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3.02.06 22: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금성당 명선 대종사 ‘조계종 원로회의장’ 엄수
6일 화엄사서 영결 및 다비식…2천 대중 배웅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대한불교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자 지리산 대화엄사 조실 금성당 명선대종사(金城堂 明煽大宗師)가 천화(遷化)했다.

금성당(金城堂) 명선대종사(明煽大宗師) 영결식 및 다비식은 6일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원로회의장(葬)으로 엄수했다.

영결식 및 다비장에는 2,000여 명의 불자들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명선 대종사는 2일 오전 4시5 9분 주석처인 여수 흥국사에서 법랍 70년, 세수 88세로 원적에 들었다. 대종사의 법구는 원적한 다음날인 3일 화엄사 화엄원에 설치한 분향소로 이운해 사부대중의 조문을 받았다.



영결식장에 법구를 이운하는 모습.



6일 오전 8시 화엄원을 나온 대종사의 법구는 산중 스님들이 일주문 밖으로 모셔 부도전에서 역대 조사들께 고별하고, 노제를 지낸 후 다시 천왕문 등을 지나 경내 영결 법요식단에 이운했다.

5번의 명종 소리가 지리산을 울렸다. 원로회의 사무처장 남전 스님의 사회로 엄수한 영결식은 개식-삼귀의를 봉행하고, 우인 스님의 집례로 영결 법요를 모셨다. 그 사이 문도대표가 차와 향을 올리고, 화엄사 선덕 종일 스님이 대종사의 행장을 소개했다. 영결법요는 행장 소개에 이어 추도입정,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의 영결사, 종정 성파 대종사의 법어, 총무원장 진우 스님 추도사(교육원장 혜일 스님 대독),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 조사(주앙종회의원 만당 스님 대독), 10·27법난대책위 부회장 원행 대종사의 조사, 달라리라마의 조사(진옥 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과 김영록 도지사의 조사,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의 조사가 이어졌다. 화엄사 연합합창단과 정율 스님이 찬불가로 대종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고, 헌화, 문도대표 인사말, 사총서원 발인 순으로 영결식을 회향했다.







장의위원장 학산 대종사(원로의장)는 “하늘과 허공이 놀라 떨어지고 리산은 슬피 눈물을 흘리니 명선 선사의 오온신이 천화하시는 소식이로다”라며 “도천 대종사의 슬하에서 출가한 스님께서는 뼈를 깎는 고행수련을 통해 깨달음을 성취하셨으며, 이사에 무애자재한 활달한 도량은 군마를 강복 받을 만한 무비독존(無比獨存)의 선승(禪僧)이셨다”고 했다.



영결사를 하는 원로의장 대원 대종사.



그러면서 “종단 발전에 헌신하셨고, 일생 불사와 수행정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은 만세에 길이 빛날 것이며, 모든 불자에게 염주와 포교로 보시한 자비의 공덕은 수미산보다 높고 향수해보다 넓고 깊으셨다. 스님께서 못다 한 불사는 이제 후학에게 남겨주시고 무위(無爲)의 적멸락(寂滅樂)을 누리시다가 불망본서속환사바(不忘本誓速還娑婆)하셔서 광도미륜(廣度迷倫)하소서.”고 추모했다.



종정법어를 대독하는 일면 대종사.



종정 성파 대종사는 “생사대사를 해결하기 위하여 발심출가하시고, 쉼 없는 정진으로 이사에 두루 밝으시고, 선•교에 걸림이 없는 대선지식이 되셨도다”라며 “수행과 교화에 모범을 보이셨고, 원력으로 소임에 진력하여 종단의 안정에 공로가 크시니 원력보살이 이 땅에 오심이로다!”라며 “금성당 명선대종사시여! 수행과 중생구제에 힘쓰시다 세상과의 인연이 다해 圓寂의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열반락(涅槃樂)을 누리시고 속환사바 보리군생(速還娑婆 普利群生) 하소서!”라고 설했다.



총무원장 추도사를 대독하는 교육원장 혜일 스님.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영취산의 산줄기는 지리산에 맞닿았고 두 산문의 길을 따라오고 가는 자리에 눈 밝은 선지식이 머물렀으니 바로 금성당 명선 대종사”라며 “늘 수행과 교화라는 두 개의 수레바퀴를 동시에 굴리셨고 지역불교와 중앙불교의 양 날개를 함께 펴셨으니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는 이 시대의 모범이요 만세의 귀감”이라고 했다.

이어 “스님의 가르침과 발자취는 후학들을 인도하는 등불과 죽비로 영원하실 것”이라며 “지리산처럼 높은 덕은 천추의 모범이요 남해바다처럼 넓은 정신은 만고에 귀감이라”고 추도했다.



종회의장 법어를 대독하는 만당 스님.



중앙종회의장 주경 스님은 “한평생 쇠락한 불교와 도량을 일신하셨고, 위법망구, 대작불사가 수미산에 이를 만한데도 아무 것도 한 것 없이 허송세월만 보냈다던 대종사님의 겸양지도(謙讓之道)는 오래도록 종문宗門에 남을 것”이라며 “이제 저희들은 대종사님이 일평생 열어놓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나가고자 한다. 공부와 정진을 이어가며 대종사님을 좇을 것”이라고 추도했다.



추도사를 하는 원행 대종사.



금성당 명선대종사는 1980년 10·27법난 당시 화엄사 주지로 교구본사주지 중 유일한 생존자였다. 지난해 10월 말 명선 대종사는 법난대책피해자위원회 주최 토론회에서 10·27법난을 회고하며 종단의 화합을 강조했었다.



추도사를 하는 밀운 대종사.



10·27법난 피해자대책위 부위원장 원행 대종사는 “43년전 10.27 불교법난당시 스님께서는 지리산 화엄사 주지로서 소승은 오대산 월정사 재무국장시절이었다.”며 “스님은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고, 불교종단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교단과 불자들의 조직된 힘을 깨우쳐 주셨다.”며 “겨우네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와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사 노란 복수초처럼 각황전 앞 홍매화 처럼 속환사바하소서”라고 추모했다.

전 원로의장 밀운스님, 달라이라마(여수 석천사 주지 진옥스님 대독), 윤석열 대통령 및 김영록 전남도지사 조사(문금주 행정부지사 대독),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등의 조사가 이어졌다.

밀운 대종사는 “스님, 밀운이 여기 왔오.저승길 힘들다던데 잘가시오. 거기 가시거든 너무 오래 있지 말고 딱 100일만 있다가 돌아오시오.”라고 조사했다.



달라이라마 조사를 대독하는 진옥 스님.



달라이라마는 “20여 년 전 명선 큰스님께서 다람살라를 방문하셨을 때 가까이에서 뵙고 종교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긴밀하게 의견을 나눈 것을 매우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면서 “큰스님께서 타인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사셨고, 의미 있는 큰스님의 삶은 우리 모두에게 귀감이 될 것”이라고 추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사를 보내 “대종사께서는 종단의 큰 어른으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고 불교 중흥을 위해 헌신하셨다.”면서 “부처님의 자비정신을 실천으로 보여주신 대종사님의 큰 원력이 이 세상에 미치지 않는 곳 없이 만방에 널리 퍼지기를 발원한다”고 추모했다.

김영록 전남도지사는 “대종사님께서는 ‘화합은 내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인내하고 기리며 꾸준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며 늘 화합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며 “대종사님의 가르침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사는 저희들에게 크나큰 울림”이라고 추모했다.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은 “스님을 보내야 하니 미혹한 저희 불자들에게 스님의 빈자리는 너무 크고 황량하여 가슴이 무너진다.”며 “스님께서 보여주신 염화미소의 본래면목과 대중화합의 깨우침을 잘 새겨서 무명중생들은 오늘도 수행하고 내일도 정진하겠다.”고 했다.



조사하는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화엄사 화엄문도회 문장 종국 스님은 문도를 대표해 “원근 각지에서 조문하고 영결식에도 참석해주신 원로 대덕 스님들에게 화엄문도회를 대표해 감사인사를 드린다”면서 “화엄문도회는 명선대종사의 유지를 잘 받들어 화합 단결하고 열심히 수행정진 하겠다”고 인사했다.

영결식 후 명선 대종사의 법구는 다비장으로 이운했다. 인로왕번을 선두로 명정-삼신불번-오방불번-십이불번-법성게-만장-영정-위패-법주-법구-문도-장의위원-비구-비구니-재가자 순으로 법구를 따랐고, ‘나무아무타불’ 염불이 화엄계곡에 퍼질 때 법구는 화엄사 연화대에 모셔졌다.









조가를 하는 정율 스님과 화엄사 연합합창단.



장의위원과 화엄사 주지 덕문 스님 등이 거화봉을 들었고, 사회자의 선창에 맞춰 “불 법 승”을 외친 뒤 “큰스님! 불 들어갑니다”라 고하며 법구를 안치한 연화대에 ‘착화’했다.

음력 정월 보름이 하루 지난 이날, 하늘은 푸르러 티끌 한 점 없이 청량했고, 조화와 조객들들이 둘러싼 연화대의 불은 치솟고 연기는 창공으로 흩어졌다.

명선 대종사의 49재는 2월 8일 화엄사에서 초재를 시작으로, 2재는 2월 15일 여수 흥국사, 3재는 2월 22일 곡성 태안사, 4재는 3월 1일 여수 흥국사, 5재는 3월 8일 담양 보광사, 6재는 3월 15일 여수 석천사, 49재 막재인 7재는 3월 22일 오전 10시 구례 화엄사에서 엄수한다.







이날 명선 대종사 영결식에는 원로의원 스님들이 대거 참석했다. 조계종 원로의장 대원 스님, 부의장 일면 스님, 원로의원 보선·법타·철응·원행 ·자광·도후·성오·정여 스님, 명예원로의원 밀운·혜승·암도 스님(호상) 등 전·현직 원로의원 스님들이 참석했다. 또 교육원장 혜일 스님, 전 포교원장 혜총 스님,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송광사 주지 자공 스님, 총무원 사회부장 범종 스님, 법규위원장 혜경 스님, 법계위원 기연 스님, 중앙종회의원 덕현·종봉·만당·우봉·정범 스님,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 일오 스님, 선등선원장 본해 스님 등 스님들이 참석했다.







재가자로는 문금주 전남도 행정부지사, 김회재 국회의원, 주승용 전 국회 부의장, 김순호 구례군수, 유시문 구례군의회 의장, 김수철 군의회 부의장, 선상원·이창호·양준식·문승옥 군의원, 박임규 구례경찰서장, 윤명수 국립공원관리공단 전남사무소장, 장길선 화엄사 신도회장, 김철희 흥국사 신도회장, 강윤구 광주전남포교사단장 등 사부대중이 스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