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 최재천 변호사
  • 승인 2011.01.20 12: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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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시사큐비즘]

새해 초 흐뭇한 기사에 모두들 즐거우셨을 겁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을 거제시와 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에 모두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죽으면 끝나는 것이고 영원히 못산다"면서 "내가 가진 재산을 자식들에게 줄 필요 없고 재산을 환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상도동 자택과 조상들의 묘가 있는 임야, 거제도에 교회와 생가, 대통령 기록관 등 50여 억 원 가량의 재산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가운데 거제도 교회와 생가, 대통령기록관은 거제시에, 상도동 자택과 선산은 김수환 전 국회의장이 이사장으로 있는 김영삼 민주센터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언론들이 전직 대통령의 전 재산 기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고 띄우기 시작합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경우 재임 중 자신과 가족의 치부로 퇴임 후 처벌받은 예가 있어 김 전 대통령의 기부는 상대적으로 더욱 돋보인다”는 기사도 있었습니다. 특히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조성했다가 법원으로부터 수천 억 원씩 추징당했으며, 지금도 1672억 원과 270억 원을 갚지 않고 서울 연희동 저택에서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덧붙입니다. “김 전 대통령의 재산 사회 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2009년 재산 기부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사회 지도층의 기부문화 확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이며 김 전 대통령의 기부는 그런 점에서 우리 모두가 본받을 일”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미담 기사가 전해지고 바로 며칠 후 김영삼 민주센터가 각 기업들로부터 모금을 받아 대대적인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졌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재산을 환원하겠다고 밝힌 ‘김영삼 민주센터’가 최근 한 경제단체에 지원을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민주센터 측은 공문을 통해 “2014년까지 총 사업비 180억 원이 필요하다”며 국고보조로 54억 원을 충당하고, 나머지 126억 원 중 100억 원을 기업들의 모금으로 채울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김영삼 민주센터가 해야 하는 주요 사업은 김 전 대통령 기념도서관 건립, 전시 및 홍보사업, 연구교육 사업 등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김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산 50여억 원 중 일부를 이 단체에 기부한다고 밝혔음에도 기업들로부터 갹출까지 받아가면서 대규모의 사업을 한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그나마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 걸까요?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기념센터 사업을 위해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돈을 기업들에 요구하는 것”이라며 “‘죽으면 끝’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오히려 이번 기념센터 건립으로 후세에 이름을 남길 욕심을 내시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의 부자들이 재산의 대부분을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목격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세계적인 부자 워런 버핏 입니다. 2006년 '빌 앤드 멜렌다 게이츠 재단'에 300억 달러(약 30조원에 해당)에 해당하는 버크샤 헤더웨이의 주식 1000만주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재단' 역시 한때 세계 제1의 부자였던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자신들의 재산 대부분을 자선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설립한 비영리 자선사업 재단으로 (2010년 기준) 300억 달러에 해당하는 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워런 버핏은 자신의 기부와 관련하여 "기부는 생활이다. 2006년 재산의 99%를 기부하겠다고 밝혔을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2006년 버크셔 헤더웨이 주식의 85%를 사회에 헌납하기로 하고 그 금액의 5/6를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비롯한 5개 자선단체에 기부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은 지난 2008년 세계 제1의 부자로 총 60조대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얼마 전부터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라는 단체를 만들어 억만장자들을 대상으로 재산의 50%를 기부하는 운동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미 테드 터너 CNN회장,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설립자,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 시장 등 57명의 부자들이 기부를 약속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많은 기업이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회사 명의의 재단을 만들어 기부를 합니다.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연말에 일회성이나 이벤트성으로 기부를 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기부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의 기부는 우리와는 다릅니다. 단지 금액의 차이만이 아닙니다. 사회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은 선진국이 되기 위한 필수 요건 맞습니다. 하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 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로스쿨, 영남대 로스쿨, 전남대 로스쿨,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이번 학기는 이화여대 법대에서 2,3,4학년을 대상으로 '현대사회와 법'이라는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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