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30. 밥을 주랴, 가스를 주랴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30. 밥을 주랴, 가스를 주랴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3.09.12 2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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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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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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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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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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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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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 먹을 땐 안 건드린다지만 먹는 시간 즐거움을 잊은 지 오래인
노동자 학생 자동차에 연료 채우듯 순식간에 끌어넣는다

군대에서도
식사 개시와 동시에 전쟁하듯 밥을 넣다가
식사 끝 퇴장을 외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직장에서도
교대로 밥 먹다 손님이 들어 와 식사를 해주고 나면
써늘해지고 불어 터진 밥을 먹지 못했지

그런데 가뭄에 울고 홍수에 우는 농부처럼
가난해서 찰흙에 버터 넣고 흙쿠키먹는 이이티 아이들처럼

중독성 강한 나뭇잎을 먹고 기분 좋아지는 레바논 아이들처럼
아프카니스탄 들판에 마약처럼
브라질 들판에 사탕수수같이
미국 들녘에 옥수수처럼
바이오 연료라며 먹는 걸로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
 







#작가의 변

사룟값은 오르고 덩달아 고깃값도 오르고 밀가루값도 사탕수수에서 나는 설탕값도 해마다 오른다.

밀가루 빈대떡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옥수숫가루 타코 만들어 살아가는 멕시코 사람들은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친다.

돈 가진 자본이 굶겨 죽이는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하루 한 끼도 못 먹는데 콩과 옥수수 수출하던 미국은 바이오 연료로 수출할 것조차 없다.

중국은 인구 대국 먹여 살리겠다 수입하면, 나비 효과로 세계곡물가격이이 들썩들썩 유엔 원조만 바라보는 나라들 배고픔만 더해 간다.

기후 위기 때문에 식량 위기가 왔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현재 기후 위기의 주범은 쌀, 콩, 밀, 보리 같은 주식을 심어야 할 곳에 사탕수수, 옥수수, 카사바 등 바이오 연료를 생산할 작물을 생산하기 때문이다.

기후 위기로 가뭄이 드니 물을 많이 사용하는 벼농사보다는 유채나 밀 등을 생산한다.

자유 무역이란 미명에 미국산 대량 생산 농산물 수입으로 한국 같은 곳은 정부 지원이 없다면 생산비도 건지기 어렵다. 미국은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는 농가에 전폭적인 정부 지원을 한다.

그래서 목초지에서 건초 생산하던 땅에서도 바이오 연료 농업을 한다.

옥수수는 원래 멕시코 같은 곳에 사람들이 타코를 주로 만들어 먹는 주재료이자 주식이며, 사료의 주재료지만 바이오 연료로 더 비싸게 판다. 감자, 밀 등 다른 작물 재배지에도 사탕수수와 옥수수를 재배한다.

더불어 밀가루, 옥수수, 쌀 등 다른 농산물 가격이 해마다 계속 오른다. 사룟값이 오르니 소, 돼지, 닭 등 목축 생산한 육류가 오르고 계란, 우윳값도 오른다.







사람들은 아우성친다. 모든 것이 올라서 못 살겠다고 하지만 본질은 보지 못하고 농업 하는 사람들 얼굴만 쳐다본다. 농업 하는 사람들이 매년 가격을 올리는 것으로 착각한다.

대체 연료로 쓴다고 태양열을 밭이나 염전에 하면 안 되듯이 사람과 가축이 먹어야 할 농산물로 연료를 생산하면 안 된다.

아이티의 어린이들이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찰흙으로 만든 버터 쿠키를 먹고 각종 병에 걸리듯이, 사람이 석탄을 먹을 수 없고 석유를 마실 수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먹고사는 것으로 장난치는 세계적 기업 카길 등과 나라들을 국제적으로 제재해야 하는 이유다.

마실 물이 없어 몇 킬로미터씩 걸어가서 뿌연 물을 길어 마시는 아프리카나 쌀이 없어 하루 한 끼도 못 먹는 필리핀의 빈민이 보여 주는 현실은 지구가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많아도 제대로 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불행한 사람은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방 하나에는 쌀과 벼 등 곡식을 쌓아 놓은 방이 있었다. 그 방의 곡식은 우리 가족이 먹을 식량이었고, 현금이 없는 농부에게는 현금이기도 했다. 하지만 봄에 씨를 뿌릴 때쯤 되면 쌀 항아리는 바닥을 드러냈다. 바가지로 쌀을 푸면 바닥이 긁히는 소리가 들렸다. 밥에 감자도 섞어서 먹고, 보리쌀을 먼저 삶아서 섞어서 먹어도 쌀은 늘 바닥을 드러냈다. 손칼국수로 저녁을 해 먹고 수제비를 해 먹고, 하루 한 끼는 밥이 아닌 밀가루 음식을 해 먹었다. 요즘처럼 라면이 흔했하지 않았다. 라면이 없던 시기, 어머니가 긴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어서 잘 들지도 않는 조선 칼로 썰어서 마르지 않은 소나무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끓인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먹고 싶은 그리운 음식 중에 하나지만 당시에는 쌀이 넉넉지 않아 만들어낸 고육책이었다.

웃목(윗목)에 시루를 놓고 콩나물을 길러서 콩나물과 밥 그리고 간장 기본인 비빔장을 얹어 콩나물비빔밥을 먹었다. 고기 가루조차 하나 들어가지 않은 콩나물밥, 그래도 가끔 먹고 싶은 그리운 어릴 적 음식 중에 하나다.

시어 터진 김치를 끓이다 물을 많이 잡고 김치 수제비를 해 먹기도 했다. 김치가 맛있으면 뭐든 맛있다는 김치 베이스의 음식 중에 하나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김치를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가 없다. 잘해야 파를 썰어 넣고 무도 나는 철이라야 들어가지, 말 그대로 소금에 절어진 배추에 고춧가루로 버무린 게 김치다. 새우젓이 있으면 넣고 다른 젓국은 아예 집에서 소유한 적이 없다. 냉장고도 없는 실온에서 배추김치는 실대로 시어 터진 김치였다.

밭에서 매라는 하얀 뿌리를 캐서 먹고 껌 풀이라면서 풀을 씹었다. 어머니하고 나무하러 갔다가 배고프지 하면서 어머니가 예전에 이렇게 해서 먹었다는 소나무 여린 순을 잘라 낫으로 껍질을 살짝 벗겨내고 그 안에 여린 소나무 껍질을 이빨로 피리를 불듯, 갈비를 뜯듯이 뜯어 먹었다.

지금도 마트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하나로 때우고 하루 종일을 견디는 한국의 소년 가장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그렇다. 음식이 넘쳐 나는 한국에서도 여전히 굶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다. 재정의 고갈로 연금 지급 연령을 68세로 늘려야 한다는 정부, 하지만 기간만 조금 늦출 뿐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다.

내가 이민하던 90년대에도 외국에서 한국으로 연수생으로 일하러 온 외국인들이 있었다. 현재는 불법 체류자가 4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 농촌, 어촌에서 그들의 일손은 이제 당연해졌다고 말한다. 농촌에 젊은 손은 없고 노인들만 있는 현실에서 외국이 노동자를 정상적으로 구하려고 해도 구하기 힘들다고 한다. 불법 체류자는 잡아야 하지만 대책을 세워 놓고 단속해야 하지 않느냐고 농민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공장에 사람들을 다 잡아가 버려 공장을 돌리지 못하는 사장은 한숨을 쉰다. 돼지 도축을 하는 공장에서도 일을 가르쳐 익숙해지면 떠난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조선소의 하청 업체도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회사를 돌리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엔 40대부터 직장에서 밀려나 퇴직 아닌 퇴직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국내 인력을 재교육해서 산업의 근본을 세우려 아무도 노력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대학 대학원을 나와 의사, 검사 등을 하려고만 목표를 정한다. 고등학교를 나와도 의사, 검사보다 수입도 좋고 대우도 더 받을 수 있는 노동 현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귀족 노조라고 몰아붙이면서 반정부 세력이라고 명명하기 바쁘다. 그러니 근본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기만 하고 농촌의 공동화 현상으로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논밭이 놀 수밖에 없다.

국민의 먹을거리는 중요하다. 공장을 지어서 더 부가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팔고 그 돈으로 식량을 사 오면 된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점점 저물어 가고 있다. 인구 대국 중국과 인도가 툭하면 농산물 수출을 금한다. 2모작 아니 3모작을 하는 태국과 베트남도 식량이 모자랄 것 같거나 가격이 들썩이면 수출을 막아 버린다. 쌀을 수출하던 필리핀은 IMF구조 조정으로 인해 쌀농사 지어야 할 땅에 대형마트를 세우고, 골프장을 짓고 좀 더 생산성 있는 땅 이용을 강요당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쌀 생산이 줄어들고 싼값에 밥은 배불리 먹던 도시 빈민들이 치솟는 쌀값에 저렴한 정부미를 판매하는 쌀 판매소에 날마다 긴 줄을 서는 데 노동력을 소비한다.







기후 위기로 태풍은 늘고 가뭄에 거북이 등짝처럼 쩍쩍 갈라지는 건천만 늘어 간다. 이는 어는 한 국가나 사막 국가에 한 정 되어 있지 않고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아프리카는 물 때문에 종족간의 전투가 벌어지고, 농장을 총을 들고 지키는 사태까지 생긴다. 농촌에서 아무리 일을 해도 먹고 살기도 힘든 형편이니 도시로 몰려드는 현상은 선진국, 후진국 따질 것 없이 똑같다. 나는 비록 못 배우고 못살았어도 내 자식은 배워서 잘살아야 한다는 마음은 똑같다. 하지만 먹는 것도 해결 못 하는 가장들이 늘어 간다. 조선시대엔 양반이 양민을 수탈해서 양민조차 양반 밑에서 일하는 것이 나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수많은 자영업자가 실패하고 쿠팡이나, 파리바게트 같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한다. 여름에 냉방도 안 되는 4층짜리 창고에서 40도가 되는 실내에서 밤낮없이 일을 한다. 반죽 기계에 빨려 들어가 사망했다는 것을 알지만 다른 곳에 갈 곳이 없어서 일을 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이유엔 근본적으로 인간을 인간답게 대우하지 않는 근본적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내가 이민할 때 많은 사람이 미국에 가면 설거지만 해도 부자가 된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수입을 듣고 한국에서 생활할 경우를 계산하고 말한 것이다. 미국도 캐나다도 대학원을 나와야 젊은 나이에 매니저가 되고 수입도 높다. 노동자도 오래 근무할수록 대우받는 풍토는 노동조합이 없다면 기대조차 할 수 없다.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기업이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보는데 어떤 노동자가 기업을 가족처럼 여기고 내 아이디어를 다 내놓고 열정을 다 하여 일할까?

인구 절벽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어떤 일을 하든 무시되지 않고 갑질에 당하지 않고 보람을 느끼며 가족 부양에 애 끓이지 않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조건을 만들고 당장 부족한 농촌과 어촌의 부족한 인력은 농업이민, 어업 이민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지방거주제한의 비자를 주고 영주권을 주어 그들이 노력하면 농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한국인을 만들어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이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먹는 것으로 바이오 연료를 만드는 것은 인류 말살 정책이지 대안 에너지 정책이 절대 아니다.

캐나다도 계속 문호를 개방해서 이민자를 받아들이고 있다. 이유는 이민자를 받지 않으면 인구 정체를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투자 이민도 받고, 노동 비자, 농업이민, 유아교육 이민, 간호사 이민, 기술이민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취업을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는 세금과 그들의 자녀로 인해 국가가 돌아간다. 연금을 올리고 연금의 지급 시기를 늦출 것이 아니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늘리고, 일할 수 있는데 못하는 사람들을 교육을 시켜 재배치하고, 모자라는 인력은 이민을 통해 받아야 한다. 이민 문호를 개방하면 베트남이나 몽골 카자흐스탄 등에서 이민을 올 사람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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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이 기사에 대한 반론 및 기사 제보 mytrea7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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