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04. 누군가 나에게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04. 누군가 나에게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3.13 1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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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어
마치 오늘 날씨 어때 하듯이
그런데 대답하던 난 대답하다 말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말도 끊어졌지

우울증 이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네
진료 차 물었을 뿐인데
주책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작가의 변
31년 전, 개봉동 개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강릉에 가면 울릉도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고속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더니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울진 인가 온천도 있는 관광지, 그리고 유명한 사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영사 사찰에도 들리고 뜻하지 않게 여관 같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포항으로 출발해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시내버스조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는 이미 초주검 상태였는데 울릉도에서 배 타고 울릉도 근해를 도는 배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평상복에 배낭만 둘러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다들 신혼부부인 줄은 어찌 아셨는지 다들 덕담 한마디씩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우수수 꾸러미처럼 딸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카더라 통신이나 책을 사서 봐야 정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실수 때문에 생긴 엉망진창 신혼여행이었던 울릉도 여행이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좀 더 길고 내륙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결혼하자마자 애가 들어서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임신 중독으로 죽을뻔한 아내, 이민하고도 아이들 기르느라 이민지라 말도 안 통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힘든 시절에 그래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던 날도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던 제주도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비행기라도 탓을 지도 모르는데, 울릉도로 신혼여행지를 잡고,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덕분에 제주도도, 경주조차 못 가봤다. 뭐 어디 제주도와 경주만 못 가봤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백제의 고도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부여 낙화암과 고분 등을 돌았다. 고등학교 때는 설악산과 동해안 일부를 수학여행으로 갔다 왔으니 사실 가본 곳 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군 생활을 경남 사천에서 한 덕분에 삼천포와 진주, 마산에서 부산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청주에서는 직업훈련원을 다니느라 있었고, 첫 직장이던 국제 종합 기계가 있던 옥천, 금강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다.

캐나다에도 평생 외국 한 번, 아니 다른 지방에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꽤 많더라. 내가 캐나다의 중부 지방인 사스케치완 주에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인데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한 번도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밴쿠버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안 가본 사람에게 밴쿠버를 뭐라고 설명할까? 밴쿠버는 스텐리 파크가 가장 큰 공원이고, 다운타운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고 아파트도 고층이 많다. 사스케치완 주에는 없는 바다가 있는 도시여서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게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 밴쿠버에는 동양인 비중이 높아서 중식, 일식, 한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의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유튜브에 지역 이름만 치면 자세하게 설명된 관광 안내를 보고 안 가봐도 가본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복 이음새 부분에 이가 있어서 옷을 벗어서 이를 잡을 때도 있었다. 머리에 이가 있어서 참빗으로 빗어서 없애거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려 잡기도 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이발소에서 하얀 가루를 머리 깎을 때 뿌리던데 그것이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발 기계에서 옮겨진 도장 버짐은 이발소에 갔다 온 뒤에 고생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이발소엔 얇은 수건이 있었는데 빨리 마르게 하려고 얇은 수건을 산 것인지 그 수건이 싸서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상고머리를 자르다가 심술이 나면 빡빡 밀어 버리기도 하고 스포츠머리라고 일명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더 어렸을 때 5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 살 때는 이발소도 없으니 동네 할아버지한테 늘 똑같은 머리를 깎았다. 의자에 앉으면 너무 낮으니 의자에 송판을 놓고 앉아 키를 높이기도 했다. 그 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대한통운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형과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와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여동생 순덕이와 막내동생 미옥이가 있었다. 머리 깎을 때만 아니고 평소에도 늘 그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을 먹기도 하고, 자고 다음 날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꽤나 귀찮게 굴었는데도 마치 그 집의 아들처럼 자주 왕래했었다. 지금은 가끔 그 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고 이민을 오고 하다 보니 연락할 길이 없어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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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어
마치 오늘 날씨 어때 하듯이
그런데 대답하던 난 대답하다 말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말도 끊어졌지

우울증 이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네
진료 차 물었을 뿐인데
주책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작가의 변
31년 전, 개봉동 개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강릉에 가면 울릉도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고속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더니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울진 인가 온천도 있는 관광지, 그리고 유명한 사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영사 사찰에도 들리고 뜻하지 않게 여관 같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포항으로 출발해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시내버스조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는 이미 초주검 상태였는데 울릉도에서 배 타고 울릉도 근해를 도는 배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평상복에 배낭만 둘러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다들 신혼부부인 줄은 어찌 아셨는지 다들 덕담 한마디씩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우수수 꾸러미처럼 딸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카더라 통신이나 책을 사서 봐야 정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실수 때문에 생긴 엉망진창 신혼여행이었던 울릉도 여행이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좀 더 길고 내륙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누군가 나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어
마치 오늘 날씨 어때 하듯이
그런데 대답하던 난 대답하다 말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말도 끊어졌지

우울증 이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네
진료 차 물었을 뿐인데
주책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작가의 변
31년 전, 개봉동 개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강릉에 가면 울릉도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고속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더니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울진 인가 온천도 있는 관광지, 그리고 유명한 사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영사 사찰에도 들리고 뜻하지 않게 여관 같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포항으로 출발해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시내버스조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는 이미 초주검 상태였는데 울릉도에서 배 타고 울릉도 근해를 도는 배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평상복에 배낭만 둘러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다들 신혼부부인 줄은 어찌 아셨는지 다들 덕담 한마디씩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우수수 꾸러미처럼 딸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카더라 통신이나 책을 사서 봐야 정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실수 때문에 생긴 엉망진창 신혼여행이었던 울릉도 여행이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좀 더 길고 내륙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결혼하자마자 애가 들어서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임신 중독으로 죽을뻔한 아내, 이민하고도 아이들 기르느라 이민지라 말도 안 통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힘든 시절에 그래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던 날도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던 제주도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비행기라도 탓을 지도 모르는데, 울릉도로 신혼여행지를 잡고,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덕분에 제주도도, 경주조차 못 가봤다. 뭐 어디 제주도와 경주만 못 가봤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백제의 고도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부여 낙화암과 고분 등을 돌았다. 고등학교 때는 설악산과 동해안 일부를 수학여행으로 갔다 왔으니 사실 가본 곳 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군 생활을 경남 사천에서 한 덕분에 삼천포와 진주, 마산에서 부산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청주에서는 직업훈련원을 다니느라 있었고, 첫 직장이던 국제 종합 기계가 있던 옥천, 금강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다.

캐나다에도 평생 외국 한 번, 아니 다른 지방에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꽤 많더라. 내가 캐나다의 중부 지방인 사스케치완 주에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인데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한 번도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밴쿠버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안 가본 사람에게 밴쿠버를 뭐라고 설명할까? 밴쿠버는 스텐리 파크가 가장 큰 공원이고, 다운타운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고 아파트도 고층이 많다. 사스케치완 주에는 없는 바다가 있는 도시여서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게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 밴쿠버에는 동양인 비중이 높아서 중식, 일식, 한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의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유튜브에 지역 이름만 치면 자세하게 설명된 관광 안내를 보고 안 가봐도 가본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복 이음새 부분에 이가 있어서 옷을 벗어서 이를 잡을 때도 있었다. 머리에 이가 있어서 참빗으로 빗어서 없애거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려 잡기도 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이발소에서 하얀 가루를 머리 깎을 때 뿌리던데 그것이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발 기계에서 옮겨진 도장 버짐은 이발소에 갔다 온 뒤에 고생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이발소엔 얇은 수건이 있었는데 빨리 마르게 하려고 얇은 수건을 산 것인지 그 수건이 싸서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상고머리를 자르다가 심술이 나면 빡빡 밀어 버리기도 하고 스포츠머리라고 일명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더 어렸을 때 5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 살 때는 이발소도 없으니 동네 할아버지한테 늘 똑같은 머리를 깎았다. 의자에 앉으면 너무 낮으니 의자에 송판을 놓고 앉아 키를 높이기도 했다. 그 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대한통운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형과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와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여동생 순덕이와 막내동생 미옥이가 있었다. 머리 깎을 때만 아니고 평소에도 늘 그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을 먹기도 하고, 자고 다음 날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꽤나 귀찮게 굴었는데도 마치 그 집의 아들처럼 자주 왕래했었다. 지금은 가끔 그 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고 이민을 오고 하다 보니 연락할 길이 없어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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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자마자 애가 들어서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임신 중독으로 죽을뻔한 아내, 이민하고도 아이들 기르느라 이민지라 말도 안 통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힘든 시절에 그래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던 날도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던 제주도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비행기라도 탓을 지도 모르는데, 울릉도로 신혼여행지를 잡고,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덕분에 제주도도, 경주조차 못 가봤다. 뭐 어디 제주도와 경주만 못 가봤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백제의 고도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부여 낙화암과 고분 등을 돌았다. 고등학교 때는 설악산과 동해안 일부를 수학여행으로 갔다 왔으니 사실 가본 곳 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군 생활을 경남 사천에서 한 덕분에 삼천포와 진주, 마산에서 부산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청주에서는 직업훈련원을 다니느라 있었고, 첫 직장이던 국제 종합 기계가 있던 옥천, 금강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다.

캐나다에도 평생 외국 한 번, 아니 다른 지방에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꽤 많더라. 내가 캐나다의 중부 지방인 사스케치완 주에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인데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한 번도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밴쿠버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안 가본 사람에게 밴쿠버를 뭐라고 설명할까? 밴쿠버는 스텐리 파크가 가장 큰 공원이고, 다운타운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고 아파트도 고층이 많다. 사스케치완 주에는 없는 바다가 있는 도시여서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게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 밴쿠버에는 동양인 비중이 높아서 중식, 일식, 한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의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유튜브에 지역 이름만 치면 자세하게 설명된 관광 안내를 보고 안 가봐도 가본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





누군가 나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어
마치 오늘 날씨 어때 하듯이
그런데 대답하던 난 대답하다 말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말도 끊어졌지

우울증 이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네
진료 차 물었을 뿐인데
주책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작가의 변
31년 전, 개봉동 개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강릉에 가면 울릉도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고속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더니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울진 인가 온천도 있는 관광지, 그리고 유명한 사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영사 사찰에도 들리고 뜻하지 않게 여관 같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포항으로 출발해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시내버스조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는 이미 초주검 상태였는데 울릉도에서 배 타고 울릉도 근해를 도는 배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평상복에 배낭만 둘러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다들 신혼부부인 줄은 어찌 아셨는지 다들 덕담 한마디씩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우수수 꾸러미처럼 딸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카더라 통신이나 책을 사서 봐야 정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실수 때문에 생긴 엉망진창 신혼여행이었던 울릉도 여행이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좀 더 길고 내륙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결혼하자마자 애가 들어서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임신 중독으로 죽을뻔한 아내, 이민하고도 아이들 기르느라 이민지라 말도 안 통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힘든 시절에 그래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던 날도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던 제주도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비행기라도 탓을 지도 모르는데, 울릉도로 신혼여행지를 잡고,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덕분에 제주도도, 경주조차 못 가봤다. 뭐 어디 제주도와 경주만 못 가봤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백제의 고도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부여 낙화암과 고분 등을 돌았다. 고등학교 때는 설악산과 동해안 일부를 수학여행으로 갔다 왔으니 사실 가본 곳 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군 생활을 경남 사천에서 한 덕분에 삼천포와 진주, 마산에서 부산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청주에서는 직업훈련원을 다니느라 있었고, 첫 직장이던 국제 종합 기계가 있던 옥천, 금강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다.

캐나다에도 평생 외국 한 번, 아니 다른 지방에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꽤 많더라. 내가 캐나다의 중부 지방인 사스케치완 주에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인데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한 번도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밴쿠버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안 가본 사람에게 밴쿠버를 뭐라고 설명할까? 밴쿠버는 스텐리 파크가 가장 큰 공원이고, 다운타운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고 아파트도 고층이 많다. 사스케치완 주에는 없는 바다가 있는 도시여서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게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 밴쿠버에는 동양인 비중이 높아서 중식, 일식, 한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의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유튜브에 지역 이름만 치면 자세하게 설명된 관광 안내를 보고 안 가봐도 가본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복 이음새 부분에 이가 있어서 옷을 벗어서 이를 잡을 때도 있었다. 머리에 이가 있어서 참빗으로 빗어서 없애거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려 잡기도 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이발소에서 하얀 가루를 머리 깎을 때 뿌리던데 그것이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발 기계에서 옮겨진 도장 버짐은 이발소에 갔다 온 뒤에 고생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이발소엔 얇은 수건이 있었는데 빨리 마르게 하려고 얇은 수건을 산 것인지 그 수건이 싸서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상고머리를 자르다가 심술이 나면 빡빡 밀어 버리기도 하고 스포츠머리라고 일명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더 어렸을 때 5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 살 때는 이발소도 없으니 동네 할아버지한테 늘 똑같은 머리를 깎았다. 의자에 앉으면 너무 낮으니 의자에 송판을 놓고 앉아 키를 높이기도 했다. 그 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대한통운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형과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와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여동생 순덕이와 막내동생 미옥이가 있었다. 머리 깎을 때만 아니고 평소에도 늘 그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을 먹기도 하고, 자고 다음 날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꽤나 귀찮게 굴었는데도 마치 그 집의 아들처럼 자주 왕래했었다. 지금은 가끔 그 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고 이민을 오고 하다 보니 연락할 길이 없어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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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복 이음새 부분에 이가 있어서 옷을 벗어서 이를 잡을 때도 있었다. 머리에 이가 있어서 참빗으로 빗어서 없애거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려 잡기도 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이발소에서 하얀 가루를 머리 깎을 때 뿌리던데 그것이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발 기계에서 옮겨진 도장 버짐은 이발소에 갔다 온 뒤에 고생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이발소엔 얇은 수건이 있었는데 빨리 마르게 하려고 얇은 수건을 산 것인지 그 수건이 싸서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상고머리를 자르다가 심술이 나면 빡빡 밀어 버리기도 하고 스포츠머리라고 일명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더 어렸을 때 5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 살 때는 이발소도 없으니 동네 할아버지한테 늘 똑같은 머리를 깎았다. 의자에 앉으면 너무 낮으니 의자에 송판을 놓고 앉아 키를 높이기도 했다. 그 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대한통운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형과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와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여동생 순덕이와 막내동생 미옥이가 있었다. 머리 깎을 때만 아니고 평소에도 늘 그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을 먹기도 하고, 자고 다음 날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꽤나 귀찮게 굴었는데도 마치 그 집의 아들처럼 자주 왕래했었다. 지금은 가끔 그 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고 이민을 오고 하다 보니 연락할 길이 없어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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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에게
지금 너의 마음이 어떠냐고 물었어
마치 오늘 날씨 어때 하듯이
그런데 대답하던 난 대답하다 말고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말도 끊어졌지

우울증 이래
약을 먹어야 할 것 같다네
진료 차 물었을 뿐인데
주책이지 눈물을 글썽이고.


#작가의 변
31년 전, 개봉동 개봉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강릉에 가면 울릉도 가는 여객선이 있다는 정보를 믿고 고속 터미널에서 강릉행 고속버스를 타고 강릉에 갔더니 강릉에서 울릉도 가는 배는 없었다. 기억이 가물거리는데,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내려가 울진 인가 온천도 있는 관광지, 그리고 유명한 사찰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불영사 사찰에도 들리고 뜻하지 않게 여관 같은 호텔에서 첫날밤을 보냈다. 다음 날, 포항으로 출발해서 포항에서 울릉도 가는 배를 탔다. 시내버스조차 멀미를 심하게 하는 아내는 이미 초주검 상태였는데 울릉도에서 배 타고 울릉도 근해를 도는 배에서 금방 잡은 생선을 회를 떠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게 주었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평상복에 배낭만 둘러매고 다니던 우리에게 다들 신혼부부인 줄은 어찌 아셨는지 다들 덕담 한마디씩 했었다.

지금은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정보가 우수수 꾸러미처럼 딸려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카더라 통신이나 책을 사서 봐야 정보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실수 때문에 생긴 엉망진창 신혼여행이었던 울릉도 여행이지만 그래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좀 더 길고 내륙까지 둘러볼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결혼하자마자 애가 들어서고 입덧으로 고생하고 임신 중독으로 죽을뻔한 아내, 이민하고도 아이들 기르느라 이민지라 말도 안 통하고 이야기할 사람도 없어 힘든 시절에 그래도 야외에서 바비큐를 먹던 날도 있었네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 가던 제주도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비행기라도 탓을 지도 모르는데, 울릉도로 신혼여행지를 잡고, 그리고 임신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덕분에 제주도도, 경주조차 못 가봤다. 뭐 어디 제주도와 경주만 못 가봤을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대한민국에서 자랐지만, 중학생 때 수학여행으로 백제의 고도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부여 낙화암과 고분 등을 돌았다. 고등학교 때는 설악산과 동해안 일부를 수학여행으로 갔다 왔으니 사실 가본 곳 보다 안 가본 곳이 더 많다. 그래도 군 생활을 경남 사천에서 한 덕분에 삼천포와 진주, 마산에서 부산까지 뻔질나게 돌아다닌 것 같다. 청주에서는 직업훈련원을 다니느라 있었고, 첫 직장이던 국제 종합 기계가 있던 옥천, 금강의 기억이 아주 어렴풋하다.

캐나다에도 평생 외국 한 번, 아니 다른 지방에 한 번 안 가본 사람도 꽤 많더라. 내가 캐나다의 중부 지방인 사스케치완 주에 일할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 물었다. 나이 많은 아주머니인데 영국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한 번도 다른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밴쿠버 이야기를 더 들려주기를 바랐다. 밴쿠버에 안 가본 사람에게 밴쿠버를 뭐라고 설명할까? 밴쿠버는 스텐리 파크가 가장 큰 공원이고, 다운타운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많고 아파트도 고층이 많다. 사스케치완 주에는 없는 바다가 있는 도시여서 바닷가를 걸으면서 바닷바람을 맞는 게 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등의 이야기와 밴쿠버에는 동양인 비중이 높아서 중식, 일식, 한식, 태국식, 베트남식 등의 다양한 식당에서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 물론 요즘에야 유튜브에 지역 이름만 치면 자세하게 설명된 관광 안내를 보고 안 가봐도 가본 것처럼 말할 수도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 내복 이음새 부분에 이가 있어서 옷을 벗어서 이를 잡을 때도 있었다. 머리에 이가 있어서 참빗으로 빗어서 없애거나 머리를 빡빡 밀어 버려 잡기도 했다. 지금도 궁금한 것은 이발소에서 하얀 가루를 머리 깎을 때 뿌리던데 그것이 혹시 이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발 기계에서 옮겨진 도장 버짐은 이발소에 갔다 온 뒤에 고생하는 코스 중 하나였다. 이발소엔 얇은 수건이 있었는데 빨리 마르게 하려고 얇은 수건을 산 것인지 그 수건이 싸서 산 것인지는 모르겠다. 늘 상고머리를 자르다가 심술이 나면 빡빡 밀어 버리기도 하고 스포츠머리라고 일명 깍두기 아저씨들처럼 머리를 자르기도 했었다.

더 어렸을 때 5가구밖에 없는 작은 동네에 살 때는 이발소도 없으니 동네 할아버지한테 늘 똑같은 머리를 깎았다. 의자에 앉으면 너무 낮으니 의자에 송판을 놓고 앉아 키를 높이기도 했다. 그 집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 대한통운에 다니던 아버지, 그리고 형과 나와 나보다 두 살 많은 친구와 나보다 한 살 아래였던 여동생 순덕이와 막내동생 미옥이가 있었다. 머리 깎을 때만 아니고 평소에도 늘 그 집에 가서 놀다가 밥을 먹기도 하고, 자고 다음 날 집에 내려가기도 했다. 집도 얼마 떨어지지 않았는데 꽤나 귀찮게 굴었는데도 마치 그 집의 아들처럼 자주 왕래했었다. 지금은 가끔 그 집 식구들이 보고 싶다. 물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아버지와 어머니도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다.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고 이민을 오고 하다 보니 연락할 길이 없어진 친구들.

그 친구들을 보면 마치 거울을 보듯 어린 시절이 떠오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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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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