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 피우기 좋은 곳을 소개합니다.
게으름 피우기 좋은 곳을 소개합니다.
  • 이상희
  • 승인 2008.01.04 02: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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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네요. 보통 좀 식상하지만 새해가 되면 며칠 못가더라도 나름 계획과 결심들을 세우지요.

저는 성격이 나빠서인지 이럴 때면 더 일상에서 튀어나가고 싶은 충동이 심해집니다. '조신하게' 지내기엔 날이 너무 아깝지 않으냐고 속살거리네요.

좀 따뜻한 선암사쯤 가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선암사 얘기를 하니 뜬금없이 드는 생각..
언젠가 제가 좋아하는 '절집'들을 사랑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선암사는 사랑이 막 시작되는 때.
왜 겨우 손만 잡았는데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던 때 있잖아요.
쌍계사나 분황사는 조금씩 아기자기한 재미가 나는 시기,
해인사나 화엄사는 서로에 대한 신뢰로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이 단단한 시간 같죠.
그 사랑이 조금씩 식어가는 게 보이는 때가 통도사라면, 기림사는 이제 그 '식어가는 바위'를 보내고 혼자 앉아있는 때인 듯하다고 말입니다.

지나치게 소녀취향인가요? 하하

오늘 하고 싶은 얘기는 일상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게으름 피우기 좋은 곳을 한 곳 소개하는 것입니다.

저는 해인사 참 좋아합니다.
산도 절도 아주 단정하고 품위 있어 번잡한 마음을 다독이기 좋죠.
그런데 오늘 제가 얘기하고 싶은 곳은 절도 산도 아닌 어떤 여관입니다.

해인사관광호텔 쪽으로 올라가면 호텔 바로 밑에 '산장별장여관'이라고 있습니다.
이름이 좀 이상하죠.

'산장' '별장' '여관'.
보통명사 3개를 모아 고유명사를 만든 셈이지요.
아마 '산장' 같은 여관, '별장'같은 여관을 만들고 싶었던 주인장의 '고심'이 배어나는 이름이 아니겠는지요. 주인장의 투박한 작명처럼 소박한 여관입니다.

여긴 한옥여관인데 방들 앞으로 쪽마루도 아닌 이상한 마루가 쭉 연결되어 있고 작은 정원이 그 아래에 있거든요. 제대로 가꾸지 않은 정원이 꽤 괜찮습니다. 때를 잘 맞춰 가면 모란이 핀 것도 볼 수 있죠.

전체적인 인상을 얘기 하자면
70년대 홍콩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많이 촬영됐잖아요.
그런 영화에 나오면 딱 어울릴 만한 곳입니다. 그렇다고 너무 엽기적인 상상은 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편안한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여름엔 차가운 마루에 배를 깔고 엎드려 책 보기 좋거든요. 그러다 빙글 돌아누워 낮잠도 자고..

불편한 것도 많아요.
억지로 만든 것 같은 욕실. 그리 쾌적하진 않습니다.
침대? 당연히 없습니다. 이불? 요즘 아무도 그런 이불 안 쓰죠.
예전에 한번은 수도 파이프가 얼어서 물이 나오지 않는 사태까지..

그래도 제가 처음 갔던 때가 벌써 20여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동행했던 친구들도 불평하지 않았던 걸 보면 나름대로의 매력이 분명 있는 듯합니다.

나른하게 게으름 피우기 좋은 곳입니다.
팍팍한 세상, 때론 게을러지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그 부지런한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조차 '게으름에 대한 찬양'이란 책 썼잖아요.

해인사 사하촌에 맛깔스런 식당이 있었는데 지난 가을에 가니 옛맛이 아니더라고요. 오래된 곳의 음식 맛이 변하면 참 속상합니다. 기억 속의 맛이 변하니까요.

그 여관에서 식사하는 것도 괜찮아요. 막걸리도 시원하고 백숙도 맛있고 산채도 깔끔합니다. 채소, 나물 등등을 엄청 싫어하는 저 같은 인간도 잘 먹습니다.

참 해인사 가시면 꼭 가보셔야 하는 곳, 또 있습니다.

바로 '해인국민학교'. 이젠 초등학교지요.
거기 가서 괜히 철봉도 하고 시소도 타고 나서, 손에 묻은 녹 닦아내면 기분이 아주아주 좋아집니다. 그러다가 해질 녘 산동네 골목길을 내려오며 남의 집을 슬쩍 기웃거려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쓰다 보니 제가 무슨 '해인 지구' 홍보 사원 같네요.

문제는 합천댐이 생긴 이후 그쪽에 여름이면 습기가 많아져서 뽀송한 느낌이 덜 든다는..
제가 다녀본 바로는 오뉴월 정도가 가장 좋았고 겨울도 매력적이죠. 봄도 ..
뭐.. 결국 사계절 모두 좋다는 말이네요. 하하.

얘기하다보니 지난 가을 기가 막힌 색깔을 보여주던 홍류동 계곡 단풍이 생각납니다.
그립네요.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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