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 마라톤, 주짓수, 셔틀 런, 코어 머슬, .....’
낙산사에서 열린 ‘나는 절로’ 참가자들이 저마다 자신을 소개하는 인사와 취미를 말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취미는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저마다의 노력, 자기 관리였다. 아마도 경쟁의 삶 속에서 버텨야 하는 우리 시대 젊은이의 흔적이라 생각됐다. 혼자이기에 스스로 지켜야 했던 건강, 스스로 해결해야 했던 저마다의 고민을 지고 나의 미래에 대한 변화를 담고자 하나가 아닌 둘의 새로움에 다가선 한 미혼여성, 직녀 그리고 미혼 남성, 견우는 낙산사에서 칠월칠석(음력 7월 7일)을 맞이하고 있었다.
‘지치고 힘들면 나를 불러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 속에 나의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게 행복이라는 두 글자’
자신을 소개하는 한 직녀의 인사 속에는 수줍은 웃음이 작게 울려 사중의 분위기를 흔들었다. 모두가 웃고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 시작된 것이다.
1,500여 명의 미혼 남녀가 ‘나는 절로’ 낙산사 행사에 신청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30대 여성과 남성 각각 10명이 더운 여름의 끝, 칠월 칠석을 앞두고 낙산사를 찾았다. 서울에서 함께 출발하며 서로 마주한 모습은 멋쩍은 모습이었으나 견우는 직녀의, 직녀는 견우의 옆에 앉아 ‘불편함은 없는지?’라는 시선 속에 작은 배려의 다가섬은 이미 시작하고 있었다.
칠월칠석은 두 별이 은하수를 가운데에 두고 긴 시간, 바라보던 먼 공간을 좁히며 서로 다가서 만남의 인연에 이르는 설화를 가지고 있다. 바로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다, 두 선남자 선여인의 만남은 오작교에서 이루어진다. 새로운 인연의 시작이다. 이야기를 현실의 공간으로 옮겨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동해 관음기도의 성지 낙산사에서 ‘나는 절로’ 청춘 프로그램을 펼쳤다. 이날 행사는 청춘 남녀, 견우와 직녀의 자기소개로 시작했지만 이내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암울한 강의로 이어졌다.
‘한 여자가 가임기간(15~49세)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 합계출산율 0.778명’
‘14세 이하의 유소년 인구 100명에 대한 65세 이상의 인구비, 노령화 지수 181.2명’
젊은 견우와 직녀의 인연은 결혼과 출산이라는 사회적 숙제 그리고 기대가 더해지는 순간이다. 하지만 나의 삶을 변화시키고 솔로가 아닌 커플의 새로움에 다가서는 젊은 청춘에게 사회적 현안은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은 아닌가? 아니 그동안 이들에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지금 우리 사회의 삶은 건강한가? 라는 의문이 피어났다.
강의를 듣는 내내, 나이 50을 넘긴 나에게 부끄러움이 다가왔다. 그저 일하고 가정을 꾸리고 세금을 내며 바삐 살았지만 바로 앞에 놓인 현실, 그리고 현실을 담아 미래를 그려야 하는 그 누군가에게 오늘은 어렵고 힘든 자리라는 느낌 또한 떠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 나를 위로하는 것은 나 또한 연기적 존재의 일부라는 안일한 면책의 어리석은 교리 해석일 뿐이었다.
휴식 시간, 잠시 문을 열어 공기를 환기했다. 앞선 시간을 과거의 순간으로 밀어버리는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참다운 지혜인 모양이다. 웃음기 사라진 얼굴을 서로 마주 보는 견우와 직녀에게는 나보다도 상대자를 걱정하는 자비의 눈빛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서로를 알기 위해 함께 몸과 마음을 열어 ‘다름’보다는 ‘같음’이라는 가치를 살피고 이를 키우기 위한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었다. 견우와 직녀는 그동안 서로의 외모를 살폈다면 이제 서로의 말과 생각을 담아 나와 같이 할 수 있다는 작은 기회를 모색할 것이다. ‘함께 함’의 행복한 가치를 찾아 키우는 레크리에이션은 이내 직녀들의 견우 선택, 그리고 둘만의 저녁 시간으로 이어진다. 함께 했던 자리를 떠나 하나가 둘이 되어 노을의 긴 그림자가 보호하는 두 인연의 발걸음은 취재진의 질문과 대답 속에 수줍은 진실의 웃음을 더해 가볍고 밝다.
“왜 이 남자, 견우를 선택하였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왠지 나를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 아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이 좋았던 것 같아요.”
“직녀로부터 첫 번째 선택을 받으셨는데 어떠셔요?”
“몇 번 눈을 마주치기는 했지만, 그 눈빛 속에 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 했거든요. 좋은 저녁 시간을 만들어야죠”
한 공간에서 함께 한 시간은 거리를 좁히고, 이야기를 나누는 서로의 눈빛은 상대방을 담는 마술의 힘이 있는 모양이다. 함께 타고 온 버스에서 내리던 견우와 직녀에게는 설렘으로 다가서 채워야 할 ‘나는 절로’의 일정은 오직 앞만 보게 하였다. 하지만 지금, 저녁 공양으로 향하는 이들은 앞을 보지만 옆을 배려하는 맞춤의 설렘이 더해져 있다. 이를 지긋이 바라보는 관계자와 취재진의 설렘은 이내 웃음으로 피어나고 있다. 이어 선남자, 선여인은 한복으로 갈아입고 저녁노을을 맞이하는 견우와 직녀가 되어 낙산사 해수 관음보살 앞에 섰다. 저녁노을은 온화한 기운으로 견우와 직녀를 감싸고, 이를 굽어보던 관음보살의 두 볼은 노을빛에 붉어졌다. 그리고 저마다의 핸드폰은 이 순간을 낚아 담기에 바쁘다. 그렇게 한 순간은 저마다의 가슴에 웃음과 설렘으로 채워지는 모양이다. 저녁 공양에 이어 서로의 진면목을 찾는 여실지견(如實知見)의 자리가 펼쳐졌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대일 차담이다. 견우는 10명의 직녀와 직녀는 10명의 견우와 자리를 옮기며 차담을 이어갔다. 그리고 다시 견우들의 직녀 선택이 서로만 아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밤하늘 오작교를 걷듯이 늦은 밤, 사찰의 내음을 더한 데이트가 이어졌다. 그들의 속삭임은 붉은 저녁노을 담아 내일의 태양으로 떠오를 것이다. 지난밤, 이야기 속에 설렘을 다가섬으로 극복했듯이 서로의 다름은 이해 속에 공감의 가치로 태어날 것이다.
사찰의 공간 또한 다름을 잉태하고 그 다름을 새로움으로 펼치는 순간이기에 낙산사, ‘나는 절로’는 그 역할을 더해 새로운 공간으로 다가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의 씨앗이 아침 소식이 되어 널리 전해졌다. 6쌍의 커플이 ‘나는 절로’에서 ‘이제 둘이’의 길을 걷는다는 소식이다.
보고 느낀 1박 2일의 시간, 그 무엇 하나 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사찰이라는 공간에 새로움을 더하는 신선함이 사찰 문화의 미래였으며 하는 서원을 담았다. 그리고 동참한 견우와 직녀들에게 감사하다는 마음을 행복이라는 두 글자에 담아 기원의 두 손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