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학원 영주 관음사를 창건한 법해당 도기(法海堂 度奇) 대종사 열반 10주기를 맞아 스님의 삶과 유훈을 기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영주 관음사(분원장 원명)는 10월 26일 오전 10시 경내 원통보전에서 ‘관음사 창건주 법해당 도기 대종사 10주기 추모 법회’를 봉행했다.
이날 추모법회는 1부 ‘영반’, 2부 ‘법회’, 3부 ‘사리탑 참배’로 나뉘어 진행됐다.
관음사 분원장 원명 스님은 추모법어에서 “오늘은 관음사를 창건하고 영주뿐만 아니라 한국 땅 전체를 포교와 교육의 무대로 삼아 한평생 광도중생(廣度衆生)하신 도기 큰스님이 열반하신 지 10주기가 되는 날”이라며, “불교는 인과응보와 윤회전생을 믿는 종교이니 도기 스님은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도기 스님이 영육을 불살라 창건한 이 관음사 도량에 어찌 다시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도기 스님은 천수관음보살처럼 수많은 손을 가지고 이 세상에 다시 오셔서 10살 어린이 모습으로 영주 땅 어디선가에서 자라고 있을 것”이라며, “진리의 대왕 도기 스님이시어. 열 살 도기 스님으로 오시어 25년 뒤 세상 최고의 명문대학, 절집안 최고의 사찰에 출가하시어 이법계(理法界), 사법계(事法界) 두루 통달하시고 관음사 주지로 꼭 다시 오십시오”라고 법문했다.
김영진 관음사 고문은 “오늘 추모법회는 큰스님의 생전 모습을 기억하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자리라 매우 뜻깊다”며,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고 시장을 두 번 지낸 동안 도기 큰스님께서 지도해주셨던 여러 가지 말씀과 정신을 간직하고 활동했다”고 회고했다.
김 고문은 이어 국가보훈 대상자들이 지원 중단으로 국가로부터 도움을 받지 못할 때 도기 스님이 도와준 일을 소개하고, “도기 큰스님이 환생하시어 다시 이 관음사를 크게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호 관음사 화랑호국인성학교장은 “도기 큰스님은 어려움을 겪는 신도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서 함께 걱정하고 도와주시며 일을 해결해 주려고 노력하셨던 분”이라며, “도기 큰스님은 자기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생각하면서 자기 고난을 극복하며 사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정 학교장은 이어 “저도 큰스님을 믿고 의지하며 불사에 종사하며 생활해왔지만 살아생전에는 훌륭한 분이신 것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며, “도기 큰스님은 부처님의 큰 뜻을 실천하신 대선사이셨고, 생활 속에서 불심을 깨우쳐 주신 큰 선물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추모법회에는 관음사 분원장 원명 스님과 지장사 해동 스님, 원학사 보성 스님, 천룡사 주지 지덕 스님, 도기 스님의 여동생 김만영 보살, 김진영 관음사 고문, 전동호 화랑호국인생학교장, 홍재명 포교사단 경북북부총괄팀장, 이찬우 전 관음사 청년회장 등 사부대중 50여 명이 참석했다.
도기 스님은 영주시 평은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불발탄 사고로 두 손과 시력을 잃은 스님은 관음기도 중 두 눈이 회복되는 가피를 받고 영천 은해사 혜국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76년 영주 관음사를 창건한 스님은 9평 법당과 요사채 뿐이었던 관음사를 영주지역 대표사찰로 가꿨다. 스님은 “어린이 마음이 바로 천진불이다. 어린이 마음에 불심을 심어 주는 것이 포교의 첩경”이라며 어린이 포교에 각별한 공을 들였다.
스님의 원력으로 관음사는 영주에서 처음으로 어린이회, 중·고등학생회, 대학생회, 청년불자회를 창립해 운영했다.
스님은 군부대와 교도소 포교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1980년 36사단 사단장으로 부임한 유상종 장군과 협력해 군법당 화랑정사를 지었고, 1999년엔 영주 이산부대에 호국정사를 세워 군불교 요람으로 가꿨다. 전몰장병 위령재도 30년 가까이 봉행했으며, 청송교도소와 안동교도소 교화위원으로 30여 년간 수형인 교화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