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재산 출연 좋은 제도, 취지 공감대 얻어내는 기술 필요"
공자가 소악을 이르기를[子謂韶], "지극히 아름답고 또 더할 것 없이 좋다." 하고[盡美矣 又盡善也], 무악을 이르기를[謂武], "극진히 아름다우니 더할 것 없이 좋지는 못하다" 하였다[盡美矣 未盡善也].
미는 이룬 결과를 말하고 선은 그 동기와 과정을 말한다. 아름다움의 근본은 선이다. 선이 없는 아름다움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선은 추(醜)나 악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서 공자는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수덕사에서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야 향적당과 금선대를 양 옆에 끼고 시립하듯 뚝하니 솟은 정혜사가 들어온다.
불기 2554년 동안거 해제일인 정월 보름을 일주일 앞두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수란( 愁亂)스러운 충청도에 본사를 둔 덕숭총림을 찾았다.
산비탈마다 잔설이 남아 있었다. 대동강 물이 풀린다는 우수. 절기를 어쩔 수 없음인지 잔설 아래로 녹은 눈이 물이 되어 졸졸거리며 흘렀다.
잔설 모냥 눈썹이 유난히 흰 방장 설정 스님에게 먼저 종단 안 일부터 물었다.
- 승려의 사유재단 종단 출연 문제로 요란한 것 같습니다.
"참 좋은 제도입니다. 그러나 보완이 필요합니다. YS 때 금융 및 부동산 실명제를 시행하니 많은 재산이 해외로 유출됐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기술적으로 풀어야할 부분입니다. 사설사암를 소유한 스님 등등 일단은 빼앗긴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수행 중 얻어진 재산을 종단으로 회향하자는 취지에 공감 못할 대중은 없습니다.
차명으로 돌려놓는 등 이탈자가 없도록 해야겠지요. 강압적이면 부작용이 생깁니다. 좋은 취지에 대한 이해, 인식을 잘 시켜서 삼보정재는 삼보에게 돌아가야 하며, 속가로 돌아가면 죄악이라는 점을 상기시켜야 합니다."
- 세종시 문제를 비롯해 세속도 많은 대립과 갈등이 있습니다.
"나는 정치를 모릅니다. 적어도 이 건은 출발이 문제였습니다. 정치적 흥정에 따라 출발부터 순수함이 없었습니다. 정당성도 없었습니다. 진지함도 없었습니다.
남북한 대치한 상태에서 통일을 염두에두었다면 행정부처의 분산은 문제가 있습니다. 국민을 기만하니 혼란이 오고 갈등이 유발되는 겁니다.
국민, 주민, 국가 이익을 생각했다면 국민을 속이는 발상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국민적 공감을 형성해야 앞으로도 갈등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정부와 정당이 모여 충분한 논의를 통해 과거의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지 말고, 미래 지향적이어야 합니다. 정치적 현혹은 중단해야 합니다."
- 두 문제 다 결국 소통의 부재 탓입니까.
"종단 내의 '사유재단 출연'이나 세속의 '세종시'를 대표로 하는 갈등과 번민이 소통의 부족 내지는 부재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보수라서 또는 진보라서 그렇다고들 말합니다. 지금 보수 진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교에서는 중도를 가르칩니다. 정중앙이 아니라 옳음이 중도입니다. 진보 보수가 뜻을 합쳐야 합니다. 보수대로 진보대로 장점이 있습니다. 진보 보수의 진정한 의미도 모른 채 표피에 매달려 이용만하려 합니다"
- 해제를 앞 둔 스님들께 한말씀 해 주십시오.
"스님네들 목표는 견성성불(見性成佛)입니다. 중생구원을 뼈저리게 생각하는 것이 스님들의 생활본분입니다.
해제했다고 해서 해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생사를 이탈하는 것이 해제입니다. 생사일대사를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한 결재(상태)예요. 항상 결재의 심정으로 살는게 내실을 기하는 스님네 삶이 됩니다.
스님 신도 할 것 없이 불교, 부처님을 위한 서원, 봉사, 희생, 공심을 발휘해야 합니다."
- 불교의 사회 회향, 깨달음의 사회화, 나아가 신대승불교운동이 종단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수좌로서의 입장은 남다를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중생 없는 부처는 있을 수 없지요. 하지만 진정으로 남을 위할려면 힘과 능력, 덕이 있어야지요. 덕, 지혜, 힘이 없는 상태에서 남을 위하는 것은 허구입니다. 있을 수도, 될 수도 없습니다.
사회참여 소중합니다. 현장에 들어가서 중생과 함께 호흡하고 공부, 봉사하는 것이 보살정신입니다. 자칫 복덕과 지혜, 힘이 없으면 잘못되기 일쑤입니다. 덕 지혜 공덕을 축적해 그 여력으로 중생을 위하는 것이 참입니다.
그러면 언제 그것들 다 채우고 배워서 중생돕느냐 할 수 있지만 우리네는 늘 사홍서원의 큰 원을 세웠습니다. 사홍서원의 깊은 의미를 잘 새겨야 합니다. 생각만으로 뛰어들어서는 안됩니다.
- 새해 덕담 한 말씀 청하겠습니다.
"상당히 힘들고 어려운 때라고 합니다. 어려운 때를 잘 극복해나가면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입니다. 어렵다고 절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진선진미(盡善盡美)라는 말이 있어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죠. 과정이 정당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결과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자, 국민 각자가 가족들부터 화합하고 이해하고 배려한다면 어려운 시기를 벗어날 것입니다. 이해, 위로가 극복의 지름길입니다."
오후3시께 담장을 비추는 낮볕에 눈들이 아까보다 빠르게 녹아내렸다. 우수 언저리에 눈 녹듯이 성·속의 시비거리들도 스르르 해동되겠지. 눈이든 어름이든 물이든 산줄기를 타고 평야를 '착하게' 흘러 강을 따라 대해에서 어우러질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