼 뽀족한 날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사열을 한다

예수의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날이 추워야만 어는 강물처럼
시린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를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예수처럼 걷는다

고드름 한 개 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
툭툭 부러져 버린 칼날이
사르륵 녹아
언제 그런 적 있냐는 듯이 물이 되어 흐른다

얼음 속에 얼굴들을 새겨 넣은 듯
별도 달도 새겨져 있는데
짓궂은 아이가 돌로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난다
녹아 물이 되어 세숫물에 비친 내 얼굴처럼
고요함은 간데없고

 







 

#작가의 변
화요일부터 앓고 있는 코비드-19는 이번 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아들이 아주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는데 감기인 줄 알았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월요일 딸이 아파서 코로나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서 보니 빨간 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식구가 다 해 보자고 해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감연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검사를 다시 해 보니 나도 감염을 확인했다.

현재 캐나다는 코비드-19 검사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집에서 감기약 먹으면서 격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퍼 스토어엔 감기약이 아예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한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확진자 통계치에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도 날마다 확진자 통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사망자만을 통계로 잡는 것 같다.

애초에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사연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몇몇 학생이 아픈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코비드-19에 걸렸고 오미크론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가장 유행하고 있는 코비드-19가 오미크론인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첫날은 몸살감기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뼈가 녹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기침과 함께 목구멍이 따가워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기약인 타이레놀과 목과 체스트 약인 물약도 먹었다. 약 기운에 버티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열이 오르면 추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아내가 식구들 밥을 챙겨주면서 나도 약 기운에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4일째, 딸과 아내는 5일째이다. 여전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에 침을 삼킬 때마다 아주 고통스럽다. 김치를 먹어도 쓰다. 그러니 대충 아무거나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딸 친구가 목이 아픈 데 먹는 약을 사서 입구에 놓아주고 가던 화요일, 난 아직 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식구가 모두 약을 먹어야 하니 약이 모자랐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아내가 약국에 갔다 왔다. 먹을거리도 없어서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을 같이 사 왔다. 물론 가까운 거리라 내가 차를 몰고 근처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왔다. 설날이 이번 달이라고 했더니 아내가 언제냐고 물어서 이번 일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날이라고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들은 학교에 나간다. 일주일 격리를 해야 하지만 지난주에 된통 아픈 2일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침하고 정상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코비드-19 걸렸다고 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결석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간다.

딸은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지만 코비드-19로 아프다고 하니 날마다 아침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뇌경색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코비드-19까지 걸리고 보니 침 치료조차 못해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의원에 코비드-19 걸려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고통을 마주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아픔은 열을 오르내리게 하고 두통, 기침, 목 아픔, 근육통, 관절통 등을 섞어 아주 오묘한 조합으로 괴롭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봄날 얼음이 녹아 개울물로 흐르듯 평온한 날이 돌아오리라.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수많은 조각 사이로 수많은 환영을 본다. 발그레 해진 볼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와 아내의 목을 칼로 긋고 독극물을 마신 이웃 아저씨의 얼굴과 온 사방으로 터져 오른 파편의 교통사고 현장, 이 모든 것들이 얼음 사이에 환영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60여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고도 짧은 순간인 그 순간들이 뇌 한쪽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파편이 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부질없는 얼음 속에 갇힌 시간 같은 것인데 얼음 칼을 들고 서로를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 하시던 돌아가신 큰 스님이 주신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 같은 차가 무색무취가 우리 삶인 것을. 맛집을 순례하듯 맛있는 차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닌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 삼베에 받쳐 꼭 짠 익모초를 엄마는 숨을 쉬지 말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지. 그 깅게락(금계랍, 염산퀴닌)같이 쓴 익모초를 먹으면 배탈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퀴닌이 금계랍인데 어릴 적엔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고 어른들이 말한 발음대로 깅게락으로 알고 있었다. 금계랍의 탁월한 효능 덕분에 개항 후 조선에선 말라리아 공포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해방 후엔 어깨에 놓은 예방 주사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크고 금계랍이 나와 노래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금계랍은 영어로 Quinine라는 식물 이름으로 쓴맛이 나서 아이들 젖 떼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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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화요일부터 앓고 있는 코비드-19는 이번 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아들이 아주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는데 감기인 줄 알았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월요일 딸이 아파서 코로나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서 보니 빨간 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식구가 다 해 보자고 해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감연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검사를 다시 해 보니 나도 감염을 확인했다.

현재 캐나다는 코비드-19 검사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집에서 감기약 먹으면서 격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퍼 스토어엔 감기약이 아예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한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확진자 통계치에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도 날마다 확진자 통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사망자만을 통계로 잡는 것 같다.

애초에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사연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몇몇 학생이 아픈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코비드-19에 걸렸고 오미크론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가장 유행하고 있는 코비드-19가 오미크론인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첫날은 몸살감기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뼈가 녹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기침과 함께 목구멍이 따가워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기약인 타이레놀과 목과 체스트 약인 물약도 먹었다. 약 기운에 버티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열이 오르면 추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아내가 식구들 밥을 챙겨주면서 나도 약 기운에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4일째, 딸과 아내는 5일째이다. 여전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에 침을 삼킬 때마다 아주 고통스럽다. 김치를 먹어도 쓰다. 그러니 대충 아무거나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딸 친구가 목이 아픈 데 먹는 약을 사서 입구에 놓아주고 가던 화요일, 난 아직 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식구가 모두 약을 먹어야 하니 약이 모자랐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아내가 약국에 갔다 왔다. 먹을거리도 없어서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을 같이 사 왔다. 물론 가까운 거리라 내가 차를 몰고 근처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왔다. 설날이 이번 달이라고 했더니 아내가 언제냐고 물어서 이번 일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날이라고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들은 학교에 나간다. 일주일 격리를 해야 하지만 지난주에 된통 아픈 2일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침하고 정상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코비드-19 걸렸다고 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결석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간다.

딸은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지만 코비드-19로 아프다고 하니 날마다 아침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뇌경색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코비드-19까지 걸리고 보니 침 치료조차 못해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의원에 코비드-19 걸려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고통을 마주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아픔은 열을 오르내리게 하고 두통, 기침, 목 아픔, 근육통, 관절통 등을 섞어 아주 오묘한 조합으로 괴롭히고 있다.





부드러운 살결처럼 흐르던 물이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음이 되어
칼날처럼 뽀족한 날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사열을 한다

예수의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날이 추워야만 어는 강물처럼
시린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를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예수처럼 걷는다

고드름 한 개 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
툭툭 부러져 버린 칼날이
사르륵 녹아
언제 그런 적 있냐는 듯이 물이 되어 흐른다

얼음 속에 얼굴들을 새겨 넣은 듯
별도 달도 새겨져 있는데
짓궂은 아이가 돌로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난다
녹아 물이 되어 세숫물에 비친 내 얼굴처럼
고요함은 간데없고

 







 

#작가의 변
화요일부터 앓고 있는 코비드-19는 이번 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아들이 아주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는데 감기인 줄 알았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월요일 딸이 아파서 코로나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서 보니 빨간 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식구가 다 해 보자고 해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감연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검사를 다시 해 보니 나도 감염을 확인했다.

현재 캐나다는 코비드-19 검사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집에서 감기약 먹으면서 격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퍼 스토어엔 감기약이 아예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한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확진자 통계치에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도 날마다 확진자 통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사망자만을 통계로 잡는 것 같다.

애초에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사연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몇몇 학생이 아픈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코비드-19에 걸렸고 오미크론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가장 유행하고 있는 코비드-19가 오미크론인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첫날은 몸살감기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뼈가 녹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기침과 함께 목구멍이 따가워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기약인 타이레놀과 목과 체스트 약인 물약도 먹었다. 약 기운에 버티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열이 오르면 추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아내가 식구들 밥을 챙겨주면서 나도 약 기운에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4일째, 딸과 아내는 5일째이다. 여전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에 침을 삼킬 때마다 아주 고통스럽다. 김치를 먹어도 쓰다. 그러니 대충 아무거나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딸 친구가 목이 아픈 데 먹는 약을 사서 입구에 놓아주고 가던 화요일, 난 아직 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식구가 모두 약을 먹어야 하니 약이 모자랐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아내가 약국에 갔다 왔다. 먹을거리도 없어서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을 같이 사 왔다. 물론 가까운 거리라 내가 차를 몰고 근처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왔다. 설날이 이번 달이라고 했더니 아내가 언제냐고 물어서 이번 일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날이라고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들은 학교에 나간다. 일주일 격리를 해야 하지만 지난주에 된통 아픈 2일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침하고 정상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코비드-19 걸렸다고 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결석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간다.

딸은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지만 코비드-19로 아프다고 하니 날마다 아침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뇌경색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코비드-19까지 걸리고 보니 침 치료조차 못해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의원에 코비드-19 걸려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고통을 마주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아픔은 열을 오르내리게 하고 두통, 기침, 목 아픔, 근육통, 관절통 등을 섞어 아주 오묘한 조합으로 괴롭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봄날 얼음이 녹아 개울물로 흐르듯 평온한 날이 돌아오리라.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수많은 조각 사이로 수많은 환영을 본다. 발그레 해진 볼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와 아내의 목을 칼로 긋고 독극물을 마신 이웃 아저씨의 얼굴과 온 사방으로 터져 오른 파편의 교통사고 현장, 이 모든 것들이 얼음 사이에 환영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60여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고도 짧은 순간인 그 순간들이 뇌 한쪽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파편이 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부질없는 얼음 속에 갇힌 시간 같은 것인데 얼음 칼을 들고 서로를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 하시던 돌아가신 큰 스님이 주신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 같은 차가 무색무취가 우리 삶인 것을. 맛집을 순례하듯 맛있는 차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닌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 삼베에 받쳐 꼭 짠 익모초를 엄마는 숨을 쉬지 말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지. 그 깅게락(금계랍, 염산퀴닌)같이 쓴 익모초를 먹으면 배탈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퀴닌이 금계랍인데 어릴 적엔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고 어른들이 말한 발음대로 깅게락으로 알고 있었다. 금계랍의 탁월한 효능 덕분에 개항 후 조선에선 말라리아 공포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해방 후엔 어깨에 놓은 예방 주사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크고 금계랍이 나와 노래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금계랍은 영어로 Quinine라는 식물 이름으로 쓴맛이 나서 아이들 젖 떼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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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봄날 얼음이 녹아 개울물로 흐르듯 평온한 날이 돌아오리라.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수많은 조각 사이로 수많은 환영을 본다. 발그레 해진 볼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와 아내의 목을 칼로 긋고 독극물을 마신 이웃 아저씨의 얼굴과 온 사방으로 터져 오른 파편의 교통사고 현장, 이 모든 것들이 얼음 사이에 환영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60여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고도 짧은 순간인 그 순간들이 뇌 한쪽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파편이 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부질없는 얼음 속에 갇힌 시간 같은 것인데 얼음 칼을 들고 서로를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 하시던 돌아가신 큰 스님이 주신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 같은 차가 무색무취가 우리 삶인 것을. 맛집을 순례하듯 맛있는 차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닌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 삼베에 받쳐 꼭 짠 익모초를 엄마는 숨을 쉬지 말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지. 그 깅게락(금계랍, 염산퀴닌)같이 쓴 익모초를 먹으면 배탈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퀴닌이 금계랍인데 어릴 적엔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고 어른들이 말한 발음대로 깅게락으로 알고 있었다. 금계랍의 탁월한 효능 덕분에 개항 후 조선에선 말라리아 공포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해방 후엔 어깨에 놓은 예방 주사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크고 금계랍이 나와 노래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금계랍은 영어로 Quinine라는 식물 이름으로 쓴맛이 나서 아이들 젖 떼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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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살결처럼 흐르던 물이
추운 겨울이 되면 얼음이 되어
칼날처럼 뽀족한 날을 세우고
처마 끝에서 사열을 한다

예수의 기적처럼 물 위를 걷는다
날이 추워야만 어는 강물처럼
시린 겨울을 버티지 못하고 얼어버린 호수 위를
해맑은 얼굴을 한 아이들이 예수처럼 걷는다

고드름 한 개 씩 들고 칼싸움을 하다
툭툭 부러져 버린 칼날이
사르륵 녹아
언제 그런 적 있냐는 듯이 물이 되어 흐른다

얼음 속에 얼굴들을 새겨 넣은 듯
별도 달도 새겨져 있는데
짓궂은 아이가 돌로 내리치면
산산조각이 난다
녹아 물이 되어 세숫물에 비친 내 얼굴처럼
고요함은 간데없고

 







 

#작가의 변
화요일부터 앓고 있는 코비드-19는 이번 주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지난주에 이미 아들이 아주 심하게 아픈 날이 있었는데 감기인 줄 알았다. 지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월요일 딸이 아파서 코로나 검사 키트로 검사를 해서 보니 빨간 줄이 선명했다. 그래서 혹시 모르니 식구가 다 해 보자고 해서 검사를 해 본 결과,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가 감연된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화요일 아침, 검사를 다시 해 보니 나도 감염을 확인했다.

현재 캐나다는 코비드-19 검사소가 따로 없다.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해 본 결과 집에서 감기약 먹으면서 격리해서 지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수퍼 스토어엔 감기약이 아예 없었다. 그만큼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한 사람들은 정부가 만든 확진자 통계치에 당연히 들어가지 않는다. 지금도 날마다 확진자 통계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상태가 심해져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와 사망자만을 통계로 잡는 것 같다.

애초에 아들이 코로나19에 걸리게 된 사연도 정부의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 발표하는 데 마스크를 쓰고 하니 잘 안 들린다고 마스크를 벗고 발표하라고 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고 몇몇 학생이 아픈 상황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대중교통인 버스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학교에선 마스크를 쓰면 따돌림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렇게 코비드-19에 걸렸고 오미크론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언론 보도를 보면 지금 가장 유행하고 있는 코비드-19가 오미크론인 것만은 확실한 듯 보인다.

첫날은 몸살감기처럼 온몸의 관절과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아팠다. 뼈가 녹는 기분이랄까. 그리고 기침과 함께 목구멍이 따가워 왔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구멍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다른 통증이 사라진 게 아니다. 감기약인 타이레놀과 목과 체스트 약인 물약도 먹었다. 약 기운에 버티지만, 고통은 계속됐다. 열이 오르면 추워서 사시나무 떨 듯하다가 해열제를 먹고 나면 또 땀이 비 오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약을 먹어야 하니 밥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야 하고 아내가 식구들 밥을 챙겨주면서 나도 약 기운에 움직인다고 했다. 나는 4일째, 딸과 아내는 5일째이다. 여전히 열이 오르락내리락하고 기침에 침을 삼킬 때마다 아주 고통스럽다. 김치를 먹어도 쓰다. 그러니 대충 아무거나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이면 족하다.

딸 친구가 목이 아픈 데 먹는 약을 사서 입구에 놓아주고 가던 화요일, 난 아직 목은 그리 아프지 않았다. 식구가 모두 약을 먹어야 하니 약이 모자랐다. 사줄 사람이 없으니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아내가 약국에 갔다 왔다. 먹을거리도 없어서 계란, 오렌지 주스 등을 같이 사 왔다. 물론 가까운 거리라 내가 차를 몰고 근처에 파킹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왔다. 설날이 이번 달이라고 했더니 아내가 언제냐고 물어서 이번 일요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설날이라고 특별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아들은 학교에 나간다. 일주일 격리를 해야 하지만 지난주에 된통 아픈 2일만 학교에 가지 못하고 계속 나가고 있다. 아직도 기침하고 정상은 아니지만 다들 그렇게 하고 있고 학교에서도 코비드-19 걸렸다고 해도 학교 나오지 말라고 하지 않으니 결석하지 않으려고 학교에 나간다.

딸은 집에서 근무하는 재택근무지만 코비드-19로 아프다고 하니 날마다 아침에 전화해서 상태를 보고 하라고 했다고 한다. 안 그래도 뇌경색 치료가 끝나지 않았는데 코비드-19까지 걸리고 보니 침 치료조차 못해 상태는 더 나빠지고 있다. 한의원에 코비드-19 걸려서 못 간다고 연락했다. 날마다 고통을 마주한다.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려는 듯이 아픔은 열을 오르내리게 하고 두통, 기침, 목 아픔, 근육통, 관절통 등을 섞어 아주 오묘한 조합으로 괴롭히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통스러운 순간도 봄날 얼음이 녹아 개울물로 흐르듯 평온한 날이 돌아오리라. 얼음이 깨어지는 순간 수많은 조각 사이로 수많은 환영을 본다. 발그레 해진 볼로 앉은뱅이 스케이트를 타던 아이와 아내의 목을 칼로 긋고 독극물을 마신 이웃 아저씨의 얼굴과 온 사방으로 터져 오른 파편의 교통사고 현장, 이 모든 것들이 얼음 사이에 환영처럼 반짝이다 사라진다. 60여년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짧고도 짧은 순간인 그 순간들이 뇌 한쪽을 떠나지 못하고 기억의 파편이 되어 불사조처럼 살아났다 숨었다를 반복한다. 사람 사는 것이 다 부질없는 얼음 속에 갇힌 시간 같은 것인데 얼음 칼을 들고 서로를 찌르기를 반복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차나 한잔하고 가게 하시던 돌아가신 큰 스님이 주신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맹탕 같은 차가 무색무취가 우리 삶인 것을. 맛집을 순례하듯 맛있는 차를 찾아 떠나는 게 아닌지. 익모초를 절구에 찧어 삼베에 받쳐 꼭 짠 익모초를 엄마는 숨을 쉬지 말고 단숨에 마시라고 했지. 그 깅게락(금계랍, 염산퀴닌)같이 쓴 익모초를 먹으면 배탈이 나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세상 모든 것이 다 맛있었다.

말라리아 치료약인 퀴닌이 금계랍인데 어릴 적엔 그런 앞뒤 사정을 몰랐고 어른들이 말한 발음대로 깅게락으로 알고 있었다. 금계랍의 탁월한 효능 덕분에 개항 후 조선에선 말라리아 공포에서 해방되게 되었고 해방 후엔 어깨에 놓은 예방 주사 우두법이 나와 아이들이 잘 크고 금계랍이 나와 노래들이 말라리아에 걸리지 않게 되었다. 금계랍은 영어로 Quinine라는 식물 이름으로 쓴맛이 나서 아이들 젖 떼는 용도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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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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