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8. 업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18. 업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6.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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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를 죽이고
닭을 죽이고

누굴 미워하면 할수록
누굴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업이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 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에 끈처럼
윤회 억 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작가의 변
세상에 가장 상위 포식자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사람은 가장 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도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많은 올챙이가 태어난다. 물론 많은 동물이 개구리알 때부터 먹을 것을 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가 되어서도 늘 주변의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논농사를 안 지으면 개구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 사실 늪지대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논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를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이앙기와 콤바인을 쓰듯 점점 기계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을 많이 쓰면서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논에 살던 것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벼가 사람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연 농법을 하면서 메뚜기가 뛰어놀고 개구리 미꾸라지까지 있는 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피에 꿰어 들고 다니거나 소주병에 담아서 집에 와서 볶아 먹기도 했다. 물론 천렵이라고 농사를 짓기 전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즐거운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지금은 동남아 산골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본다.

어릴 때 산이고 들에 정말 뱀이 많았다.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뱀은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런데 뱀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도 싫었다. 그래서 뱀을 보는 즉시 비료 포대에 툭 쳐서 넣고 시내에 뱀 장사에게 가져다 팔거나 뾰족한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머리를 찔러서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뱀을 더욱 쳐 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냈다. 죽은 나무가지에 뱀들이 머리를 올려놓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낫으로 뱀을 풀 베듯 벤 적도 있다. 내가 뱀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뱀이 나의 뒤꿈치를 물거나 풀을 벨 때 까치 독사처럼 점프해서 내 손등을 물 것만 같았다.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을뻔한 이웃을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에 나갈 때마다 긴 장화를 신고 긴팔 옷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하지만 그런다고 뱀에게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두꺼비도 독사와 맞서서 싸우는데 사람은 독사가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물론 뱀을 잡으면서도 두려움이 더 크다. 벌에게 쏘이면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달콤한 꿀이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은 아주 지독하다. 그래서 짚과 풀을 태워서 연기로 벌을 마취시키고 삽으로 빨리 벌집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냈다. 아무리 마취됐다고 해도 벌집에서 벌은 끊임없이 계속 나와 우리를 물었다. 결국은 벌을 피해 도망가다가 엎드리면 벌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에 고구마밭에 엎드렸다. 굵은 모래로 된 고구마밭에 배를 쭉 깔면서 엎드렸더니 배가 다 까지고 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의 온몸을 물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귀 볼, 얼굴을 이곳저곳 물고 몸도 이곳저곳 물어서 얼굴이 붓고 온몸이 부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배에선 모래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면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속이 상해서 빗자루로 마구 때리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어머니가 많이 속이 상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대신 자연에서 그렇게 뱀을 잡고 벌집을 파헤치고 콩 서리, 어두운 그믐밤 과수원 사과 서리, 수박밭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며 자랐다. 물론 실내는 물론 실외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개울 약간 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산에 올라가 나리도 꺾고 집 뒤 란에 있는 앵두도 털어서 먹고 과수원집의 작약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싸리버섯 밤나무 버섯 등 버섯들도 많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예쁜 버섯들도 많았다. 그런 버섯은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소 꼴도 가능하면 개울가에서 베거나 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가서 산에 있는 풀을 베어 오고 하셨다. 소도 사람보다는 힘이 셌다. 코 두레를 해서 끈을 매서 아프게 조종하니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있지 힘으로 하면 사람이 어디 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소가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옛날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소가 뿔로 호랑이 배를 떠서 죽게 했다는 무용담은 그럴듯했다. 개가 주인을 위해 늑대와 싸워 죽으면서도 주인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 닭 숯 닭 잡아서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자기들만 먹더라는 구전 동요보다 더 재미있었다.







난 어릴 때 집에 책이 없었다. 옆집에는 형들이 있어서 만화책을 비료 포대로 쌓아 놓고 보고는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그림만 보기도 하고 한글을 읽게 되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책의 스토리 중에는 칼싸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협객 같은 무협지류가 많았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 만화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복수를 위해 뱀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로 된 문을 뚫고 뱀이 집안에 들어가 원수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 난 뱀을 상당히 많이 죽인 터가 혹시라도 뱀이 살아나거나 다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쫄기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뱀, 지네, 독 버섯 등 사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많았다. 독이 조금만 사람에게 들어가도 사람은 죽는다. 병원은 멀고 약국조차 먼 시골 사정상 차도 없고 구급차도 있는 줄도 모르던 시대였으니 물리거나 잘못 먹으면 죽었다. 지금도 정글에 가면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남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과 칼을 준비하고 정글에 들어간다.

과학이 발달하고 살기 편리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위험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은 돈 때문에, 이익 때문에, 목적 때문에 등등 많다. 사람의 정신도 이젠 많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열 환자도 많이 나오고, 마약 중독 환자, 알코올 중독 환자도 많이 나온다.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도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공장에선 계속 새로운 전자기기를 내놓고 플라스틱 등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지국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 간다. 사람만 사는 지구가 아닌데 사람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본다. 우라늄으로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 편리한 에너지로 쓰지만, 자연재해에도 그 핵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심지어는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는 언젠가 지구가 정말 더 이상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독을 가진 동식물은 물론 힘이 세거나 약하거니, 빠르거나, 느리거나, 날거나 땅속에 살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일정한 규칙 속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다시 원해 상태를 회복해 간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같은 대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발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연이 영양분과 햇살을 공급하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점점 거스르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업은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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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를 죽이고
닭을 죽이고

누굴 미워하면 할수록
누굴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업이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 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에 끈처럼
윤회 억 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를 죽이고
닭을 죽이고

누굴 미워하면 할수록
누굴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업이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 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에 끈처럼
윤회 억 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작가의 변
세상에 가장 상위 포식자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사람은 가장 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도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많은 올챙이가 태어난다. 물론 많은 동물이 개구리알 때부터 먹을 것을 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가 되어서도 늘 주변의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논농사를 안 지으면 개구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 사실 늪지대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논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를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이앙기와 콤바인을 쓰듯 점점 기계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을 많이 쓰면서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논에 살던 것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벼가 사람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연 농법을 하면서 메뚜기가 뛰어놀고 개구리 미꾸라지까지 있는 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피에 꿰어 들고 다니거나 소주병에 담아서 집에 와서 볶아 먹기도 했다. 물론 천렵이라고 농사를 짓기 전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즐거운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지금은 동남아 산골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본다.

어릴 때 산이고 들에 정말 뱀이 많았다.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뱀은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런데 뱀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도 싫었다. 그래서 뱀을 보는 즉시 비료 포대에 툭 쳐서 넣고 시내에 뱀 장사에게 가져다 팔거나 뾰족한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머리를 찔러서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뱀을 더욱 쳐 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냈다. 죽은 나무가지에 뱀들이 머리를 올려놓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낫으로 뱀을 풀 베듯 벤 적도 있다. 내가 뱀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뱀이 나의 뒤꿈치를 물거나 풀을 벨 때 까치 독사처럼 점프해서 내 손등을 물 것만 같았다.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을뻔한 이웃을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에 나갈 때마다 긴 장화를 신고 긴팔 옷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하지만 그런다고 뱀에게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두꺼비도 독사와 맞서서 싸우는데 사람은 독사가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물론 뱀을 잡으면서도 두려움이 더 크다. 벌에게 쏘이면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달콤한 꿀이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은 아주 지독하다. 그래서 짚과 풀을 태워서 연기로 벌을 마취시키고 삽으로 빨리 벌집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냈다. 아무리 마취됐다고 해도 벌집에서 벌은 끊임없이 계속 나와 우리를 물었다. 결국은 벌을 피해 도망가다가 엎드리면 벌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에 고구마밭에 엎드렸다. 굵은 모래로 된 고구마밭에 배를 쭉 깔면서 엎드렸더니 배가 다 까지고 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의 온몸을 물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귀 볼, 얼굴을 이곳저곳 물고 몸도 이곳저곳 물어서 얼굴이 붓고 온몸이 부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배에선 모래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면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속이 상해서 빗자루로 마구 때리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어머니가 많이 속이 상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대신 자연에서 그렇게 뱀을 잡고 벌집을 파헤치고 콩 서리, 어두운 그믐밤 과수원 사과 서리, 수박밭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며 자랐다. 물론 실내는 물론 실외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개울 약간 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산에 올라가 나리도 꺾고 집 뒤 란에 있는 앵두도 털어서 먹고 과수원집의 작약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싸리버섯 밤나무 버섯 등 버섯들도 많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예쁜 버섯들도 많았다. 그런 버섯은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소 꼴도 가능하면 개울가에서 베거나 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가서 산에 있는 풀을 베어 오고 하셨다. 소도 사람보다는 힘이 셌다. 코 두레를 해서 끈을 매서 아프게 조종하니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있지 힘으로 하면 사람이 어디 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소가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옛날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소가 뿔로 호랑이 배를 떠서 죽게 했다는 무용담은 그럴듯했다. 개가 주인을 위해 늑대와 싸워 죽으면서도 주인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 닭 숯 닭 잡아서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자기들만 먹더라는 구전 동요보다 더 재미있었다.







난 어릴 때 집에 책이 없었다. 옆집에는 형들이 있어서 만화책을 비료 포대로 쌓아 놓고 보고는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그림만 보기도 하고 한글을 읽게 되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책의 스토리 중에는 칼싸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협객 같은 무협지류가 많았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 만화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복수를 위해 뱀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로 된 문을 뚫고 뱀이 집안에 들어가 원수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 난 뱀을 상당히 많이 죽인 터가 혹시라도 뱀이 살아나거나 다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쫄기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뱀, 지네, 독 버섯 등 사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많았다. 독이 조금만 사람에게 들어가도 사람은 죽는다. 병원은 멀고 약국조차 먼 시골 사정상 차도 없고 구급차도 있는 줄도 모르던 시대였으니 물리거나 잘못 먹으면 죽었다. 지금도 정글에 가면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남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과 칼을 준비하고 정글에 들어간다.

과학이 발달하고 살기 편리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위험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은 돈 때문에, 이익 때문에, 목적 때문에 등등 많다. 사람의 정신도 이젠 많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열 환자도 많이 나오고, 마약 중독 환자, 알코올 중독 환자도 많이 나온다.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도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공장에선 계속 새로운 전자기기를 내놓고 플라스틱 등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지국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 간다. 사람만 사는 지구가 아닌데 사람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본다. 우라늄으로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 편리한 에너지로 쓰지만, 자연재해에도 그 핵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심지어는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는 언젠가 지구가 정말 더 이상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독을 가진 동식물은 물론 힘이 세거나 약하거니, 빠르거나, 느리거나, 날거나 땅속에 살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일정한 규칙 속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다시 원해 상태를 회복해 간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같은 대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발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연이 영양분과 햇살을 공급하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점점 거스르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업은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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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세상에 가장 상위 포식자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사람은 가장 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도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많은 올챙이가 태어난다. 물론 많은 동물이 개구리알 때부터 먹을 것을 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가 되어서도 늘 주변의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논농사를 안 지으면 개구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 사실 늪지대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논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를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이앙기와 콤바인을 쓰듯 점점 기계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을 많이 쓰면서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논에 살던 것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벼가 사람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연 농법을 하면서 메뚜기가 뛰어놀고 개구리 미꾸라지까지 있는 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피에 꿰어 들고 다니거나 소주병에 담아서 집에 와서 볶아 먹기도 했다. 물론 천렵이라고 농사를 짓기 전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즐거운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지금은 동남아 산골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본다.

어릴 때 산이고 들에 정말 뱀이 많았다.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뱀은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런데 뱀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도 싫었다. 그래서 뱀을 보는 즉시 비료 포대에 툭 쳐서 넣고 시내에 뱀 장사에게 가져다 팔거나 뾰족한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머리를 찔러서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뱀을 더욱 쳐 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냈다. 죽은 나무가지에 뱀들이 머리를 올려놓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낫으로 뱀을 풀 베듯 벤 적도 있다. 내가 뱀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뱀이 나의 뒤꿈치를 물거나 풀을 벨 때 까치 독사처럼 점프해서 내 손등을 물 것만 같았다.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을뻔한 이웃을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에 나갈 때마다 긴 장화를 신고 긴팔 옷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하지만 그런다고 뱀에게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두꺼비도 독사와 맞서서 싸우는데 사람은 독사가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물론 뱀을 잡으면서도 두려움이 더 크다. 벌에게 쏘이면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달콤한 꿀이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은 아주 지독하다. 그래서 짚과 풀을 태워서 연기로 벌을 마취시키고 삽으로 빨리 벌집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냈다. 아무리 마취됐다고 해도 벌집에서 벌은 끊임없이 계속 나와 우리를 물었다. 결국은 벌을 피해 도망가다가 엎드리면 벌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에 고구마밭에 엎드렸다. 굵은 모래로 된 고구마밭에 배를 쭉 깔면서 엎드렸더니 배가 다 까지고 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의 온몸을 물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귀 볼, 얼굴을 이곳저곳 물고 몸도 이곳저곳 물어서 얼굴이 붓고 온몸이 부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배에선 모래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면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속이 상해서 빗자루로 마구 때리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어머니가 많이 속이 상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대신 자연에서 그렇게 뱀을 잡고 벌집을 파헤치고 콩 서리, 어두운 그믐밤 과수원 사과 서리, 수박밭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며 자랐다. 물론 실내는 물론 실외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개울 약간 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산에 올라가 나리도 꺾고 집 뒤 란에 있는 앵두도 털어서 먹고 과수원집의 작약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싸리버섯 밤나무 버섯 등 버섯들도 많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예쁜 버섯들도 많았다. 그런 버섯은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소 꼴도 가능하면 개울가에서 베거나 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가서 산에 있는 풀을 베어 오고 하셨다. 소도 사람보다는 힘이 셌다. 코 두레를 해서 끈을 매서 아프게 조종하니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있지 힘으로 하면 사람이 어디 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소가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옛날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소가 뿔로 호랑이 배를 떠서 죽게 했다는 무용담은 그럴듯했다. 개가 주인을 위해 늑대와 싸워 죽으면서도 주인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 닭 숯 닭 잡아서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자기들만 먹더라는 구전 동요보다 더 재미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를 죽이고
닭을 죽이고

누굴 미워하면 할수록
누굴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업이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 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에 끈처럼
윤회 억 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작가의 변
세상에 가장 상위 포식자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사람은 가장 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도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많은 올챙이가 태어난다. 물론 많은 동물이 개구리알 때부터 먹을 것을 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가 되어서도 늘 주변의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논농사를 안 지으면 개구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 사실 늪지대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논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를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이앙기와 콤바인을 쓰듯 점점 기계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을 많이 쓰면서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논에 살던 것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벼가 사람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연 농법을 하면서 메뚜기가 뛰어놀고 개구리 미꾸라지까지 있는 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피에 꿰어 들고 다니거나 소주병에 담아서 집에 와서 볶아 먹기도 했다. 물론 천렵이라고 농사를 짓기 전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즐거운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지금은 동남아 산골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본다.

어릴 때 산이고 들에 정말 뱀이 많았다.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뱀은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런데 뱀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도 싫었다. 그래서 뱀을 보는 즉시 비료 포대에 툭 쳐서 넣고 시내에 뱀 장사에게 가져다 팔거나 뾰족한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머리를 찔러서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뱀을 더욱 쳐 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냈다. 죽은 나무가지에 뱀들이 머리를 올려놓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낫으로 뱀을 풀 베듯 벤 적도 있다. 내가 뱀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뱀이 나의 뒤꿈치를 물거나 풀을 벨 때 까치 독사처럼 점프해서 내 손등을 물 것만 같았다.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을뻔한 이웃을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에 나갈 때마다 긴 장화를 신고 긴팔 옷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하지만 그런다고 뱀에게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두꺼비도 독사와 맞서서 싸우는데 사람은 독사가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물론 뱀을 잡으면서도 두려움이 더 크다. 벌에게 쏘이면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달콤한 꿀이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은 아주 지독하다. 그래서 짚과 풀을 태워서 연기로 벌을 마취시키고 삽으로 빨리 벌집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냈다. 아무리 마취됐다고 해도 벌집에서 벌은 끊임없이 계속 나와 우리를 물었다. 결국은 벌을 피해 도망가다가 엎드리면 벌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에 고구마밭에 엎드렸다. 굵은 모래로 된 고구마밭에 배를 쭉 깔면서 엎드렸더니 배가 다 까지고 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의 온몸을 물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귀 볼, 얼굴을 이곳저곳 물고 몸도 이곳저곳 물어서 얼굴이 붓고 온몸이 부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배에선 모래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면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속이 상해서 빗자루로 마구 때리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어머니가 많이 속이 상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대신 자연에서 그렇게 뱀을 잡고 벌집을 파헤치고 콩 서리, 어두운 그믐밤 과수원 사과 서리, 수박밭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며 자랐다. 물론 실내는 물론 실외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개울 약간 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산에 올라가 나리도 꺾고 집 뒤 란에 있는 앵두도 털어서 먹고 과수원집의 작약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싸리버섯 밤나무 버섯 등 버섯들도 많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예쁜 버섯들도 많았다. 그런 버섯은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소 꼴도 가능하면 개울가에서 베거나 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가서 산에 있는 풀을 베어 오고 하셨다. 소도 사람보다는 힘이 셌다. 코 두레를 해서 끈을 매서 아프게 조종하니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있지 힘으로 하면 사람이 어디 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소가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옛날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소가 뿔로 호랑이 배를 떠서 죽게 했다는 무용담은 그럴듯했다. 개가 주인을 위해 늑대와 싸워 죽으면서도 주인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 닭 숯 닭 잡아서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자기들만 먹더라는 구전 동요보다 더 재미있었다.







난 어릴 때 집에 책이 없었다. 옆집에는 형들이 있어서 만화책을 비료 포대로 쌓아 놓고 보고는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그림만 보기도 하고 한글을 읽게 되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책의 스토리 중에는 칼싸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협객 같은 무협지류가 많았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 만화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복수를 위해 뱀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로 된 문을 뚫고 뱀이 집안에 들어가 원수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 난 뱀을 상당히 많이 죽인 터가 혹시라도 뱀이 살아나거나 다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쫄기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뱀, 지네, 독 버섯 등 사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많았다. 독이 조금만 사람에게 들어가도 사람은 죽는다. 병원은 멀고 약국조차 먼 시골 사정상 차도 없고 구급차도 있는 줄도 모르던 시대였으니 물리거나 잘못 먹으면 죽었다. 지금도 정글에 가면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남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과 칼을 준비하고 정글에 들어간다.

과학이 발달하고 살기 편리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위험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은 돈 때문에, 이익 때문에, 목적 때문에 등등 많다. 사람의 정신도 이젠 많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열 환자도 많이 나오고, 마약 중독 환자, 알코올 중독 환자도 많이 나온다.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도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공장에선 계속 새로운 전자기기를 내놓고 플라스틱 등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지국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 간다. 사람만 사는 지구가 아닌데 사람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본다. 우라늄으로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 편리한 에너지로 쓰지만, 자연재해에도 그 핵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심지어는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는 언젠가 지구가 정말 더 이상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독을 가진 동식물은 물론 힘이 세거나 약하거니, 빠르거나, 느리거나, 날거나 땅속에 살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일정한 규칙 속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다시 원해 상태를 회복해 간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같은 대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발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연이 영양분과 햇살을 공급하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점점 거스르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업은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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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 때 집에 책이 없었다. 옆집에는 형들이 있어서 만화책을 비료 포대로 쌓아 놓고 보고는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그림만 보기도 하고 한글을 읽게 되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책의 스토리 중에는 칼싸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협객 같은 무협지류가 많았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 만화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복수를 위해 뱀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로 된 문을 뚫고 뱀이 집안에 들어가 원수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 난 뱀을 상당히 많이 죽인 터가 혹시라도 뱀이 살아나거나 다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쫄기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뱀, 지네, 독 버섯 등 사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많았다. 독이 조금만 사람에게 들어가도 사람은 죽는다. 병원은 멀고 약국조차 먼 시골 사정상 차도 없고 구급차도 있는 줄도 모르던 시대였으니 물리거나 잘못 먹으면 죽었다. 지금도 정글에 가면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남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과 칼을 준비하고 정글에 들어간다.

과학이 발달하고 살기 편리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위험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은 돈 때문에, 이익 때문에, 목적 때문에 등등 많다. 사람의 정신도 이젠 많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열 환자도 많이 나오고, 마약 중독 환자, 알코올 중독 환자도 많이 나온다.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도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공장에선 계속 새로운 전자기기를 내놓고 플라스틱 등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지국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 간다. 사람만 사는 지구가 아닌데 사람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본다. 우라늄으로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 편리한 에너지로 쓰지만, 자연재해에도 그 핵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심지어는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는 언젠가 지구가 정말 더 이상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독을 가진 동식물은 물론 힘이 세거나 약하거니, 빠르거나, 느리거나, 날거나 땅속에 살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일정한 규칙 속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다시 원해 상태를 회복해 간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같은 대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발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연이 영양분과 햇살을 공급하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점점 거스르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업은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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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공짜는 없다
먹으면 먹는 대로
입으면 입는 대로
물고기를 죽이고
닭을 죽이고

누굴 미워하면 할수록
누굴 질투하면 할수록
쌓이는 업이
천사 날개에 무거운 쇠 뭉치 달듯
닳아 없어지고
불타 없어지고
바람에 날려 없어져도

지독한 사랑에 끈처럼
윤회 억 겁 속에 이어질 인연처럼

 







#작가의 변
세상에 가장 상위 포식자가 사람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사실 사람은 가장 약한 존재인지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 개구리도 한 번에 많은 알을 낳아서 많은 올챙이가 태어난다. 물론 많은 동물이 개구리알 때부터 먹을 것을 노리고 올챙이와 개구리가 되어서도 늘 주변의 잡아먹으려는 동물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논농사를 안 지으면 개구리들이 살아가는 것이 힘들지 모른다. 사실 늪지대나 숲에서 자연적으로 살아가기도 하지만 논에서 알을 낳고 살아가는 개구리가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농사를 소가 끄는 쟁기가 아닌 이앙기와 콤바인을 쓰듯 점점 기계 영농이 시작되고 농약을 많이 쓰면서 메뚜기나, 개구리 같은 논에 살던 것들도 사라져 간다. 요즘엔 농약을 많이 사용하는 벼가 사람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자연 농법을 하면서 메뚜기가 뛰어놀고 개구리 미꾸라지까지 있는 논도 많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논에서 메뚜기를 잡아 피에 꿰어 들고 다니거나 소주병에 담아서 집에 와서 볶아 먹기도 했다. 물론 천렵이라고 농사를 짓기 전 논을 파서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즐거운 모습도 있었다. 우리의 어릴 적 모습이 지금은 동남아 산골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다큐멘터리도 많이 본다.

어릴 때 산이고 들에 정말 뱀이 많았다. 집마다 집을 지키는 구렁이가 있다고도 했다. 그만큼 뱀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뱀은 개구리나 쥐 등을 잡아먹고 산다. 그런데 뱀은 그냥 보는 것 자체로도 싫었다. 그래서 뱀을 보는 즉시 비료 포대에 툭 쳐서 넣고 시내에 뱀 장사에게 가져다 팔거나 뾰족한 쇠꼬챙이가 달린 지게 작대기로 머리를 찔러서 죽이기도 했다. 그것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다. 뱀에 대한 두려움이 뱀을 더욱 쳐 참하게 죽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냈다. 죽은 나무가지에 뱀들이 머리를 올려놓은 끔찍한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낫으로 뱀을 풀 베듯 벤 적도 있다. 내가 뱀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뱀이 나의 뒤꿈치를 물거나 풀을 벨 때 까치 독사처럼 점프해서 내 손등을 물 것만 같았다.

묘에 벌초하러 갔다가 뱀에게 물려서 죽을뻔한 이웃을 많이 봤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들에 나갈 때마다 긴 장화를 신고 긴팔 옷을 입고 완전 무장을 하지만 그런다고 뱀에게 물리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두려움이 앞섰다. 두꺼비도 독사와 맞서서 싸우는데 사람은 독사가 무서워 도망가는 사람이 많다. 물론 뱀을 잡으면서도 두려움이 더 크다. 벌에게 쏘이면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달콤한 꿀이 사람을 유혹하기도 한다. 땅속에 집을 짓는 땅벌은 아주 지독하다. 그래서 짚과 풀을 태워서 연기로 벌을 마취시키고 삽으로 빨리 벌집이 있을 곳으로 추정되는 곳을 파냈다. 아무리 마취됐다고 해도 벌집에서 벌은 끊임없이 계속 나와 우리를 물었다. 결국은 벌을 피해 도망가다가 엎드리면 벌이 그냥 지나간다는 말에 고구마밭에 엎드렸다. 굵은 모래로 된 고구마밭에 배를 쭉 깔면서 엎드렸더니 배가 다 까지고 벌은 그냥 지나가지 않고 나의 온몸을 물었다. 얼굴을 가렸지만, 귀 볼, 얼굴을 이곳저곳 물고 몸도 이곳저곳 물어서 얼굴이 붓고 온몸이 부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배에선 모래에 긁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면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속이 상해서 빗자루로 마구 때리셨다. 내가 생각해봐도 어머니가 많이 속이 상했을 것만 같다. 우리는 컴퓨터 게임이 없는 대신 자연에서 그렇게 뱀을 잡고 벌집을 파헤치고 콩 서리, 어두운 그믐밤 과수원 사과 서리, 수박밭과 참외밭에서 서리하며 자랐다. 물론 실내는 물론 실외 수영장은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에 개울 약간 깊은 곳에서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발가벗고 물놀이를 즐겼다. 물놀이하다가 지겨워지면 산에 올라가 나리도 꺾고 집 뒤 란에 있는 앵두도 털어서 먹고 과수원집의 작약꽃을 꺾어 꽃다발을 만들기도 했다.

산이나 들에 가면 싸리버섯 밤나무 버섯 등 버섯들도 많았지만, 땅에서 솟아오른 예쁜 버섯들도 많았다. 그런 버섯은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고 했다. 소 꼴도 가능하면 개울가에서 베거나 했지만, 아버지는 멀리 깊은 산에 가서 산에 있는 풀을 베어 오고 하셨다. 소도 사람보다는 힘이 셌다. 코 두레를 해서 끈을 매서 아프게 조종하니 사람이 소를 다룰 수 있지 힘으로 하면 사람이 어디 소에게 이길 수 있을까? 소가 호랑이도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로 아이들끼리 싸움이 붙기도 했다. 옛날에 황소를 몰고 가던 농부가 호랑이를 만났는데 소가 뿔로 호랑이 배를 떠서 죽게 했다는 무용담은 그럴듯했다. 개가 주인을 위해 늑대와 싸워 죽으면서도 주인을 지킨다는 이야기도 고모네 집에 갔더니 암 닭 숯 닭 잡아서 한 숟가락도 안 주고 자기들만 먹더라는 구전 동요보다 더 재미있었다.







난 어릴 때 집에 책이 없었다. 옆집에는 형들이 있어서 만화책을 비료 포대로 쌓아 놓고 보고는 했는데 한글을 읽지 못할 때부터 그림만 보기도 하고 한글을 읽게 되면서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도 기억나는 만화책의 스토리 중에는 칼싸움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협객 같은 무협지류가 많았고 눈이 세 개 달린 우주인 만화도 재미있게 봤던 것 같다. 그중에는 복수를 위해 뱀으로 다시 태어나 종이로 된 문을 뚫고 뱀이 집안에 들어가 원수를 물어 죽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당시에 난 뱀을 상당히 많이 죽인 터가 혹시라도 뱀이 살아나거나 다시 태어나 나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쫄기도 했다. 시골에 살다 보면 뱀, 지네, 독 버섯 등 사람보다 더 강한 것들이 많았다. 독이 조금만 사람에게 들어가도 사람은 죽는다. 병원은 멀고 약국조차 먼 시골 사정상 차도 없고 구급차도 있는 줄도 모르던 시대였으니 물리거나 잘못 먹으면 죽었다. 지금도 정글에 가면 사람들은 나약한 존재가 되어 살아남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총과 칼을 준비하고 정글에 들어간다.

과학이 발달하고 살기 편리한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자연에서의 위험보다 사람이 만들어낸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고 있다. 교통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많고, 사람이 사람을 살인하는 경우도 많다. 그 원인은 돈 때문에, 이익 때문에, 목적 때문에 등등 많다. 사람의 정신도 이젠 많이 피폐해져서 우울증을 앓고 정신 분열 환자도 많이 나오고, 마약 중독 환자, 알코올 중독 환자도 많이 나온다. 사람이 만든 문명에 사람들이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이다.

쓰레기도 날마다 어마어마한 양이 나온다. 공장에선 계속 새로운 전자기기를 내놓고 플라스틱 등을 내놓지만 그로 인해 지국의 많은 동물과 식물들이 죽어 간다. 사람만 사는 지구가 아닌데 사람으로 인해 신음하는 지구를 본다. 우라늄으로 핵이라는 것을 만들어 편리한 에너지로 쓰지만, 자연재해에도 그 핵은 무서운 무기가 되어 인간을 공포에 떨게 한다. 심지어는 바다에 핵폐기물을 버리려고까지 한다. 인간이 만든 쓰레기로 신음하는 지구는 언젠가 지구가 정말 더 이상 회생 불능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는 독을 가진 동식물은 물론 힘이 세거나 약하거니, 빠르거나, 느리거나, 날거나 땅속에 살거나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일정한 규칙 속에서 먹고 먹히면서 살아간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는 다시 원해 상태를 회복해 간다. 하지만 방사능 오염 같은 대사건이 있지 않고서는 사람들 발끝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자연이 영양분과 햇살을 공급하면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연을 점점 거스르고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 우리 인간이 지구에 어떤 행위를 하든 그 업은 우리 인간에게 되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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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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