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2. 나의 조국
[전재민의 부르지 못한 노래] 152. 나의 조국
  • 전재민 시인
  • 승인 2024.03.07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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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물 한 움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힘주어
꼭 쥐면 쥘수록
손안에
물은 사라지고

헛헛한 가슴
채우려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가슴은 점점 텅 비어
빈 항아리 같다.

손끝에 닿을 것만 같던 것들
하나 둘 떠난 자리엔
새싹 같은 아이 마음
자라고

세상에 올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응아하고
울며 왔듯이

떠날 때도 미련 한 자락 남기지 말고
빙그레 웃음 남기고 싶다.
 







#작가의 변

오늘 3.1절 독립 만세를 외치던 날이다.
격세지감 사람들은 휴일이라고 일본 관광을 가고
일본과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정부 발표도 있지만
일본은 1919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기회만 되면 다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를 다시
자신들의 발아래 놓으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일본과 잘 지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고
일제에서 만주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나
미국의 독립 자금을 빼돌려 저 혼자 호의호식하면서
호텔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조국이 독립되니 미군에 휩쓸려 들어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4.19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통재다.

오늘 푸드뱅크에서 만난 사람이 우크라이나 젊은이는 이곳에 다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평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났다고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이나 영주하던 사람들조차 이스라엘로 달려갔는데 우크라이나는 노인네들만 남기고 젊은이들은 다 외국으로 피난 온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는 조국이 전쟁해서 절박함이라든가 외국에서라도 고국의 전쟁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보다 많은 난민을 받으려 했다. 제한 없이 신청을 받아 93만 6천 명이 신청했고 2023년 4월 28일까지 총 21만 178명이 캐나다에 난민으로 입국을 했다. 그리고 올해 캐나다로 9만 명이 더 올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전쟁 난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있다. 주변 나라인 이집트조차 그들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특히 토론토, 밴쿠버 등 대도시들은 지금 주택난으로 캐나다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민들이 저소득층에게 할당된 임대 아파트를 먼저 차지 하면서 저소득층은 더욱 곤경에 내몰리고 있다. 푸드뱅크에 음식을 타러 오는 사람도 리치몬드 푸드뱅크 은 경우 60%가 우크라인으로 보인다. 캐나다의 저소득층이 그만큼 더욱 벼랑으로 내몰린다는 이야기다.

캐나다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살기를 원한다. 난민으로 온 그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보다 정착이 훨씬 쉽다. 아시아인들은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돈을 싸 들고 와야 하고 유럽에서는 난민을 무더기로 받아 캐나다의 주택난이 심한데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면서 조국에 대해 생각한다. 조국은 친정과 같은 곳이다. 이민을 와서 비록 캐나다 시민권자이지만 캐나다 백인들은 우리가 캐나디언이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조차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조국이 잘살고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이면 무시하는 것이 좀 덜하고 무시받아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든든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만주를 떠돌다 순국 한 선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들이 러시아 영토 내에 살거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평가되고 무시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조국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자 일제정부에 아부하고 사관학교에 지원하거나 일본 관리가 되어 그들의 앞잡이 노릇하다가 해방 후에는 우국지사 인양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못살아서 공산주의와 남로당에 솔깃해하던 국민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결국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집단 학살하여 동네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집계조차 안 되던 그들의 시신이 최근에 발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기타 사건들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아닌 도구가 되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 당시 대통령이었고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의 한 토막이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 시대에도 농민과 못사는 사람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싸웠고 불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지주나 양반들은 숨거나 피난 가기에 바빴고 피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재산이 없어진 것을 가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주들의 자식은 일본으로 유학가 일제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수탈에 못 견디고 만주와 연해주로 떠난 사람들은 고려인이 되어 조국을 잃은 국민이 되어 이민 4세 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힘없고 빽 없는 일반 민중들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 자명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처럼 젊은이도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대한민국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하지 않는 국민을 누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고 지켜 줄 것인가?

언론과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꿀 힘은 투표에 있으니,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조국이길 3.1절을 통해 바래본다. 세상이 바뀌고 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도 조국이 없으면 세계에서 가장 고통 받는 민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라 잃은 설움을 맨몸으로 항거하던 3.1운동 그날의 함성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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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물 한 움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힘주어
꼭 쥐면 쥘수록
손안에
물은 사라지고

헛헛한 가슴
채우려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가슴은 점점 텅 비어
빈 항아리 같다.

손끝에 닿을 것만 같던 것들
하나 둘 떠난 자리엔
새싹 같은 아이 마음
자라고

세상에 올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응아하고
울며 왔듯이

떠날 때도 미련 한 자락 남기지 말고
빙그레 웃음 남기고 싶다.
 





죽어야 산다.

물 한 움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힘주어
꼭 쥐면 쥘수록
손안에
물은 사라지고

헛헛한 가슴
채우려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가슴은 점점 텅 비어
빈 항아리 같다.

손끝에 닿을 것만 같던 것들
하나 둘 떠난 자리엔
새싹 같은 아이 마음
자라고

세상에 올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응아하고
울며 왔듯이

떠날 때도 미련 한 자락 남기지 말고
빙그레 웃음 남기고 싶다.
 







#작가의 변

오늘 3.1절 독립 만세를 외치던 날이다.
격세지감 사람들은 휴일이라고 일본 관광을 가고
일본과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정부 발표도 있지만
일본은 1919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기회만 되면 다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를 다시
자신들의 발아래 놓으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일본과 잘 지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고
일제에서 만주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나
미국의 독립 자금을 빼돌려 저 혼자 호의호식하면서
호텔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조국이 독립되니 미군에 휩쓸려 들어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4.19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통재다.

오늘 푸드뱅크에서 만난 사람이 우크라이나 젊은이는 이곳에 다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평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났다고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이나 영주하던 사람들조차 이스라엘로 달려갔는데 우크라이나는 노인네들만 남기고 젊은이들은 다 외국으로 피난 온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는 조국이 전쟁해서 절박함이라든가 외국에서라도 고국의 전쟁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보다 많은 난민을 받으려 했다. 제한 없이 신청을 받아 93만 6천 명이 신청했고 2023년 4월 28일까지 총 21만 178명이 캐나다에 난민으로 입국을 했다. 그리고 올해 캐나다로 9만 명이 더 올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전쟁 난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있다. 주변 나라인 이집트조차 그들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특히 토론토, 밴쿠버 등 대도시들은 지금 주택난으로 캐나다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민들이 저소득층에게 할당된 임대 아파트를 먼저 차지 하면서 저소득층은 더욱 곤경에 내몰리고 있다. 푸드뱅크에 음식을 타러 오는 사람도 리치몬드 푸드뱅크 은 경우 60%가 우크라인으로 보인다. 캐나다의 저소득층이 그만큼 더욱 벼랑으로 내몰린다는 이야기다.

캐나다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살기를 원한다. 난민으로 온 그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보다 정착이 훨씬 쉽다. 아시아인들은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돈을 싸 들고 와야 하고 유럽에서는 난민을 무더기로 받아 캐나다의 주택난이 심한데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면서 조국에 대해 생각한다. 조국은 친정과 같은 곳이다. 이민을 와서 비록 캐나다 시민권자이지만 캐나다 백인들은 우리가 캐나디언이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조차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조국이 잘살고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이면 무시하는 것이 좀 덜하고 무시받아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든든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만주를 떠돌다 순국 한 선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들이 러시아 영토 내에 살거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평가되고 무시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조국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자 일제정부에 아부하고 사관학교에 지원하거나 일본 관리가 되어 그들의 앞잡이 노릇하다가 해방 후에는 우국지사 인양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못살아서 공산주의와 남로당에 솔깃해하던 국민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결국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집단 학살하여 동네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집계조차 안 되던 그들의 시신이 최근에 발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기타 사건들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아닌 도구가 되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 당시 대통령이었고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의 한 토막이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 시대에도 농민과 못사는 사람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싸웠고 불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지주나 양반들은 숨거나 피난 가기에 바빴고 피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재산이 없어진 것을 가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주들의 자식은 일본으로 유학가 일제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수탈에 못 견디고 만주와 연해주로 떠난 사람들은 고려인이 되어 조국을 잃은 국민이 되어 이민 4세 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힘없고 빽 없는 일반 민중들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 자명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처럼 젊은이도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대한민국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하지 않는 국민을 누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고 지켜 줄 것인가?

언론과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꿀 힘은 투표에 있으니,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조국이길 3.1절을 통해 바래본다. 세상이 바뀌고 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도 조국이 없으면 세계에서 가장 고통 받는 민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라 잃은 설움을 맨몸으로 항거하던 3.1운동 그날의 함성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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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변

오늘 3.1절 독립 만세를 외치던 날이다.
격세지감 사람들은 휴일이라고 일본 관광을 가고
일본과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정부 발표도 있지만
일본은 1919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기회만 되면 다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를 다시
자신들의 발아래 놓으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일본과 잘 지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고
일제에서 만주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나
미국의 독립 자금을 빼돌려 저 혼자 호의호식하면서
호텔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조국이 독립되니 미군에 휩쓸려 들어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4.19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통재다.

오늘 푸드뱅크에서 만난 사람이 우크라이나 젊은이는 이곳에 다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평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났다고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이나 영주하던 사람들조차 이스라엘로 달려갔는데 우크라이나는 노인네들만 남기고 젊은이들은 다 외국으로 피난 온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는 조국이 전쟁해서 절박함이라든가 외국에서라도 고국의 전쟁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보다 많은 난민을 받으려 했다. 제한 없이 신청을 받아 93만 6천 명이 신청했고 2023년 4월 28일까지 총 21만 178명이 캐나다에 난민으로 입국을 했다. 그리고 올해 캐나다로 9만 명이 더 올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전쟁 난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있다. 주변 나라인 이집트조차 그들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특히 토론토, 밴쿠버 등 대도시들은 지금 주택난으로 캐나다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민들이 저소득층에게 할당된 임대 아파트를 먼저 차지 하면서 저소득층은 더욱 곤경에 내몰리고 있다. 푸드뱅크에 음식을 타러 오는 사람도 리치몬드 푸드뱅크 은 경우 60%가 우크라인으로 보인다. 캐나다의 저소득층이 그만큼 더욱 벼랑으로 내몰린다는 이야기다.

캐나다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살기를 원한다. 난민으로 온 그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보다 정착이 훨씬 쉽다. 아시아인들은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돈을 싸 들고 와야 하고 유럽에서는 난민을 무더기로 받아 캐나다의 주택난이 심한데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면서 조국에 대해 생각한다. 조국은 친정과 같은 곳이다. 이민을 와서 비록 캐나다 시민권자이지만 캐나다 백인들은 우리가 캐나디언이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조차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조국이 잘살고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이면 무시하는 것이 좀 덜하고 무시받아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든든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만주를 떠돌다 순국 한 선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들이 러시아 영토 내에 살거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평가되고 무시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조국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자 일제정부에 아부하고 사관학교에 지원하거나 일본 관리가 되어 그들의 앞잡이 노릇하다가 해방 후에는 우국지사 인양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못살아서 공산주의와 남로당에 솔깃해하던 국민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결국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집단 학살하여 동네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집계조차 안 되던 그들의 시신이 최근에 발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기타 사건들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아닌 도구가 되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 당시 대통령이었고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의 한 토막이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 시대에도 농민과 못사는 사람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싸웠고 불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지주나 양반들은 숨거나 피난 가기에 바빴고 피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재산이 없어진 것을 가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주들의 자식은 일본으로 유학가 일제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수탈에 못 견디고 만주와 연해주로 떠난 사람들은 고려인이 되어 조국을 잃은 국민이 되어 이민 4세 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힘없고 빽 없는 일반 민중들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 자명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처럼 젊은이도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대한민국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하지 않는 국민을 누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고 지켜 줄 것인가?

언론과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꿀 힘은 투표에 있으니,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조국이길 3.1절을 통해 바래본다. 세상이 바뀌고 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도 조국이 없으면 세계에서 가장 고통 받는 민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라 잃은 설움을 맨몸으로 항거하던 3.1운동 그날의 함성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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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야 산다.

물 한 움큼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힘주어
꼭 쥐면 쥘수록
손안에
물은 사라지고

헛헛한 가슴
채우려 먹으면 먹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가슴은 점점 텅 비어
빈 항아리 같다.

손끝에 닿을 것만 같던 것들
하나 둘 떠난 자리엔
새싹 같은 아이 마음
자라고

세상에 올때

아무도 알지 못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응아하고
울며 왔듯이

떠날 때도 미련 한 자락 남기지 말고
빙그레 웃음 남기고 싶다.
 







#작가의 변

오늘 3.1절 독립 만세를 외치던 날이다.
격세지감 사람들은 휴일이라고 일본 관광을 가고
일본과 관계가 좋아져야 한다는 정부 발표도 있지만
일본은 1919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기회만 되면 다시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를 다시
자신들의 발아래 놓으려 한다.
그럼에도 그런 일본과 잘 지내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디서 나왔고
일제에서 만주군으로 활동하던 이들이나
미국의 독립 자금을 빼돌려 저 혼자 호의호식하면서
호텔에서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조국이 독립되니 미군에 휩쓸려 들어와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들은 물론 많은 시민을
빨갱이로 몰아 학살하고 4.19혁명으로 쫓겨난 대통령을
국부로 추앙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호통재다.

오늘 푸드뱅크에서 만난 사람이 우크라이나 젊은이는 이곳에 다 온 것 같다고 했다. 나도 평소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전쟁이 났다고 외국에서 공부하던 학생이나 영주하던 사람들조차 이스라엘로 달려갔는데 우크라이나는 노인네들만 남기고 젊은이들은 다 외국으로 피난 온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에는 조국이 전쟁해서 절박함이라든가 외국에서라도 고국의 전쟁에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가족의 안전만을 생각하는 것 같다.

캐나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유럽보다 많은 난민을 받으려 했다. 제한 없이 신청을 받아 93만 6천 명이 신청했고 2023년 4월 28일까지 총 21만 178명이 캐나다에 난민으로 입국을 했다. 그리고 올해 캐나다로 9만 명이 더 올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전쟁 난민을 난민으로 받아들이겠다고 했다는 소식이 있다. 주변 나라인 이집트조차 그들을 받지 않겠다고 했는데 캐나다는 오지랖도 넓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특히 토론토, 밴쿠버 등 대도시들은 지금 주택난으로 캐나다를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난민들이 저소득층에게 할당된 임대 아파트를 먼저 차지 하면서 저소득층은 더욱 곤경에 내몰리고 있다. 푸드뱅크에 음식을 타러 오는 사람도 리치몬드 푸드뱅크 은 경우 60%가 우크라인으로 보인다. 캐나다의 저소득층이 그만큼 더욱 벼랑으로 내몰린다는 이야기다.

캐나다로 들어온 우크라이나인들은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그들은 이곳에서 직장을 잡고 살기를 원한다. 난민으로 온 그들은 정부의 지원이 있어서 정상적으로 이민을 온 사람들보다 정착이 훨씬 쉽다. 아시아인들은 투자 이민을 신청하고 돈을 싸 들고 와야 하고 유럽에서는 난민을 무더기로 받아 캐나다의 주택난이 심한데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난민을 보면서 조국에 대해 생각한다. 조국은 친정과 같은 곳이다. 이민을 와서 비록 캐나다 시민권자이지만 캐나다 백인들은 우리가 캐나디언이라고 하면 코웃음을 친다. 이곳에서 태어난 2세조차 그런 취급을 받는다. 그래도 조국이 잘살고 세계에서 잘사는 나라이면 무시하는 것이 좀 덜하고 무시받아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든든하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일제시대 만주를 떠돌다 순국 한 선열들의 죽음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그들이 러시아 영토 내에 살거나 독립을 위해 공산주의자들과 손을 잡았다는 이유로 평가되고 무시 되는 상황이 안타깝다.

조국이 일제의 손에 넘어가자 일제정부에 아부하고 사관학교에 지원하거나 일본 관리가 되어 그들의 앞잡이 노릇하다가 해방 후에는 우국지사 인양하던 사람들이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미군정의 앞잡이가 되어 못살아서 공산주의와 남로당에 솔깃해하던 국민을 대규모로 학살하고 결국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까지 집단 학살하여 동네에 살아남은 사람이 없어 집계조차 안 되던 그들의 시신이 최근에 발굴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제주 4.3사건이나 기타 사건들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 아닌 도구가 되었던 시대였다. 그 시대의 대표적 인물이 당시 대통령이었고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란 말은 그 시대를 대표하는 코미디의 한 토막이다.

조선 시대에도 고려 시대에도 농민과 못사는 사람이 오히려 나라를 위해 싸웠고 불의를 위해 분연히 일어났다. 지주나 양반들은 숨거나 피난 가기에 바빴고 피난에서 돌아와 자신들의 재산이 없어진 것을 가노들에게 책임을 묻기도 했다. 일제 강점기에도 지주들의 자식은 일본으로 유학가 일제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고 수탈에 못 견디고 만주와 연해주로 떠난 사람들은 고려인이 되어 조국을 잃은 국민이 되어 이민 4세 들은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 오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에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도망가고 힘없고 빽 없는 일반 민중들만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쓸릴 것이 자명한 일이다.

우크라이나처럼 젊은이도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대한민국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스스로 일어서려 노력하지 않는 국민을 누가 대신 나서서 싸워주고 지켜 줄 것인가?

언론과 정부의 감언이설에 속지 말고 힘들고 어려운 환경을 바꿀 힘은 투표에 있으니, 투표를 통해 민주주의가 승리하는 조국이길 3.1절을 통해 바래본다. 세상이 바뀌고 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하고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도 조국이 없으면 세계에서 가장 고통 받는 민족이 될 것이다. 그것은 나라 잃은 설움을 맨몸으로 항거하던 3.1운동 그날의 함성을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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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민(Terry)
캐나다 BC주 밴쿠버에 사는 ‘셰프’이자, 시인(詩人)이다. 경희대학교에서 전통 조리를 공부했다. 1987년 군 전역 후 조리 학원에 다니며 한식과 중식도 경험했다. 캐나다에서는 주로 양식을 조리한다. 법명은 현봉(玄鋒).
전재민은 ‘숨 쉬고 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말한다. ‘나 살자고 한 시 쓰기’이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고, 감동하는 독자가 있어 ‘타인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한다. 밥만으로 살 수 없고, 숨만 쉬고 살 수 없는 게 사람이라고 전재민은 말한다. 그는 시를 어렵게 쓰지 않는다.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 직업이지만, 직업인이 되면 안 되듯, 문학을 직업으로 여길 수 없는 시대라는 전 시인은 먹고살기 위해 시를 쓰지 않는다. 때로는 거미가 거미줄 치듯 시가 쉽게 나오기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쓰지 못할 때도 있다. 시가 나오지 않으면 그저 기다린다. 공감하고 소통하는 사회를 꿈꾸며 오늘도 시를 쓴다.
2017년 1월 (사)문학사랑으로 등단했다. 2017년 문학사랑 신인 작품상(아스팔트 위에서 외 4편)과 충청예술 초대작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문학사랑 회원이자 캐나다 한국문인협회 이사, 밴쿠버 중앙일보 명예기자이다. 시집 <밴쿠버 연가>(오늘문학사 2018년 3월)를 냈고, 계간 문학사랑 봄호(2017년)에 시 ‘아는 만큼’ 외 4편을 게재했다.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했다. 밴쿠버 중앙일보에 <전재민의 밴쿠버 사는 이야기>를 연재했고, 밴쿠버 교육신문에 ‘시인이 보는 세상’을 기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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