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것
천천히 가는 것이 빨리 가는 것
  • 이기표 원장
  • 승인 2009.12.10 11:43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기표의 세상이야기]
어느 날 아침, 말 잔등에 채찍을 가하며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고 가던 나그네가 나무그늘 아래서 쉬고 있는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노인장, 여기서 다음 마을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나요?”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천히 가면 너 댓 시간이면 족하고, 지금처럼 채찍을 휘두르며 급하게 달려가면 하루는 족히 걸릴 것이요.”

“예끼, 여보슈! 어떻게 빨리 가는 것이 천천히 가는 것보다 시간이 더 걸린단 말이요. 빌어먹을 늙은이라구!”

나그네는 화를 벌컥 내며 지금까지보다 더 빠른 속도로 마차를 몰아갔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하고 수레바퀴의 굴대가 부러지는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지요. 빨리 가고 싶은 욕심에 무리를 했던 것입니다.

나그네는 부러진 굴대를 바꿔 끼우는 데만 꼬박 하루를 허비하고 한밤중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기우는 한 해를 돌아보며 이렇게들 얘기 합니다.

‘참으로 숨 가쁘게 달려왔다’고 말입니다.

금년은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전 세계가 경제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환난을 벗어나기 위하여 정신없이 뛰었던 해였습니다.

세계 수많은 나라가운데 우리나라의 경제지표가 가장 빠른 속도의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입니다. 다행한 일이고 반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가장 빠른 속도’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너무 서두르고 무리하다가는 나그네의 마차처럼 뜻하지 않은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 60억 인구를 곤경에 빠트린 국제금융위기도 미국의 몇몇 금융회사들이 서로 앞서가겠다고 무리하다 일으킨 사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조금은 늦더라도 천천히 가는 것이 안전하게 가는 것이고, 그러한 여유가 있어야 탈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병은 ‘서두름 병’일 것입니다. 사람이 바쁘게 서두르다보면 자신마저 잊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공자(孔子)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자 노나라 애공왕(哀公王)이 공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께서 여행을 다니는 사이 저의 부하 한 사람이 이웃나라로 도망을 가려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가 도망갈 때 바삐 서두르느라 자기 아내를 깜빡 잊고 자기 혼자만 가다가 도중에 생각이 떠올라 되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공자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설령 사랑하는 아내를 집에 둔 채 잊고 떠났을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생각이 나서 데리러 올 것이니 큰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가장 소중한 자신을 어딘가에 버려둔 채 까맣게 잊고 산다는 것이 정말 큰일이지요.”

지금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이와 같지 않습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은 정치가 바쁘다는 이유로, 기업하는 사람은 경영이 바쁘다는 이유로, 직장인은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그 ‘바쁨’에 함몰되어 자기 자신마저도 잊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몸뚱이야 가지고 다니겠지만 본성을 잃어버린 것이지요. 본성이 무엇입니까. 생명의 실체 아닙니까. 본성을 지켜야 비로소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본성을 지켜야 비로소 사람다운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행동을 합니다. 그것을 잃어버리면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요즘 세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킨 조두순 사건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꼬리를 무는 것도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와 같은 범죄에 대하여 엄히 처벌하라는 여론이 들끓고 있습니다만 법으로 해결 될 일 같으면 벌써 유토피아가 되고도 남았습니다.

서두르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천천히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천천히 여유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탐욕을 버리는 일입니다. 탐욕을 버리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깨끗해집니다. 반성하게 됩니다. 포용하게 됩니다. 배려하게 됩니다. 자비롭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지혜를 깨닫게 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는 자기만을 고집하고 자기만을 내세우는 종교가 아닙니다. 다른 종교도 인정하고 존중하는 포용의 종교입니다. 배려의 종교입니다. 어우름의 종교입니다. 천천히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하는 종교입니다. 여유롭게 사는 법을 깨닫게 해주는 종교입니다. 한마디로 본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고 되찾게 해주는 종교인 것입니다. 여러 종교 중에서도 불교의 역할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입니다.

 

   

1956년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불교방송 부산사업소장, 진여원불교대학 학장을 거쳐 부산보현의집 원장을 맡고 있다. 부산노숙자쉼터 협의회 회장을 비롯해 독거노인을 위한 무료급식 등 봉사활동을 펴고 있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Fact 포럼 대표, 한국전력공사 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제로에서 시작하라>가 있다.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나그네 2010-01-03 16:21:37
기독인들이 득실대는그판에서 온갖수모참아내며 그나마 불교의 이익을 지켜내기위해 애쓰는분으로 알고 있는데 너무 인격모독적인 비아냥에 서글픔을 느낍니다.그분이 불교를 팔아 개인적영달을 취했나요?여든 야든 불교를위해 활동하는 우리식구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껴야합니다.그래야만 그분들이 상당한역할을 할수있는 자리에까지 갈수있고 종교편향을 막을수 있는 방법도 될테니까요.하여간 내가알기론 어릴적부터 산전수전 온갖고생다겪으면서도 불교를향한 애정과 신심으로 살아오신분으로 알고 있습니다.불자들이 싫어 하는 현정권이라 하더라도 누군가는 그위치에서 불교와 가교역할은 해야 할것입니다.본인도 어려움이 많을텐데 인격적 모독으로 사람 허탈하게하지말길바랍니다.

질문 2009-12-17 22:25:15
지난 대통령선거 직전에 불교뉴라이트연합 사무총장 지내신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실텐데 왜 빼셨나요? 이명박 취임 이후에 한국전력 사외이사 되신 것도 축하할 일 같은데요....ㅎㅎㅎ 다 빠졌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