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길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생사의 길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 서현욱 기자
  • 승인 2024.10.08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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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 봉국사 2024 효사랑 문화제·음악회 성료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예로부터 제왕가에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참으로 존망(存亡)이 엇갈려 영원히 이별하는 슬픔이 생기면 반드시 가설(假設)에 의탁해 추도하기를 끝없이 하였다. 한 무제는 누대를 짓고 망사대라 하였는데 아들 여태자를 그리워하였기 때문이다. 당 고종은 절을 세워 자은사라 하였는데 어머니의 은혜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주상께서 즉위하신 이후에 왕세자 이외에도 딸이 있었는데, 장녀는 명혜 공주, 차녀는 명선 공주이다. 혼인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주상이 애통해했고 자정(명성 왕후)은 더욱더 상심함이 끝이 없었다. 장례를 마친 뒤 이듬해 명성 왕후께서는 금강산 스님 축존(竺尊)에게 명을 내리어 두 무덤 밖 몇 리쯤 되는 곳에 절을 세우도록 하였다. 절을 지을 때 궁중의 사신을 파견해 감독하도록 하고 절을 완공하자 봉국사(奉國寺)라는 현판을 내려 주고 향불을 올려 공양하였다. 즉 광주 관아 서쪽 10리에 있는 성부산(星浮산) 아래이다.”(백곡 처능 스님 ‘봉국사 신창기’)

성남 봉국사(주지 혜원 스님)가 올 가을에도 ‘효사랑 문화제’를 봉행했다. 봉국사 중창 이후 계속되어 온 위령천도재는 현재 조선 현종의 애틋한 발원의 명맥을 이어 성남 지역주민을 위한 대표 문화축제로 발돋음했다. 현재의 천도재는 국가유산청 전통산사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 명맥을 더욱 확장해 천도재를 엄수하고, 현대화한 ‘효사랑 음악제’로 대중과 호흡한다.

6일, 영장산(靈長山) 아래 봉국사 일주문에 대중이 모였다. 절 입구로 나간 대중은 불보살님과 여러 성현, 호법신중의 강림을 청하며 차를 올리고 가마(연輦)로 천도재를 위해 차려진 특설법단으로 모셨다. 봉국사가 매년 모시는 위령천도재와 효사랑 음악제 등 전통산사문화프로그램의 시작이다.

대중은 꽃을 뿌려 장엄하고 시방세계에 상주하는 삼보님께 예를 올리는 시련에 이어 본격적으로 권공을 올리기 전 청해 모신 영가들에게 공양을 베푸는 대련의식을 이어갔다.

이어 사바세계의 탐진치로 찌든 영가를 관욕소에서 감로수로 깨끗이 씻겨 정화하는 관욕을 행하고, 호법신중의 호념으로 도량을 정결하게 결계하고 수호하기를 기원하면서 신중에게 공양하고 예배하는 신중작법을 행했다.







“생사의 길이 어두워 부처님의 등에 의지해야 밝아지며 고통의 바다는 파도가 심해 법의 배를 의지해야 건널 수 있습니다.…영가들께서도 귀의하시고 일심으로 청하소서.”

이어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린다. 일체대중이 불보살님께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을 올리고, 불보살의 가피가 충만하기를 발원했다. 위계에 따라 공양을 올리고 이를 신중단에 올려 봉국사를 옹호하는 신중에게도 공양을 올린다. 이른바 신중퇴공이다.

회심곡이 구슬피 영장산을 휘감았다. 천도재 참석대중은 회심곡에 숙연해진 마음을 잡고서 영가들의 천도를 염원했다.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들에게 부처님 법, 법식을 설하고 하단에 공양을 올려 영가를 대접했고, 참석 대중은 단에 올라 꽃을 올려 영가를 위로하는 시식을 올렸다. 시식(施食)을 마치고 모신 불보살과 호법 신중, 그리고 유주무주 영가를 모두 돌려보내고 인로왕보살의 인도 아래 소대로 모셔 위패와 장엄구 등을 소전하는 것으로 두 공주와 모든 영가를 극락으로 인도하는 위령천도재를 회향했다.







위령천도재를 엄수한 재단은 곧 음악회 무대로 변신했다. 가랑비 내리는 봉국사 경내에는 효사랑 음악제에 참석한 대중으로 가득찼다. 봉국사는 참석자들에게 빵과 두유를 제공해 음악회가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민들을 달랬다.

봉국사 합창단이 무대에 올랐다. 영장산 아래 봉국사 가람을 배경으로 한 무대에 선 합창단은 찬불가 ‘향심’을 첫 곡으로 대중에게 선보였다. 이어 귀에 익숙한 ‘찐이야’와 ‘여자의 일생’으로 대중들의 흥을 돋웠다.







무대에 오른 회주 혜일 스님은 “사랑음 참는 게 아닌가 싶다. 옛 어머니들은 시집가는 딸에게 참고 살라했는데, 예전에 이해 못했던 말이나 요즘은 왜 참아야 하는 지 알 것 같다.”면서 “참는 것이 효이고 사랑이다. 저도 최근 참고 또 참아 이 자리에서 시민들과 만나 음악회를 갖게 됐다. 오늘 음악회로 시민과 불자 대중의 즐거움을 더하고 행복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회자가 봉국사 효사랑 음악회와 창건 설화를 소개했다. 이어 ‘야단법석’이 무대에 올라 봉국사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만든 춤과 노래를 국악 연주에 맞춰 선보였다. 창건설화를 국악으로 만든 것은 드문 일이다.

음악회는 가수 주미의 무대로 이어지자 참석자들의 어깨가 들썩였다. 미스 트롯2에 출연한 주미는 봉국사 신도이기도 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합장 인사하곤 ‘내장산’, ‘당신이 좋아’, ‘안되나용’을 연이어 열창하고, 앵콜 소리에 ‘꽃을 든 꽃바람’ 등 노래 메들리로 관객을 춤추게 했다.







이어 이희문과 놈놈이 ‘싫은 민요’, ‘간다못간다’로 관객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무슨 짝에’와 ‘밀양밀양’으로 앵콜에 화답했다.

이날 음악제는 가수 김국환 씨가 대미를 장식했다.

앞서 신상진 성남 시장은 "IT산업을 선도하는 성남시에 천년 고찰 봉국사가 전통문화를 시민과 향유하고 있음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이날 행사에는 봉국사 회주 혜일 스님, 성남 지장선원 회주 일운 스님, 성남불교총사암연합회장 도봉 스님, 봉국사 주지 혜원 스님, 신상진 성남시장, 김태년 국회의원, 최만식 경기도의원, 김종호 불교대학총회장 등 사부대중 1,000여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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