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미혼여성의 꿈 1순위가 ‘내집마련’인 나라
30대 미혼여성의 꿈 1순위가 ‘내집마련’인 나라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0.01.08 10: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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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인터넷 쇼핑몰 ‘오픈마켓 11번가’가 새해를 맞이해서 30대 미혼여성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

2010년 올해 이루고 싶은 목표를 물었습니다. '내집 마련, 재테크 등 재무설계'를 꼽는 응답자가 31.0%로 가장 많았습니다.
두 번째가 '대학원,어학공부,자격증 시험 등 자기계발'(24.0%)이었습니다. '연애 또는 결혼하기'라는 응답이 20.2%였고, '다이어트,성형,피부관리 등 미모 가꾸기'라고 응답하는 사람이 11.8%였습니다. 나머지는 '부모로부터의 독립'(0.9%)과 '이직'(1.0%)이었습니다.

삶의 만족에 대해 물었습니다. 2명 중 1명은 현재 자신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는 '모아놓은 돈이 없다'는 응답이 49.3%였습니다.

연초에 몇몇 언론이 일종의 읽을거리 기사, 흥미로운 기사로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보도했습니다. 물론 여론조사 기법이 동원된 정밀조사는 못됩니다만, 그래도 여론조사이기에 한 줄 한 줄 수치를 확인하며 읽게 됐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그 통계를 끄집어내어 다시 확인합니다. 여전히 편치 않습니다.

 

결국은 집입니다. 돈입니다. 자기계발과 자기만족과 자기성취가 아닌, 돈이요 집입니다. 이들 30대 탓일까요. 결코 아니지요. 우리 사회 탓일까요. 그렇습니다. 개인의 탓이 아닌 구조의 문제요, 개인의 책임이 아닌 사회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위기입니다.

20대 여성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0여년 째 1등입니다. 1등을 넘겨 준 적이 없습니다. 희망을 갖지 못합니다. 여전히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기본적 권리는 취약합니다. 특히 대남성적 측면에서 철저히 취약합니다. 사회적 편견은 여전하고 사다리는 유리천장을 뚫지 못합니다. 결혼은 미뤄집니다. 출산은 거부됩니다. 사회적 독립이 꿈입니다. 하지만 그 독립은 경제적 종속성에 발목 잡히고 맙니다. 그래서 결국 경제적 독립을 꿈꿉니다. 그 독립은 돈입니다. 재테크입니다. 안정적인 내집입니다. 안정적인 내집이 결국 경제적 독립의 상징이 되고,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사회적 독립의 처음이자 끝이 됩니다. 남성중심의 사회, 사회적 편견의 사회, 성적 불평등 사회로부터 사회적 독립을 쟁취하는 일이야말로 경제적 독립이고, 그 상징이 내집마련입니다. 그렇게 읽혀지고 그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여전히 내집마련에 30이라는 한없는 젊음과 야망과 건강함과 아름다움이 저당잡히고 말았습니다. 내집보다는 공부와 여행과 운동과 학업과 자기계발과 같은 끊없는 수련과 연찬이 사회적 독립의 상징이 되고 미래의 희망이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결국 사회적 독립의 구체적 징표가 내집마련이 되다보니, 우리 사회의 쇠사슬과도 같은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곤란에 처하게 됩니다. 그 곤란은 결국 이런 구조입니다. 다들 내집을 갖고 싶어 합니다. 집이야말로 최고의 투자이자 투기수단이고, 안정적 재테크이자 포트폴리오의 한 축입니다.

대한민국 전체 자산 7000조 중 거의 6000조가 땅과 아파트와 상업용 건물에 집중돼 있습니다. 땅과 아파트를 합하면 거의 70% 내외입니다. 5500조를 넘을 듯합니다. 철저한 집중입니다. 편중입니다. 내집마련 때문에 집값, 땅값이 하늘 높은 줄 모릅니다. 당연히 고임금으로 보장받아야 합니다.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학진학률은 90%입니다. 전문직 일자리, 대기업 일자리는 채 1%도 될 듯 말 듯합니다. 사교육을 통해서 사회적 성취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오로지 부모들의 희망이자 의무입니다. 결혼한 30대 여성들은 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이면 선택의 기로에 놓입니다. 내 인생의 길을 갈 것이냐 아니면 아이에게 투자할 것이냐, 혹은 나와 내 남편의 인생을 위해 헌신할 것이냐 아니면 역시나 아이에게 투자할 것이냐입니다.

맨 먼저 자신의 인생을 포기합니다. 다음으로 남편에 대한 헌신과 내조를 사실상 포기합니다. 오로지 아이뿐입니다. 아이의 인생을 위해서 희생과 헌신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안정적 노후와 아이에 대한 공부를 위해서 사교육과 아파트 잡기에 나섭니다. 아파트 거주를 통해 안정적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시키고, 이를 통해 노후를 보장받으려 합니다. 나와 같은 인생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억울함 속에서 오로지 아이에게 내 인생을 투영시켜버립니다. 결국 이 모든 의지와 희망이 종합되면서 프레시안 윤태곤 기자가 이야기했던 ‘욕망의 정치’로 이어집니다. 정치는 모두의 꿈입니다. 정치를 통해서 이루고 싶어하지요. 삶의 질을 이루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에 사교육을 통해, 국제중과 특목고와 자사고 등을 통해, 아이의 꿈 곧 나의 꿈을 선택받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아파트 가격 상승을 통해 내 자산가치의 상승을 꿈꿉니다. 재개발 재건축으로 이어지는 개발, 그 중심에 아파트가 있고, 욕망의 정치가 슬그머니 자리합니다. 그리곤 사교육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안타깝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현실입니다. 인생의 다른 경로를 정치나 종교나 학문이 제시하지 못합니다. 어린 아이들이 결코 새로운 방식의 인생이나 삶의 행로를 찾아낼 수 없습니다. 모델 자체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삶의 질이나 인간의 존엄성이 슬그머니 꼬리를 내립니다. 오로지 경쟁이 찬양됩니다. 성장만이 살 길입니다. 개발만이 살 길입니다. 성장과 개발이 내 삶을 증진시킬 거라는 착각에 빠져듭니다. 모든 지표는 아이의 성적과 아파트 가격지수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로지 죽음이라는 문을 향해 마라톤도 아닌, 단거리 경주에 나섭니다.

30대 여성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합니다. 종교나 철학이나 정치나 학문이나 역사나 매 한 가지입니다. 결국 이런 영역과 집단들이 제 할 일을 못한 탓입니다. 우리 사회의 비전과 가치를 제시할 의무가 있는 집단이나 제도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 탓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희망이 내집마련과 같은 재테크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 새로운 사회적 패러다임을 위해 고민하고 투쟁해야 할 때입니다. 예외없는 노력과 성찰이 요구되는 2010년입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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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타 2010-01-25 00:09:25
새로운 방식의 삶의 행로를 보여주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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