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생각하는 것이지만, 불교 행사에서만큼은 불자들이 주인공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특히 부처님오신날에는 유명짜한 사람보다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발굴하여 대중 앞에서 칭찬했으면 좋겠다. 스님들만이 아니다. 저기 시골 조그만 절에서 홀로 부처님 마지 준비하고, 스님에게 삼시세끼 공양 준비하고, 초하루 보름에는 오시는 불자들에게 비빔밥이나 국수를 정성껏 드리는 후원보살님을 받들어 올리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2024년 대한불교조계종의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는 예년과 다름없이 실망만 안겨줬다. 특히 현직 대통령이 종정, 원로의장, 총무원장 등 증명법사와 함께 입장하는 의전에 이르러서는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속세의 벼슬이 어떠하던 법의 안목으로 볼 때는 다만 중생일 뿐일텐데 어찌 증명법사와 동등한 지위가 되었는지 당혹스럽다. 봉축 법요식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처음인 것으로 안다.
윤석렬 대통령의 헌등에 이어 서울시장이 헌과 순서에 참여했다. 가톨릭 세례명 스테파노인 오세훈 시장의 참석이 조계종 지도부에게는 감격스러운 일이었을까? 불교계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2월 23일 송현공원에 이승만기념관을 짓겠다고 평지풍파를 일으킨 인물이다. 아직 이승만기념관 건립 철회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없다.
주가조작과 양평 땅투기 등으로 특검 대상이 되어야 하는 김건희 여사는 5개월째 공개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그녀가 이번 부처님오신날을 재등장의 계기로 삼았다는 소문이 있다. 전날까지 행사 시나리오에는 김건희 여사의 헌등 순서가 들어있었다. 그러나 여론이 너무 나쁜 탓에 한발 물러서 행사 후 봉은사 오찬에만 참석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결국에는 그마저 포기했지만.
진우 총무원장은 사리반환과 관련해 김건희여사의 공덕을 한껏 칭찬했다. 하지만 벌써 십수년째 사리반환을 위해 애쓴 많은 이들이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김건희여사는 숟가락 하나 얹은 것이고. 김건희여사는 재등장의 기회로 부처님오신날을 포기한 대신 19일의 회암사 사리이운행사에 등장할 것이라고 한다. 불교는 김건희여사의 정치적 재등장에 카페트를 깔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법요식 후에 윤석렬 대통령은 진우 총무원장 스님에게 ”봉은사까지 모시겠다“며 대통령 전용차에 함께 타기를 권했다. 경찰이 모든 신호를 조작하여 조계사에서 봉은사까지 막힘없이 단숨에 달려갔다. 자승 전원장을 대신해서 불교의 대표상징을 진우 총무원장이 이어받는 모양새다. 봉축법요 후 봉은사에서 오찬까지 자승전원장의 일정을 그대로 따라했다.
이번 봉축법요식에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유족의 참석을 불허했다, 보안검색대가 사방에 설치되어 불자들의 불편은 여전했다. 불자들이 주인이어야 할 부처님오신날에 불자들은 들러리가 된 셈이다.
봉은사 오찬을 마치고 공개된 기념촬영 사진에는 전국회의원 이은재씨가 등장한다. 그녀는 기독교와 천주교에서 각각 세례를 받았고 자승 전원장에게 법명도 받음으로써 3개 종교를 모두 가진 정치인이다. 모든 종교를 다 가진 사람에게 불심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총선참패로 벼랑에 몰린 용산 윤석렬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국힘당은 부처님오신날을 이미지 세탁의 기회로 삼은 모양이다. 마치 자신들이 봉축행사의 주인공인양 나대는 그 장단에 놀아나는 불교도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