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과 용주사(주지 정호스님)는 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정조시대 문화예술과 효 문화재’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이자 격변의 시기였던 정조시대의 문화예술을 심층적으로 조명했다. 특히 정조대왕의 효심에 의해 조성된 사도세자의 융릉(1789년)과 용주사(1790년) 일대의 문화재들에 대해 사계의 전문가들이 그 역사적 중요성과 자료적 가치를 새롭게 제시했다.
사도세자 묘소를 이전하기 까지 옛 수원의 읍치였던 현재의 융릉 일대는 정조시대에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의 능침(건릉)이 들어서고, 용주사를 비롯한 각종 문화유산이 지금껏 보존되고 있다. 융릉과 건릉은 세계문화유산 지정이 추진되고 있다.
그 어떤 곳보다 문화유적과 문화유산의 밀집도가 높은 이 지역이 대규모 주택단지(태안3지구) 개발에 의해 문화유산 보존이 위기에 처해 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이런 심각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 지역의 문화유적과 문화유산을 재조명함으로써 그 보존의 방향과 대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다.
근래 발굴 조사에 의해 태안3지구 내에서 원래의 정조대왕 능침(건릉) 관련 유적(정자각과 재실터, 만년제 등)과 정조시대 이전 옛 수원의 유적이 드러남으로써 융건릉과 용주사를 포함한 유적지 일원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이 유적지 일대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됨으로써 문화유산 보존이냐 개발이냐의 논란이 뜨거운 현장이기도 하다.
한신대 정해득외래교수는 ‘융건릉‧용주사 일원(태안3지구)유적과 발굴조사의 성과’라는 주제로 최근의 조사 성과를 토대로 이 지역 유적과 유물의 전체상을 개관하고 그 역사적 중요성을 설명했다.
용주사 대웅전 후불탱화는 정조대왕의 특명에 의해 김홍도, 이명기가 중국 북경에 가서 서양화법을 연구하고 돌아와 김득신 등과 함께 서양화법을 채용해 그려낸 당대를 대표하는 걸작이었다.
성문미술문헌연구소 강영철소장의 ‘용주사 대웅보전 후불탱화의 연구쟁점과 과제’라는 발표는 이 탱화를 둘러싼 그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여 이 작품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 용주사 소장 부모은중경판
정조대왕이 용주사에 하사하여 봉안한 부모은중경판은 목판 뿐 아니라, 석판 동판이 함께 전해지는 이채로운 문화재다. 이는 정조대왕의 효심이 담긴 당대 인쇄문화의 산물이면서, 김홍도가 그린 아름다운 변상도가 있어 회화사 자료로서도 소중하다.
한국문화유산연구원 박상국원장은 ‘용주사 소장 부모은중경판에 대한 고창’을 통해 이 문화재의 가치를 새로운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구명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융․건릉과 용주사 일대에 조성된 정조시대의 각종 문화재 현황을 정리하고 용주사 소장 문화재의 가치를 조명함으로써 용주사 일대의 역사적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