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교는 삶에 참여한다"는 참여불교 운동을 일으킨 틱낫한 스님(Thich Nhat Hanh, 釋一行; 1926~2022)의 젊은 시절 일기가 추모 1주기를 맞아 출간됐다.
스님은 지난해 1월 22일 자정 고국 베트남 후에의 뚜 히에우 사원에서 95세를 일기로 원적에 들었다. 한평생 평화를 위한 가르침을 펼치며 참여불교를 설파한 스님은 두차례 방한을 통해서 한국불교에 '걷기 명상' 열풍을 일으킨 선지식이었다.
책 <젊은 틱낫한의 일기>는 민족과 국가, 사회, 삶과 진리를 고민하던 30대 젊은 틱낫한의 기록이다. 스님이 권력에 쫓겨 베트남을 떠난 후인 미국 뉴저지에 있던 1962년부터 시작해 1964~1966년 베트남에서의 스님의 일기를 엮은 것이다. 책은 스님의 방한 때 번역을 맡으면서 이후 스님의 국내 행사를 기획ㆍ진행하며 스님과 두터운 인연을 맺었던 권선아 박사가 우리말로 옮겼다.
1962~1963년 미국 프린스턴대와 컬럼비아대에서 비교종교학을 강의하고 연구하던 스님은 이념 갈등이 첨예했던 고국을 아파하고 그리워했다. 권력에 침묵했던 보수 불교계는 젊은 틱낫한을 더 괴롭혔다.
바다 건너 타국에서 들리는 고국의 아픈 현실은 스님의 마음을 더 힘들게 했다. 스님이 뜻을 함께한 도반들과 1957년 베트남 중부에 일군 사원 '프엉보이'(‘향기로운 종려나무 잎’이라는 베트남어)는 전쟁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지금 가장 외롭지만, 폭풍우 끝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조금씩 성장한다. 이와 같은 폭풍우가 없었다면 나는 오늘의 나일 수 없다. 나는 심하게 맞고 찢겼고, 그리고 구원받았다."
스님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고통도 스님을 굴복시킬 수는 없었다.
책에서 틱낫한 스님은 “우리는 프엉보이를 절대로 잃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마음 속 성스러운 현실이다. 우리는 어디에 있든, 그저 ‘프엉보이’ 이름을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나’라고 여기던 실체가 사실은 허구라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나의 참된 본성은 훨씬 더 진정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말한다.
베트남으로 돌아온 스님은 주민 자치마을인 ‘스스로 돕는 마을’을 다시 일궜다. 무능한 군부, 안일한 불교지도자들은 여전했다.
틱낫한 스님은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어떤 것도 갖지 말고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는다...군인들은 무기 은닉처와 해방 전사들과의 연결 고리를 모조리 없애버리기 위해 옛날 마을을 송두리째 불태워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조상의 집이 화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공포에 질린다. 그리고 소리치며 항의한다”면서 군부가 짓밟은 민초의 삶을 묘사했다.
스님은 희망을 잃지 않았다. ‘스스로 돕는 마을’을 묵묵히 일구고 지켰다.
스님은 “이 훌륭한 젊은이들은 많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내게 커다란 희망을 준다. 나는 그들 노력으로 혜택을 받은 제일 첫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사람들은 나에게 그들의 사랑과 인정 그리고 신뢰를 주고, 그것이 나의 꿈을 새롭게 한다. 자신의 선한 행위의 첫 번째 수혜자는 언제나 바로 자기 자신이다”고 말한다.
스님은 폭력과 죽음으로 얼룩진 전쟁과 탄압 속에서도 '무조건적인 사랑'을 강조한다.
“무상과 자아가 텅 비어 있음에도, 그토록 많은 잔혹함과 눈먼 야심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처럼. 마치 미워하는 법을 모르는 꽃처럼, 그저 삶의 순환 속에서 영원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풀과 새, 구름처럼."
스님은 "검은 진흙과 하얀 눈이 추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는 것을 보기 시작할 때 위대한 자비의 눈을 가질 수 있다. 그 눈으로 세상을 사랑으로 보자"고 말한다.
“만일 잔인하고 폭력적인 사람이 당신의 내장을 꺼내더라도 미소 지으라. 그리고 사랑으로 그를 바라보라.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든 것은 그의 교육, 그의 상황 그리고 그의 무지이다. 그를 보라. 당신을 파괴하기 위해 작정하고 덤벼든 자, 당신 위에 불의를 쌓아 올리는 자를 사랑과 자비의 눈으로 보라.”
젊은 틱낫한의 일기┃틱낫한 지음┃권선아 번역 ┃김영사┃1만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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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운도님. 부탁해유
한봄님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