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백 년처럼 사는
하루살이 서툰 날갯짓같이
날마다 하는 일도
날마다 걷는 일도
외줄 타는 곡예 같다
어린 시절 농약 먹고
마루 밑에서 괴로워 울부짖던
검둥이 눈물을 가슴에 눈물 구슬처럼 담아 오듯이
또박또박 써내려 간
조카 편지가 하늘 나라 소식처럼
이젠 흔적조차 사라진 조카 모습 되어
가슴에서 뒤척인다
집
들
산
강
어둠에 보이지 않는 것들
사라진 게 아니라
어둠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는 거라고
기억에서 멀어진다고
사라진 게 아니고
잠시 잊혀 졌던 거라고
그저 귀찮게 만 느껴졌던
하루살이 비행이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인 것처럼
망원렌즈에 잡힌
하루살이 아름다운 날갯짓에
나도 날고 싶어.
#작가의 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반딧불, 호롱불, 남포 불….
어둠이 깊을수록 작은 불빛이 밝게 느껴진다.
지금은 대부분의 아이가 세상은 원래부터 전기가 들어오고, 컴퓨터가 있고, 전등이 있고 스토브가 있는 주방, 냉장고에 차가운 물, 화장실에는 수세식 변기가 당연한 걸로 여길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비데를 쓰니 다른 데서도 비데를 찾게 게 되는 것 아닐까.
예전에는 캄캄한 방안에서 온 식구가 함께 잠을 잤다. 아버지 어머니 누나 나 동생, 모든 식구가 이불조차 모자라 함께 덮고 자다 보면 이불을 덮지 않아 추워서 깨던 시절, 군불을 때는 방안에서도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담긴 물이 살짝 얼고는 했다. 화장실이 아닌 변소는 밖에 있고 일어나서 나가다 다른 사람들을 밟아서 깨어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했다. 요강을 사용한다고 해도 다들 들을 수밖에 없는 방안이라 조심하던 그 시절엔 깜깜한 방에 일어나 조금만 눈을 뜨고 있으면 흐리지만 앞이 보였다. 어둠 속이지만 마치 적외선 카메라를 장착이라도 한 듯 희미한 물체의 윤곽을 보고 조심조심 움직여 밖으로 나가 변소를 갈 수 있었다. 변소에도 불이 없어 성냥을 가지고 나가 불을 켜야 했고, 성냥을 가지고 나가지 못하고 더듬거리고 미끄러운 통나무 변기 위에 서다가 미끄러져 빠지기도 하고 겨울엔 땅속에서 솟구치는 고드름처럼 변기 속에서 자라는 고드름이 자루만 자라서 올라오기도 했다.
추위 때문에 무서워서 그냥 마루에 서서 마당에 대고 힘껏 갈겨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는데 비 오는 날은 빗소리가 마치 오줌 누는 소리처럼 들려 소리를 감출 수 있고 비를 맞기 싫으니 더욱 용기를 냈던 것 같다. 지금 와 생각하면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지나간 시간처럼 느낀다.
언덕배기에서 수숫대로 만든 화살과 닥나무를 휘어서 만든 활로 활쏘기를 하다가 언덕 아래로 누구 오줌 줄기가 더 멀리 나가나 오줌을 쏴~하던 그 시절은 나만의 기억 나만의 추억이 되어 버렸다.
때론 꿈속에서도 그렇게 오줌을 갈기고 나면 영락없이 그 두꺼운 솜을 넣은 담요에 오줌 지도를 그려 혼나고, 키를 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갔던 기억도 우리만의 추억이 되었다.
호롱불 아래서 학교 아이들이 모여 반대말 비슷한 말들을 써오는 숙제를 하던 그 시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현실로 배우기도 했다. 들에서 반딧불을 잡아 손안에 가두고 있다가 자랑하면 반딧불이 날아가던 그 시절은 하늘엔 별도 정말 총총했다. 달빛에 사과 서리, 참외 서리 수박 서리와 원두막에서 지킨다고 잠을 자면서 코를 골던 이웃집 할아버지의 소리도 이젠 다신 돌아오지 않을 추억이 되어 버렸다.
육성 회비를 안 가져왔다고 일어서라고 하고 일어나서 어쩔 줄 몰라서 얼굴을 붉히던 아이들.
돈이 없는 것이 잘못한 것인 것처럼 가르치던 그때, 다른 애들은 대학에 가고 나는 대학에 못 간다는 것에 절망하기도 했다. 농사일보다 선반을 돌리고 기계를 만지는 일이 덜 힘들다는 것을 알았지만 손톱 밑에 새까맣게 끼는 기름때는 비누로 지우고 지워도 지지 않았다.
까까머리에 검은 교복을 입던 시절에도 여름 교복에 ‘하얀 카라’가 이뻤던 교복 입은 여학생들의 단발머리와 풋풋한 내음은 버스를 타면 도시락 반찬 냄새와 함께 그리운 향기의 하나이다.
총검술을 하고 제식훈련을 하는 교련 과목이 있던 그 시절엔 핸드폰이 없었다. 스마트폰이 없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신문이나 라디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리 힘든 일을 겪어도 내가 정말 힘든 시간을 겪는 줄도 몰랐다.
어두운 동굴에서 빛이 들어오는 입구를 향해 나갈 때는 빛만 보이듯이 발밑에 돌이 있는지는 보이지도 않았다. 세상은 점점 더 밝고 더 빛나는 건물 안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귀신 이야기에 떨고 옥수수 대에 매달린 비닐을 보고 귀신으로 착각해서 무서워하듯 일상에서 귀신은 곳집에도 창고에도 폐가에도 있었다. 호랑이가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산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는 호랑이가 있다는 착각을 하고는 했었다.
하루살이가 하루를 살아도 나의 평생은 이러했다고 말하듯이 사람도 100년도 못살면서 사는 이야기는 저마다 달라 시대가 다르면 사는 이야기도 달라지듯이 반딧불처럼 기억에서조차 잊혀 질 것들이 많다. 백열전구가 사라지고 삐삐가 사라지고 버스 안내양이 사라지듯이 다가올 미래엔 어떤 로봇이 우리의 일상을 대체하고 일을 대체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많은 종교를 가지듯이 로봇도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닐지.
어제 런던드럭에 갔다가 가든닝 디스플레이로 부처상을 파는 것을 보고 기분이 언짢았다. 전에 어떤 동네에 갔더니 집 정원에 부처상을 둔 것을 본 감정하고 비슷하다. 부처상을 보고 마음을 평안하게 느낀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냥 바위나 갓등 같은 것처럼 부처상을 디스플레이 하는 소품의 하나로 생각한다면 문제가 있을 거나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십자가를 목걸이나 반지로 차고 다니고 부처상을 목걸이로 차고 다니기는 하지만 정원에 이쁘게 장식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동양의 종교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대한민국 국민학교에 단군상을 설치했는데 다른 기독교에서 종교적 합의를 이끌어내지 않았는데, 우상숭배라는 단군상을 학교에 배치하는 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주장했다. 단군이 한민족의 시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일본이 만든 식민사관으로 단군 이야기는 신화라고 가르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나라는 없는 역사도 만들어 내는데 한국은 있는 역사도 없애려 한다. 조선 시대에도 불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억압받았다. 그럼에도 민간에서 신앙의 국가적 지주로 지탱해 오다가 일제를 거치면서 신문물과 더불어 기독교가 대한민국의 주류로 성장하고 이제는 국가의 시조도 인정하려 들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종교의 전도보다 더 중요한 게 마음의 깨달음이다. 바른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바른 삶을 살 수 있다. 무작정 너의 종교는 우상이고 예수 말씀이 옳다는 말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똑같이 삶의 본을 보이는 불자 상이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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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은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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