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말로만 소금 실제로는 갈등·분쟁의 근원"
바닷물이 썩지 않는 것은 짜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닷물에 섞여있는 염분함량은 고작 3.4%에 불과하단다. 염분이 3.4%만 섞여있어도 바닷물은 정화되어 절대로 썩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인이 전체인류의 90%나 된다는 지구촌은 왜 이렇게 혼탁한 것인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종교전쟁이 끊이질 않는다.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종교분쟁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종교가 말로만 소금의 역할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갈등과 분쟁의 근원이 되고 있다.
현대종교의 특성은 인간의 영혼에 대한 존재가치를 인식시켜주는 데 있다.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생명정신을 보호하고 그 가치에 대한 존엄성을 인식시켜주는 생명신앙인 것이다. 그리고 그 생명신앙을 전파해 가면서 새로운 정신문명을 발전시켜 간다.
어찌되었든 종교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문명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유지하는데도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종교가 만족스럽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다른 사상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인간생활에 대한 간섭이지 않겠는가. 일찍이 17세기경에는 종교가 정치에까지 간섭하고 영향을 끼치려 하였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큰 혼란을 야기했고 그에 대한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현재의 종교역시 정치와 무관하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종교가 다른 종교를 배척하고, 자유를 간섭하고, 정치에 영향을 끼치려 하는 것은 종교정신을 망각한 욕심에 의해서다. 그뿐이 아니다. 같은 종교끼리도 여러 개의 계파로 나뉘어 갈등하며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리스도교나 유대교, 이슬람교 같은 서양의 종교는 강력한 일신교(一神敎)로서 다른 종교와의 타협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종교와 종교의 갈등이 심화되어 마침내는 종교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인간생명의 존엄을 추구하는 교리와 전혀 배치되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종교와 연관된 비극적인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도교가 이 땅에 처음 들어오면서 적지 않은 수난을 겪었다. 조선말기 수 만 명이 넘는 천주교인들이 희생되었던 사건들도 따지고 보면 이 땅에 정착해 있던 유교사상과 그리스도교라는 종교 간의 전쟁이었던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땅에 처음으로 들어온 외래종교는 불교다. 기록에 의하면 멀리 삼국시대 초기에 불교가 전파되어 우리 민족문화를 꽃피웠다. 그러나 불교는 당시의 도교(道敎)와 충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종교사상을 배척하지 않고 융합하여 공존하려는 불교의 범신교적(汎神敎的) 자세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인이 1,000만이 넘는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떠한가. 갈등과 대립의 수렁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무엇 하나 갈등하지 않는 것이 없고 대립하지 않는 곳이 없다.
마침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를 통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문제에 대해 중재하는 역할을 해 나가겠다.” 는 의지를 밝혔다. 그 말씀이 반가운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역할론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불교의 화쟁사상(和諍思想)이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해열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공염불에 그칠 것이 아니라 실다운 인재들을 화쟁위원회에 참여시켜 종단과 사회, 인류의 평화에 실질적인 결과물을 내놓아야 한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다른 음식까지 못쓰게 만든다. 마찬가지로 포용이 없는 종교는 맛을 잃은 소금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른 종교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화평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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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는띄어쓰기도좀신경을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