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4. 멍 때리다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84. 멍 때리다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2.10.2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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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멍
불 앞에 앉아 멍 때리다
불 속에 마음 빼앗겨
껍데기 나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명상
마음 닦는 일이 어려운 것은
잡념이 한 가득이라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도
거친 파도가 친다

누더기 승복 입고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노승처럼
어제 입은 옷을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을 입어도 편하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입은 것조차 잊고

날마다 출근길 버스에서 전철에서 도로에서
살아내던 내가 기억 속에 꿈결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허물을 벗고 훨훨 나는 꿈꾸는 나방처럼

먹고 사는 일
지게 위에 얹은 무거운 짐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지난 생에 남겨뒀던 숙제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첩첩이 그려진 능선을 바라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물방울 속에 멈추어진 시간 같은 세상.
 







#작가의 변
반복되는 고통은 반복되는 상처를 남긴다. 혹자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면 단련이 된다고 그래서 아픔이 조금은 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반복되는 아픔에도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통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내 다리엔 작은 상처들이 많다. 넘어지고 깨진 고통의 흔적들이다. 그렇다 지금은 왜 생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처들은 그냥 기록으로 남아 그날의 상처를 보여 줄 뿐이지만 그렇다고 상처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 아니 세계적은 빵 공장에서 일하던 청춘이 일하다 기계에 끼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고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 선진국으로 세계 6위의 국력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계속 산업 재해나 어이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래전 나는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그 직장에서 라인이라고 불리는 생산라인에는 프레스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생산 기술부 금형 반에서 금형을 만들어 금형의 시험 가동을 위해 생산라인에 가서 금형을 시험할 때 그곳에 일하던 직원들이 대부분 손가락을 다친 것을 보게 됐다. 안전을 위해 일정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놓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를 가동할 수 있지만 생산이 늦어져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어 안전장치를 꺼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야간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금형 틀 안에 손가락을 넣고 기계가 작동한다고 했다. 그게 벌써 40년 전의 일이니 지금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고 생활 모든 곳에 센서로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작동하는 반죽 믹서에 사람의 목이 끼어 사망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창피한 일이다. 그리고 사고를 확인하고도 119를 부르지 않고 사고 원인을 따지고 다른 직원을 야단치고 있었다니 더욱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소년 소녀 가장이 아니고 임시직이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는 놀랄만한 일이 산업 현장에서 자주 벌어진다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사망한 선생님 중에 기간제 정규직이 아닌 선생님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는 보도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간제, 시급 아르바이트, 본사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 직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직원의 사망이나 산업 재해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 산업 현장이 많다. 조선소도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하청 회사에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 그것도 아닌 하루 일당 등등.

사람이 한우 등급 매겨지듯이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일당. 임시직 등으로 나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똑같은 생산 효과를 원한다. 아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청 회사 직원이나 임시직이나 일당 직원이다. 일하는 거 봐서 임금을 주겠다는 고용주도 많다. 일하는 거 봐서 정규직 시켜 줄게, 일하는 거 봐서 하청을 주든지 말든지 할께 등 생산 현장에서 희망 고문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위장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세계에 수백 개의 점포를 내고 회사의 이름처럼 본고장인 프랑스에도 입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먼저 생명을 앗아 간 재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발표하지 않고 기업의 힘을 이용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노동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에 머리를 넣었는가라고 말한다. 사고가 난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직원들을 재촉해 생산에만 몰두한다. 불매운동을 해도 본사는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조에도 귀족 노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받고 그만큼 베네핏을 받는데도 더 받겠다고 파업하는 노조도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데 저 기업 저러다 세계의 기업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회사는 민주노총에 가입된 직원은 진급도 차별받는 것은 물론 상급자가 임의로 한국 노총으로 노조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강성이라서 말을 잘 듣는 한국 노총으로 바꾸려 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불 앞에서 불 멍을 때리고 물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명상이다. 순간적 명상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 일,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게 하고 심장을 흥분하게 한다. 남의 일이다. 남의 일이라 하고 최면을 걸면 걸수록 내일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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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멍
불 앞에 앉아 멍 때리다
불 속에 마음 빼앗겨
껍데기 나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명상
마음 닦는 일이 어려운 것은
잡념이 한 가득이라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도
거친 파도가 친다

누더기 승복 입고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노승처럼
어제 입은 옷을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을 입어도 편하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입은 것조차 잊고

날마다 출근길 버스에서 전철에서 도로에서
살아내던 내가 기억 속에 꿈결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허물을 벗고 훨훨 나는 꿈꾸는 나방처럼

먹고 사는 일
지게 위에 얹은 무거운 짐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지난 생에 남겨뒀던 숙제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첩첩이 그려진 능선을 바라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물방울 속에 멈추어진 시간 같은 세상.
 





불 멍
불 앞에 앉아 멍 때리다
불 속에 마음 빼앗겨
껍데기 나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명상
마음 닦는 일이 어려운 것은
잡념이 한 가득이라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도
거친 파도가 친다

누더기 승복 입고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노승처럼
어제 입은 옷을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을 입어도 편하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입은 것조차 잊고

날마다 출근길 버스에서 전철에서 도로에서
살아내던 내가 기억 속에 꿈결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허물을 벗고 훨훨 나는 꿈꾸는 나방처럼

먹고 사는 일
지게 위에 얹은 무거운 짐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지난 생에 남겨뒀던 숙제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첩첩이 그려진 능선을 바라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물방울 속에 멈추어진 시간 같은 세상.
 







#작가의 변
반복되는 고통은 반복되는 상처를 남긴다. 혹자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면 단련이 된다고 그래서 아픔이 조금은 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반복되는 아픔에도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통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내 다리엔 작은 상처들이 많다. 넘어지고 깨진 고통의 흔적들이다. 그렇다 지금은 왜 생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처들은 그냥 기록으로 남아 그날의 상처를 보여 줄 뿐이지만 그렇다고 상처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 아니 세계적은 빵 공장에서 일하던 청춘이 일하다 기계에 끼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고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 선진국으로 세계 6위의 국력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계속 산업 재해나 어이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래전 나는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그 직장에서 라인이라고 불리는 생산라인에는 프레스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생산 기술부 금형 반에서 금형을 만들어 금형의 시험 가동을 위해 생산라인에 가서 금형을 시험할 때 그곳에 일하던 직원들이 대부분 손가락을 다친 것을 보게 됐다. 안전을 위해 일정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놓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를 가동할 수 있지만 생산이 늦어져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어 안전장치를 꺼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야간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금형 틀 안에 손가락을 넣고 기계가 작동한다고 했다. 그게 벌써 40년 전의 일이니 지금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고 생활 모든 곳에 센서로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작동하는 반죽 믹서에 사람의 목이 끼어 사망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창피한 일이다. 그리고 사고를 확인하고도 119를 부르지 않고 사고 원인을 따지고 다른 직원을 야단치고 있었다니 더욱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소년 소녀 가장이 아니고 임시직이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는 놀랄만한 일이 산업 현장에서 자주 벌어진다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사망한 선생님 중에 기간제 정규직이 아닌 선생님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는 보도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간제, 시급 아르바이트, 본사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 직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직원의 사망이나 산업 재해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 산업 현장이 많다. 조선소도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하청 회사에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 그것도 아닌 하루 일당 등등.

사람이 한우 등급 매겨지듯이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일당. 임시직 등으로 나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똑같은 생산 효과를 원한다. 아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청 회사 직원이나 임시직이나 일당 직원이다. 일하는 거 봐서 임금을 주겠다는 고용주도 많다. 일하는 거 봐서 정규직 시켜 줄게, 일하는 거 봐서 하청을 주든지 말든지 할께 등 생산 현장에서 희망 고문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위장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세계에 수백 개의 점포를 내고 회사의 이름처럼 본고장인 프랑스에도 입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먼저 생명을 앗아 간 재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발표하지 않고 기업의 힘을 이용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노동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에 머리를 넣었는가라고 말한다. 사고가 난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직원들을 재촉해 생산에만 몰두한다. 불매운동을 해도 본사는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조에도 귀족 노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받고 그만큼 베네핏을 받는데도 더 받겠다고 파업하는 노조도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데 저 기업 저러다 세계의 기업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회사는 민주노총에 가입된 직원은 진급도 차별받는 것은 물론 상급자가 임의로 한국 노총으로 노조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강성이라서 말을 잘 듣는 한국 노총으로 바꾸려 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불 앞에서 불 멍을 때리고 물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명상이다. 순간적 명상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 일,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게 하고 심장을 흥분하게 한다. 남의 일이다. 남의 일이라 하고 최면을 걸면 걸수록 내일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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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반복되는 고통은 반복되는 상처를 남긴다. 혹자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면 단련이 된다고 그래서 아픔이 조금은 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반복되는 아픔에도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통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내 다리엔 작은 상처들이 많다. 넘어지고 깨진 고통의 흔적들이다. 그렇다 지금은 왜 생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처들은 그냥 기록으로 남아 그날의 상처를 보여 줄 뿐이지만 그렇다고 상처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 아니 세계적은 빵 공장에서 일하던 청춘이 일하다 기계에 끼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고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 선진국으로 세계 6위의 국력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계속 산업 재해나 어이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래전 나는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그 직장에서 라인이라고 불리는 생산라인에는 프레스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생산 기술부 금형 반에서 금형을 만들어 금형의 시험 가동을 위해 생산라인에 가서 금형을 시험할 때 그곳에 일하던 직원들이 대부분 손가락을 다친 것을 보게 됐다. 안전을 위해 일정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놓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를 가동할 수 있지만 생산이 늦어져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어 안전장치를 꺼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야간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금형 틀 안에 손가락을 넣고 기계가 작동한다고 했다. 그게 벌써 40년 전의 일이니 지금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고 생활 모든 곳에 센서로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작동하는 반죽 믹서에 사람의 목이 끼어 사망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창피한 일이다. 그리고 사고를 확인하고도 119를 부르지 않고 사고 원인을 따지고 다른 직원을 야단치고 있었다니 더욱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소년 소녀 가장이 아니고 임시직이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는 놀랄만한 일이 산업 현장에서 자주 벌어진다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사망한 선생님 중에 기간제 정규직이 아닌 선생님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는 보도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간제, 시급 아르바이트, 본사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 직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직원의 사망이나 산업 재해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 산업 현장이 많다. 조선소도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하청 회사에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 그것도 아닌 하루 일당 등등.

사람이 한우 등급 매겨지듯이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일당. 임시직 등으로 나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똑같은 생산 효과를 원한다. 아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청 회사 직원이나 임시직이나 일당 직원이다. 일하는 거 봐서 임금을 주겠다는 고용주도 많다. 일하는 거 봐서 정규직 시켜 줄게, 일하는 거 봐서 하청을 주든지 말든지 할께 등 생산 현장에서 희망 고문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위장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세계에 수백 개의 점포를 내고 회사의 이름처럼 본고장인 프랑스에도 입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먼저 생명을 앗아 간 재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발표하지 않고 기업의 힘을 이용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노동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에 머리를 넣었는가라고 말한다. 사고가 난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직원들을 재촉해 생산에만 몰두한다. 불매운동을 해도 본사는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조에도 귀족 노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받고 그만큼 베네핏을 받는데도 더 받겠다고 파업하는 노조도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데 저 기업 저러다 세계의 기업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회사는 민주노총에 가입된 직원은 진급도 차별받는 것은 물론 상급자가 임의로 한국 노총으로 노조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강성이라서 말을 잘 듣는 한국 노총으로 바꾸려 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불 앞에서 불 멍을 때리고 물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명상이다. 순간적 명상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 일,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게 하고 심장을 흥분하게 한다. 남의 일이다. 남의 일이라 하고 최면을 걸면 걸수록 내일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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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멍
불 앞에 앉아 멍 때리다
불 속에 마음 빼앗겨
껍데기 나만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명상
마음 닦는 일이 어려운 것은
잡념이 한 가득이라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도
거친 파도가 친다

누더기 승복 입고
날마다 똑같은 일상을 사는 노승처럼
어제 입은 옷을 어제도 오늘도 일주일을 입어도 편하다
입은 듯 안 입은 듯
입은 것조차 잊고

날마다 출근길 버스에서 전철에서 도로에서
살아내던 내가 기억 속에 꿈결처럼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홀씨같이
허물을 벗고 훨훨 나는 꿈꾸는 나방처럼

먹고 사는 일
지게 위에 얹은 무거운 짐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지난 생에 남겨뒀던 숙제같이

바다를 바라보고
첩첩이 그려진 능선을 바라보고
떨어지는 물방울을 바라보다
물방울 속에 멈추어진 시간 같은 세상.
 







#작가의 변
반복되는 고통은 반복되는 상처를 남긴다. 혹자는 같은 아픔이 반복되면 단련이 된다고 그래서 아픔이 조금은 덜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은 반복되는 아픔에도 상처와 고통, 그리고 그로 인한 통증은 더욱 커질 수 있다. 내 다리엔 작은 상처들이 많다. 넘어지고 깨진 고통의 흔적들이다. 그렇다 지금은 왜 생겼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 상처들은 그냥 기록으로 남아 그날의 상처를 보여 줄 뿐이지만 그렇다고 상처로 인한 고통이 없어지지 않는다.

최근 한국, 아니 세계적은 빵 공장에서 일하던 청춘이 일하다 기계에 끼어서 사망했다는 기사를 봤다. 산업 재해로 인한 사망은 늘 있었고 새로운 사실도 아니다. 하지만 세계적 선진국으로 세계 6위의 국력을 가졌다는 국가에서 계속 산업 재해나 어이없는 일로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다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오래전 나는 농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첫 직장 생활을 했다. 그 직장에서 라인이라고 불리는 생산라인에는 프레스 작업을 하는 동료들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생산 기술부 금형 반에서 금형을 만들어 금형의 시험 가동을 위해 생산라인에 가서 금형을 시험할 때 그곳에 일하던 직원들이 대부분 손가락을 다친 것을 보게 됐다. 안전을 위해 일정 부분에 손가락을 가져다 놓으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하는 안전장치를 가동할 수 있지만 생산이 늦어져 생산량을 맞추기 힘들어 안전장치를 꺼놓는다고 했다. 그리고 야간까지 작업을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금형 틀 안에 손가락을 넣고 기계가 작동한다고 했다. 그게 벌써 40년 전의 일이니 지금 세계 최고의 반도체를 만들고 생활 모든 곳에 센서로 작동하는 가전제품을 가진 대한민국에서 작동하는 반죽 믹서에 사람의 목이 끼어 사망했다는 것은 어쩌면 아주 창피한 일이다. 그리고 사고를 확인하고도 119를 부르지 않고 사고 원인을 따지고 다른 직원을 야단치고 있었다니 더욱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소년소녀가장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문제의 핵심은 소년 소녀 가장이 아니고 임시직이어서 정규직이 아니어서 119를 부르지 않았다는 놀랄만한 일이 산업 현장에서 자주 벌어진다는 일이다. 세월호 사고 때도 사망한 선생님 중에 기간제 정규직이 아닌 선생님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는 보도가 나와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기간제, 시급 아르바이트, 본사 직원이 아닌 하청 업체 직원 등등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가 그 직원의 사망이나 산업 재해에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같은 일을 하지만 다른 대우를 받는 산업 현장이 많다. 조선소도 같은 현장에서 일을 하지만,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하청 회사에 하청을 받은 회사의 직원, 그것도 아닌 하루 일당 등등.

사람이 한우 등급 매겨지듯이 본사 직원, 하청 회사 직원, 일당. 임시직 등으로 나뉘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회사는 똑같은 생산 효과를 원한다. 아니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하청 회사 직원이나 임시직이나 일당 직원이다. 일하는 거 봐서 임금을 주겠다는 고용주도 많다. 일하는 거 봐서 정규직 시켜 줄게, 일하는 거 봐서 하청을 주든지 말든지 할께 등 생산 현장에서 희망 고문은 늘 있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을 위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을 위장하기도 한다. 기업의 이미지를 위해서.

세계에 수백 개의 점포를 내고 회사의 이름처럼 본고장인 프랑스에도 입점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먼저 생명을 앗아 간 재해 현장에서 있었던 일을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발표하지 않고 기업의 힘을 이용해 언론 보도를 통제하고 노동자가 잘못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왜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고 기계에 머리를 넣었는가라고 말한다. 사고가 난 옆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른 직원들을 재촉해 생산에만 몰두한다. 불매운동을 해도 본사는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를 만들었다.

노조에도 귀족 노조가 있다고 말한다. 그만큼 받고 그만큼 베네핏을 받는데도 더 받겠다고 파업하는 노조도 있다. 세계적으로 경제가 어려운데 저 기업 저러다 세계의 기업 경쟁에서 밀려 도태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회사는 민주노총에 가입된 직원은 진급도 차별받는 것은 물론 상급자가 임의로 한국 노총으로 노조를 변경하기도 했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강성이라서 말을 잘 듣는 한국 노총으로 바꾸려 했나 하는 합리적 의심을 들게 한다.

불 앞에서 불 멍을 때리고 물 앞에서 멍하니 바라보는 것은 명상이다. 순간적 명상 모든 생각을 내려놓는 일, 하지만 세상은 생각하게 하고 심장을 흥분하게 한다. 남의 일이다. 남의 일이라 하고 최면을 걸면 걸수록 내일이 되어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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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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