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사찰의 사천왕상 8건과 일주문 6건이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10월 26일 “17세기 사천왕상(四天王像) 8건을 30일간의 예고 기간을 거쳐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사천왕상은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이다. 이중 보물 ‘영광 불갑사 불복장 전적’에 포함돼 있던 사천왕사 복장전적은 사천왕상과 함께 일괄 보존·관리하기 위해 기존 목록에서 해제해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 및 복장전적’이라는 이름으로 지정했다.
사천왕상을 보물로 지정한 기준은 △17세기 중엽 이전 작품으로 전란 이후 재건불사나 불교 중흥과 관련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품 △17세기 후반 작품으로 구성이 완전하고, 전하는 과정에서 변형이나 왜곡이 적으며, 시대성 또는 작가의 유파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으로 동일 유파의 작품 중 가장 확실하고 대표성 있는 작품이다.
‘구례 화엄사 소조사천왕상’과 ‘여수 흥국사 소조사천왕상’은 전란 이후 벽암 각성(碧巖 覺性)과 계특(戒特) 대사가 사찰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조성한 것이다. 의자에 걸터앉은 모습의 의좌형 사천왕상이다. 두 사천왕상 모두 발밑에 악귀 등 생령이 없는 점이 특징이다.
‘보은 법주사 소조사천왕상’도 전란 이후 벽암 각성이 주요 전각을 순차적으로 중창하는 과정에서 조성한 것이다. 현재 전하는 사천왕상 중 드문 입상이다. 발 밑 생령이 청나라와 조선 관리인 것이 특징이다. 병자호란의 치욕을 극복하고 조선의 탐관오리에게 종교적 감계(鑑戒)와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추정돼 사회사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김천 직지사 소조사천왕상’은 완주 송광사를 근거로 활동하던 단응(端應)과 그의 유파 조각승인 탁밀(卓密), 경원(敬遠), 사원(思遠), 법청(法淸) 등을 초청해 현종 6년(1665) 조성한 것이다. 조선 후기 사천왕상으로는 드물게 발원문이 발견되었고, 방위가 적힌 묵서도 함께 확인돼 그동안 논란이 분분했던 각 천왕의 방위를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또 호남과 영남 조각승의 불상 조성과 교류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교조각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고흥 능가사 목조사천왕상’은 17세기에 조성된 가장 이른 시기의 목조사천왕상이다. 현종 7년(1666)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성적인 신체 비례, 곧은 자세에 정면을 향한 무표정한 얼굴, 단순하고 평면적인 보관 등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영광 불갑사 목조사천왕상’은 원래 연기사에 있던 것으로 절이 폐사되면서 고종 13년(1876) 불갑사로 옮겨졌다. 여러 편의 나무 조각을 접목해 전체적인 형태를 만들었지만 머리카락이나 세부장식, 양감이 필요한 부분은 흙으로 정교하게 제작해 소조상에서 목조상으로 전환되는 과도기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홍천 수타사 소조사천왕상’은 강원도에 현전하는 유일한 사천왕상이자 우리나라 최북단 사천왕상이라는 점에서 조각사적으로 중요하다. 사적기 기록으로 숙종 2년(1676) 여담(汝湛) 스님이 조성했음을 알 수 있어 시대 편년의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현전 사천왕상 중 세부 표현이 가장 섬세하다.
‘공주 마곡사 소조사천왕상’은 숙종 9년(1683)에 조성된 작품으로 사천왕상 편년 연구에 기준이 되는 작품이다. 소조기법으로 조성되었으며, 직지사와 마곡사, 예천 용문사 소조사천왕상으로 이어지는 단응계 사천왕상 양식의 변화와 흐름을 연구할 수 있는 자료다. 17세기 사천왕 도상, 조각 유파의 활동 범위와 동향, 불상의 조성 방식과 순서 등 다양한 방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문화재청은 또 10월 27일 “‘합천 해인사 홍하문’ 등 사찰 일주문 6건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보물로 지정된 일주문은 △합천 해인사 홍하문 △함양 용추사 일주문 △곡성 태안사 일주문 △하동 쌍계사 일주문 △달성 용연사 자운문 △순천 송광사 조계문이다.
사찰 건축물은 그동안 불전 위주로 지정돼 지난해 ‘순천 선암사 일주문’ 등 4건이 보물로 지정하기 전까지 ‘부산 범어사 조계문’이 유일했다. 이번 일주문 6건에 대한 보물 지정은 지난해 지정된 일주문 4건과 마찬가지로 지난해부터 전국 사찰 일주문 50여 건을 대상으로 실시한 일괄 조사의 결과이다.
‘합천 해인사 홍하문’은 다포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맞배지붕 일주문은 정면 공포가 다섯 개인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 일주문은 6개여서 상대적으로 웅장하다. 세조의 지원으로 해인사를 확장할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함양 용추사 일주문’은 숙종 37년(1711) 건립됐다. 원래 장수사 일주문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절이 불타면서 산내 암자였던 용추사 일주문으로 사용되고 있다.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곡성 태안사 일주문’은 중종 16년(1521) ‘조계문(曹溪門)’으로 창건됐다. 상량문에 태종의 둘째 아들 효령대군의 수결(서명)이 남아있다. 주기둥 상부 안쪽에 사실적으로 표현된 용두가 설치돼 있다.
‘하동 쌍계사 일주문’은 인조 19년(1641)에 건립됐다. 다포양식의 팔작지붕 겹처마 건물이다. 공포가 정면 5개, 전체 14개인데, 측면 규모가 큰 편이다.
‘달성 용연사 자운문’은 숙종 21년(1695)에 창건됐다. 상량문과 중수기가 남아있어 건축연대와 중수연대가 확실하다. 우진각 지붕틀을 구성한 뒤 맞배형 덧지붕을 씌워서 건축한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이다. 주기둥 부재가 아래 부분에서 벌어지는 비스듬한 형태인 것이 특징이다.
‘순천 송광사 조계문’은 순조 2년(1802) 중창됐다. 헌종 8년(1842) 큰 화재로 송광사 전각 대부분이 불탔을 때도 건재했다. 다포식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주기둥 안쪽 윗부분에 용두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