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하순 크리스마스 앞두고 아테네에 다시 도착했다.
드디어 유럽대륙의 대장정이 시작된다. 아테네에서 출발하여 동유럽국가들을 걸은 후 2020년 여름방학에 독일을 거쳐 알프스를 넘은 후 로마 바티칸에 이르는 계획이다. 지도상으로는 12개국 약3500km. 도착후 실제로 걸은 거리를 셈해 보니 약3200km다.
2017년 봄 출발때 역사문화학자인 조승래교수는 생명탈핵실크로드의 의의를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국민국가를 넘어선 세계시민'의 정신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설파하였다.
필자에게 뿌듯함을 선사한 '스토아'의 어원을 살펴보니 공공건물의 기둥을 뜻한다. 그리스철학의 융성기에 이런 장소에서 웅변을 토하며 학설을 논의하던 전통에 의해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스토아학파는 우주 만물은 동질이며 상호 밀접하게 관련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스토아의 사람들은 종종 "인간은 우주라는 큰 도시의 시민(코스모폴리티스)이다"라고 주장한다.
이 아고라에서 그리스철학이 융성하던 시기가 대략 2600년전~2300년전이다. 이 사진을 보니 인도 순례때 본 2500년전 불교사원 사르나트가 연상된다.
생명탈핵실크로드 순례일지 [244] 2018-01-01 Sarnath
그러고 보니 공자님도 그때쯤이다. 기원전 2500년전후의 당시에 지구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인류의 DNA를 자극하는 뭔가의 우주적 임팩트가 있었던 것일까?
이 아고라 광장에서 민중이 모여 직접민주주의를 구현하던 그리스다. 직접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의사결정과 집행에 있어서는 지금의 민주주의와 질적인 차이가 있다. 그 차이는 선출제가 아닌 추첨제에 있다.
를 적극 활용하였다.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 기사가 있다.
[옥천신문]고대 그리스인들의 지혜 '추첨제 민주주의'
기사글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테네 행정부를 구성했던 700명 가운데 600명 정도가 추첨을 통해 뽑혔다. 시민들의 대표 기구인 평의회 위원 500명 역시 추첨으로 선발했다. 사법부에 해당하는 헬리아스타이에 참여할 배심원 6천명 역시 추첨으로 뽑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선거라는 방식으로 대표자를 선출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더 많은 부분에서 추첨제가 일반적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같은 추첨제 민주주의 방식을 200년간 유지했다."
엄청난 기간을 추첨제로 운영한 것이다. 어째서일까?
"600명을 뽑는 행정관을 예로 들어보면 이들의 임기는 1년이었다. 일생동안 다른 행정직에 임명될 수는 있었지만 동일한 직책을 두 번 이상 할 수는 없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연임은 불가능했다.
~그리스 시민들은 임기가 끝난 후에는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고 잘못했을 경우 탄핵은 물론,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문에 행정관이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그 모든 시험을 통과하기 위한 자기검열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제비뽑기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고 반대로 행정관이 되고자 한 사람들은 언젠가는 추첨이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일상적으로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책임이 따르는 추첨제다. 엄격한 자기검열이 수반되는 추첨제니까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 대의제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선거로 뽑힌 이들은 유권자 배신하기를 밥먹듯 한다. 지금 2년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는 윤석열김건희 사태도 물론이거니와, 최근에는 국회의장 선출때 국회의원들이 민의를 배신하고 추미애후보를 낙선시킨 사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우리의 민주주의는 아직 미완성이다.
아테네의 평의회, 법정, 행정관 모두가 추첨이라는 장치때문에 대표성이 있어서 여기서 내려진 의사결정은 위력이 있다. 수백명단위라면 육성으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추첨을 하면 소수로도 대표성을 확립된다. 추첨에 의한 강고한 '대표성'이야말로 자발적 참여의 원동력이다. 피동적 훈련으로 쌓아올린 스파르타의 군사적 강함보다 우위에 있음을 입증한 아테네 민주주의다.
선거와 추첨 중에 무엇이 더 민주주의 본질에 가까운 것일까. 선출된 권력은 집단전체의 의사를 충실히 대변해오지 못한 것은 작금에 이르러 공통적이다. 대의제 시스템은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
그렇다고 수천명이 모이는 민회나 시민총회는 운영이 쉽지 않다. 수천명이 모이면 실질적인 토론이 어렵고 표결로 갈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대립을 조장할 가능성이 더 크다. 대표성과 명분을 얻을 만큼 편향없이 골고루 많은 인원이 모이기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집단전체가 그 결정에 따르기 어렵다.
정치(권력) 무관심층까지 망라하는 '추첨'선출은 명실상부한 대표성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민의회와 같이 추첨으로 뽑힌 그 소수가, 토의와 검토를 제대로 할 기회와 시간을 가지게 된다. 추첨이라고는 하지만 책임과 명예가 걸린다. 모르면 물어보지 않을 수 없고 남의 얘기를 경청할 수밖에 없다. 대의제로 선출된 의원들이 토의 없이 대립을 일삼는 것과는 다른 구조속에 놓인다. 시민의회는 숙의로써 의견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그 의사결정의 전체과정을 집단전체와 공유함으로써 진짜 민주주의로 가는 것이다. 이건 이치상으로 반드시 가게 되어 있는 길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가 미지수이지만.
필자는 아테네에서의 순례이후 다음과 같은 글을 쓰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이원영] 촛불혁명을 이어갈 '시민의회'를 상상한다
(글쓴이 이원영은, 국토미래연구소장이자 원전위험공익정보센터 대표로서, 주로 도보행진을 통하여 탈원전운동 및 핵폐수투기저지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원영 전 수원대교수 leewysu@gmail.com
* 이 글은 <한겨레온>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