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소리' 이끌려온 60년 외길…원광식 주철장
'천년의 소리' 이끌려온 60년 외길…원광식 주철장
  • 연합뉴스
  • 승인 2022.07.22 08:2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 '평화의 종' 선보여 70억 세계인에 감동 선물
1994년 전통밀랍주조법 복원, "이제야 소리 터득…인생역작 만들 것"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범종 작품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진천=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웅장한 울림에 이어 마치 사람이 우는 듯한 여운이 잦아들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한다.

1분 넘게 끊길 듯 이어지는 소리의 청명함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평온함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오만과 탐욕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한없이 낮추고 겸손하게 만드는 특별한 기운이 있다.

끝 모를 매력을 지닌 한국의 범종(梵鐘·불가에서 사용하는 종)이 가진 오묘함이고 에너지다.

우리나라 범종은 혼을 토해내는 듯한 소리에서부터 정교한 외부장식까지 독보적인 개성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한국 종'(Korean Ball)이라는 학명이 붙었을 정도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우리나라 범종은 신비로운 매력을 맘껏 발산했다.

운동장 한가운데 떡하니 등장한 거대한 범종은 순식간에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평화의 종
[연합뉴스 자료사진]



현존 최고(最古)의 오대산 상원사 동종(통일신라 725년·국보 36호)을 재연한 '평화의 종'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개회를 알리는 카운트다운의 마지막은 이 종의 웅장한 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홀로그램 영상과 어우러져 울려 퍼진 소리는 70억 세계인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했고, 지금도 역대 올림픽을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개막식의 백미로 회자된다.

이 종은 국가주요무형문화재 112호인 주철장 원광식(81) 선생의 손에서 탄생했다.

종이라면 눈 감고도 만들 정도인 팔순의 원로 장인이 꼬박 1년을 매달려 내놓은 작품이다.



동종 제작 작업 중인 원광식 주철장
[성종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 선생은 통일 신라의 종소리를 찾아가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국내 웬만한 사찰이나 지역의 이름값 하는 종 대부분은 그의 손을 거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 보신각종, 대전 엑스포대종, 충북 천년대종, 임진각 평화의종을 비롯해 조계사, 해인사, 통도사, 불국사, 선운사, 선암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동종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국내를 넘어 대만 최대의 범종인 명선사종(33t) 등 불교권 국가에서도 그가 혼을 불어넣은 작품이 울리고 있다.

그는 팔순을 넘긴 지금도 충북 진천에서 주물공장(성종사)을 운영한다. 21일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도 여전히 땀 냄새 가득 밴 작업실에 앉아 작품활동에 여념 없었다.

깊게 팬 주름만큼 말과 행동은 느릿해졌지만, 종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종의 매력에 심취돼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스무 살 청년과도 같았다.



공장 앞마당에 있는 대형 범종을 살펴보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요즘처럼 습도가 높은 장마철에는 쇳물 붓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쇠에 기포가 생겨 원하는 소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쇠에 생긴 기포는 마감재를 입혀 매끈하게 메꿀 수 있다지만, 그러면 제대로 된 소리가 나겠어. 그래서 용광로 불을 끄는 거야. 하늘이 허락할 때를 기다리는 거지."

짧은 말 한마디에 노 장인의 고집스러운 원칙과 철학이 가득 차 전달됐다.

그는 지금도 '최고의 소리'를 만들기 위해 연구하고 몰두한다.

경기도 화성에 태어난 그는 열일곱 살 나던 해 8촌 형이 운영하는 주물공장에서 일하면서 종과 인연을 맺었다.

일은 무척이나 고됐다. 쇳물이 튀어 오른쪽 눈을 실명하자 온전치 못한 몸으로 어떻게 일을 하느냐며 공장에서 쫓겨난 적도 있다.



범종에 글자를 붙여넣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러나 종을 향한 끌림은 그의 외도를 허락하지 않았다. 잠자리에 누우면 귓전을 울리는 종소리에 이끌려 결국 충남 예산의 수덕사에 들어가 범종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1973년 8촌 형이 타계하자 그는 주인 잃은 성종사를 인수했다. 그가 만든 제품은 소리가 다르다고 소문나면서 한때 사업이 제법 번창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는 공장 경영보다는 전통의 소리를 찾는 데 주력했다.

일본과 중국에 유출된 신라와 고려의 종을 찾아다니면서 닥치는 대로 탁본을 떠와 복원을 반복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994년 일제강점기 소실됐던 우리의 전통 밀랍주조기법을 마침내 복원한 그는 이 공로로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장인 반열에 올랐다.



범종에 새겨넣을 글자 작업을 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60년 넘게 걸어온 고독한 외길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그는 마지막 목표가 있다. 후대에 길이 남은 인생 역작을 하나 남기는 것이다.

그는 "전통을 잇는 것도 중요하지만 옛것을 지키고 복원만 해서는 안 된다"며 "거기서 더 나아가 시대의 종을 만들어야 발전이 있는 것"이라고 창작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면서 "작년에 비로소 진정한 소리를 내는 원리를 안 것 같다"며 "이제야 깨달은 게 아쉽지만, 죽기 전 진짜 내 맘에 드는 작품 하나 만들 수 있겠다 싶다"고 즐거워했다.

지금까지의 작품은 만족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세상에 100점은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이어 "후한 점수는 곧 나태로 이어진다. 내 인생 역작이 나오더라도 잘해야지 80점 아니면 90점 정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제작한 종을 쳐보며 소리를 확인하는 원광식 주철장
[촬영 천경환 기자]

그는 돈에 대한 철학도 피력했다. 돈을 좇으면 작품을 만들지 못한다는 신념으로 번 돈을 모두 종 연구에 쏟아부은 그다.

그는 "장인은 배가 부르면 안 된다. 돈을 모르고 한 우물을 판 덕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것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고는 "인간은 기껏해야 백 년을 살지만, 종은 천 년을 넘겨 깊은 울림을 남긴다"는 말과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범종 소리를 연달아 선물했다.

jeonch@yna.co.kr

(끝)

"이 기사를 응원합니다." 불교닷컴 자발적 유료화 신청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無影塔 2022-07-24 19:20:45
국가무형문화재 주철장
원광식 선생님 존견합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1길 16 대형빌딩 4층
  • 대표전화 : (02) 734-7336
  • 팩스 : (02) 6280-2551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석만
  • 대표 : 이석만
  • 사업자번호 : 101-11-47022
  • 법인명 : 불교닷컴
  • 제호 : 불교닷컴
  • 등록번호 : 서울, 아05082
  • 등록일 : 2007-09-17
  • 발행일 : 2006-01-21
  • 발행인 : 이석만
  • 편집인 : 이석만
  • 불교닷컴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2 불교닷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san2580@gmail.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