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문관: 파초주장(芭蕉拄杖)
신무문관: 파초주장(芭蕉拄杖)
  • 박영재 명예교수
  • 승인 2023.07.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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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선도회 박영재 교수와 마음공부 63.

성찰배경: 최근 석두 선사 계열의 덕산-설봉의 법을 이은 운문(864-949) 선사와 현사(835-908) 선사 및 경청(864-937) 선사, 그리고 덕산-암두의 법을 이었으며 <무문관(無門關)>에 등장하는 서암(850-910) 선사를 중심으로 다루었습니다. 
한편 이번 글에서는 운문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무문관> 제18칙의 주인공인 동산수초(洞山守初, 910-990) 선사의 공안과 마조 선사 계열로 덕산 선사와 동시대를 호흡했던 앙산 선사의 법을 이었으나 <무문관>과 <벽암록>에 등장하지 않는 남탑광용(南塔光湧, 850-938) 선사에 대해 다룬 다음, 그의 법을 이었으며 <무문관> 제44칙의 주인공인 신라 출신 파초혜청(芭蕉慧淸, ?-?) 선사의 공안에 관해 살피고자 합니다. 

◇ 신무문관: 동산삼근洞山三斤

먼저 앞의 칼럼 글 ‘동산삼돈(洞山三頓)’에서 운문 선사와 동산 선사의 문답을 이미 다루었지만, 동산 선사가 독립해 제자들을 지도하던 가운데 피상적으로 성스럽다고 여기는 ‘부처[佛]에 대한 분별조차 끊어버리고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온몸으로 체득케 하는 공안도 새롭게 창안했는데 <무문관> 제18칙에 다음과 같이 들어 있습니다.

본칙本則: 동산 선사께 어느 때 한 승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如何是佛.]” 하고 물으니, 동산 선사께서 “삼베의 무게가 서근이니라.[麻三斤]”라고 응답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동산 늙은이가 하찮은 조개선[蚌蛤禪]을 참구하여 체득한 바가 있더니만, 조개처럼 입을 조금 열자 마치 간장(肝臟)을 열어 보이듯이 몽땅 밑천을 드러냈네. 그건 그렇다 하더라도 자! 일러 보아라. 어디에서 동산 선사의 의도(意圖)를 꿰뚫어 볼 것인가?[洞山老人參得些蚌蛤禪 纔開兩片 露出肝腸. 然雖如是 且道 向甚處見洞山.]”라고 제창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동산 스님께서 툭 내뱉은 ‘마삼근!’/ 그 말씀 친절한데, 뜻 또한 분명하네./ 이에 대해 와서 이러쿵저러쿵 시비를 가리려는 자!/ 그가 바로 (分別에 떨어진) 시비를 거는 인간이구나.[突出麻三斤 言親意更親.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

* 군더더기: 운문 선사는 문하에 뛰어난 선사를 다수 배출했는데, 오늘날의 협서성(陜西省) 서부에 있는 봉익(鳳翊) 출신인 수초 선사도 그중의 한 사람으로 그는 양주의 동산(洞山)에 살았기 때문에 보통 동산 선사로 불리었습니다. 그런데 봉익은 장안(長安), 낙양(洛陽)과 함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이래 당 시대에서 송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학적(敎學的)인 불교가 번성했던 땅이었기 때문에, 동산은 이 지역에서 태어나 매우 불교적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서북(西北)의 구석에서 남동(南東) 끝까지 수천 킬로를 여행하여 엄격하기로 소문난 운문 선사의 법을 이었다는 것은, 그의 불타는 구도심(求道心)과 강한 의지가 없었다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겠지요. 

한편 당나라 때 가사 한 벌의 무게에 해당하는 마사(麻絲)의 기본단위는 삼근(三斤)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오등회원(五燈會元)> 가운데 오조법연(五祖法演, 1024-1104) 선사의 제자인 구정청소(九頂淸素) 선사가 ‘來說是非者 便是是非人’이란 선어(禪語)를 처음 사용했다고 여겨지는데, <명심보감(明心寶鑑)> ‘성심편(省心篇)’에서도 인용되고 있습니다. 

◇ 범성양망凡聖兩忘

이번에는 <오가정종찬(五家正宗贊)> 제4권 위앙종(潙仰宗) 편에 기록되어 있는, 앙산 선사께서 남탑광용 선사를 인가(印可)하는 대목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광용 스님이 임제의현(臨濟義玄, ?-867) 선사를 찾아뵌 다음, 앙산 선사께 귀의(歸依)하고자 선사 앞에 시립(侍立)하였다. 앙산 선사께서 ‘그대는 무엇을 하러 왔느냐?[汝來作什麼]’라고 물으셨다. 그러자 광용 스님이 예를 올리고 “스님[和尚]을 뵈러 왔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앙산 선사께서 ‘나[本來面目]를 보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에 광용 스님이 ‘예. 친견(親見)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앙산 선사께서 “그래 내가 당나귀[驢]를 얼마나 닮았더냐?”라고 물으셨다. 이에 광용 스님이 ‘제가 스님을 친견하고 보니, 또한 부처와도 닮지 않았습니다.[亦不似佛]’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앙산 선사께서 “부처를 닮지 않았다면 그럼 무엇과 닮았던고?”라고 물으셨다. 이에 광용 스님이 “만일 닮은 데가 있다면, 당나귀와 견주어 무엇이 다르겠습니까?[與驢何別]”라고 대답했다. 

마침내 앙산 선사께서 크게 기뻐하며,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을 모두 잊고 지해분별(知解分別)이 다하니 (그대가) 본래면목[正體]을 드러냈구나! 내가 이 화두로 지난 20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납자(衲子)들을 점검[試驗]해왔으나 지금까지 결단(決斷)코 분명하게 깨쳐 마친 자가 없었느니라. 그대는 이 경계를 더욱 철저히 다지도록[保任하도록] 하여라.’라고 지시하셨다. 이후 앙산 선사께서는 늘 광용 스님을 가리키며 사람들에게 “이 납자(衲子)는 육신불[生佛]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군더더기: 참고로 ‘범성양망(凡聖兩忘)’의 더욱 심화된 또 다른 표현으로, 서산대사께서 <선가귀감(禪家龜鑑)> 71절에서 제창한 다음의 ‘심경양망(心境兩忘)’도 함께 살피면 좋겠습니다.

“범부는 눈앞의 바깥 경계를 취해 집착(執着)하고 수도인은 마음을 취해 집착한다. 그러나 마음과 바깥 경계, 이들 모두를 함께 잊어야만 참된 법이니라.[凡夫取境 道人取心. 心境兩忘 乃是眞法.]” 

사실 예전에 앞의 칼럼 글에서 언급했던, 널리 참구되고 있는 마조(馬祖) 선사의 ‘즉심즉불(卽心卽佛)’이든 ‘비심비불(非心非佛)’이든 ‘마음[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입을 여는 순간 결코 마음의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니 훗날 마조 선사께서도 ‘즉심즉불이라고 한 의도가 사실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窮餘之策)이었다.’라고 술회하셨던 것이겠지요.

덧붙여 광용 스님이 임제 선사를 먼저 찾아뵈었으나 미진함을 느끼고 운수행각(雲水行脚)을 하면서 수행이 무르익어갈 무렵, 당시 위산 선사와 제자인 앙산 선사가 위앙종을 창종하며 천하에 크게 위세를 떨치자 소문을 듣고 위산 선사를 친견하고자 했는데, 마침내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도래해 앙산 선사와의 첫 대면에서 문답을 통해 크게 계합(契合)하며 그의 법을 이었다고 사료됩니다. 

◇ 신무문관: 파초주장芭蕉拄杖

이어 위산-앙산-남탑 선사로 이어진 위앙종의 계보를 잇고 있는 파초 선사는 다음에 다룰 예정인 <무문관> 제9칙의 주인공인 흥양청양(興陽淸讓) 선사를 배출하기까지 한, 대선장(大禪匠)이었다고 사료되는데, 그가 새롭게 창안한 ‘주장자’ 공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본칙(本則): 파초 화상이 대중에게 “그대에게 주장자가 있으면 내가 그대에게 주장자를 줄 것이고, 그대에게 주장자가 없으면 내가 그대의 주장자를 빼앗으리라.[爾有拄杖子 我與爾拄杖子 爾無拄杖子 我奪爾拄杖子.]”라고 다그치셨다.

평창(評唱): 무문 선사께서, “주장자에 의지해 다리 끊어진 물을 건너고, 주장자와 함께 캄캄한 밤에 마을로 돌아온다. 만약 이것을 주장자라고 부른다면 화살같이 지옥에 들어가리라.[扶過斷橋水 伴歸無月村 若喚作拄杖 入地獄如箭.]”라고 제창(提唱)하셨다.

게송으로 가로되[頌曰], 제방의 깊고 얕음의 점검/ 모두 내 손에 달려있네./ 하늘을 받치고 땅을 버티며/ 가는 곳마다 종풍을 드날리네.[諸方深與淺 都在掌握中 撑天幷拄地 隨處振宗風.]

군더더기: 무문 선사께서 평창을 통해 ‘만약 주장자에 집착한다면 그 죄는 화살처럼 빠르게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라고 일갈하며 제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습니다. 이어 게송에서는 파초 선사께서 주장자를 빌어 수행자들로 하여금 본래면목을 온몸으로 체득하도록 다그치며 ‘선종의 바람[宗風]’을 크게 일으키고 있다고 극찬하고 있습니다. 

한편 파초 선사의 가르침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주장자가 있으면 주고, 없으면 빼았겠다.’는 유무·여탈(有無·與奪)로 말미암은 온갖 분별을 뛰어넘어 ‘주장자’에 즉(卽)하되, 주장자란 분별조차 일어나지 않는 경지로 나아갈 수 있을까요?

덧붙여 파초 선사의 사숙(師叔) 가운데 한 분인 신라 출신 요오순지(了悟順支, 807-883) 선사는 858년 입당(入唐)해 앙산 선사의 법을 이은 후 874년 귀국해 신라 오관산(五冠山) 서운사(瑞雲寺)에서 크게 활약했다고 하며, 그 외에도 적지 않은 신라 유학승들이 중국과 한국에서 선풍(禪風) 진작에 일조했다고 합니다. 

끝으로 비록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삼독(三毒), 즉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에 중독된 채 ‘가짜 나’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는 각계각층의 적지 않은 지도층 인사들이 정신차려 하루빨리 ‘본래면목’을 온몸으로 체득해 ‘진짜 나’로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만 있다면, 세상은 더욱 빠르게 극락정토[天國]로 탈바꿈하게 되겠지요.

박영재 교수는 서강대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3년 3월부터 1989년 8월까지 강원대 물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1989년 9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현재 서강대 물리학과 명예교수이다.
1975년 10월 선도회 종달 이희익 선사 문하로 입문한 박 교수는 1987년 9월 선사의 간화선 입실점검 과정을 모두 마쳤다. 1991년 8월과 1997년 1월 화계사에서 숭산행원 선사로부터 두 차례 독대 점검을 받았다. 1990년 6월 종달 선사 입적 후 지금까지 선도회 지도법사를 맡고 있다. 편저에 <온몸으로 투과하기: 무문관>(본북, 2011), <온몸으로 돕는 지구촌 길벗들>(마음살림, 202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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